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93화 (93/217)

〈 93화 〉 대동력 9,994년 5월 25일 (4)

* * *

­ 오전 11시, 율도 백화 대원수부

강운예는 집무실 책상에 앉아 여무사가 가져다 준 전투식량을 먹으며 책상 가득 쌓여 있는 보고서들을 하나씩 읽는 중이었다. 새벽부터 대원수부로 나와 집무실에서 계속 전쟁 진행 상황을 보고받느라 아침 식사도 거르고 있던 차였는데, 응접실에서 근무하는 여무사들이 그걸 보고 식당에서 전투식량을 받아온 것이었다.

전투식량은 일반 병사들이 먹는 것과 동일한 건조된 쌀과 아채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비빔밥이었다. 여무사들은 전투식량을 포장된 상태 그대로 태상국에게 내오기 무안했던지, 비빔밥과 전투식량 안에 동봉된 우거지 된장국을 예쁜 그릇에 담아 왔다. 밥그릇, 국그릇 옆에 야채 버무리 등 밑반찬들을 담은 작은 종지들도 함께 내 왔다.

그가 식사를 거의 다 마쳤을 때 즈음, 강운예의 호출을 받은 대원수부 고위 참모들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총참모장 한신 대장 등 대원수부 고위 참모들은 강운예의 책상 앞 안락의자에 앉아 그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이제 대월국 흥원에 대한 원정이 시작되었기에 강운예는 물론 참모 장성들 모두 정복이 아닌 갑주 아래 입는 검은 전포를 입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여무사들이 가져다 준 찻잔과 다과들이 올려져 있었지만, 누구 하나 감히 먹을 거에 손 댈 엄두도 못 내고 정자세로 앉아 태상국의 부름을 기다리고만 있었다.

보고서를 읽고 있던 강운예가 비빔밥을 뜨던 수저를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군사지원본부장.”

“네, 군사지원본부장!”

태상국의 호명을 받은 조현민 중장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거 며칠 전에 군수지원사령부에 있는 어느 병사가 올린 투서라는데, 이 내용 알고 있나?”

강운예가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 하나를 그에게 내밀며 말했다. 조현민 중장이 급히 책상 앞으로 뛰어가 두 손으로 공손히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

보고서를 읽어보던 조현민 중장의 표정이 새하얗게 변했다.

“몰랐던 사실입니다. 바로 확인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강운예는 두 손을 깍지 끼고 턱을 괸 채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쥐새끼들이 꼬일 수도 있어. 그런데 이건 보통 쥐새끼가 아니잖아? 무관이라는 놈이, 군사들 먹여 살릴 군량 구입하는 비용의 1/8을 장사치들하고 담합해서 횡령을 해?”

그가 갑자기 두 눈을 무섭게 부릅떴다. 순간, 집무실 내의 공기가 얼어붙듯 차갑게 변하는 것 같았다. 무사로서 수십 년을 군에서만 살아온 참모 장성들마저 그의 눈빛을 보고 등골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오싹함을 느꼈다.

“이제 전시 상황 시작되었는데, 평시도 아니고 전시에 이런 짓 하면 군법에 어떻게 하라고 되어 있나?”

강운예의 물음에 총참모장 한신 대장이 대답했다.

“군 형법상 그에 대한 처벌은 사형뿐입니다.”

강운예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 검찰더러 이 쥐새끼들 바로 붙잡아 와 수사 진행하라고 해. 횡령한 무관 놈은 물론 장사치들까지 모두 다. 범죄 사실 확인되는 대로 군법재판 회부하고, 재판부는 한 달 내에 최종 공판까지 마치라고 해. 처벌 수위에 어떠한 선처나 경감도 해줄 생각 하지 말고 군법에 적힌 그대로 적용해서 판결하라고 해. 내가 이 재판 결과 끝까지 지켜볼 거라고 전하고.”

강운예의 지시에 앉아 있던 장성들 모두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제보한 병사, 제보 내용이 사실이면 어떻게 포상할 건지, 만약 악의적인 의도로 거짓 투서한 거면 어떻게 처벌할지도 결정해서 같이 보고서 올려.”

“네, 알겠습니다!”

조현민 중장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강운예에게 받은 보고서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강운예는 내려놓았던 수저를 다시 들고 비빔밥을 떠서 오물거리며 먹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손에는 여전히 다른 보고서를 들고 읽어 내리는 중이었다.

“......그래도 현재 각 부대 평균 환자 발생 현황이나 작전 투입시 예상 열외 병력이 전제 병력의 5푼도 안 된다니 다행이네.”

한신 대장이 대답했다.

“원정군의 예비대인 7군단의 경우 작전 투입시 예상 열외 병력이 전체 병력의 1할을 조금 넘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7군단장이 직접 각 제대를 찾아다니면서 최대한 열외 병력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으니 조만간 그 수치 또한 줄어들 것입니다.”

“원래 멀쩡하던 놈들도 군대 들어오면 다들 아프다고 골골대기 마련이지. 7군단장한테 내 명의로 서신 보내서, 열외 병력 줄이는 건 좋은데 너무 무리하게 하지는 말라고 전해. 각 제대 지휘관들 잘 교육해서, 열외 병력 최소화한다는 명분 때문에 진짜 아픈 병사들 치료도 못 받게 하고 강제로 전투 준비 상태 강요하지 말라고 하고. 아픈 놈은 치료부터 제대로 해줘야 전쟁에 나가 싸우든지 말든지 하지. 단, 꾀병부리다 걸리는 놈들은 가차없이 군법재판에 회부해버리라고 해. 괜히 열 받는다고 그런 놈들 얼차려 주고 사적제재 가하지 말고.”

보고서를 읽으며 계속 비빔밥을 떠먹던 강운예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참모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우리 윤수가 영록이에 대한 보고 올린 건 없나? 영록이가 지금 뭐하고 있다는 소식 같은 건 없어?”

외모상 30대 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 강운예는 50세가 넘은 2군단장을 아직도 ‘우리 윤수’라고 친근하게 부르고 있었다.

박윤수 중장은 젊은 시절 적영단에 있을 때부터 강운예가 늘 곁에 두고 장래의 지휘관감으로 애지중지하며 키운 제자 중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이제 박윤수 중장이 중년을 넘어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강운예는 늘 그를 보고 ‘우리 윤수’라고 부르곤 했다.

그만큼 신뢰하는 부하였기에, 이번 원정에도 마루한인 영록을 그에게 맡겼던 것이다.

“아직 2군단장으로부터 영록 마루한에 대한 보고가 들어온 것은 없습니다. 이제 막 원정이 시작되었으니, 조금 더 기다려 보시지요.”

“윤수 그 녀석, 내가 시킨 대로 영록이를 잘 가르칠 수 있으려나......”

“2군단장이라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젊어서부터 태상국 기하를 따라다닌 친구니, 이번 일도 기하의 뜻을 잘 헤아려 살필 것입니다.”

한신 대장의 말에 강운예도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밥숟가락을 떴다.

“그 녀석이 내 생각을 제일 잘 아는 녀석이긴 하지. 다만, 아직 어려서인지 성격이나 말하는 게 너무 직선적이어서 탈이야. 우리 윤수 직언 때문에 사춘기의 영록이가 상처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의 말에 한신 대장이 웃으며 반문했다.

“50세 넘은 2군단장이 아직 어리다는 말씀이십니까?”

“300살 가까이 먹은 내 기준으론, 아직 어려.”

강운예는 그릇에 담긴 비빔밥을 쓱쓱 긁어 먹으며 살짝 웃어보였다.

­ 오전 14시, 대월국 흥원번 흥원성 일대

오늘 새벽, 대월국 흥원번으로의 원정이 시작되자마자 국경을 넘어 짓쳐들어온 율도군 2군단 예하 5기동사단의 기병들은 빠른 기동력을 살려 흥원 땅의 경계 지역들을 반나절도 안 되어 모두 접수해 버렸다.

이제 5기동사단을 후속해 들어온 6보병사단 병력들이 흥원번의 각 지역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었다. 이들은 5기동사단으로부터 점령지역을 인수 받고 본격적인 경계 작전을 펼칠 예정이었다.

이어서 6군단 예하 9기동사단이 흥원의 남동쪽으로 빠르게 기동했다. 이들은 대월국과 태진과의 접경지역을 확보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2군단과 마찬가지로 기병들로 이루어진 9기동사단이 먼저 목표 지역을 확보하면, 후속하는 12보병사단이 이 지역을 인계 받아 방어 태세를 갖추게 될 것이다.

율도군의 6만 원정군들은 물 흐르듯 거침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전쟁 전부터 흑영단이 제공해 준 지리 정보를 받아본 터라 흥원의 길 사정에 대해 훤히 알고 있었고, 흥원 공녀 진미령이 마을 주민들을 향도(길잡이)로 제공해준 덕에 그들은 마치 제 나라 율도에서 행군 훈련하듯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6보병사단 병력들에게 점령지역을 인계한 5기동사단 병력들은 곧바로 흥원 일대에 숨은 통요번 반란군 잔당 수색에 투입되었다.

점령지역을 인수 받은 6보병사단 병력들은 흥원으로 들어오는 주요 목에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검문소 수준의 진지가 아니라 대병력이 침입해 왔을 때를 대비한 요새 수준의 진지 구축이었다. 당연히 이 작업에는 군단과 사단의 공병대들이 모두 동원되고 있었다.

흥원성 주변에서도 한창 공사가 시작되는 중이었다. 앞으로 율도군들이 주둔할 병영 건설 공사였다. 이 곳 공사는 특별히 대원수부 직속 부대 중 하나인 1군단 예하 106 공병 여단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들은 곧장 엄청난 규모의 벽돌 만드는 가마를 만들고 병영을 지을 벽돌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벽돌이 만들어지는 동안 다른 공병들은 병영이 들어설 땅을 고르고 상하수시설들을 설치했다. 생활공간과 훈련공간 등을 구분하고, 대장간, 마구간, 공중목욕탕과 공중화장실, 의무대를 세울 곳도 세세하게 지정하고 설계했다.

이러는 와중, 율도군이 들어와 통요번의 반란군들을 내쫓았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흥원 전체로 퍼져 나갔다. 반란군의 수탈을 피해 달아났던 주민들은 소문을 듣고 하나 둘씩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흥원성 인근 마을에 살다가 아미산으로 도망갔던 이들도 움막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주민들은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율도군이 흥원성 옆에 엄청난 규모의 주둔지를 만드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들 중 무사단 번군으로 전쟁에도 나가 본 적 있는 나이 지긋한 도깨비 노인 하나가 입을 열었다.

“율도군들, 이곳에 오래 머물 모양인건가......?”

곁에서 그를 부축하며 걷던, 가족으로 보이는 젊은 도깨비가 말했다.

“저들이 앞으로 우리 흥원을 거점으로 해서 반란군들과 싸워줄 거라던데요? 그래서 지금 저들이 먹고 자고 할 곳을 짓는 거래요. 흥원성이나 민가에서 군사들이 먹고 자고 하면 우리한테 폐 끼치는 거라고. 율도 사람들, 생각보다 훨씬 착한 사람들인 거 같아요.”

도깨비 노인은 입맛을 쩍쩍 다셨다.

“그렇기는 한데...... 군사들 먹고 자는 곳 만드는 게 아니라 무슨 도시 하나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반란군들을 물리쳐 줄 거면 적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갈 것이지 왜 여기에 저리도 큰 주둔지를 만드는 것인지, 원......”

“율도군이 모두 6만은 넘는데요. 그래서 저렇게 크게 만들 수밖에 없겠죠. 너무 안 좋은 쪽으로만 보지 않으셔도 될 거 같아요, 할아버지. 율도군이 그 나쁜 통요번 놈들처럼 우리를 약탈하러 온 것 같지도 않은데, 성대하게 환영을 못해줄 망정 의심은 하지 말아야죠.”

젊은이의 말에도 도깨비 노인은 무언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듯, 율도군이 전시 병영을 만드는 곳을 계속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2군단 예하 5기동사단과 6보병사단이 흥원 일대로 퍼져 나가는 사이, 2군단 지휘부와 군단 직속 부대들은 흥원성 방향으로 곧장 이동하고 있었다.

영록과 군경 여단 무사들은 군단 지휘부와 조금 떨어져 이동하고 있었다.

아까 2군단장 박윤수 중장과의 일 때문인지, 영록의 굳어진 표정은 아직 풀리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죽어 마땅한 짓을 저지른 자들을 벌해야 한다는 게 뭐 잘못된 일이야? 아까 그 놈들, 마선욱이나 조폭들과 다를 게 없는 놈들이었을 거 아냐? 그런 놈들은 당연히 죽어 마땅하지 않아?’

영록은 여전히 그 일 때문에 불만스러웠던지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강운예 관장님이 죽여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확실히 구분 짓는 법을 배우고 오라고 하셨는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죽여도 되는 때가 맞는 거 같아...... 아닌가......? 내가 틀린 걸까......?’

영록은 곁에서 말을 몰고 있는 성시우 대위를 쳐다보며 물었다.

“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십시오, 마루한.”

“아까 제가 군단장님한테 그 포로들 죽여야 한다고 말한 거요, 그거 잘못된 일인가요?”

성시우 대위는 잠시 생각을 하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감정으로는 이해되는 말씀이었지만, 이성으로는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영록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군법 때문에......? 그, 군인의 정해진 임무 때문에요? 무사는 망나니 아니라서?”

“네, 그런 이유도 있고, 예전에 태상국께서 군경 여단 무사들과 군법무 담당자들 모아 놓고 교육하실 때 하신 말씀이 있었죠. 그 말씀을 생각하니 마루한께서 하신 말씀을 지지해 드리기 어려웠습니다.”

“어떤 말씀이었죠?”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괴물과 싸우기 위해 괴물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다가는 너 역시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이 말씀이었습니다.”

“괴물...... 이요?”

성시우 대위의 말에, 영록은 갑자기 과거 유성모와 마선욱이 우성시의 바닷가에서 포로로 잡힌 외국인 노동자를 방파제에 일렬로 세워 놓고 기관총으로 쏴 죽였던 그 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외국인 노동자들이 전부 다 나쁜 짓을 저지른 건 아니었을 텐데, 그렇게 쏴 죽이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었어...... 아...... 그럼...... 나도 지금 유성모나 마선욱과 똑같은 짓을 저지를 뻔한 거였나......?’

뒤늦은 깨달음에 갑자기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성시우 대위가 말을 이었다.

“아까 그 포로들, 모두가 다 주민들을 약탈하고 살인하고 강간한 자들이 맞다면 당연히 죽여 마땅하겠지요. 저들을 심판할 권한을 가진 정당한 이들이 있다면 조만간 올바른 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군은 그 심판의 주체가 아닙니다. 만일 그 포로들이 우리 군사를 죽였거나 우리 국민들을 해쳤다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정의를 내세우며 그 포로들을 죽인다면, 그것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살인행위가 될 것입니다.”

영록은 작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럼 아까 그 여자요, 포로들 죽이려 하려다 붙잡혔던...... 그 여자가 포로들을 죽이는 건 정당하다고 생각하세요? 아, 아니면, 만약 그 포로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자가 있다면, 그가 복수심 때문에 포로들을 죽이려고 한다면, 그건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성시우 대위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거 역시, 감정으로는 이해되지만 이성으로는 반대합니다. 만일 그런 일이 제 눈 앞에서 벌어진다면 아까 그 여자를 제지했던 병사들처럼 막아섰겠지요. 전투가 아닌 이상, 어떤 경우라도 살인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 여자의 입장이나 마루한께서 말씀하신 남자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상황에 따라서는 그들의 복수를 위해 그냥 모른 척 눈감아줄 수도 있을 것 같긴 합니다. 만약 그들과 제가 입장이 바뀌게 된다면 저 역시 복수심 때문에 눈이 돌아가게 될 테니까요. 물론 모든 경우에서는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 말입니다.”

군단 지휘부는 벌써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앞서 나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영록 일행은 길을 따라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길 중간 중간 마다 경계를 서고 있는 율도군 기병들을 만날 수 있어서 군단 지휘부를 쫓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쯤 갔을 때, 몇 백 명은 넘어 보이는 율도군 보병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6보병사단 병력들이었다. 그들은 길가에 전투배낭 등 군장을 내려놓고 숲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성시우 대위가 지휘관으로 보이는 무관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곳은 아직 수색 중인 곳이오?”

무관이 답했다.

“5기동사단 녀석들이 별다른 이상이 없다며 인수하고 떠났는데, 우리 사단 수색대원들이 이 부근에서 반란군 잔당으로 보이는 무장한 도깨비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잔당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

“수색대가 발견한 건 십여 명 가량이라 합니다.”

성시우 대위는 군단 지휘부가 이 길을 언제쯤 통과했는지, 이 길 앞에도 경계를 서는 아군 병력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돌아왔다.

“중대, 무기 들어. 이동시 사주 경계 철저히 할 수 있도록.”

성시우 대위의 명령에 군경 여단 무사들이 다시 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영록의 곁으로 바싹 붙어 말을 몰기 시작했다.

일행이 그 곳으로부터 5리쯤 이동했을 때였다.

바스락

길 옆 좌측 숲속 저 멀리에서 무언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성시우 대위의 뒤를 따라오던 무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좌측에 적입니다.”

성시우 대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령은 뒤 돌아가서 6사단 친구들에게 반란군 잔당들 위치를 알려줄 수 있도록. 나머지는 마루한을 호위해서 계속 이동한다.”

그 말에, 영록이 성시우 대위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그냥 우리가 잡으면 안되요?”

영록의 말에, 나머지 군경 여단 무사들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6사단 친구들에게 알리러 가는 사이 저놈들이 도망갈 우려가 있습니다. 그냥 우리가 잡아 버리지요.”

성시우 대위가 잠시 영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혹시 영록에게 무슨 일이 생기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저는 걱정하지 마세요. 강운예 관장님 밑에서 열심히 수련해 왔으니까 여러분들께 짐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그 말에, 성시우 대위도 고개를 끄덕였다.

“소총수들은 현 위치에서 엄호하고, 나머지는 모두 철편 들고 날 따라와. 교전규칙에 따라 무기 들고 저항하는 자는 사살하고, 그렇지 않는 자는 생포한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다시 허리춤에 꽂고 철편을 꺼내 들었다. 영록과 다른 무사들도 모두 철편을 꺼내 들었다.

“잡아!!!”

군경 여단 무사들이 일제히 말을 몰아 숲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세 명의 무사들이 좌측으로, 세 명의 무사들은 우측으로 말을 달렸다. 성시우 대위와 영록은 다른 두 명의 무사를 대동하고 정면으로 말을 몰아 숲으로 들어갔다.

군경 여단 무사들이 갑자기 숲속으로 달려 들어오자, 수풀 사이 여기 저기 몸을 숨기고 있던 반란군 잔당들이 깜짝 놀라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제길, 걸렸다! 튀어!”

도망치는 도깨비들은 모두 예닐곱 명 정도였다. 그들 모두 갑주와 투구 없이 전포만 입고 있었다. 칼과 도끼를 들고 있는 자들은 있었지만 도망치며 들고 다니기 거추장스러웠는지 긴 창이나 쇠뇌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 박살내라!”

군경 여단 무사들이 무섭게 말을 몰아 도깨비들을 쫓아왔다. 아무래도 도깨비가 말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잔당들을 뒤쫓아온 무사들은 달리는 말 위에서 쇠로 만든 철편으로 그들의 몸통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끄아악!”

철편에 얻어맞은 도깨비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도깨비들이 쓰러질 때마다 군경 여단 무사들이 말 위에서 뛰어내려 허리춤에 차고 있던 포승줄로 도깨비들을 꽁꽁 묶어 버렸다.

영록도 검은 말 랜슬롯을 타고 반란군 잔당 중 한 놈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영록은 승마술 익힐 때 배운 대로 허벅지로 말 안장을 힘껏 조였다. 상체를 세우고 있다가 무기가 부딪히는 충격으로 낙마할 수도 있다고 여러 번 들었던 것 때문에 몸도 앞으로 누이다시피 숙이고 있었다.

검은 말 랜슬롯은 지금 제 주인이 적을 쫓아가고 있다는 걸 아는지, 영록이 적을 우편에 둘 수 있도록 달려가고 있었다. 그 덕에 영록은 오른손에 든 철편으로 적을 때리기 쉽게 되었다.

순식간에 랜슬롯이 반란군 잔당 바로 등 뒤까지 쫓아갔다. 영록은 고삐를 꽉 잡고 적의 등에 철편을 휘둘렀다.

“아악!”

단 일격에 적이 쓰러졌다.

“잡았어!”

영록은 기뻐 소리치며 말에서 뛰어내렸다.

하지만 포로를 묶을 포승줄이 없었다. 영록은 다른 군경 여단 무사들이 올 때까지 포로를 도망가지 못하게 지키기 위해 그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그 때였다.

“이 율도 애송이 새끼!”

갑자기 나무 뒤에서 또 다른 반란군 잔당 한 놈이 튀어나왔다. 함께 도망치던 놈들 중 하나였다.

도깨비는 손에 들고 있던 싸구려 장자검을 마구 휘두르며 영록에게 덤벼들었다.

“허억!”

생각치도 못한 도깨비의 출현에, 영록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쳤다.

도깨비의 장자검이 번쩍하더니 그의 머리 쪽으로 날아들었다. 영록은 급히 허리를 뒤로 젖히며 왼발을 축으로 몸을 옆으로 회전시켰다.

도깨비가 휘두른 장자검은 영록이 쓴 투구의 챙을 가볍게 건드리고 지나갔다. 소름끼치는 칼바람이 그의 얼굴에 와 닿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정신이 확 드는 느낌이었다.

‘정신 차려! 배운 대로, 수련한대로 싸워야 돼!’

영록은 허리에 차고 있던 남은 철편 하나를 왼손으로 잡아들었다. 이제 평상시 수련하던 대로 양손에 두 자루의 철편을 들게 된 것이다.

영록은 오른손에 든 철편을 어깨에 걸치고 왼손에 든 철편을 사선으로 들어 앞에 선 적의 얼굴을 겨누며 준비 자세를 취했다.

“이야아아악!”

도깨비는 최대한 빨리 영록을 쓰러뜨리고 도망갈 생각뿐이었던지, 다시 장자검을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공격이...... 다 보이잖아......?’

수련할 때 강운예가 영록에게 목봉을 가볍게 휘둘러주던 것에 비하면, 도깨비가 장자검을 휘두르는 속도나 기술은 너무 느려 터지고 투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영록은 왼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왼손에 들고 있는 철편으로 도깨비의 칼을 쥔 오른쪽 손목을 후려쳤다.

“으윽!”

도깨비가 비명을 지르며 손에 들고 있는 장자검을 떨어뜨렸다. 그 순간, 영록이 오른손에 들고 있던 철편을 휘둘렀다.

딱!!!

오른쪽 철편이 도깨비의 머리를 제대로 후려쳤다.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영록은 평상시 수도 없이 반복하며 연습했던 기술대로 오른쪽 철편으로 적의 옆구리를, 다시 왼쪽 철편으로 반대쪽 머리를 한 번씩 더 공격했다.

퍽!!! 딱!!!

도깨비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푹 쓰러졌다. 산건지 죽은 건지,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다.

아까 영록에게 얻어 맞고 쓰러져 있던 도깨비가 끙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의 동료가 쓰러지는 걸 보고 기겁했던지, 벌벌 떨며 다시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거기.”

이를 눈치 챈 영록이 그를 불러 세웠다. 도깨비는 그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도망도 못 치고 사시나무 떨 듯 바들바들 떨고 서 있었다.

“거기 그냥 가만 서 있어. 죽기 싫으면.”

영록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 도깨비를 겨누었다.

그가 권총을 꺼내 든 것을 본 도깨비는 완전히 겁에 질렸는지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어 버렸다.

‘6개월 정도 수련했는데, 이 정도면 정말 강해진 거 같아! 역시, 강운예 관장님을 찾아 이곳까지 따라 온 건 잘한 일이었어!’

영록은 자신의 발 아래 쓰러진 도깨비를 내려다 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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