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대동력 9,994년 5월 25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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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4시, 대월국 성산번 성산성
율도군이 대월국 흥원 일대로 전개하는 동안, 반란군의 수괴 심운보의 영지가 있는 북서쪽 성산번에서도 율도 4군단 무사들이 침투해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십여 명이 한 개 조를 이루어 작전을 펼치던 것과는 달리, 성산번에 침투한 4군단 무사들은 모두 합쳐 60여명에 달하고 있었다.
이들은 다른 조들보다 훨씬 두터운 갑주를 입고 있었고, 머리에도 쇠로 된 투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무장도 칼과 활, 쇠뇌는 물론 총까지 휴대하고 있었다. 뇌홍식(퍼커션 캡) 강선 소총 뿐 아니라 근거리에서 다량의 탄환을 날릴 수 있는 산탄총을 들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심운보가 무사단은 물론 번에 있는 장정들을 모두 징집해 전쟁에 데리고 나간 덕에 성산성을 지키는 번군들은 거진 늙고 병든 도깨비들뿐이었다.
4군단 무사들은 성벽과 성루 위의 번군들을 모두 활로 쏘아 사살한 후, 신속하게 성 안으로 잠입했다.
스무 명 가량의 무사들이 성벽 위에 남아 주위를 경계하는 동안, 나머지 40여명의 무사들이 두 번째 방어성 지하로 내려갔다. 쇠뇌를 든 네 명의 무사들이 선두에서 전진하는 가운데, 다른 무사들도 사주경계를 펼치며 일렬로 그 뒤를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그곳은 이전에 구천락의 수하 여개가 유경패와 혼혈 유랑민 노예들을 고문했던 지하 감옥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과 통로에 드문 드문 횃불이 있긴 했지만 안쪽은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컴컴했다. 4군단 무사들은 마치 고양이처럼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살금 살금 통로를 따라 지하로 계속 내려갔다.
지하 감옥의 입구에 다다랐을 때, 선두에서 나아가던 무사가 주먹을 쥔 손을 들어 보이고는 스르륵 자세를 낮추며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뒤따르던 무사들도 모두 그대로 자세를 낮추었다.
선두의 쇠뇌를 든 무사가 뒤에 있던 지휘관을 행해 손짓을 했다.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킨 후, 다시 전방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 작은 등잔 불빛 하나가 보였다. 그곳에는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고, 늙은 도깨비 한 사람이 그 앞에 앉아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금일 야간에 지하 감옥 경비를 서는 인원인 듯 했다.
이를 본 지휘관이 선두의 무사를 향해 자신의 엄지 손가락을 들어 목을 슥, 긋는 시늉을 했다.
수신호를 확인한 선두의 무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닥에 쇠뇌를 내려놓고 군도를 뽑아 들고 조용히 도깨비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휙!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리고, 의자에 앉아 졸고 있던 늙은 도깨비의 머리가 몸에서 뚝, 떨어졌다. 그의 목을 벤 무사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도깨비의 머리를 왼손으로 재빨리 낚아채고는 책상 위에 턱, 얹어 놓았다. 목이 떨어져 나간 몸도 쓰러져 소리가 나지 않도록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책상 위에 가득 번진 도깨비의 검붉은 핏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다른 무사들이 다가와 도깨비가 앉아 있던 곳 바로 뒤의 벽에 걸려 있는 열쇠꾸러미를 꺼내 가져갔다.
그들은 그 열쇠로 지하감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4명의 무사들이 문 앞에 남아 주위를 경계했다.
4군단 무사들은 벽에 걸린 횃불을 집어 들고 미로처럼 얽혀 있는 어두운 지하 감옥의 통로를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이제 지휘관이 횃불을 손에 들고 맨 앞에 서서 통로 사이사이에 있는 감방의 철문들을 하나씩 확인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지하 감옥 깊숙한 곳에 이르렀을 때, 지휘관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춰 섰다.
“......여기다.”
불빛에 드러난 감방의 철문은 다른 곳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두꺼웠다.
어둠 속 적막 속에서, 마치 짐승들의 울음 소리 같이 그르릉, 그르릉 거리는 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열어라.”
지휘관이 뒤에 있던 무사에게 명했다. 무사는 열쇠 꾸러미의 열쇠들을 하나씩 하나씩 자물쇠에 넣고 좌우로 돌려 보았다.
철컥!
마침내 맞는 열쇠를 찾은 무사는 자물쇠를 풀어내고 빗장을 잡아 잡아당기려 했다.
지휘관이 잠시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다른 무사들을 바라보았다.
“안에는 나 혼자 들어간다. 문 열어 놓고 계속 안쪽 주시하고 있되, 특별한 위협이 없으면 절대 무기 들지 마. 우리가 먼저 자극할 필요 없다.”
그렇게 말한 뒤, 지휘관이 직접 빗장을 재끼고 철문을 잡아당겼다.
기이이이익~!
그는 두꺼운 철문을 활짝 열고 횃불을 손에 든 채 안으로 들어갔다.
무사들은 지휘관의 지시대로 총과 쇠뇌를 바닥을 향해 내리고 감방 안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감방 안의 공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퀴퀴하고 더러웠다. 지휘관도 지독한 냄새 때문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횃불의 불빛에 감방 안에 훤히 드러났다.
이 감방은 다른 곳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천정까지의 층고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지휘관이 횃불을 들고 주변을 스윽, 훑어보았다.
불빛에 감방의 벽에 힘 없이 기대어 앉아 있는 십수명의 두억시니들이 드러났다.
제대로 된 옷도 아니고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천 조각으로 몸의 일부만 간신히 가리고 있는 두억시니들은 갑자기 감방 안으로 들어온 지휘관을 마치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 주변으로는 뼛조각들이 너저분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뼈의 크기로 보아 두억시니나 동물의 뼈는 아니고, 다른 종족의 것인 듯 보였다.
‘설마, 도깨비들이 두억시니들 먹이로 사람들을 산채로 던져준 것인가?’
두억시니들 중 가장 덩치 큰 녀석 하나가 갑자기 감방 안으로 들어와 아무런 말도 없이 불쾌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낯선 이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도깨비...... 도깨비한테서 나는 냄새가 아니다...... 이 성의 주인이 바뀐 것인가? 너희들은 누구냐?”
지휘관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건 우리와 함께 이 지하 감옥을 나가겠다고 하면 알려주지.”
“나가? 이 지하 감옥 밖으로? 우리를 풀어주겠다는 말이냐? 너희들이 뭔데 이 도깨비들의 성에서 우리를 풀어주겠다는 말이냐?”
“너희들에게 거래를 제시하러 온 사람. 우리와의 거래에 응하겠다고 하면 자유롭게 풀어주는 건 물론이고, 거래에 응하는 모두에게 지금 이것의 열배만큼 더 주겠다.”
지휘관은 허리춤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입구를 열고는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바닥에 쏟아 부었다.
쨍그랑, 쨍그랑
돌로 된 바닥에 무언가 부딪히며 떨어지는 소리들이 감방 안에 요란하게 울렸다.
지휘관이 손에 든 횃불로 바닥을 비춰 보였다.
그 곳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금덩이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를 본 두억시니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거의 10배를 주겠다고? 참말이냐?”
“거래, 거래를 하겠다고 했느냐? 그럼 우리와 무슨 거래를 하겠다는 것이냐?”
두억시니들이 앞다투어 바닥에 떨어진 금덩이들을 집어 들며 지휘관에게 물었다.
지휘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너희들, 이곳에 잡혀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나?”
“짧은 놈은 1년, 긴 놈은 십년 넘게 이 안에 갇혀 있었다.”
“흰서리 산맥 넘어 왔다가 도깨비들에게 잡힌 것인가?”
“그렇다, 흰서리 산맥 넘어와 잡혀 계속 여기 있었다.”
“그동안 너희들의 고향 거록 고원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이 곳에 잡혀 있었던 게로군. 그럼 너희 모두 도깨비들이라면 무조건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치를 떨겠어? 안 그래?”
“당연하지! 네가 만약 도깨비였으면 지금 당장 산채로 찢어 그 피를 마시고 살을 씹어 먹었을 것이다!”
두억시니들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우리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겠군. 거래는 간단하다. 우리와 함께 가서 도깨비 몇 명만 죽여다오. 죽여야 할 도깨비가 있는 곳까지 우리가 안전하게 데리고 갈 것이고, 그 도깨비들을 죽이는 데 필요한 무기들도 우리가 알아서 마련해 줄 것이다. 또, 일이 끝나면 약속한 금과 함께 너희들이 살던 흰서리 산맥 너머 거록 고원까지 안전하게 바래다주겠다. 어때? 우리와 거래를 하겠나?”
금덩이를 주워담던 두억시니들이 말했다.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도깨비를 몇 명이나 죽여야 한다는 거지? 열 명? 스무 명? 백명을 죽이라 해도 기쁘게 죽여주지!”
“거래가 성립되었군. 그럼 같이 여기서 나가자. 나와 무사들을 따라 나오면 된다.”
지휘관이 횃불을 들고 감방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는데도 두억시니들은 혹시 바닥에 남겨진 금덩이가 더 없는지 무릎 걸음으로 기어 다니면서 손으로 바닥을 더듬더듬거리고 있었다.
“뭐하나? 안 나올 건가?”
밖에서 지휘관이 재촉했다. 그런데도 두억시니들은 바닥을 계속 기어 다니기만 했다.
“이, 이봐 검은 옷 입은 친구들. 잠깐 불 좀 더 비춰줘 봐. 놔두고 가는 금 없나 좀 보게.”
커다란 덩치의 두억시니들이 마치 바닥에 걸레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기어다니는 꼴에, 이를 지켜보고 있던 4군단 무사들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오전 5시, 대월국 성산번 성산성 외곽
“정말 오랜 만에 달들을 본다. 붉은 달도, 푸른 달도 모두 다 잘 있었구나.”
성산성을 빠져나온 두억시니들은 밤하늘의 달들을 바라보며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모를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4군단 무사들은 피와 인육, 싸움과 약탈에만 눈이 먼 두억시니들이 달을 보고 감상에 젖어 있는 모습에 저들이 과연 자신이 알고 있는 그 포악한 두억시니들이 맞는가 괴리감마저 느껴졌다.
쾅! 쾅! 쾅!
저 멀리 성산성에서 연이어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4군단 무사들이 성을 빠져나갈 때 지하 감옥이 있는 두번째 방어성 일대에 폭약을 설치하고 도화선에 불을 붙여 놓고 온 것이었다. 도화선은 무사들과 두억시니들이 성에서 충분히 멀어질 때까지 폭약에 불이 붙지 않을 만큼 충분히 길게 설치해 놓았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두번째 방어성 일부가 무너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아마 지금쯤 지하 감옥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자신들이 갇혀 있던 지하 감옥이 있던 곳이 무너지는 것을 본 두억시니들은 신이 난 듯 환호하며 야수같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지휘관이 간신히 말렸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성산성 인근에 사는 도깨비들 모두 두억시니들의 포효를 들을 뻔 했다.
4군단 무사들은 두억시니들을 끌고 최대한 빨리 인적이 드문 숲속으로 몸을 피했다.
숲으로 들어가며, 두억시니 하나가 달빛에 비친 지휘관의 얼굴을 보고는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넌 순수한 아리랑인가? 다른 피가 안 섞인?”
“응, 그래. 내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아리랑이시다.”
두억시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전에 그년도 그렇고, 너희 아리랑들은 사내나 계집이나 모두 얼굴 생김새가 얄쌍하니 곱게 생겼구나? 둥글둥글하게 생긴 한자손이나 허옇고 길쭉길쭉하게 생긴 도깨비들과는 또 달라. 참 신기해.”
“전에 그년? 대월국 도깨비들에게 잡히기 전에 아리랑 여자를 본 적이 있는 모양이군?”
“아니, 아까 우리가 있던 그 지하 감옥에서 봤지. 아리랑 계집은 그 때 처음 봤는데 정말 두억시니 계집이나 도깨비 계집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예쁘더군. 꽃과 같이 탐스러웠어.”
“지하 감옥에서? 도깨비들이 너희들과 아리랑 여자를 같이 가두고 있었단 말인가?”
“몇 달 전인가, 갑자기 이것 저것 피가 섞인 것처럼 묘하게 생긴 사내놈하고 어린 계집을 먼저 우리가 있는 감방 안으로 던져 주더니, 그러고 조금 더 있다가 그 예쁜 아리랑 계집을 들여보내더라고. 덕분에 한동안 그 안에서 무척 즐거웠지.”
두억시니는 찢어진 천조각으로 간신히 가리고 있는 자신의 고간을 손으로 비비적거리며 웃어댔다.
지휘관은 아까 감방 안에 굴러다니던 뼈조각들이 생각났다. 그는 양미간을 찌푸리고 두억시니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래서, 그 아리랑 여자를 어떻게 했나? 결국 먹었나?”
두억시니가 킬킬 웃으며 대답했다.
“먼저 들어왔던 사내놈은 바로잡아 먹고, 어린 계집은 다리 사이가 찢어져서 더는 재미 볼 수 없게 될 때까지 돌려쓰다가 잡아먹었지. 하지만 그 아리랑 계집은 잡아먹지 못했어. 내가 그년하고 짝짓기를 50번쯤 했을 때였나? 그년을 우리한테 던져주었던 도깨비들이 감방 안으로 들어와서 다시 데리고 가더라고.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군. 아까 너희들이 지하 감옥을 부숴버릴 때 같이 죽었을 수도 있겠네. 아쉽네, 그 아리랑 계집. 이제 감옥에서 풀려났으니, 나중에 너희들과의 거래가 끝나면 그런 아리랑 계집을 잡으러 다니고 싶다. 꼭 잡아와서 내꺼 만들고 싶다. 잡아먹지 않고 계속 내 계집으로 삼고 싶다.”
두억시니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그 커다란 덩치로 춤을 추듯 껑충껑충 뛰면서 웃어 대고 있었다.
지휘관은 불쾌한 심기를 애써 감추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오전 6시, 대월국 흥원번 아미산 일대
진미령은 율도 수군 특수 작전 전단 무사들에 의해 구출된 자신의 가족들을 아미산 산채로 데리고 왔다.
동생들은 몹시 고되었던지 산채의 통나무집으로 들어오자 마자 바닥에 쓰러져 잠들어 버렸다.
진미령은 머리와 몸만 남은 어미를 들어 자신의 침상에 조심스레 눕혔다.
이불을 덮어주기 전, 진미령은 율도 무사가 어미의 몸에 감싸준 검은 천을 모두 벗겨 내었다. 어미의 몸에는 칼자국은 물론 심한 상처들이 무수히 박혀 있었다. 팔과 다리가 잘려 나간 부분에서는 아직도 고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미령은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그녀의 어미는 눈이 뽑혀 앞을 보지 못하고 혀도 뽑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어미에게 자신의 우는 소리를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 이제 제가 곁에 있으니 안심하세요. 이곳은 안전해요.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러 온 이들도 있으니 조만간 흥원성도 되찾을 수 있을 거에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죠? 오늘은 푹 주무세요......”
진미령은 어미의 빰을 가볍게 어루만지고는 서둘러 통나무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더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미산 깊숙이 아무도 곳으로 달려간 진미령은 그곳에서 목놓아 울었다.
흥원의 여장부라 칭송받는 그녀였지만, 가족이 당한 참화에 북받치는 설움을 이길 수 없었다.
“미한이시여, 어찌 하여 저희 가족에게...... 어찌하여 저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긴단 말입니까......?!”
어느 덧 두 개의 달은 모두 사라지고, 저 멀리 수평선에서는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한참 동안 울부짖던 진미령은 옷소매로 눈물을 닦고 다시 통나무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몸을 일으켰을 때, 어찌 알고 온 것인지 율도 도깨비가 저만치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가 어찌......? 나를 따라온 것인가?”
진미령은 그를 보고 흠칫 놀라 손으로 다급히 눈가를 훔쳐 눈물 자국을 지우려 했다.
“따라온 것이 아니라, 찾으러 왔습니다.”
“그대가 나를 찾아? 무슨 일로 나를 찾았는가?”
율도 도깨비가 손으로 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우리 율도군의 선봉 부대인 5기동사단이 흥원성을 향해 진군하며 이 곳 아미산 아래를 지나갈 것입니다.”
그는 다시 손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물었다.
“어떻게, 공녀께서도 같이 가시겠습니까?”
그의 말에, 진미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겠소. 우리 흥원번 무사들도 모두 같이 가겠소.”
“그럼 서두르셔야겠습니다. 우리 율도군 5기동사단은 모두 기병들로 이루어진 부대입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그들은 번개같이 이 앞을 지나 단박에 흥원성을 점령해 버릴 것입니다. 현재 흥원공의 대리자이신 공녀께서 그 순간을 놓치시면 안되겠지요. 자, 그럼 가실까요?”
진미령은 옷소매로 얼굴의 눈물 콧물을 다시 한 번 닦아내고는 율도 도깨비를 따라 통나무 집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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