〈 94화 〉 대동력 9,994년 5월 25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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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5시, 대월국 우산번 세천벌 일대
율도군이 대월국 흥원을 점령하고 있는 사이, 심운보가 이끄는 성산번군은 개골령을 빠져나와 수도 은허를 향해 철수하고 있었다. 국왕군을 쫓아 환강산성을 포위했던 2만 군세의 반란군은 개골령 전투로 인해 그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있었다. 다른 번의 번군들이 천제국군들에게 포위되어 전멸 당했고, 당시 1선을 지키고 있던 심운보의 성산번군 역시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지난 전투에서 천제국군을 상대했던 성산번군들은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들 중 대다수가 흰서리 산맥 일대에서 거록의 두억시니들과 싸워본 경험을 가지고 있었지만, 천제국군의 전투력은 감히 거록의 두억시니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두억시니들 뿐 아니라 두두리 등 혼혈 종족들로 이루어진 부락민군, 천제국으로 넘어간 도깨비들로 이루어진 붉은 갑주의 기병들도 매우 위협적이었다.
“저런 괴물들이 국왕을 도우러 온 거라면, 각하의 대업도 이제 완전히 끝난 거 아냐......?”
“이번 대업이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해? 국왕이 도로 자기 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거지.”
“그럼, 우리 성산백 각하는? 그리고...... 우리는?”
“......국왕에게 다 죽겠지......”
벌써 번군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까지 퍼지고 있었다.
행군 대오의 맨 후위는 성산번의 영주 중 한 명인 음학수의 무사단이 맡고 있었다. 음학수의 무사단은 지난 개골령 전투 때 3선에 배치되어 있어서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은 천제국의 추격에 대비해 후방을 경계하며 이동하는 중이었다.
후위에는 무기를 들지 않은 수많은 이들이 무사단과 섞여 함께 걷고 있었다. 주로 부상을 입어 거동이 불편한 자들이 강행군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계속 낙오되면서 후위까지 오게 된 경우가 많았다.
부상병 외에도 군영 유곽의 유녀들도 걷다 지쳐 후위까지 내려와 있었다. 원래 유녀들은 수레에 싣고 다녀야 했지만, 개골령에서 다른 번주들 몰래 철수하느라 군수품 싣는 수레들을 많이 놓고 오는 바람에 유녀들의 수레도 군수품 실어 나르는데 쓰고 있었다.
유녀들은 모두 서른 명 정도였다. 모두들 허름하고 꾀죄죄한 천조각을 옷이랍시고 걸치고 있었다. 신발도 없는지 맨발로 걷고 있는 여자들도 많았다.
유녀들은 대부분 혼혈 종족 여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녀들 중 유독 눈에 띄는 여자 한 명이 있었다. 온통 푸석거리는 검은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생김새로 미루어 보아 분명 아리랑 여자인 듯 했다. 그녀는 다른 유녀들을 따라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정오가 되고 행군이 멈추었다. 도깨비 번군들은 등에 진 짐들과 무기들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다리를 주무르며 휴식을 취했다.
점심시간이었지만 급히 철수하는 도중이라 그런지 귀족이나 무사들은 번군들의 식사를 챙겨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대월국 도깨비들에게는 율도와 같은 전투식량이 없었다. 번군들은 저마다 집을 떠나오며 챙겨온 음식들을 꺼내 요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음식은 대부분 딱딱하게 말린 가래떡이나 콩가루였다. 태진 도깨비들의 경우 주로 말린 북어와 찐쌀을 전투식량으로 가지고 다닌다고 하지만, 바다와 맞닿아 있는 곳이 흥원 뿐인 대월국에서 북어는 제사상에나 올리는 귀하디귀한 음식이었다.
유녀들은 이런 떡 쪼가리조차 가지고 있는 게 없었다. 그녀들 모두 굶주림에 괴로운 표정으로 곁에 있는 번군들을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제 코가 석자인지라, 누구 하나 배고픈 유녀들에게 관심 가져 주는 자가 없었다.
후위 행군 대열에 있던 도깨비 하나가 돌처럼 굳은 가래떡 몇 개를 콩가루와 함께 물그릇에 담고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불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가 몸을 이리 저리 돌리며 가래떡처럼 굳은 몸을 풀고 있을 때, 언덕 위에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시뻘건 색을 하고 있는, 아니, 말 위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 그들이 타고 있는 말까지 온통 시뻘건 색의 갑주와 마갑을 하고 있는 기병들이 불과 1리 (약 400m)도 안 떨어진 언덕 위에서 휴식 중인 성산번군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저기, 저기 천제국군이다! 천제국군이 쫓아왔다!”
도깨비가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 바람에 옆에 놓아두었던 물그릇이 뒤집어지면서 물에 담가 두었던 가래떡들이 땅바닥에 쏟아지고 말았다.
그 소리를 들은 다른 번군들도 모두 공황에 빠진 듯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 어디? 천제국군이 어디 있단 말이냐?”
“저기, 저 언덕 위! 언덕 위에 붉은 갑주 입은 놈들을 봐라!”
“저 놈들이 벌써 우리를 다 쫓아왔다는 거냐? 그럼 우리 이제 다 죽은 거 아냐?”
번군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을 때, 그들의 영주인 음학수가 장자검을 빼어 들며 번군들을 다그쳤다.
“모두 무기 들고 일어서! 진형을 갖춰라! 창병 앞으로! 사수 뒤로! 뭘 꾸물거리고 있나? 빨리 안 일어나?”
음학수는 정신 못 차리고 우왕좌왕거리고 있는 도깨비들을 발로 걷어차며 병력을 횡대로 세워 기병 돌격을 저지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말을 탄 맹약 무사 하나를 불러 본대의 심운보에게 천제국군의 추격대가 따라붙었음을 알리도록 했다.
번군들이 3열로 진을 짜고 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 단단히 겁에 질린 듯, 그들이 들고 있는 창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심운보는 목건주 등 영주, 성주 귀족들과 함께 풀밭 위에 앉아 하인들이 가져다준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철수하는 도중 밥을 짓겠다고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지, 하인들은 남아 있던 식은 누룽지에 물을 말아 그 위에 젓갈과 채소 절임 같은 걸 얹어 내왔다. 대월국 음식이야 형편없기로 유명했지만 도를 지나칠 정도로 궁색하기 이를 데 없는 점심밥을 받아본 귀족들은 그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게 지금 우리 먹으라고 가지고 온 건지, 아님 하인들이 먹다 남은 걸 가져다준 건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네.”
어느 성미 급한 귀족은 번주인 심운보 앞에서 대놓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심운보는 귀족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다는 듯, 아무 말 없이 물에 말은 누룽지를 술술 들이켜고 있었다. 오히려 옆에 앉은 목건주가 무안했던지, 불평을 늘어놓는 귀족들을 무섭게 쏘아보며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밥그릇 위에 올려져 있던 무석박지를 손으로 들고 아삭아삭 씹어 먹던 심운보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목건주를 쳐다보며 물었다.
“경의 무사단에 있는 자들 중 율도 태상국의 비급을 익힌 자들이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그들의 전과는 어느 정도인가?”
번주의 물음에 목건주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태상국의 비급은 무기술보다는 몸을 이용한 무예에 대한 비중이 월등히 많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취해 사용할 수 있는 실제 전투에 관한 기술은 극히 일부분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투에 임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요긴한 것들만 엄선되어 있었기에, 지금까지의 전투에서 이를 익힌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더 많은 적을 사살했고 죽거나 다친 자 역시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그는 손에 든 밥그릇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태상국의 비급은 단순히 베고 찌르는 공격이 아니라 전투시 무사의 움직임과 방어, 그리고 방어 이후의 반격을 매우 중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체로 공격 일변도를 지향하는 우리 대월국 무예를 완전히 파훼 할 수 있는 기술들입니다. 태상국의 비급을 익힌 자들이 이 나라 최고의 실력자들만 모여 있다는 국왕군 무사들을 상대로 크게 선전했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목건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난 개골령 전투에서처럼 우리보다 크고 완력 또한 강한 두억시니 같은 적을 상대로는 여전히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예가 있어도, 힘의 차이는 쉽게 극복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에 심운보가 말했다.
“율도 태상국 역시 천체국 두억시니들을 상대할 때에 기병과 포병을 잘 다루어 이긴 것이지, 무사들끼리 칼을 부딪히는 전면전을 통해 이긴 것이 아니다. 어쨌든 그의 비급이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그거면 되었다.”
그 때, 후미로부터 말을 탄 무사 하나가 황급히 달려왔다. 전령기를 든 무사였다. 무사는 급히 심운보에게로 달려와 부복하고 피를 토하듯 외쳤다.
“천제국 기병들이 추격해 왔습니다! 음학수 영주의 무사단이 적과 교전 중입니다!”
심운보가 들고 있던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무사에게 물었다.
“기병뿐인가, 타락한 도깨비들로 이루어진 그 기병들? 두억시니들도 함께 왔던가?”
“붉은 갑주의 천제국 도깨비 기병들이었고, 두억시니나 두두리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영주 하나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억시니 없이 기병들만 온 것이라면 충분히 해 볼만 합니다! 군을 반전시켜 저들과 맞서 싸우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의 말에 심운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우리가 기병들을 상대하느라 여기서 지체하다가는 적의 본대에게 마저 따라 잡힐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교전은 피하고 은허에 있는 병력들과 최대한 빨리 합류하는 것이 먼저다. 전군에 당장 출발 준비를 하라고 알려라. 지금 즉시 행군을 다시 시작한다.”
심운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옆에 있던 목건주도 장자검을 집어 들며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번 명천백에게 개골령으로 지원군을 보내 달라 했지만, 그는 결국 단 한 명의 번군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들과 합류한다 해도...... 앞으로 그를 믿고 대업을 함께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에 심운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명천백 그 자나 이번 대업에 참여한 번주들 중 왕좌에 관심이 없는 자들이 과연 있기야 하겠나? 아마 내가 개골령에서 천제국 놈들에게 잡혀 죽었다면 자연히 이번 대업을 이룬 뒤 이 나라의 왕위가 자신에게 올거라 생각하고 한 행동이었겠지. 뭐, 뻔한 거 아니겠나?”
그는 하인에게 자신의 말을 가져오라 지시하고는 귀족들을 향해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은 발등 위에 떨어진 급한 불부터 끄고 봐야겠지. 그래, 저 천제국 놈들 말이다. 그 놈들을 은허 근처로 끌어들여 쓸어버리면서...... 명천백 피호석이나 눈에 거슬리는 짓 할 거 같은 번주 놈들을 개골령에 있던 놈들처럼 처리해버리면 돼. 지금 구천락의 수하들이 그들 주변에 심겨져 있으니, 이미 그 놈들은 내 손아귀 안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이 대업이 이루어지는 날, 그들의 땅은 결국 그대들의 봉토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다들, 맡은 바 임무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
그 말에, 모든 귀족들이 심운보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표했다.
하인이 말을 가지고 왔다. 심운보는 말에 오르며 음학수의 무사에게 명을 내렸다.
“너는 돌아가 내가 지금부터 오늘 해가 질 때까지 현 위치에서 적의 추격을 막으라 명했다고 네 주인에게 전하라. 본대가 철수할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끈 뒤, 너희 무사단도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도록 하라, 이렇게 이르라.”
무사는 심운보에게 예를 표한 뒤, 급히 말에 올라타고 다시 후미를 향해 달려갔다.
오후 1시, 대월국 우산번 세천벌 일대
반란군의 후위를 따라잡은 천제국 육군 7 방면군 11군단 기병대장 백사는 군단장 동금에게 전령을 보내 반란군의 위치를 알리는 한편, 기병들을 보내 후위에 있는 음학수의 무사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공격은 권총을 든 총기병들의 공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탕! 탕! 탕! 타당! 탕!
이들은 노병이 쏘는 화살 비를 뚫고 창병들의 진형 6간 (약 10m) 앞까지 말을 달려 들어왔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수석식 (플린트락) 권총 두 자루를 연달아 발사한 뒤 곧장 말을 돌려 본진으로 돌아가 재장전된 권총을 받아 다시 돌격해 들어왔다.
총기병들이 대여섯 차례 공격을 마치고 돌아오자, 그들을 막고 있던 반란군 진형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이 한눈에 드러났다. 총에 맞아 쓰러진 번군들도 많았고, 겁에 질려 대열에서 이탈해 도망가는 자들도 많았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백사가 조용한 목소리로 곁에 있는 무사에게 명을 내렸다.
“......창기병 돌격.”
명을 받은 무사가 양손에 든 깃발을 흔들며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언덕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장창을 든 창기병들이 반란군의 진형을 향해 함성을 지르며 돌격하기 시작했다.
“죽여라! 적의 피로 이 땅을 물들여라!”
마치 붉은 해일이 해변가의 집들을 집어삼키듯, 붉은 갑주를 입은 수백여 명의 천제국 창기병들이 반란군 진형을 향해 달려들었다.
몇몇 기병들은 반란군 창병들이 내지른 창에 몸이 꿰여져 피를 토하며 말 아래로 떨어졌다. 창에 찔린 말들이 몸부림치는 바람에 낙마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천제국 창기병들은 단 한 번의 돌격으로 반란군 창병들은 여러 조각으로 깨뜨려 버렸다. 진형이 무너진 반란군들은 천제국 기병들에 의해 잔인하게 학살당하기 시작했다.
“무사단 돌격! 우리가 뚫리면 본대에 계신 각하가 위험해진다! 뒤로 물러서지 마라! 물러서는 자는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창병들의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음학수가 100여기의 기병들을 이끌고 천제국 기병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가 이끄는 기병들은 오랜 기간 거록의 두억시니들과 싸워온 정예병들이었다.
“가서 두억시니 좆이나 빨아라, 이 더러운 배신자 놈들아!”
음학수가 장자검을 뽑아 들고 자신의 정면을 향해 달려오는 천제국 기병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천제국 기병이 찌른 창을 가볍게 몸을 흔들어 피하고는 그냥 스쳐 지나쳐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 그의 손이 천제국 기병의 투구를 뒤에서 확, 낚아챘다.
“으헉!”
천제국 기병의 고개가 뒤로 재껴지더니, 외마디 비명과 함께 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음학수의 뒤를 따르던 성산번 기병들의 말발굽이 그의 몸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지나갔다.
말 위에서 자세를 가다듬은 음학수는 자신의 앞으로 달려오던 천제국 기병의 얼굴에 장자검을 찔러 박았다.
쑤욱
그는 찔러 넣은 장자검을 뽑아 내는 동시에, 칼을 쥐고 있던 손목을 반시계 방향으로 가볍게 돌렸다. 그의 얼굴 앞에서 반원을 그리며 빛을 번쩍이던 장자검이 천제국 기병의 목을 가로로 베고 지나갔다. 새빨간 투구를 쓰고 있던 천제국 기병의 목이 말 아래로 뚝 떨어지며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음학수와 기병 무사들의 분전으로 천제국 기병들의 진격이 저지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천제국 기병들의 돌격에 흩어졌던 창병 등 번군들이 돌아와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죽여라! 저 타락한 도깨비들을 모두 죽여라!”
번군들은 말이 마갑을 두르지 않은 부분을 창으로 마구 찌르거나 갈고리로 천제국 기병을 걸어 말 아래로 끌어당겨 떨어뜨렸다. 그러면 뒤따르던 번군들이 낙마한 적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도끼로 찍어 죽였다.
창기병들이 수세에 몰리자, 언덕 위에 있던 백사가 다시 명을 내렸다.
“......총기병 반돌격.”
곁에 있던 무사가 다시 깃발로 신호를 보냈다.
뒤로 물러나 있던 권총을 든 총기병들이 다시 반란군들에게 달려들었다.
탕! 탕! 타당! 탕!
천제국 기병들의 총격에 수십 명의 성산번군들이 쓰러졌다. 음학수에 의해 돈좌되어버린 천제국 창기병들은 말머리를 돌려 언덕 위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권총을 모두 쏜 총기병들은 뒤로 물러나지 않고 모두 칼을 뽑아 들고 돌격하기 시작했다. 창기병들과 교대해 반란군들을 밀어붙일 요량이었다.
“덤벼라, 이 애미 없는 새끼들아!”
음학수는 장자검을 휘두르며 새로운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까의 총격으로 그의 갑주에는 서너 발의 탄환이 박혀 있었다. 그 중 옆구리에 맞은 한 발은 갑주의 철판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 갑주에 난 구멍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양국 기병들 간의 난전이 시작되었다.
총에 맞아 피를 흘린 탓인지, 음학수가 휘두르는 장자검에 힘이 떨어지는 듯 보였다. 언젠가부터 저도 모르게 가쁜 숨도 들이쉬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그의 목을 붙들었다. 천제국 기병 하나가 음학수의 목을 팔로 휘감은 것이다. 두 사람은 말 아래로 함께 굴러 떨어졌다.
“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음학수는 괴성을 지르며 옆구리에 찬 단검을 뽑아 자신의 목을 붙들고 있는 적의 팔을 마구 찔렀다. 보호대를 두르지 않은 팔꿈치 부위를 찌르자, 천제국 기병도 비명을 지르며 목을 감고 있던 팔을 풀었다.
“죽어, 이 개새끼야! 죽어, 죽어!”
음학수는 몸을 돌려 팔뚝으로 천제국 기병의 턱을 짓누르고는 노출된 목을 단검으로 수차례 찔렀다. 적을 찌를 때마다 피가 튀어 올라 그의 하얀 얼굴을 검붉은 색으로 적셨다.
땅!
순간, 둔탁한 쇳덩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음학수의 눈앞이 핑, 돌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의 등뒤에서 천제국 기병이 전투용 망치로 투구를 내리쳤던 것이다.
“이, 이, 더러운......!”
음학수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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