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대동력 9,994년 5월 17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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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율도 백화 대원수부
대월국 성산백 심운보는 마루한 영록과 율도 영애 예린을 모두 놓쳤음에도, 세 치의 혀로 31개 번주들을 설득해 예정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대월국 국왕은 즉시 친국왕파 번주들을 불러 모아 국왕군을 결성, 반란군을 제압하고자 했다.
심운보는 은허로 곧장 진군하지 않고 가까운 국왕파 번주들의 영지부터 먼저 하나씩 하나씩 점령하고 약탈했다.
자신의 영지를 공격당한 대다수의 번주들은 허겁지겁 번군들을 데리고 은허를 떠나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국왕군의 전력은 조금씩 약화되었다.
이에 국왕은 친국왕파 번주들이 모두 자기 영지로 돌아가기 전에 국왕군을 휘몰아 한 번에 반란군을 공격하고자 했다.
하지만 국왕군은 두 차례의 야전에서 모두 반란군에 패했고, 수도 은허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몇 개월간 은허에서 지리한 수성전을 펼치던 국왕은 같은 도깨비 나라인 태진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월국을 도와봤자 어떠한 국익도 없다고 판단한 태진은 그 요청을 냉정하게 거절했다.
국왕은 과거 대동의 패권국이자 수호 동맹의 수장 격인 천제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흑영단의 첩보에 따르면, 대월국 국왕은 천제국에게 이 반란만 진압해준다면 성산을 비롯한 반란군의 영지 일부를 할양해주겠다는 조건까지 내걸었다고 한다.
그런데 천제국은 새로운 조건을 제시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곳으로 12개의 번을 할양해 달라는 요구였다.
그들이 지목한 곳은 성산을 비롯한 서쪽 땅들과 초원길로 이어지는 남쪽 땅들이었다. 마치 ‘ㄴ’ 자 형태로 기다랗게 대월국의 외곽 국경 지역만을 골라서 요구한 것이다.
대원수부 대회의실 강운예의 자리 뒤에는 율도를 상징하는 황금빛 사자 얼굴이 그려진 커다란 검은색 깃발이 세워져 있었다.
다른 군기에 비해 다른 점이 있었는데, 깃발의 사자 얼굴 주변에 월계수 잎과 7개의 황금색 별이 더 새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별은 율도군 장성들의 계급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대원수 계급의 별이 총 7개였기 때문에 강운예의 깃발에도 7개의 별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의 앞에는 총참모장 한신 대장과 육군 참모총장 등 대원수부 주요 참모 십여 명과 4군단장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 모두 금색 실로 수놓아진 검은색 정복을 입고 있었다. 정복 가슴에는 오랜 기간 군에 몸 담으며 올린 전공들을 증명하는 다양한 훈장과 포장, 기장들이 자랑스럽게 달려 있었다.
정보본부장 이기백 중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에 펼쳐진 커다란 지도 위에 각국의 군대를 형상화한 조각 여러 개를 올려놓고 상황 보고를 하고 있었다.
“어제 은허에서 남쪽으로 70리 (약 27km) 떨어진 이 곳 용림에서 벌어진 대회전에서 대월국 국왕군은 반란군에게 대패를 당하고 이 곳 호문으로 퇴각해 있는 상황입니다. 흑영단 보고에 따르면 국왕군은 전체 병력 4만 중 1만 이상이 전사 또는 부상당했고 포로로 잡힌 수 또한 1만이 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합니다.”
“궤멸이군.”
깍지 낀 손으로 턱을 괴고 듣고 있던 강운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반란군은 은허를 포위한 상태에서 일부 병력을 보내어 국왕파 번주들의 영지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자신의 영지가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번주들은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은 국왕을 설득해 은허의 성 밖으로 나와 반란군과 야전에서 맞붙었다.
하지만 이미 들은 바와 같이 결과는 참담했다.
4만명 중 1만명이 전사 혹은 부상, 또 1만명이 포로로 잡혔다면, 비전투원을 빼고 실제로 전투가 가능한 병력은 고작 수천 명에 불과할 것이다. 이렇게 되었다면 국왕군은 더 이상 소생할 길 없이 완전히 끝났다고 보는 게 옳았다.
“현재 반란군의 일부가 국왕군들이 있는 호문을 포위한 가운데, 4만의 병력이 다시 수도 은허를 함락시키기 위해 이동 중입니다. 국왕군의 주력 병력 모두 은허에 남아 있지 않은 만큼, 공성전이 시작된다면 함락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빠르면 15일 이내에 반란군이 은허에 입성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왕과 왕족들의 위치는? 그것도 모두 확인되었나?”
“대월국 왕과 왕자들 대부분은 용림의 전투에 참전했고 아직 정확한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 외 나머지 왕족들은 모두 은허에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정보본부장이 보고를 이어갔다.
“이제 국왕파 번주들의 영지는 고작 7곳 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마저도 몇몇은 대세가 불리하면 언제든 반란군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최근 성산백 심운보가 이들을 회유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습니다. 이미 대세가 기울었으니 곧 국왕파 내에서도 이탈자들이 속출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는 지도의 대월국 동남쪽 국경에 새로운 조각 세 개를 올려 놓았다. 거칠고 포악한 외양에 도끼와 톱 모양의 칼을 들고 있는 두억시니 군사의 조각이었다.
“국왕군이 용림 전투에서 패하자마자 천제국의 병력이 대월국을 향해 이동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확인된 수는 약 3만입니다.”
강운예의 옆에 앉아 있던 총참모장 한신 대장이 흰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천제국 병력이 3만이라 하더라도 그 주력은 두억시니들이니만큼, 실제 전력은 10만 그 이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 정도 전력이라면 반란군의 수가 7만에 이른다고 하더라도 막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대월국왕이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게 될 때까지 기다렸던 모양이군. 이쯤 되면 나라를 구해주는 대가로 영토의 1/4을 내줄 수밖에 없을 테니.”
강운예는 천제국 두억시니 조각들을 각각 성산, 율도와 대월국의 국경, 대월국과 태진의 국경에 옮겨 놓으며 말을 이었다.
“천제국이 대월국에게 요구한 12개 번을 차지하게 되면, 초원길에서 대동 동부로 향하는 육상 교역로를 모두 틀어막을 수 있게 되지. 이렇게 되면 천제국이 길을 열어 주지 않는 이상 누리마루를 지나 흰서리 산맥 너머 거록 초원을 돌아가는 길 밖에 없게 된다.”
한신 대장이 말했다.
“우리를 향한 의도가 너무 다분해 보이는군요.”
“정선교가 나에 대한 원한이 깊은 모양이군. 뭐, 100년 넘게 이를 갈고 있었을 테니.”
정선교는 강운예보다 2,000년 전 먼저 대동에 나타난 마루한이자 한 때 대동 모든 나라 위에 군림하며 호령했던 천제국의 지배자였다. 스스로를 ‘천제(??, 하늘에서 온 황제)’라 칭하며 북쪽의 두억시니들을 이끌고 남하해 천제국을 세워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동의 패자(者)로 군림했던 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시대는 강운예의 등장과 함께 막을 내렸다.
율도가 건국되기 십여 년 전, 황금사자단을 이끌던 강운예는 천제국의 침략으로 고통받던 대동 동부의 주신이라는 나라를 도와 참전하게 되었다.
기나긴 전쟁 끝에 강운예는 이구(二?, 두 개의 언덕)라는 곳에서 펼쳐진 대회전에서 주신의 무사들과 함께 천제국의 대군을 몰살시키고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천제 정선교는 주신의 무사들에게 포로로 잡혀 처참한 굴욕을 맛봐야 했다.
수개월 간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정선교는 주신에게 천제국 동쪽의 비옥한 땅들을 모두 넘겨주고 강운예에게 막대한 전쟁 배상금까지 치르고 나서야 비참한 몰골로 감옥에서 풀려나 늙고 비루한 노새를 타고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스스로를 하늘에서 온 황제라 칭하던 자에게 씻을 없는 치욕을 안겨준 것이다,
그 후, 그는 계몽 전쟁 당시 대월국, 태진 등과 함께 ‘수호 동맹’ 결성을 주도하며 율도와 강운예에게 복수하려 했다. 전쟁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율도에 크나큰 피해를 주며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의 복수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강운예와 율도의 완전한 몰락을 원하고 있었다.
강운예가 율도국 무사를 형상화 한 조각을 집어 들어 율도와 대월국의 국경 위에 올려놓았다. 천제국이 대월국에 요구한 ‘ㄴ’ 모양 영토의 딱 중앙에 위치한 곳이었다.
“여기 이 곳, 흥원의 번주는 국왕파인가, 반란군인가?”
“국왕파입니다만, 몇 달 전 반란군에게 점령당한 곳입니다, 기하 (‘각하’와 유사한 뜻으로, 강운예에게만 허용되는 존칭). 이곳의 번주는 흥원공 (?, 오등작의 공작에 해당하는 최고 작위) 진대승이고, 영지를 빼앗긴 이후에도 자신의 번군들과 이끌고 국왕을 따라 용림 전투까지 참여한 것으로 보이지만, 전투 이후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보본부장의 대답에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흥원 점령이 이번 원정의 첫 번째 전략 목표가 될 것이다. 전략정책본부장은 지금 당장 진양의 행정부에 공문을 띄워라. 지난번 마루한과 영애 납치를 주도하고 율도국 무사들을 살해한 자들에게 죄를 묻고, 천제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대월국에 대한 원정을 시작할 것이니 서둘러 의회 동의 받아놓으라고.”
강운예는 참모들을 한 명씩 바라보며 지시를 내렸다.
“2군단과 6군단이 이번 원정에 나설 것이다. 7군단은 예비대로 국경에서 대기할 수 있도록. 작전본부장은 원정을 위한 세부 작전 계획 수립해서 보고할 수 있도록 하고, 각 군단에 원정 준비 명령 하달하라. 군수본부장은 내일부터 전군에 전시 보급 계획 진행시켜. 그리고 4군단장.”
“네, 4군단장!”
4군단장 정인범 중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작전본부장한테 작전 계획 수령하는 데로 4군단 침투 작전 계획 수립해서 가지고 와. 그리고, 회의 끝나고 남어.”
남으라는 말에, 4군단장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강운예와 4군단장과의 대화는 짧게 끝났다.
정인범 중장은 태상국으로부터 무언가 지시를 받은 듯 했다. 그는 강운예로부터 받은 명령서와 관련 서류들을 정리해 서류가방 안에 넣으며 말했다.
“이번에 큰 영애께서 저희 4군단으로 실습 나온다 들었습니다.”
“알고 있었나?”
“네, 어제 부관참모 통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아무리 실습이라도 4군단은 다른 군단보다 많이 힘들 텐데 말입니다.”
“예린이가 꼭 4군단으로 가고 싶다고 하도 졸라서 말이야...... 참, 자네도 딸이 하나 있지? 지금 국문관에 재학 중이라던? 올해 몇 살이지?”
“21살입니다.”
“자네도 딸 가진 아빠 심정이 어떤지 잘 알겠구먼. 딸애가 위험한 거 해보고 싶다고 조르고 그럴 때 말이야...... 옛날에는 안 이랬던 거 같은데, 나이가 들수록 자식 걱정이 더 많아지는 거 같아.”
나이가 들수록, 이라고 말했지만 강운예의 겉모습은 주름살 가득한 정인범보다 훨씬 어려 보이기만 했다.
“제가 태상국께서 걱정하실 일 없게 잘 조치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특혜나 그런 건 주지 말고...... 규정 안에서 교육하고 다치지 않고 잘 배우고 돌아올 수 있게만 신경 써줘.”
“네, 알겠습니다.”
정인범 중장은 강운예에게 거수 경례를 하고 대회의실을 나갔다.
오전 11시, 율도 백화 대원수부 평연당
평연당의 별채는 2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층은 수련장, 2층은 강운예의 서재 겸 집무실이 있었다.
2층짜리 건물이었지만 건물의 높이는 3층짜리 건물인 본채보다 약간 더 높았다. 1층 수련장이 실내에서도 칼과 창들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도록 천정이 아주 높게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수련장에는 다양한 수련 장비들이 갖춰져 있었다. 중국 영화에서 나오는 목인장 비슷한 도구도 있었고, 검도 타격대처럼 생긴 장비도 있었고, 다양한 모양의 샌드백들도 있었다.
영어를 쓰지 않는 대동에서 샌드백을 ‘타격낭’이라 부르고 있었다. 평연당에는 모두 5개의 타격낭이 있었다. 1간(약 2m) 정도 되는 길고 커다란 것부터 둥그런 항아리 모양의 가죽 안에 물을 가득 담은 것까지, 그 모양과 쓰임새가 모두 다른 것들이었다.
복싱 글러브나 MMA 글러브와 비슷하게 생긴 것도 있었다. 대동에서는 이를 ‘타격장갑’이라 부른다고 했다.
영록은 이 이야기들을 처음 들었을 때 웃음을 참지 못했다. 모두가 북한 사람들이 지은 이름처럼 하나같이 우리말로 바꿔 부르는 게 재미있게 느껴졌던 것이다.
영록은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하고 나서 아침 식사를 한 뒤 오전 수련을 받았다.
오전 수련은 줄넘기와 ‘몸풀기 유연체조’ 라고 부르는 스트레칭부터 시작되었다.
몸을 풀고 나서는 ‘격술’이라 부르는 타격 기술들과 무기술에 대한 ‘그림자 훈련’을 했다. 그림자 훈련은 ‘쉐도우 파이팅’으로 지금까지 배운 기술들로 가상의 상대와의 결투를 상상하며 혼자 연습하는 과정이었다.
대동에 오기 전 성부 학교 기숙사 방에서 혼자 ‘모두를 위한 격투 무예’를 보며 어정쩡한 자세로 기술훈련을 할 때는 혹시 누가 보고 비웃지 않을까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했지만, 이제 영록의 자세와 동작들은 누가 봐도 인정할 만큼 수준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강운예는 영록에게 공격보다 방어를 더 많이 가르치고 있었다. 발을 움직여 피하고 머리와 몸을 흔들어 피하는 방어 기법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는 늘
“상대 공격이 들어오면 우선 피하려 하고, 피할 수 없을 때 막는다고 생각해라.”
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그로인해 영록은 그림자 훈련을 할 때도 상대 공격이 날아오는 것을 상상하며 이를 피하고 반격하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었다.
무기술의 경우 양손에 2자 반 (약 80cm) 정도 되는 목봉을 들고 싸우는 ‘단봉술’만을 집중적으로 배우고 있었다.
강운예는 대동에서 세 자루의 유성금으로 만든 검을 휘두르는 전신(戰?)으로 유명했다. 이 세 자루의 검은 5자 (약 150cm) 길이의 장검과 3자 (약 90cm) 길이의 중검 두 자루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에 영록은 멋있어 보이는 장검을 배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강운예는,
“그거보다는 현실 세계 가서 쓸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게 더 나을 거다. 거기 가면 이런 장검 구하기도 힘들고, 가지고 다니기도 힘들 거다. 니가 이런 걸 들고 길거리로 나가면 그 나쁜 놈들 찾기도 전에 경찰한테 먼저 붙들릴걸?”
라며, 단봉술을 배울 것을 권유했다.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게다가 목봉과 비슷한 무기는 현실 세계에서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도 있었다.
“넌 아직 십대의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체격도 작고 성인보다 힘도 많이 약한 편이지. 맨주먹으로 그 덩치 큰 조폭들과 싸우기엔 힘겨운 점이 많을 거야. 하지만 아무리 힘이 약하고 체격이 작아도 손에 적합한 무기가 들려져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그는 이렇게 말하며 영록에게 필리핀의 칼리 아르니스라는 무예를 토대로 만든 단봉술 기술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두 자루의 목봉을 현란하게 휘두르며 공격과 방어를 하는 단봉술은 처음에 무척 어렵게 느껴졌다. 단순히 목봉만 휘둘러야 하는 게 아니라 공격과 방어를 오갈 때마다 신속하게 여기저기 이동하기 위해 발을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상대의 정면에서만 싸우려 하지마! 계속 상대의 옆이나 뒤로 돌아갈 수 있도록 움직여!”
강운예는 목봉으로 치고 때리는 것 이상으로 움직임을 강조했다.
움직임을 강조하는 것은 격술이나 유술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순간, 넌 상대방의 좋은 타격낭이 될 뿐이다! 계속 움직여! 발을 가볍게 뛰면서 계속 움직여야 해!”
영록은 그의 말을 잊지 않고 그림자 훈련을 할 때마다 발의 움직임을 집중적으로 훈련했다.
그림자 훈련을 다 끝낸 영록은 먼저 타격 장갑을 끼고 타격낭을 두드렸다. 주먹으로, 발로, 무릎으로, 팔꿈치로...... 강운예에게 배운 데로 신체 모든 부분을 이용한 타격 훈련을 했다.
1층 수련장에도 기계식 시계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 시계는 실제 시간을 가르쳐주는 시계가 아니라, 복싱이나 격투기 체육관에 있는 타임 벨처럼 정해진 시간 마다 땡, 하고 종을 쳐주는 시계였다.
시계는 운동시간은 5분, 휴식시간은 1분으로 맞춰져 있었다. 영록은 시계의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쉬지 않고 전력으로 타격을 퍼부었다.
타격 훈련을 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타격낭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려지곤 했다.
마선욱
전도한
박광
그리고 유성모......
그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영록은 저도 모르게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곤 했다.
펑! 펑!
타격낭을 두드릴 때의 소리도 다른 때보다 더 커졌다.
현실 세계로 돌아가면 반드시 유민을 구해내고 그들 모두 죗값을 치를 수 있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여기 대동에서 10년,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는 6개월이라고 했어. 그래, 6개월만 기다려줘, 유민아! 반드시 내가 구하러 갈 테니까!’
영록은 이를 악물었다.
5회까지 타격 훈련이 모두 끝났다.
영록은 그 자리에서 팔굽혀 펴기 50번씩 3회, 윗몸일으키기 50회씩 3회, 앉았다 일어나기 (스쿼트) 50회씩 3회, 철봉 턱걸이 3회씩 3회를 더 하고 마무리 유연체조(정적 스트레칭)까지 하고 나서야 오전 수련을 마칠 수 있었다.
입고 있던 운동복은 완전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수련장 천정에는 태엽으로 감아 움직이는 기계식 선풍기가 달려있어서 시원한 바람이 내려오고 있었다. 현실 세계의 에어컨 바람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땀을 식히기에는 충분했다.
영록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평연당에서 일하는 이들이 미리 가져다 놓은 시원한 물을 한잔 들이켰다.
‘영부인께서 아까 무슨 일이 있어서 강운예 관장님이 오전 훈련은 못 나온다고 하셨었지? 내가 백화에 온 이후 이런 적은 몇 번 없었는데,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걸까?’
영록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타격장갑 등 도구들을 정리하고 수련장을 나가려 했다.
그 때, 처음 보는 소녀가 별채 입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예린, 예은 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 아이였다.
그녀는 영록을 힐끔 쳐다보고는 무뚝뚝한 말투로 말을 걸어왔다.
“아빠, 위에 계세요?”
그녀는 영록을 평연당에서 일하는 사람 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강운예 관장님 지금 여기 안 계신데...... 저, 실례지만 누구세요?”
영록의 물음에 소녀는 표정을 찡그렸다.
“아빠 딸이요. 근데, 왜 아빠를 관장님이라고 불러요? 그 쪽은 누구신데요?”
그가 무어라 대답하려 할 때, 별채 밖 정원에서 영부인 이소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나, 네가 지금 이 시간에 여기는 웬일이니? 오늘 경학관 안 갔니?”
그녀의 목소리에, 예나라 불린 소녀는 휙 돌아서서 별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영부인에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
‘아빠? 그리고 이름이 예나면 ’예‘자 돌림? 강운예 관장님한테 딸이 또 있었나?’
영록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영부인과 소녀를 물끄러미 쳐다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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