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대동력 9,994년 5월 25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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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시, 대월국 흥원번 북해산 요새
북해산에 오르면 남쪽 혜연만 바다는 물론 서쪽 율도와의 국경까지 훤히 내려다 보였다. 대월국 도깨비들은 당연히 이 곳에 군사 요새를 만들었고, 봉화대도 설치했다.
원래 흥원의 무사단이 관리하고 있던 이 곳 북해산 요새와 봉화대에는 이제 흥원을 점령한 반란군, 통요번의 번군 수십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반란군과 대적하고 있는 국왕군이 용림 전투에서 대패를 당하고 멀리 동쪽에 있는 호문번 환강산성에 고립되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부터, 요새에 배치된 번군들은 모두 긴장을 풀고 제대로 된 경계 근무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모두들 반란은 이미 성공했고 전쟁은 곧 끝날 거라 생각했다. 지금 국왕은 곧 붙잡혀 처형당할 것이고 반란에 참여한 백(?)들 중 새로운 국왕이 선출될 거라며, 누가 새로운 국왕이 될지 내기를 걸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챙길 수 있을 만큼 자기 몫을 왕창 챙겨 놔야 한다며, 다들 시간 날 때마다 산을 내려가 주변 마을을 약탈하고 아녀자들을 납치해올 궁리만 하고 있었다.
만일 이들 중 조금만 시간을 내어 요새 망루에 올라가 주변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라면 혜연만 항구를 제 나라 드나들 듯 자유롭게 오가는 율도 수군의 쾌속함도 보았을 것이고, 국경 지대 이 곳 저 곳에 위장 진지를 설치하고 있는 율도 육군의 움직임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것도 보려 하지 않았다.
그 뿐 아니었다.
요새의 번군들은 오늘 저녁에도 질펀하게 술판을 벌이고는 요새 이곳 저곳에 쓰러져 코를 드르렁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할 무사 놈들도 납치해온 여자들을 실컷 욕 보이고는 그녀들을 끌어안고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다.
제대로 된 군대라면, 그런 와중에도 누군가 한 사람만은 경계를 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제대로 된 군대’가 되지 못했다.
새벽 야음을 틈타 이 곳 북해산 요새를 향해 십여 명의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검은 색 군포를 입고 상체를 보호하는 검은 색의 가벼운 철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얼굴은 숯 검댕을 칠해 시커멓게 위장하고 있었고, 머리에는 검은색의 가벼운 가죽 투구를 쓰고 있었다. 무장으로는 활과 화살, 완만하게 휘어진 군도를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은 이전 대월국 성산번에서 영록과 예린을 구출했던 무사들과 매우 흡사했다.
율도 원정군의 진공이 시작되기 전, 먼저 대월국에 침투해 들어온 4군단 무사들이었던 것이다.
어둠 속에 숨어 오랫동안 요새를 감시하던 이들은 성벽이나 망루 위에 아무도 보이지 않자 이 곳에 반란군들이 주둔하고 있다는 흑영단의 정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나, 잠시 당황하기도 했다.
4군단 무사들을 이끄는 지휘관으로 보이는 무관은 왼손에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의 시계는 특이하게 덮개가 달려 있어 시계 유리판을 덮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아마 작전 중 시계 유리에 빛이 반사되는 일이 없게 하려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손목시계의 덮개를 열고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는 자신의 주변으로 다른 무사들을 불러모았다.
“......시간 다 되었으니 들어가자. 저 안에 아무도 없으면 편하게 된 거고, 있어도...... 우리한테는 별 상관없잖아? 다 죽여버리면 되니까.”
그가 무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1조는 나와 함께 남쪽 성벽으로, 2조는 서쪽, 3조는 북쪽 성벽으로 침투한다. 도깨비를 보면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고 모두 죽여라. 단 한 놈도 살아서 밖으로 나가게 해서는 안된다. 당연히 봉화를 올리게 해서도 안되고...... 그럼 시작하자.”
지휘관 무관의 말이 끝나자 4군단 무사들은 3개 조로 흩어져 요새로 숨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요새 성벽에 밧줄을 걸고 안으로 침투한 지 얼마 후, 어두운 밤 고요 속에 쉭, 쉭, 칼 휘두르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왔다. 그 와중 말소리나 비명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흩어졌던 4군단 무사들은 봉화대가 있는 요새 정상에서 다시 집결했다. 그들이 요새에 침투한지 불과 3, 40분도 걸리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이들의 군도에는 모두 도깨비들의 검붉은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1조 12명 사살, 2조는?”
“8명 사살입니다.”
“3조?”
“여자 도깨비들 포함 15명 사살입니다.”
지휘관 무관은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더니 다들 술 처먹고 퍼질러 자고 있고...... 이러니 대월국이 망할 수 밖에.”
무사들 중 한 명이 등에 매고 있던 전투 배낭에서 천조각들을 꺼내 무사들에게 하나씩 돌렸다. 무사들은 천조각을 받아 군도에 묻은 도깨비들의 피를 닦아낸 후 다시 칼집에 집어넣었다. 어떤 무사는 혹시 흠이 생기거나 이가 나간 부분은 없나, 칼을 눈 앞에 들고 달빛에 비춰 보기도 했다.
“2조가 내려가서 요새 안에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곳 없나 다시 둘러보고, 3조가 성문으로 가서 혹시 도망가는 놈 없게 지키고 있어.”
간단하게 칼 손질을 마친 무사들은 지휘관의 지시대로 다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두 봉화대 아래로 내려가자 지휘관 무관이 전통에서 화살 하나를 꺼냈다. 그가 꺼낸 화살에는 심지가 달린 대나무통이 달려 있었다.
그는 봉화대 옆에 있는 화로에서 불씨가 살아있는 숯 하나를 꺼내 대나무통에 달린 심지에 불을 붙였다. 심지가 반쯤 타 들어가자 화살을 활에 재어 서쪽 하늘을 향해 높이 쏘아 올렸다.
어두운 밤하늘 높이 쏘아 올려진 화살이 갑자기 주황빛 섬광을 일으켰다. 마치 현실 세계의 조명탄을 보는 것 같았다.
화살은 밤하늘에 밝게 빛나며 서서히 서쪽 율도와 대월국의 국경 사이로 떨어졌다.
화살의 섬광이 사그러질 때 즈음, 새벽 밤 공기를 타고 저 멀리 율도로부터 말들의 거친 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오전 3시, 율도 / 대월국 국경 일대
평소 같았으면 지금쯤 영록은 저녁까지 이어진 수련에 지쳐 곤히 잠들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영록은 하얀 말 아더를 타고 성시우 대위와 기마 군경 여단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동쪽 대월국 국경을 향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들 주변으로 수만명의 율도군들이 대오를 갖추어 행군하고 있었다.
어제 군단 지휘소에서 만난 2군단장 박윤수 중장은 짧고 간단하게 이번 전쟁의 목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우리 원정군의 1차적 목표는 대월국 흥원 지역을 확보해 천제국이 대월국 국왕을 돕는다는 미명 하에 우리 율도의 육상 무역로를 차단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원정은 흥원을 무력으로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흥원을 다스리는 진대승이라는 자의 딸의 동의를 얻어 군사 작전을 벌이는 것이라며, 원정의 정당성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대동의 국제 정치 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영록은 박윤수 중장의 설명을 모두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어제 부군단장과 이야기한 것처럼 이번 전쟁이 단순히 지난번 자신과 예린을 납치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할 뿐이었다.
‘만약 그랬으면 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전쟁 중에 죽거나 다치게 되는 거였잖아? 그런게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야.’
영록은 박윤수 중장 등 군단 지휘부와 함께 국경 인근 천막 안에서 작전 개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2시 즈음, 전령부대 책임 무관이 군단 지휘소로 들어왔다.
적진에 침투한 4군단 무사들이 신호를 보내왔다는 것이다.
“전군, 진군하라.”
2군단장 박윤수 중장은 그 즉시 원정군에 국경을 넘어 진군할 것을 지시했다.
영록도 성시우 대위와 함께 천막 밖으로 나와 이동할 준비를 했다.
출발 전 성시우 대위가 진하게 끓인 녹차를 권하기도 했지만 이동중에 소변이 마려울까봐 걱정되어 사양했다. 녹차를 마시지 않아도 전쟁이 곧 시작된다는 생각에 긴장한 탓인지 하품도 나오지 않았다. 카페인이 없어도 아드레날린이 잔뜩 퍼져 묘한 흥분감으로 온 몸이 찌릿찌릿했다. 피곤하다, 잠자고 싶다 이런 생각은 하나도 들지도 않았다.
그는 하얀 말 아더 위에서 두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전방에 펼쳐진 국경 지대를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 국경의 모습은 예전 도깨비들에게 잡혀 누리마루에서 대월국으로 끌려갈 때, 그리고 대월국 성산번에서 누리마루로 탈출할 때 보았던 그곳 국경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누리마루와 대월국의 국경은 드넓은 숲지대나 언덕 지형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는 나무 팻말들로 양측의 경계를 구분하고 있었다. 팻말의 서쪽이 누리마루, 동쪽이 대월국이었다. 그래서 강운예가 영록과 예린을 구하러 성산번으로 넘어올 때 별다른 장애물과 마주치지 않고 국경 지대를 지키는 심운보의 번군들을 짓밟으며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곳 율도와 대월국과의 국경에는 마치 70여년 넘게 한국과 북한을 가로질렀던 휴전선과 같은 철조망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심지어 어떤 곳에는 마치 현실 세계 대전차 장벽처럼 토성을 높게 쌓아 올린 곳도 있었다.
이 곳은 동부 육군 1군 예하 203 경비여단이 지키고 있는 곳이었다. 이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초소에 배치되어 적이 침입해 오지는 않는지, 불법적으로 양국의 국경을 오가는 자는 없는지 경계 근무를 펼치고 있었다.
영록이 율도군들과 함께 이동하는 곳 앞에도 약 3간 (약 5m) 높이의 토성이 좌우로 길게 만들어져 있었다. 토성 위에는 철조망이 세워져 있었고, 흙벽으로 된 진지나 돌로 만들어진 초소, 심지어 대포도 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토성과 토성 사이, 현실 세계 서울 남대문을 세 개 정도 합쳐 놓은 크기의 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성문과 성루가 있었다. 율도군이 이동해 오고 있는 도로는 곧장 이 성문을 향해 이어져 있었다.
“군에서 ‘3번 통문’ 이라 부르는 곳입니다. 대월국과의 국경에 있는 문들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입니다. 평상시에는 주로 상인들이 드나드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제 당분간 우리 율도군이 아니라면 상인들은 물론 그 누구도 이 곳을 지나다니기 어렵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곁에 있던 성시우 대위가 성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육로를 통해 초원길을 넘어 대동 서부로 가거나 율도로 들어오려는 이들은 무조건 203 경비여단이 지키는 바로 이곳 3번 통문을 통과해야 했다. 장사를 하는 상인들은 이곳을 지나기 위해 관세, 통행세 등 각종 세금을 납부해야 했다. 때문에 십여 년 전 까지만 해도 등짐 장수나 봇짐 장수 등 소규모 장사치들 중에서는 세금을 피하려고 국경의 철조망을 끊어버리거나 그 밑에 땅을 파고 몰래 양국을 오가려는 자들도 수두룩했다고 한다.
이런 이들에게는 당연히 강력한 처벌이 뒤따랐다. 국경을 몰래 오가다가 율도의 군사들에게 붙들린 사람들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모두 10년 이상의 노역형을 선고받았다. 무기나 군 관련 물품을 다른 나라로 반출 시키려다 적발된 자는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거래 물품들은 고스란히 율도의 국고로 귀속되었다.
3번 통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이곳으로 향하는 도로 주변에는 수백 여개의 화롯불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영록이 고개를 들어 3번 통문의 성루 위와 주변 토성을 쳐다보았다. 그 곳에 배치된 율도군들은 대월국 방향을 향해 총과 쇠뇌, 대포를 겨누고 주변을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어느 병사가 들고 있던 쇠뇌 끝에 장전된 날카로운 화살이 화룻불에 붉은빛으로 반짝였다.
영록과 기마 군경 여단 무사들이 3번 통문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통문 밖으로 나오니 더 이상 율도의 도로가 이어져 있지 않았다. 통문 안쪽을 환하게 밝히던 화롯불의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대월국의 영토는 율도와 달리 어둠에 휩싸여 있는 것 같았다.
하늘 위 붉은 달과 푸른 달 두 개의 달빛이 은은하게 내려오는 가운데, 저 멀리서 동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2군단 예하 5 기동사단 기병들의 말발굽 소리가 대동 천치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제 진짜 전쟁 시작이구나. 그런데, 내가 대동에 오기 전 한국과 일본도 전쟁을 막 시작하고 있었는데...... 지금쯤 한일전쟁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까? 우리나라가 일본을 이겨야 하는데...... 내가 만약 대동에서 10년 수련을 마치고 돌아가면 그곳은 6개월 정도 흘러 있다고 했지? 그럼 한일전쟁도 끝나 있을까? 아무쪼록 한국도, 그리고 율도도, 모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나도 어서 빨리 유민이를 찾으러 돌아갈 수 있기를......’
영록은 두 눈을 감고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했다.
오전 4시, 대월국 흥원번 흥원성 일대
진미령은 다섯 명의 맹약 무사들과 함께 흥원성이 보이는 언덕 위에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들의 곁에는 흑영단원 율도 도깨비도 함께 하고 있었다.
진미령은 ‘현재 부친 흥원공의 부재로 잠시 그의 권한을 대리하는 입장에서’ 율도군이 흥원에서 군사 작전을 벌이는 것에 동의한다는 국서에 서명을 했다. 진미령이 서명한 국서를 받은 율도 도깨비는 25일 새벽을 기해 진미령의 가족들을 흥원성에서 구해 나오겠다고 그녀에게 약속했다.
물론, 그는 그녀의 가족들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약속한 25일이 되고, 율도 수군 특수 작전 전단 무사들이 밤을 틈타 흥원성 안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율도 도깨비가 아미산의 산채에 머물러 있으라며 만류했지만, 진미령은 기어코 자신의 무사들을 대동하고 흥원성이 보이는 곳까지 나가 보기로 했다.
수군 특수 작전 전단 무사들이 흥원성으로 들어간 지 1시간 정도 흘렀다. 그 동안 성에서는 아무런 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일이 잘 못 된 건 아니겠지? 반란군들에게 발각되거나 한 건 아니겠냔 말이오?”
진미령은 율도 도깨비를 바라보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다면 벌써 저 안에서 난리난장이 나고 우리도 알 수 있었겠지. 걱정 마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십시오. 며칠 전 대낮에도 저 성을 아무 일 없이 드나들었던 무사들입니다. 벌건 대낮에도 별고 없이 잘 다녀왔는데, 이런 어두운 밤중에 별 일이 생기겠습니까?”
율도 도깨비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그 때, 흥원번의 맹약 무사 하나가 손가락으로 흥원성을 가리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외쳤다.
“저, 저기! 저기 나옵니다!”
진미령이 놀란 표정으로 흥원성을 돌아보았다.
맹약 무사의 손가락은 흥원성 서쪽 성벽 밖의 해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체 언제 성밖으로 나왔는지, 율도 수군 특수 작전 전단 무사들이 해자의 물을 헤엄쳐 건너오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진미령은 달빛에 의지해 해자를 건너오는 이들의 숫자를 세고 있었다.
해자를 건너 뭍으로 넘어온 율도 무사들의 숫자를 세던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물에서 나온 무사들은 신속히 흥원성 인근 마을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이 빼곡히 모여였는 집들 사이로 모두 사라질 때까지, 진미령은 무사들의 숫자를 세고 또 세기를 반복했다.
“아까 성으로 들어간 율도 무사들이 모두 열 다섯, 만약 내 가족들을 모두 구해서 나왔다면 네 명이 더해 지니까 열 아홉이어야 하는데...... 몇 번을 세어봐도 열 여덟 명 뿐이야......”
진미령의 입술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느새 그녀의 발걸음은 마을을 향하고 있었다.
“율도 무사들이 가족분들을 모시고 지금 이 곳으로 오고 있지 않습니까? 공연히 우리가 움직였다가 성 안에 있는 반란군들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시려는 겁니까? 부디 진정하십시오!”
율도 도깨비와 맹약 무사들이 그녀의 팔을 붙들고 말리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벌써 언덕 아래로 뛰어내려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잠시 후, 진미령이 있는 언덕으로 율도 무사들이 올라왔다. 해자를 건너느라 그들의 옷은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들 가운데 검은색 장옷으로 몸을 가리고 있는 체구가 작은 도깨비들이 있었다. 그녀의 여동생들과 남동생이었다.
“효령아! 선령아! 기령아!”
진미령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동생들을 끌어안았다.
그 때,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오른편에 있는 효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효령은 고개를 숙인 채 울먹이고 있었다.
진미령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효령의 배를 만져보았다.
순간, 그녀가 화들짝 놀라 손을 때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효령아, 너...... 너......!”
검은 장옷 너머로, 그녀의 배가 둥그렇게 불러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효령은 아무 말없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기 시작했다.
진미령은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부여잡으려는 듯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녀는 울고 있는 여동생을 안아주며 다른 동생들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는 어디 계시니......?”
남동생 기령이 아무 말없이 뒤에 있는 율도 무사를 손으로 가리켰다.
기령도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는 중이었다.
진미령은 기령이 가리킨 율도 무사를 바라보았다.
그는 보따리 같이 천에 싸여 있는 무언가를 품에 들고 서있었다.
진미령은 쿵쾅쿵쾅 터질 것 같이 뛰는 심장을 억지로 참아보며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는 것의 천을 살짝 들어보았다.
“아아아아아악!!!!”
순간, 진미령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얼굴을 감싸고 있는 그녀의 두 손은 충격으로 벌벌 떨리고 있었다.
벗겨진 천 조각 너머로, 사지가 잘리고 두 눈과 혀가 뽑혀 있는 그녀의 어머니가 카악, 카악,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