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77화 (77/217)

〈 77화 〉 대동력 9,994년 5월 17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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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6시, 율도 백화 대원수부 일대

대동은 이제 봄을 지나 여름으로 향하고 있었다.

따뜻한 대동 남쪽에 자리 잡은 율도의 백화는 아침부터 도시 곳곳에서 싱그러운 여름 바다 향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바닷가에는 새벽부터 고기잡이 나간 배들이 조업을 마치고 만선(??)의 기쁨을 노래하며 돌아오고 있었고, 항구에는 교역품을 가득 실은 거대한 무역선들이 닻을 걷어 올리고 저 먼 바다를 향해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쪽빛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에서는 동네 아이들과 처녀들이 이른 아침부터 얇은 옷 하나 걸치고 멱을 감으며 놀고 있었고, 그 위 백사장에는 며칠 전보다 얇아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해안가를 여유롭게 산책하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의 옷은 마치 개량 한복 같기도, 16 ~ 17 세기 유럽의 옷 같기도 했다. 덥고 습한 기후 때문인지 반바지나 반팔, 민소매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남자들의 바지는 통이 제법 넓은 것들이 많았고, 여자들도 무릎 위로 한참이나 올라가는 짧은 치마나 반바지를 입고 다리를 훤히 드러내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공자, 주자의 유교, 성리학을 숭상하고 있는 대동 서부 한자손들은 이를 보고 ‘옷 입는 법도도 없이 문란하고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풍습’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를 출산한 여인들이, 좀 더 정확히는 아들을 낳은 여인들이 이를 자랑하기 위해 민망스럽게 저고리 밑으로 젖통을 내놓고 다니는 걸 전통이랍시고 고수하고 있는 대동 서부 사람들이, 날이 덥고 습해 짧은 옷을 입는 것 뿐인 율도 사람들을 보고 ‘천박한 풍습’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이었다.

대동에서 거의 유일하게 계급 / 신분 제도가 없는 율도지만 사람들은 상대방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로 그의 가문이 과거 어느 정도 위치에 있었던 집안이었는지, 지금 얼마나 부유하게 살고 있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이 입은 옷이 어떤 옷감으로 지어진 것인지, 얼마나 솜씨 좋은 재단사가 만든 것인지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옷에 달린 단추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형편이 풍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옷에 단추가 달려있지 않고 천으로 된 옷고름이나 매듭으로 좌우를 여미는 옷을 입거나 아예 티셔츠처럼 통으로 된 옷을 입고 다녔다. 군인들과 중산층 사람들은 금속으로 된 단추가 달린 옷을 입었고, 과거 귀족 출신 집안이었거나 부유한 집안 사람들은 호박이나 보석으로 만들어진 단추가 달린 옷을 입었다.

물론 좋은 단추가 달린 값비싼 옷을 입었다고 무조건 떠받들지 않았고, 단추도 없이 허름한 옷을 입었다고 무조건 하대하고 그러지는 않았지만, 입고 있는 옷을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 있는 듯 했다. 수천년간 이어진 계급 / 신분 사회에 대한 관념들은 아직 이곳 율도 사람들의 무의식 중에서 말끔히 사라진 건 아닌 모양이다.

단추 뿐 아니라 머리에 쓴 모자를 보고도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시사철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 쬐는 율도에서는 사람들이 햇볕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돈이 많은 남자들은 말총으로 만든 흑립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조선시대의 갓)이나 가죽으로 만들어진 모자를 썼다. 이 모자들의 챙은 다른 모자들보다 훨씬 넓었다. 흑립의 경우 조선시대를 살다가 이리로 넘어온 대동 서부 한자손들의 영향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상투를 틀거나 망건을 쓰지 않고 자유로운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율도 사람들은 이 흑립을 머리 위에 가볍게 얹어 쓰고 끈으로 턱에 매듭을 묶어 다니곤 했다.

중산층들도 흑립과 가죽 모자를 애용하긴 했지만 부유한 이들이 쓰는 것들에 비해 챙의 넓이가 비교적 좁은 편이었다. 이런 것들을 쓰고 다닐 형편이 안되는 이들은 왕골에 지푸라기를 섞어 만든 초립을 쓰거나, 대나무를 가늘게 쪼게 만든 패랭이를 쓰기도 했다.

여인들도 종이로 만든 삿갓인 전모나 여성용 가죽 모자를 많이 쓰고 다녔다. 전모에는 화려한 그림과 문양들이 들어가 있었고, 여성용 가죽 모자에는 조화나 동물의 깃털들이 장식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보다 값이 더 나가는 너울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이는 전모나 가죽 모자에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비단이나 망사를 드리워 얼굴을 가리는 형태로 되어 있었다. 여인들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폐쇄적인 풍습이라기보다, 그저 햇빛에 얼굴이 그을리지 않게 함과 동시에 신비스러운 매력을 뽐내기 위한 도구와 같은 것이었다.

이런 옷들과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는 백화의 해안 너머로는 잘 정돈된 거대한 도시가 세워져 있었다.

백화는 율도를 넘어 대동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규모의 도시였다. 말과 마차들이 다니는 도로들이 마치 바둑판처럼 사방으로 반듯하게 깔려 있었고, 그 사이로 수많은 아름다운 건물들이 가지런히 들어서 있었다. 건물들은 석회와 벽돌, 각종 석재로 지어져 있었고 현실 세계 지중해의 건물들처럼 붉은색과 주황색 기와들이 지붕을 덮고 있었다. 영록은 백화에 처음 왔을 때 이 도시를 보고 자신이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본 고대 공화정 시대의 로마나 프랑스 절대왕권 시대의 베르사유에 온 것은 아닌가 하고 착각하기도 했다.

율도의 동쪽은 바다에 접해 있었고, 북쪽은 백화산이라는 거대한 산이 있었다. 백화라는 하얀 꽃이 많이 피는 산이라 예로부터 백화산이라 불렸는데, 도시의 이름도 이 산에서 유례한 것이라 했다.

도시를 둘러싼 성벽은 없었다. 과거 계몽 전쟁 당시 이런 점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반란군과 수호 동맹에게 백화가 공격당했을 때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백화산 일대에 구축해 놓은 산성과 요새들로 몸을 피했지만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린 도시는 적들에 의해 약탈당하고 불에 타 초토화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강운예는 이 곳 백화는 물론 율도의 수도 진양에도 방어를 위한 성을 쌓지 않았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몇몇 지역에 쌓아 올린 요새들과 국경지대 토성들을 제외하고, 율도 내에 그 어떤 도시에도 성을 쌓으려 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군대의 빠른 기동과 포병의 화력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강운예에게, 성이란 단지 시대에 맞지 않고 유지, 보수, 관리하기도 거추장스러운 구조물에 불과한 것이었다.

성벽 대신 백화 이곳 저곳을 가로지르고 있는 거대한 구조물이 있었는데, 이는 백화의 북쪽에 위치한 수원(??)으로부터 이어진 대규모 수도교(???)였다. 이 수도교는 도시 사람들이 사용할 물을 끌어오고 있었다. 수도교의 물은 주요건물들과 도시 곳곳에 위치한 분수로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분수에서 흘러나오는 물들을 통에 퍼서 집으로 가져가 사용했다. 분수 주변에는 돈을 받고 물을 배달해 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문을 기다리며 앉아 있기도 했다. 율도 사람들은 이들을 가리켜 ‘물장수’라고 불렀다.

수도교의 물은 백화 곳곳에 위치한 공중목욕탕과 대형 객잔으로도 연결되어 있었다. 부유한 이들의 경우 개인 집에 상하수도 시설은 물론 목욕시설과 수세식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대다수의 이들은 공중목욕탕과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었다.

공중목욕탕은 강운예가 율도를 세우며 가장 중요시 여긴 복지 사업 중 하나였다.

과거부터 여러 마루한들이 대동으로 넘어왔지만, 시도 때도 없이 창궐하는 여러 전염병들을 막아낼 수 있었던 이는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다. 강운예는 공공 병원을 세우고 필수 세금 중 의료세를 징수함으로써 사람들이 병원을 이용할 때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고, 도시 전체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사람들이 수시로 씻을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여러 질병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파하는데 힘썼다.

이전까지만해도 대동의 여러 종족들은 몸을 씻는 것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목욕이나 머리 감는 건 한 달에 한 번 하면 많이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추운 겨울이 되면 멀리까지 가서 물을 길어 오고 솥에다가 목욕물 끓이는 것이 귀찮아 그냥 안 씻고 사는 경우도 허다했다. 물이 귀한 곳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는 물이 아니라 고운 모래에 대충 몸을 비비고 그걸 가지고 씻었다 하며 사는 이들도 많았다.

강운예는 율도를 건국하기 전부터 자신이 이끌던 군대인 황금사자단이 주둔하는 곳마다 병영 목욕탕을 짓고 병사들을 하루 한 번씩 반드시 씻게 했다.

그가 만든 병영 목욕탕의 구조는 고대 로마의 목욕탕과 현실 세계의 찜질방을 적절히 섞어 놓은 모습이었다. 목욕탕 안에는 현실 세계의 사우나와 비슷한 ‘열가마’도 있었고, 냉탕과 온탕, 열탕 등 여러 온도의 물이 담긴 커다란 탕도 있었다. 샤워기만 없었지 현실 세계의 목욕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돈을 받고 몸의 때를 밀어주거나 안마를 해주는 사람, 심지어 머리를 자를 수 있는 이발소와 이발사도 있었다.

훈련을 마친 병사들은 우선 비누로 온 몸에 비누칠을 한 후 바가지로 물을 떠 몸에 끼얹으며 깨끗하게 씻었다. 그리고 열가마 안으로 들어가 흠뻑 땀을 흘렸다. 이후 여러 온도의 탕에 들어가며 몸의 피로를 풀었다. 돈이 좀 있는 이들은 목욕탕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돈을 지불하고 때를 밀거나 안마를 받기도 했다.

강운예는 황금사자단을 창건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군사들이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일반 병사들은 현실 세계 군인들처럼 머리를 짧게 잘라야 했고, 무사들도 병사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단정한 머리모양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물론 여군 무사들의 경우 머리를 길을 수 있었지만 반드시 머리를 뒤로 묶고 다녀야 했다.)

이는 단순히 군기를 잡기 위한 지침이 아니었다. 군대에 들어온 이들은 모두 투구를 써야 했는데, 금속으로 만든 투구를 오래 쓰고 있으면 자연히 머리가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머리카락이 긴 사람들은 투구를 오래 쓰고 있으면 머리에 열이 차서 답답해 미쳐버릴 것 같고 당장이라도 투구를 벗어 던지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따라서 전투 중에 불편함이 없도록 머리를 짧게 자르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병영 목욕탕 이발소 앞에는 머리를 자르려는 병사들이 늘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다.

목욕을 마친 이들은 몸에 수건을 두르고 휴게 공간으로 넘어가 술과 음료, 음식을 사 먹거나 여러 놀이를 즐겼다. 목욕탕은 단순히 몸을 씻는 곳이 아니라 병사들의 여가 공간이 되기도 했다.

병사들은 금세 과업을 마친 후 전우들과 목욕을 하고 다 함께 모여 먹고 마시며 노는 것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그들 중 도박을 하거나 술에 취해 싸움을 벌이는 등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도 간혹 있긴 했지만, 병사들이 씻는 것을 좋아하게 되면서 많은 수의 군대가 모일 때마다 필연적으로 생겨나던 전염병은 크게 줄어들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군대보다 병력이 잘 유지되고 비전투 손실이 줄어들 게 된 데에는 분명 목욕탕의 존재가 크게 한 몫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율도가 건국된 이후, 강운예는 군대가 주둔하는 곳 뿐 아니라 각 행정구역마다 일정한 수의 공중목욕탕을 지었고, 군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이곳에서 목욕을 할 수 있도록 장려했다. 물론 남탕과 여탕을 분리했고, 목욕탕 내 여러 여가 시설들도 많이 보강해서 말이다.

이런 공중목욕탕과 목욕 문화는 율도 건국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군인들처럼 매일은 아니지만 며칠에 한 번씩은 꼭 공중목욕탕을 찾아 몸을 씻었고, 그곳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여러 유흥을 즐기고 피로를 풀었다.

공중목욕탕은 남자들 뿐 아니라 여성들 사이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강운예는 공중목욕탕 내 여탕에 남탕의 이발소와 비슷한 미용실을 만들었는데, 이곳에서는 여성들의 머리 모양을 다듬어 주는 것 뿐 아니라 각종 화장과 피부 관리, 손톱 손질 등도 해주었다. 현실 세계에서나 대동에서나 여성들의 외모에 대한 관심은 절대적인 것이었고, 수많은 여성들이 매일 목욕탕에 들러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고 치장하곤 했다.

이렇듯 사람들이 공중목욕탕에 들러 자주 씻게 되면서 자연히 사람들의 위생 상태, 건강 상태가 훨씬 좋아지게 되었고, 평균 수명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병영 목욕탕과는 달리 일반인들을 위한 공중목욕탕은 모두 유료로 운영되었다. 당연히 목욕탕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여러 시설들과 술, 음료, 음식 모두 돈을 내야 했다. 사람들이 공중목욕탕에서 내는 돈들은 고스란히 율도의 국고로 들어갔다. 공중목욕탕은 율도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복지 시설이자, 국가도 매년 일정하게 짭짤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꽤 괜찮은 사업이었다.

공중목욕탕과 더불어, 공중화장실 역시 단순히 사람들의 위생과 복지만을 위해 설치한 것이 아니었다. 공중화장실은 여러 대형 건물 주변에 필수적으로 지어졌는데, 이곳을 사용하는데 공중목욕탕처럼 돈을 받지는 않았다. 어느 세상에 오줌싸고 똥싸기 위해 돈을 내야하는 곳이 있겠는가?

공중화장실에서 얻어지는 분뇨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자원 중 하나였다.

율도는 공중화장실에서 얻어진 분뇨로 농사에 쓰이는 거름을 얻는 것과 동시에, 군사용 화약의 주재료 중 하나인 염초를 만드는 데에도 이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공중화장실의 남자화장실은 현실세계처럼 대변기와 소변기가 따로 설치되어 있었고, 지하에 매설된 하수저장시설도 소변기를 통해 흘러내려온 소변을 저장하는 공간이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렇듯 율도의 도시에는 아무런 목적 없이 허투루 지어진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강운예의 눈에는 이런 도시의 모습이 아직도 많이 부족해 보였던 것 같다.

하기야, 현실 세계를 살아온 사람 입장에서는 부족하고 불편한 게 어디 한 두가지 겠냐만은 말이다.

영록이 대월국에서 백화로 오는 길에 강운예에게 물었던 것이 있었다.

“저, 관장님. 그 때 일월촌에서 총이랑 탄이랑, 석유랑 건축 자재들 가져가셨던 거요. 그거 가져가시려고 다시 돌아오셨던 거에요?”

“응, 맞다.”

“저, 그거 왜 가지러 오셨던 건지 여쭤봐도 되요?”

“응, 내가 만든 율도라는 나라, 다른 나라 사람들은 대동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라고, 참 대단하다고 우러러보고 있지만, 앞으로 너도 알게 되겠지만 지금 율도의 문명 수준은 잘 쳐줘봐야 그리스 로마 시대 정도에 불과한 거 같아. 물론 앞으로 이 문명을 급속도로 발전시킬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긴 하지. 산업혁명처럼 기술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면 돼. 증기기관처럼 기초적인 기계 장치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도 아니니.”

강운예는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는, 그런 산업혁명에 필요한 에너지 자원이 없다는 거야. 석유나 석탄 같은 고체 연료 말이야. 아무리 좋은 기계를 만들 수 있어도, 이 기계를 돌릴 수 있는 자원이 사람이나 동물의 힘 아니면 나무를 태우거나 소똥, 말똥을 쓰는 거 밖에 없으니 어떤 진전도 보이지 않더구나. 그래서 현실 세계로 돌아가 석유 표본을 가지고 와서, 여러 학자들에게 대동에 석유나 석탄 같은 고체 연료와 비슷한 효율을 가진 자원이 있는지 찾게 하고 있단다. 계속해서 열심히 찾다 보면 언젠가는 쓸만한 게 나올지도 모르지.”

그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영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콘크리트나 시멘트, 철근 표본을 가지고 온 것은 이 곳 대동에서 사용하고 있는 건축 자재들과 여러 도구, 무기를 만드는 금속들이 현실 세계의 것과 비교해 어떤 차이가 있고 어느 쪽이 더 장점이 많은지 알고, 만일 대동의 것들이 부족함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현실 세계의 것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지 알기 위함이었단다. 총과 화약을 가지고 온 것은...... 당연히 다른 나라들보다 더 강한 군사력을 가지기 위함이었고.”

“콘크리트나 시멘트, 철근이 필요하시다면, 이 곳에 아파트 같은 거라도 지으시는 건가요?”

“아파트? 그거 비슷한 건 이미 여기에도 있지. 다세대 주택이라고, 아파트랑 비슷한 5층짜리 공동주택을 지어서 전쟁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임대하고 있어. 그런데 대동의 기술로는 현실 세계에 있는 것같은 15층, 20층짜리 건물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더구나. 건물이 5층 이상으로 높아질수록 붕괴 위험도 커지니까. 그래서 보다 튼튼하고 안전하면서도, 공사비용이 보다 적게 들일 수 있는 건물을 짓기 위해 현실 세계의 건축 자재들을 연구할 필요가 있었던 거지.”

영록이 율도의 백화에 도착해 도시의 위용을 보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할 때에도, 강운예는 씁쓸히 웃으며 그에게 말했었다.

“너무 그렇게 놀라지마. 나의 율도는, 여러 면에서 아직 미완성이란다.”

영록이 이 백화에 산지 6개월이 흐른 때였다.

오늘도 영록은 수군 사령부와 백화항(?, 항구) 옆에 있는 해안까지 달리기를 하고 대원수부로 돌아오고 있었다.

대원수부에서 해안 백사장까지 왕복하는 거리는 대략 25리 (약 10km)정도 되었다.

달리기는 강운예가 가장 먼저 영록에게 시킨 훈련이었다. 처음에는 5리, 10리, 15리 이렇게 조금씩 뛰는 거리를 늘리기 시작했는데, 6개월이 지난 지금은 25리를 쉬지 않고 달려도 크게 힘들지 않게 되었다.

영록이 처음 백화에 왔을 때, 무예 기술이 아닌 달리는 방법부터 가르치는 강운예를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강운예의 의지는 명확했다.

“체력이 없다면 배우고 숙련하는 것은 물론, 버티고 지속하는 것도 모두 힘들어지지. 네가 포기하지 않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먼저 달리기로 체력부터 확실히 만들어.”

그의 말대로 영록은 매일 쉬지 않고 정해진 거리를 달려고 또 달렸다.

그 결과, 조금만 뛰어도 숨이 턱까지 차고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던 예전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쉽게 피곤해지거나 지치는 일도 거의 없어졌고, 몸에 활기도 더 가득해진 느낌이었다.

이렇게 달리기를 계속하다가 저절로 깨달은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달리기를 통해 체력이 늘어나니 단순히 무예 수련을 할 때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매사에 긍정적인 영향이 두루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을 때도 더 오래 읽을 수 있었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지치지 않고 집중력 있고 끈기 있게 일에 몰입해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

“체력이 없다면 다른 건 모두 사상누각(?上?)일 뿐이지.”

강운예가 왜 그리도 달리기와 체력을 강조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해안가에서 가까운 동해 시장의 상점들은 이제 막 아침 장사를 하기 위해 문을 열고 있었다.

동해 시장은 각종 어폐류와 해산물, 그 외 다양한 식자재를 판매하는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영록이 시장 골목으로 들어갔을 때 어떤 이들은 오늘 새벽 바다에서 갓 잡아온 펄떡거리는 활어들을 수조에 옮기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판매할 해산물들을 상점 앞에 보기 좋게 진열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식당에서는 생선을 숯불 위에 노릇노릇하게 초벌구이하고 있었다. 고소하고 짭조름한 생선 굽는 냄새가 아침 식욕을 자극했다.

영록은 이곳을 오갈 때마다 어렸을 때 엄마 아빠와 함께 갔던 부산의 자갈치 수산 시장과 비슷한 정취를 느끼곤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율도 사람들의 음식 문화는 한국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곳 사람들 역시 각종 생선과 해산물들을 회로 만들어 간장이나 된장, 산초양념(고추장)에 찍어 먹는 걸 좋아했고, 숯불 위에 생선이나 조개, 새우 등 해산물들을 구워 먹기도 했다. 굳이 다른 걸 찾아보자면 대동에는 와사비 같은 양념이 없다는 것 정도였다.

“안녕하십니까, 마루한!”

“좋은 아침입니다, 열심히 하십시오!”

그를 본 동부 시장의 상인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율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영록이 대동에 새로 온 마루한이라는 사실은 백화 전체에 금방 소문이 나 버렸다. 매일 아침 영록이 달리기를 하러 나오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일부러 길가에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영록이 대원수부 밖으로 나갈 때는 늘 호위 병력이 붙었다.

오늘처럼 영록이 달리기를 하러 나올 때면 백영단 소속 무사 십여 명이 그의 곁에서 함께 달리곤 했다.

그들은 영록과 마찬가지로 반팔에 반바지같이 편한 운동복을 입고 있었지만, 만일에 대비해 옷 안에 작은 칼이나 권총 등을 휴대하고 있었다.

영록이 일행들과 함께 시장을 빠져나갈 즈음, 어느 상점에서 물건들을 진열하며 장사를 준비하고 있던 두 명의 상인들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도 열심히 달리시는구만, 영록 마루한.”

“저 분은 볼 때마다 맨날 달리기만 하고 계시네? 나중에 율도 대동제 (매년 봄에 개최되는 여러 축제 중 하나, 여기서는 올림픽과 유사한 체육대회를 의미한다.) 에 라도 나가시려는 건가?”

“뭐 달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던데? 태상국 기하가 계시는 평연당에서 무예 수련도 받고 계신다는구만.”

“우리 율도야 뭐 애들 어려서부터 무예 가르치는 게 당연한 곳이니까. 영록 마루한도 아직 어린 나이라니까, 태상국 기하께서 다른 애들처럼 똑같이 수련시키시려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마루한은 늙지도, 죽지도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잖아? 다른 사람들이 젊은 시절 수십 년 동안 무예를 수련할 수 있지만 마루한들은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수련할 테니, 나중 되면 일반인보다 훨씬 고강한 무예를 가지게 되겠지? 태상국 기하처럼 말이야.”

“그래도 마루한도 칼에 맞거나 총에 맞으면 죽을 수도 있잖아? 몇 백 년 전 전쟁터에서 총 맞아 전사한 박환성 마루한처럼 말이야.”

상인 하나가 큼지막한 식칼을 들어 생선 머리를 탁, 쳐서 자르며 말을 이었다.

“그치, 마루한도 총 한 방 맞거나 이처럼 목에 칼 떨어지면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골로 가는 거지. 그래서 난 가끔 마루한들이 정말 대단한 존재들일까, 우리처럼 별거 없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곤 해. 늙지도 않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것 말고 크게 다를 것도 없어 보이잖아?”

“나도 그래. 저들도 먹어야 살고 먹었으면 싸고, 잠도 자도, 애도 낳고...... 많은 종족들의 어머니가 되시고, 이 땅에 말과 글을 전해주신 미한을 빼면, 마루한 모두 특별한 거 하나 없는 그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인 것처럼 여겨져. 아! 물론 우리 태상국 기하도 빼고 말이야! 태상국 기하는 진짜...... 살아있는 전쟁의 신이시지. 그 분은 미한과 더불어 신으로 추앙받아 마땅한 분이셔. 이건 아무도 부정하지 못 할거야!”

“응, 진짜 신, 그 중에서도 전쟁의 신 맞으시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그분은 자신을 마루한이라고 부르지도 말고, 신이라 여기지도 말라고 늘 강조하셨지. 자신을 황제라 부르는 하는 서쪽 나라 마루한이나, 또, 천제라 부르라 하는 동쪽 나라 마루한과 비교될 수 밖에 없는 멋진 분이지!”

상인이 생선들을 얼음 조각들 위에 올려 놓다가, 작은 얼음 하나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또, 그분이 가르쳐주신 여러 지혜들 덕분에 이 율도가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발전한 거 아니겠나? 아, 지금 우리가 여기서 생선 장사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분 은덕 아니겠어? 태상국 기하께서 백화산 북쪽에 빙고(?, 얼음 창고) 만들어서 무더운 백화에서도 일년내내 사시사철 얼음을 만들어 쓸 수 있으니까, 우리들이 언제나 싱싱한 생선을 팔 수 있게 된 거 아니냔 말이야? 다른 마루한들은 몰라도, 태상국 기하 그분은 그냥 신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거 같아. 이만 하면 인정?”

“어, 인정~ 참, 그럼 이번에 새로 대동에 오신 영록 마루한은 어떤 능력을 지닌 분이시려나? 그 분이 대동에 오시자마자 대월국이 납치하려고 하고, 태상국 기하도 그 분을 되찾아 오려고 수만 병력을 친히 끌고 가셨다 오셨으니, 아마 태상국 기하만큼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진 분이시겠지?”

“에이~ 태상국 기하께서 직접 군을 끌고 다녀오신 건 영록 마루한 때문도 있지만 큰 영애도 같이 납치되서 그런 것도 있겠지. 뭐 그래도, 마루한이 올 때마다 세상이 크게 바뀌었으니까, 영록 마루한도 나중 무언가 큰일을 하지 않겠어?”

“그나저나 그때, 태상국 기하의 큰 영애가 주 나라 황자하고 같이 가출했다가 마루한하고 같이 대월국 놈들에게 납치되었던 거라며? 그런데 큰 영애하고 주나라 황자하고 가출해서 누리마루까지 가는 사이 둘이...... 얼레리 꼴레리 갈때까지 다 갔겠지?”

“아, 이 사람 참...... 생각하는 거 하고는! 뭐, 머리 속에 든 게 그런 거 밖에 없나?”

“아니, 다 큰 남자애랑 여자애랑 둘이 같이 집을 떠서 몇날 며칠밤을 같이 있었다는데, 정말 아무 일도 없었겠어? 진짜 아무 일도 없었으면 둘 중 하나가 문제 있는 거지. 암 그렇고 말고.”

“진짜, 여기 율도에 사는 게 다행인 줄 알아라. 다른 나라 같았으면 마루한의 식솔을 모욕했다고 목이 잘렸을 지도 몰라.”

“그래서 내가 고향 떠나서 율도로 넘어온 거 아닌가? 이런 말 해도 죄가 안되는 세상이 이곳 율도인데. 참 좋은 세상 아닌가?”

두 사람은 서둘러 좌판을 정리하고 아침 장사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동해 시장을 지나 조금 더 뛰어오니 강운예가 율도의 개국을 선포했던 ‘자유의 광장’이 나왔다.

백화의 행정을 주관하는 시청 앞에 있는 이곳은, 마치 서울의 광화문 광장같이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활용되는 곳이었다.

아직 아침이라 그런지, 광장에는 사람보다 새들이 더 많이 모여 있었다. 아무래도 백화가 바다와 가까운 탓인지, 갈매기와 같은 바닷새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백화는 율도에서 가장 크고 번화한 도시였지만 수도는 아니었다. 율도의 행정 수도는 ‘진양’이란 곳으로, 백화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었다.

율도는 표면적으로나마 국민들의 선거로 뽑힌 ‘통령’에 의해 다스려지는 자유 민주주의 공화국이었다. 통령은 5년의 임기 동안 진양에서 국가 행정을 총괄했다. 중임제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최대 2번까지 통령에 선출될 수 있었다.

율도의 통령은 현실 세계의 대한민국이나 미국의 대통령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 행정부의 수반이긴 했지만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할 권리나 국가 및 법을 수호할 권리, 국가 정책을 조정할 수 있는 권리, 군 통수권 등 ‘국가 원수’로서의 권한과 지위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 원수’의 역할은 태상국 강운예가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9,940년 경, 대동 중부와 남부를 모두 통합해 국경을 확정하고 신분제 / 노예제 등을 폐지하는 등, 나라의 기틀을 완성한 강운예는 스스로 신정 (마루한에 의해 나라가 다스려지는 영원한 전제 군주적 통치)의 중단과 더불어 자신이 그토록 부르짖었던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했다.

그와 함께 강운예는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율도를 개국한 백화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조용한 삶을 살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소박한 바람은 몇 년 만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강력한 구심점이었던 강운예가 사라진 이후, 아직 성숙하지 못했던 율도의 정치인들은 정쟁을 일삼으며 나라를 극심한 혼란에 빠트리고 말았다.

이로 인해 정치체제로서의 자유 민주주의는 국민들에게 많은 의심과 비난을 받게 되었고, 결국 다른 나라들처럼 전제주의 왕정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왕정 복귀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인물 중 하나는 강운예의 아들 중 하나였던 ‘강원’이란 인물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모인 이른바 ‘왕당파’는 결국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공화정파’를 무너뜨리기 위해 대월국, 태진, 천제국 등 외세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것은 곧 십 수 년간 지속된 ‘계몽 전쟁’이 시발점이 되었다.

백화에서 조용히 지내고 싶었던 강운예는 혼란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다시 정계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가까스로 계몽 전쟁에 승리하고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낸 강운예는 새로운 통치 제도를 고안해냈다.

그것이 바로 ‘태상국’이라는 자리였다.

계몽 전쟁 이후로도 율도의 정치 체계는 일반적인 민주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삼권분립의 틀 속에 통령이 국가 행정을 총괄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실질적인 국가 원수, 태상국이 외교, 내정 등 국정 전반을 감독하고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결정을 거부하고 조정할 수 있으며, 국가의 주요 안건에 대한 최종적인 승인권을 행사하는 ‘초월적 권력’을 가진 형태였다.

게다가 육군과 수군의 통수권과 군 지휘관 임명권 또한 태상국이 모두 틀어쥐고 있었다.

쉽게 말해, 율도라는 나라는 그냥 겉보기에는 자유 민주주의 공화국처럼 보이지만, 실제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왕에 의해 통치되는 절대 왕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계몽 전쟁의 참상을 겪은 이후, 강운예는 아직 자유 민주주의 정신이 제대로 각인되지 않은 정치인들에게 율도의 정치를 온전하게 맡기기는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 강운예에게 이렇게 물어봤다고 한다.

“언제쯤이면 이 나라의 정치인들을 신뢰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마 내가 죽을 때쯤? 그 때가 오지 않는 이상 그들을 신뢰하지 못할 것 같네.”

“아니, 태상국께서는 마루한이시라 돌아가실 일이 없지 않습니까?”

“응, 그래서 내가 정치인들을 신뢰하는 날도 오지 않을 것 같네.”

영록은 백영단 무사들과 함께 자유의 광장을 지나 잘 닦여진 보도 (보행자 도로)를 따라 대원수부로 들어왔다. 그는 여전히 뜀 걸음으로 달리는 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마루한!”

대원수부 위병소를 지키고 있는 네 명의 위병이 일제히 영록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영록도 반갑게 손을 흔들며 화답해 주었다.

“수고하세요.”

마침, 아침 점호를 마친 군사들이 식당으로 줄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도 영록을 보고는 그를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25리를 다 뛰셨습니다. 이제 평연당으로 가시겠습니까?”

함께 달리던 백영단 무사가 물었다. 영록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직 강운예 관장님께서는 방에서 안 나오셨을 것 같은데, 전 대연병장에서 스트레칭...... 아니, 몸풀기 유연체조 더 하고 갈게요.”

“그럼 저희도 마루한과 함께 하겠습니다. 대연병장으로 가시죠.”

이제 영록은 백영단 무사들은 함께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예린이는 며칠 후에 군단으로 실습 나간다면서요?”

경무관 학생들은 3학년이 되면 1개월 동안 군단에서 군 복무 경험을 쌓게 된다. 국무관도 마찬가지로 3학년 때 3개월의 실습 기간을 나가게 되어 있었다.

“예, 4군단으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애 본인이 적극 희망했다고 하더군요.”

영록은 대월국 성산번을 탈출할 때 자신들을 위해 희생했던 주혁과 4군단 무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그들의 영향인지, 그 후로 예린은 나중 무관이 되면 꼭 4군단에 들어가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럼 정국이도 4군단으로 간다고 하나요?”

“주나라 황자님은...... 다른 군단으로 실습 가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태상국께서 황자님은 영애와 다른 군단으로 실습 보내라고 직접 명을 내려셨다고......”

갑자기 지난번 대월국 성산번을 탈출했을 때, 강운예 앞에서 바짝 주눅이 든 모습으로 아무 말 못 하고 있던 정국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 이후 영록은 정국과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정국이 대원수부 출입을 못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항간에 태상국께서 주나라 황자님의 경무관 유학을 중단시키시고 본국으로 돌려보낼 거란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정국이가 강운예 관장님한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모양이군요.”

“영애가 가출할 때 황자님도 따라간 것 때문에 여러 안 좋은 소문들도 있고...... 아무래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입방아 찧기 딱 좋은 소재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태상국께서도 두 사람을 떨어뜨려 놓으시려 하는 모양입니다.”

그 때문인지, 요새 예린의 표정은 영 밝아 보이지 않았다.

대연병장으로 향하는 도로 맞은편에서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가 영록 일행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주변에는 십여 명의 백영단 무사들이 말을 타고 마차를 호위하고 있었다.

마차가 영록의 앞에서 멈춰 섰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영록 오빠? 지금 운동 다녀오시는 길이세요?”

마차 창문 너머로 작은 얼굴에 하얀 피부, 인형 같은 눈코입을 가진 어여쁜 소녀가 그에게 인사를 건네 왔다.

강운예의 딸, 예린의 동생인 예은이었다.

“응, 너도 잘 잤어? 지금 경학관 가는 거야? 오늘은 일찍 가네?”

“네, 연주 실기 때문에 미리 가서 준비해야 할 게 좀 있어서요. 그럼 이따 오후에 평연당에서 뵈요.”

예은은 해맑게 웃으며 영록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올해 16살로 경학관 1학년을 다니고 있었다. 언니 예린과는 달리 천생 여자같이 다소곳하고 조용한 성격에 착하고 친절하기까지 했다. 어려서부터 ‘고쟁’이란 악기를 연주하는 걸 좋아했다고 하는데, 경학관에서도 음악을 전공하는 중이었다.

예은 역시 태상국의 영애인지라 언제나 백영단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예린의 경우 자기 한 몸 지킬 수 있는 무예 솜씨는 갖추고 있어서 호위가 따로 필요치는 않았지만, 강운예는 ‘감시’ 목적으로라도 늘 두 명 이상의 백영단 무사들을 예린에게 붙여놓고 있었다.

현재 강운예의 본처이자 율도의 영부인인 이소영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모두 셋이었다. 딸인 예린과 예은 외에도 위로 예성이란 장남이 하나 있었다.

예성은 올해 20살로, 율도의 사관학교라 할 수 있는 국무관에 입학해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영록은 작년 겨울 아주 잠시 예성을 보았을 뿐, 그가 국무관에 들어간 이후 단 한 번도 그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 외에도 강운예는 다른 부인에게서 낳은 자녀들이 여럿 더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강운예 관장님은 여기서 대동에서 늙지도 않고 200년 넘게 사셨다고 하니까, 뭐 부인도 많고 자식들도 많을 수도 있겠지. 이래서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고도 여기서 계속 살고 계신건가?’

영록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대연병장을 향해 걸어갔다.

­ 오전 6시, 율도 백화 대원수부 평연당

깨끗한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평연당은 대원수부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애초에 평연당은 계몽 전쟁 이전 강운예가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평안하게 수련하며 지내기 위해 만든 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태상국 강운예가 국가 대소사를 결정하고 군의 운영 전반을 지휘하는 곳이 되어 있었다.

평연당은 크게 가족들이 생활하는 본채와 강운예가 정무를 보는 별채로 구분되어 있었다. 본채 뒤로는 이층집이 세 채 있었는데, 이곳은 평연당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백영단 무사들이 생활하는 곳이었다.

본채는 총 3층으로 되어 있었다. 1층은 거실과 식당, 응접실 등이 있었고, 2층에는 자녀들의 방, 3층은 강운예와 영부인 이소영의 공간이 있었다.

창가의 가림천(커튼)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방안 가득 들어오고 있었다.

3층 침실의 커다란 침대 위에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강운예와 이소영이 누워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서로를 끌어안고 잠들어 있었다.

이소영은 마치 수줍은 소녀처럼 강운예의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그녀는 40의 나이에 아이도 셋이나 낳은 중년의 여인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스무 살 후반 정도로 보이는 동안 미모에 군살 없이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창밖으로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왔다. 정원에 있는 사자개 (삽살개를 닮은 대동의 대형견, 털이 매우 긴 편이라 기후가 따뜻한 율도 등 대동 남쪽에서는 보통 털을 짧게 밀어준다.) 들이 짖는 소리도 들렸다.

그 소리에 강운예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몇 시지?”

강운예는 탁자 위의 탁상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대동에도 시계가 있었다. 비록 태엽을 감거나 추의 위치 에너지로 움직이는 기계식 시계들이긴 했지만, 이 방에 있는 탁상시계부터 회중시계, 손목시계까지 다양한 시계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까 영록이 지나가며 보았던 백화의 시청 건물에도 커다란 시계탑이 있어 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물론 이 시계들은 큰 단점이 하나 있었다. 일반인들이 사기에 너무 비싸다는 점이다.

시계를 들여다 본 강운예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때, 이소영의 팔이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좀 더 자도 돼요. 또 어디 가지 말고 나랑 같이 있어 줘요......”

강운예는 웃으며 다시 그녀의 곁에 누웠다. 그녀는 다인 (대동에서 ‘사랑하는 남자’ , ‘남편’ 이란 뜻으로 쓰이는 단어)의 목을 끌어안고 그에게 입 맞추었다.

“내가 어딜 가겠어? 다소니 (대동에서 ‘사랑하는 여자’ , ‘아내’ 란 뜻으로 쓰이는 단어) 없이는 아무 데도 안 가.”

“......치, 나이 먹을수록 거짓말만 늘어나는 거 같애. 300살 먹은 영감탱이.”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다인의 몸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손이 남편의 허벅지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손은 점점 위로 올라와 그의 고환을 가볍게 만지고 있었다.

강운예도 그녀의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이 하나 더 가질까?”

“아이요?”

“응, 요새 아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해서.”

“남자 아이요, 아님 여자 아이요?”

“......남자 아이. 예성이 키울 때 곁에서 많이 돌봐주지 못해서 그런가, 요즘 영록이 가르치면서 내 자식들한테는 왜 이렇게 못 했나 후회가 들 때가 있거든. 매번 바쁘다고 아이들 키우는 건 모두 다 다소니에게 맡겨만 놓았잖아.”

“그동안 당신이 나랏일 때문에 많이 바쁘셨던 건 사실이잖아요. 아이들도 이해하고 있을 거예요.”

“예성이, 예린이, 예은이한테도 앞으로 잘해야겠지만, 한 녀석쯤은 어려서부터 곁에 두고 내가 직접 가르치면서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무예도, 공부도, 살아가는 철학도 모두 다. 나와 모든 점이 닮고 내 생각까지 이어받은 자식 하나는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자꾸 생기는 중이야.”

“자식들은 부모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각자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자유로워야 한다고 하시더니, 생각이 바뀐 거예요?”

“아니 그 생각은 변함이 없는데...... 그래도 300살 쯤 되니까 한 번쯤 부모로서 욕심을 내보고 싶어서 그래.”

“부모로서 욕심...... 알았어요, 제가 하나 더 낳아 드릴게요.”

“그럼...... 오늘 밤?”

“오늘 밤? 전 지금도 괜찮은데......”

이소영은 부끄러운 표정으로 강운예의 품에 안겼다.

강운예는 3층 거실 안락의자에 앉아 제호탕 (오매육, 백단향, 초과 등을 곱게 갈아 꿀과 버무린 여름철 청량음료)을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는 정치란 기사와 논설을 읽으며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똑똑

가볍게 거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평연당의 집사가 3층 거실로 들어왔다. 집사는 평연당의 전체적인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로, 머리에 조금씩 희끗희끗하게 흰머리가 나고 있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의 얼굴은 무척 완고하고 딱딱해 보였으며, 그의 행동은 지극히 기계적이었지만 예의있어 보였다.

집사의 손에는 작은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실례합니다. 흑영단주로부터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집무실이 있는 별채가 아닌 본채로 바로 전달된 것 보니 급한 소식인 듯 했다.

강운예는 봉투를 건네받아 바로 열어보았다. 집사는 봉투를 건네자마자 서신의 내용을 보지 않기 위해 다시 저만치 뒤로 물러섰다.

흑영단주의 서신을 읽은 강운예가 미간을 찌푸렸다.

“전속부관에게, 내가 오늘 10시 정각에 대원수부 주요 참모들 모두 대회의실로 집결시키랬다고 전하게. 아, 4군단장한테도 영매 띄워서 마찬가지로 10시까지 대원수부로 들어오라고 전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도 최대한 빨리 준비하라고 이르게. 바로 대원수부로 나가야 할 거 같으니.”

집사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거실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 있어요?”

넓은 소매가 달린 얇은 속창의 (가운처럼 생긴 커다란 옷)를 걸쳐 입은 이소영이 침실에서 나오며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는 혹시 다인이 또다시 집을 떠나있어야 하는 일이 벌어진 건 아닌가 불안해하고 있었다.

“큰일은 아니고, 대월국에서 소식이 왔어. 큰 전투가 벌어졌는데, 국왕군이 대패한 모양이야.”

그는 다소니를 안아주며 안심시켰다.

“내가 이 일 때문에 어디 가거나 하지는 않을 거니까, 걱정 마.”

“정말이죠? 계속 여기 계시는거죠?”

“당연하지. 이제 당신하고 넷째도 만들어야 하는데, 내가 어딜 가겠어?”

그는 웃으며 이소영에게 입을 맞추었다.

“영록이 집에 돌아오면 오늘 내가 급한 일로 대원수부에 들어갔으니, 오전 수련은 자율적으로 하고 있으라고 전해줘. 음, 그리고 틈나는 대로 그 녀석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지 감시도 해주고.”

“알겠어요. 그래도 저랑 아침 식사는 함께 하고 가실거죠?”

“응, 밑에 아침 식사 준비하라고 일러뒀어.”

“그럼 마저 차 들고 계세요. 들어가서 당신 정복 준비하고 있을게요.”

이소영은 그의 입술에 다시 한번 입맞춤을 하고 침실 옆 의상실로 들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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