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75화 (75/217)

〈 75화 〉 대동력 9,993년 14월 6일 (1)

* * *

­ 오전 4시, 대월국 성산번 흰서리 산맥 누리마루 접경지대

국경지대 가까이 정찰을 다녀온 무사가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복귀했다.

“대월국 도깨비들이 더 늘어났습니다. 국경을 물샐 틈 없이 막고 있어서 우리 힘만으로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보고를 들은 주혁은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빠졌다.

잠시 후, 그는 남은 네 명의 무사들을 가까이 불렀다. 영록과 예린도 그가 어떤 말을 하는지 다가와 들었다.

“국경을 통과하기는 힘들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우리 군을 불러야 한다. 주변 나무를 모아 봉화 신호를 올려 우리 위치를 알릴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군은 물론 주변에 있는 도깨비들도 우리 위치를 알게 되겠지. 우리는 이곳에서 마루한과 영애를 보호하면서 우리 군이 구출하러 올 때까지 버틴다.”

그의 말에 예린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너무 무모해요! 여러분들 모두 위험해질 거라구요! 우리 아빠랑 율도 군단들은 지금 남서쪽 국경에 있다면서요? 거기까지 봉화가 보이지도 않을 거고 설사 우리 봉화를 보더라도 여기까지 오려면 한참이나 걸릴 텐데, 그동안 버티긴 너무 힘들어요!”

주혁은 예린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군은 이미 이곳 가까이 와 있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군단들을 남서쪽에 위치시킨 건 도깨비들을 기만하기 위한 모략이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국경까지 오면, 그때부터 이 근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대원수부 직속 부대 중 하나가 우리를 호위해서 다른 군단들과 합류한다는 것이 최초의 계획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탈출이 어려워지면 우리가 있는 곳으로 그들이 구하러 온다는 예비 계획 또한 준비되어 있었구요. 우리가 봉화를 올리면, 그들이 우리를 찾아오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럼 우리 군이 올 때까지 저도 무사님들과 함께 싸울래요. 아직 경무관 2학년이긴 하지만, 나도 율도의 무사에요. 활쏘기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구요.”

주혁은 예린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 씨익 웃어 보였다.

“설령 도깨비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공격해 온다 하더라도 마루한과 영애께서는 안전한 곳에 머물러 계셔야 합니다. 싸움은, 우리 4군단 5명만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린에게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저는 절대 예린 아씨가 위험에 노출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랬다가는...... 두 번 다시 태상국을 뵐 면목이 없어지게 됩니다. 물론 그분께서 저 따위 사람과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그래도 제 평생 은인이신 태상국께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이것뿐입니다. 그러니 부디, 제 부탁대로 안전한 곳에 머물러 주십시오.”

예린은 울먹거릴 것 같은 눈으로 주혁을 바라보았다.

주혁은 전투 배낭에서 ‘모두를 위한 격투 무예’ 다섯 권을 모두 꺼내 영록에게 건네주었다.

“우리가 싸우는 동안 다시 이 비급을 부탁드립니다.”

“네, 그럴게요. 그리고 저...... 저한테도 무기 하나 주시겠어요?”

“마루한, 싸움은 저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알아요,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스스로 내 몸을 지킬 준비는 해야 하잖아요. 난 활 쏘는 법은 잘 몰라요. 총이나 칼 남는 거 있으면 하나 부탁드려요.”

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투 배낭에 들어있던 뇌홍식 권총 한 자루와 탄알통, 장약뭉치, 뇌홍 가방 등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장전하는 방법과 쏘는 방법을 간단하게 일러 주었다.

­ 오전 5시, 대월국 성산번 흰서리 산맥 누리마루 접경지대

주혁은 일행을 이끌고 누리마루의 국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곳은 그리 산세가 험하지도 않고 완만한 비탈 위에 솟아 있는 깎아지는 기암괴석 봉우리였다. 멀리서 보면 마치 방어 요새와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곳곳에는 매복하고 적을 기다리기 좋은 지형이 여러 군데 있었다.

무사들은 언덕 꼭대기에 장작을 모아 봉화를 올렸다. 새벽의 어둠 속으로 봉화의 불빛이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주혁은 아이들에게 봉화가 꺼지지 않도록 계속 장작을 태워 달라고 부탁하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 무사들을 배치했다. 무사들은 모두 전투 배낭을 내려놓고 활과 전통, 군도만을 가지고 각자의 위치로 들어가 매복에 들어갔다.

봉화를 올리고 얼마 후, 누리마루가 있는 서쪽 국경지대로부터 횃불의 행렬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를 본 예린과 영록은, 처음에는 저 불빛이 율도 무사들의 것인지 알고 몹시 기뻐했었다.

횃불의 행렬이 언덕 위로 올라오자 불빛에 그들의 신형이 어슴푸레 보이기 시작했다.

예린과 영록의 표정은 이내 굳어지고 말았다.

횃불 아래 은색 갑주 위에 남색 천을 두르고 있는 도깨비들의 모습이 뚜렷이 보였다.

그들은 목건주가 이끄는 성산번의 번군들이었다.

목건주는 백여 명의 기병들로 언덕 주변을 포위하고, 4백여 명의 보병들을 그 위로 올려보냈다.

“밤이라 마루한과 영애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으니, 내 명이 있을 때까지 쇠뇌를 쏘아서는 안 된다. 마루한과 영애는 손끝 하나 다치게 하지 마라.”

목건주는 번군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겨울이라 해가 떠오르려면 더 기다려야 했다. 번군들은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가파른 언덕 위를 향해 조금씩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슉!

“아악”

앞서가던 도깨비의 목에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어디냐? 어디서 쏜 거냐?”

번군들이 당황해하는 찰나, 또다시 어둠 속에서 화살들이 날아왔다. 네 명의 도깨비들이 화살에 맞아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놀란 도깨비들이 언덕에 납작 엎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방패 든 번군들 어디 있냐? 방패 든 사람이 앞으로 나와!”

하지만 보병들 중 방패를 챙겨온 자들은 몇 명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절벽을 기어 올라가는데 어떻게 양손에 무기랑 방패 다 들고 올라가란 말이냐? 놈들이 어디서 활을 쏘는지부터 먼저 찾아!”

도깨비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번개같이 튀어 나왔다.

팍!

“끄아악!”

4군단 무사가 엎드려 있던 번군의 등 위로 군도를 내리찍었다.

“적이다!”

곁에 있던 도깨비가 다급히 무기를 들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순간 무사의 군도가 번쩍, 하고 섬광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도깨비의 머리와 몸뚱이가 동시에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무사는 다섯 명의 도깨비들을 더 해치우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디냐? 어디로 간 것이냐?”

십여 명의 번군들이 쫓아 올라왔지만, 그곳엔 이미 도깨비의 시체만이 남아 있었다.

슉! 슉!

어둠 속에서 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두 명의 도깨비들이 쓰러졌다. 겁에 질린 자들이 언덕 아래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반대쪽 언덕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번군들은 언덕의 절반도 올라가지 못하고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를 화살에 맞아 계속 거꾸러지는 중이었다. 그렇게 또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난 4군단 무사들의 군도에 그대로 몸이 두 동강 나기 일쑤였다.

희생자가 계속 늘어나자 목건주는 징을 쳐서 언덕 위의 번군들을 철수시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계속 공격해봤자 피해만 늘어난다. 언덕을 포위한 채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린다!”

목건주는 말 위에 앉아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박명이 시작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 오전 6시, 대월국 성산번 흰서리 산맥 누리마루 접경지대

서서히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목건주는 다시 보병들을 언덕 위로 올려보냈다.

그리고 노병들도 언덕 아래 배치했다.

“반드시 내가 쏘라고 할 때, 쏘라고 하는 곳에만 쏴야 한다! 명을 어기는 자는 그 즉시 참할 것이다!”

보병들이 창칼을 앞세우고 천천히 언덕을 올라갔다. 이제 어둠이 걷히고 사방에 무엇이 있는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슉!

화살이 날아와 번군 하나의 몸을 꿰뚫었다. 그와 동시에 도깨비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저곳! 오른쪽에 바위 있는 곳! 저곳에 숨어 있다!”

무사가 활을 쏘는 것을 발견한 도깨비들이 동료들에게 위치를 알려줬다. 언덕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노병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쏠렸다.

“바위 있는 곳을 향해 쏴라!”

노병들이 일제히 쇠뇌를 발사했다. 바위틈에 숨어 있던 무사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숨었다. 화살들이 무사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노병들이 쇠뇌를 쏘며 무사를 고착시키는 사이, 보병들이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왔다. 도깨비들이 10보 가까이 다가오자, 무사는 활을 내려놓고 군도를 뽑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누구도 내 등 뒤로 지나가지 못한다!”

무사가 무서운 기세로 도깨비들에게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번군 세 명이 쓰러졌다. 무사는 자신의 앞에 있는 것들을 모두 거침없이 베어내며 도깨비들을 언덕 아래로 몰아붙였다.

언덕 아래 다섯 곳에서 무사들과 도깨비들의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사들이 군도를 휘두를 때마다 도깨비들의 검붉은 피가 언덕 위에 흩뿌려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깨비들의 시체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삽시간에 수십 명이 번군들이 죽어 나자빠지는 것을 본 목건주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쳤다.

“사수, 전원 사격 준비! 목표는 사수 시야 내의 적이다!”

곁에 있던 노병 지휘관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적과 우리 번군들이 한데 뒤섞여 있습니다! 자칫 우리 편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목건주가 그의 어깨를 밀치며 소리쳤다.

“시끄럽다! 마루한과 영애만 아니면 상관없다!”

그는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장자검을 아래로 내리 휘두르며 외쳤다.

“전 사수 사격!”

목건주의 명과 함께 노병들의 화살이 언덕 위로 쏟아졌다.

4군단 무사들은 물론 수십여 명의 번군들이 동시에 화살에 맞아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졌다.

하지만 4군단 무사들은 몸에 서너 개의 화살이 박히고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군도를 붙잡고 도깨비들과 마주 섰다. 화살에 맞은 자리에서 피가 흐르고 숨소리는 거칠어져 있었지만, 그들의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내가 지키는 이 길을 지나가지 못한다......”

그걸 본 도깨비들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무사들은 기합 소리를 지르며 도깨비 보병들에게 달려들었다. 기세에 질린 번군들이 창을 길게 잡고 무사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으려 했지만, 무사들은 적의 창 자루를 베어 부러뜨리고 그들 속으로 뛰어 들어가 난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번군들이 다시 밀리기 시작하고 있을 때, 언덕 아래 노병들은 다시 쇠뇌를 발사할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언덕 위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목건주가 다시 한번 장자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전 사수 사격!”

다시 한번 화살비가 퍼부어졌다. 4군단 무사들과 함께, 수많은 도깨비들이 또 한 번 화살 밥이 되어 꿰어졌다.

이제 몸에 더 많은 화살이 박힌 4군단 무사들의 몸은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만신창이가 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군도를 들어 도깨비들을 겨누었다.

“너희는 절대 이 길을 지나지 못할 것이다......”

이 모습에 번군들은 그 누구도 감히 앞으로 나서려 하지 못했다.

언덕 위로 온몸을 철갑으로 중무장한 맹약 무사, 견습 무사들이 장자검을 빼어들고 올라왔다. 그들은 십여 발의 화살에 맞은 채로 언덕길을 지키고 있는 4군단 무사들을 향해 투구를 벗고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도깨비 무사들이 상대방에게 경의를 표할 때 하는 행동이었다.

그들은 다시 투구를 고쳐 쓴 후, 두 손으로 장자검을 잡고 무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결단이다!”

도깨비 무사들과 4군단 무사들의 치열한 결투가 벌어졌다.

피와 불꽃이 이는 싸움 끝에 9명의 맹약 무사, 견습 무사들과 네 명의 4군단 무사들이 쓰러졌다.

이제 살아있는 4군단 무사는 영록과 예린이 있는 언덕 꼭대기 바로 아래를 지키는 주혁 한 사람뿐이었다.

주혁의 몸에는 8대의 화살이 꽂혀 있었다. 그의 검은 옷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 앞에 죽어 넘어진 맹약 무사의 머리에서 두건을 벗겨내어 칼을 쥔 자신의 오른손에 단단히 묶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군도를 놓치지 않으려 함이었다.

그의 발아래에는 도깨비 무사 셋이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네 명의 도깨비 무사들과 수십여 명의 번군들이 그에게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주혁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서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동이 트고 아침 햇살이 사방을 환히 비추고 있었지만, 기대하던 지원군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도깨비들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이 괴물 같은 놈!”

맹약 무사 하나가 그의 심장을 향해 장자검을 찌르며 달려들었다.

주혁은 상대의 검을 왼쪽으로 흘려 막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군도가 원을 그리며 맹약 무사의 오른팔을 내리찍었다.

퍽!

주혁의 군도는 맹약 무사의 팔뚝 보호대를 제대로 베지 못하고 스치고 떨어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힘이 떨어졌거니와, 여러 차례 격검으로 군도의 이가 많이 상하고 날이 무뎌져 있어 단박에 팔을 잘라내지 못했던 것이다.

맹약 무사는 깜짝 놀라 오른쪽으로 한발 물러서는 듯싶더니, 그대로 손목을 비틀어 주혁의 왼쪽 허리를 올려 베려 했다. 주혁은 왼발을 뒤로 빼며 피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도깨비 무사의 공격을 제대로 피할 수 없었다.

맹약 무사의 장자검이 그의 가슴을 얇게 베고 지나갔다. 어깨 위로 붉은 피가 튀어 올랐다.

주혁은 이를 악물고 상대의 배를 향해 군도를 찔러 박았다.

그의 공격은 두꺼운 갑주에 튕겨 나갈 뿐이었다.

맹약 무사는 자신감이 붙었는지 그를 향해 맹공을 퍼부으며 달려들었다.

수세에 몰리던 주혁은 왼손으로 군도 윗부분을 붙들고 공격을 기다렸다.

맹약 무사가 그의 왼쪽 어깨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그 순간, 주혁은 양손으로 잡은 군도로 그의 공격을 막아내고는 손잡이 끝으로 얼굴을 찍어 버렸다.

“억!”

맹약 무사의 코에서 코피가 터졌다.

그가 잠시 비틀거리자 주혁은 그의 허리를 휘감아 그 자리에 넘어뜨렸다. 그리고 갑주와 투구 사이 빈틈으로 군도를 찔러 넣었다.

“컥! 커어억! 컥!”

주혁에게 깔려 사지를 버둥거리던 맹약 무사는 곧 잠잠해졌다. 주혁이 군도를 뽑아 들자 그의 목덜미에서 검붉은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주혁은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맹약 무사를 넘어뜨리고 누르던 중, 자신의 몸에 박혀있던 화살이 몸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의 허리는 아까보다 더 숙여져 있었다. 고통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도저히 몸을 바로 세울 수 없었다.

도깨비들도 그가 이미 한계를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깨비 무사 하나가 다시 주혁 앞으로 나아갔다.

퍽!

순간, 도깨비 무사의 미간 사이에 정확히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화살에 맞은 도깨비 무사는 칼집에서 장자검을 빼 들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놀란 도깨비들이 언덕 위를 쳐다보니 예린이 활시위에 다음 화살을 재어 쏘려 하고 있었다.

“난, 일부러 빗맞히지 않아.”

암깍지를 낀 엄지를 풀자 그녀의 화살이 바람같이 날아가 또 한 명의 도깨비의 얼굴을 꿰뚫었다.

탕!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갑주를 입은 맹약 무사가 총에 맞아 거꾸러졌다. 예린의 곁에서 영록이 권총을 들어 쏘기 시작한 것이다

“마루한과 영애가 저기 있다! 노병은 모두 멈춰라!”

언덕 아래에서 이를 본 목건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번군들이 다투어 언덕 위로 올라오려 했다. 피투성이가 된 주혁이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못 지나간다!”

주혁이 군도를 휘두르며 위협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기적일 뿐, 그의 몸은 더 이상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영록과 예린이 주혁을 엄호하기 위해 언덕 위에서 계속 활과 총을 쏘아댔다. 활과 달리 총은 한번 쏘고 재장전하기까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영록이 총 한 발을 쏘는 동안 예린은 거의 7, 8발의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도깨비들의 공격에 비틀거리던 주혁이 마침내 자리에 쓰러졌다. 서너 명의 도깨비들이 그의 몸을 향해 창과 칼을 내리찍었다.

“안 돼!”

예린이 놀라 몸을 일으켜 세우고 주혁을 둘러싸고 있는 도깨비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다음 화살을 날리기 위해 전통을 내려다보니, 이제 남은 화살은 단 한 대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예린은 망연자실하게 텅 빈 전통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영록이 장전된 권총을 가지고 언덕 아래로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야, 너, 무슨 짓......”

예린이 말릴 겨를도 없이, 영록은 주혁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마루한 영록이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는 걸 본 도깨비들은 놀라 그저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영록은 권총으로 도깨비들을 위협하며 소리쳤다.

“죽기 싫으면 모두 비켜!”

마루한과 영애에게 절대 손대지 말라는 명을 받은 도깨비들은 감히 그를 공격하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영록은 권총으로 사방의 도깨비들을 겨누고 위협하면서 주혁이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

주혁은 이미 수십여 곳을 창칼에 찔려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입과 코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영록은 한 손으로 권총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 그의 옷을 잡아끌며 말했다.

“여기서 나가야 해요. 조금만 버티세요. 죽으면 안 돼요.”

영록은 안간힘을 내며 그를 잡아당겨 언덕 위로 데리고 올라가려 애썼다. 하지만 영록의 약한 힘만으로는 축 늘어진 그의 몸을 끌고 언덕 위로 올라가기에 너무 벅찼다.

이를 지켜보던 예린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는 영록을 도와 함께 양쪽에서 주혁의 옷을 잡고 언덕 위로 질질 끌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예린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죽지 마세요. 이제 곧 우리 군이 올 거라 했잖아요. 그러니 죽으면 안 돼요. 절대 돌아가시면 안 된다구요.......”

도깨비들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주혁을 언덕 위로 데리고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아무 데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 아래를 빙 둘러쌌다.

이제 봉화가 타오르던 곳에서는 검은 연기만이 하늘 위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두 아이는 조금이라도 불기운이 남아 있는 곳 가까이로 주혁을 옮겼다.

예린은 자신의 바지 밑단을 찢어 주혁의 상처를 싸매고 지혈하려 했다.

영록이 그의 몸에 박힌 화살을 뽑으려 하자 예린이 그의 손을 쳐내며 소리쳤다.

“그거 뽑지 마! 그거 뽑으면 피 더 나와 안 돼!”

예린은 울먹이며 천으로 감싸지 못하는 부분을 자신의 손으로 눌러 막으며 어떻게든 피가 나는 것을 멈추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계속 붉은 피가 가득 솟구쳐 나오고 있었다.

피를 토하던 주혁이 예린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리며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영애, 도, 도망, 도망가, 제발..... 여기서, 도, 도망가셔야 합......”

예린은 그의 손을 붙잡고 울먹이며 말했다.

“율도 무사는 절대 전쟁터에서 동료를 두고 도망가지 않는다고 배웠어요. 나 여기서 절대 안 도망가요. 무사님 놔두고 절대 안 갈 거예요.”

도깨비들이 슬슬 언덕 위로 올라오려 하고 있었다. 이를 눈치챈 영록이 다시 권총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가까이 다가오는 도깨비를 향해 권총을 쏘았다.

탕!

총에 맞은 도깨비가 거꾸러지고, 이를 본 다른 도깨비들이 멈칫거렸다. 영록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총을 재장전하며 소리쳤다.

“가까이 오지 마! 여기 언덕 위로 올라오는 놈은 무조건 죽여 버릴 거야!”

그때, 도깨비들 사이로 목건주가 올라오고 왔다. 그는 총을 장전하고 있는 영록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루한, 이제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합니다. 그 총으로 몇이나 더 죽일 수 있으실 것 같습니까? 마루한과 영애의 안전은 제가 보장합니다. 이제 그만 저희와 함께 성산성으로 돌아가시지요.”

영록은 이를 악물고 장약과 탄을 넣은 총구에 장전 막대기를 쑤셔 넣었다. 그리고 총 후미에 뇌홍까지 박은 후 목건주를 향해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내가 그 말을 들을 거 같아? 당신 그때 그 성주 맞지? 죽고 싶지 않으면 당신 부하들한테 명령해. 다들 언덕 아래로 내려가라고! 안 그럼 내 총에 죽어!”

목건주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루한, 저를 죽이신다 해도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행여나 저를 죽였다가는 분개한 제 부하들이 마루한께 해를 끼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하시고 저희와 함께 가시지요. 이 추운 곳에서 떨며 고생하고 있는 당신의 대월국 백성들이 불쌍하지도 않으십니까?”

영록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두 손으로 권총을 붙들고 목건주를 노려보았다. 목건주는 쏠 테면 어디 한번 쏴 보라는 듯, 여전히 밝게 웃고 있었다.

영록은 자신의 다리가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니,

자신의 다리가 떨리는 것이 아니라 땅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었다.

영록이 고개를 돌려 서쪽을 바라보았다.

누리마루가 있는 서쪽으로부터 무언가 다가오는 듯 한 울림이 느껴지고 있었다.

서쪽으로부터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울림은 점점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으로 변해갔다.

그 소리에 도깨비들의 표정은 점점 사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목건주도 무언가를 눈치챘는지, 천천히 언덕 아래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흰서리 산맥 너머로 떠오른 붉은 태양이 서쪽 대지를 밝게 비추었다.

그곳에서, 마치 검은 구름이 온 땅을 뒤덮듯이 검은 철갑과 마갑을 두른 철기병들이 이곳 언덕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선두에는 붉은 방풍의를 입은 수십 명의 무사들이 있었다.

그들의 기수는 검은색 바탕에 황금색 사자의 옆모습이 그려진 커다란 깃발을 들고 있었다.

예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그녀는 울음을 꾹 삼키고 활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서쪽을 향해 목청 높여 소리를 질렀다.

“모두 박살 내라!”

예린의 목소리가 흰서리 산맥 하늘 아래 가득 울려 퍼졌다.

그녀의 외침은 수백 율도국 철기 무사들의 메아리가 되어 다시 돌아왔다.

“모두 박살 내라!”

“모두 박살 내라!”

무사들은 함성 소리와 함께 장검을 빼 들고 장창을 꼬나 잡고 언덕 아래의 도깨비들을 향해 돌격했다.

백여 명의 성산번 기병들은 율도국 철기 무사들의 단 한 번의 돌격에 모두 깨끗하게 쓸려나가 버렸다. 언덕 아래에 있던 노병들도 눈 깜짝할 사이에 녹아 없어졌다.

이제 철기 무사들은 말에서 뛰어 내려 언덕 위의 도깨비 보병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불과 몇 분 만에 언덕 위를 포위하고 있던 수백의 도깨비들을 단 한 명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도륙해버렸다. 도망가는 자들도 끝까지 말을 타고 쫓아가 활과 총으로 모두 잡아 버렸다.

예린은 주혁을 끌어안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거 보세요. 무사님이 말씀한 데로 우리 군이 도착했어요! 우리 율도군이 도착했다구요!”

주혁은 아무 말이 없었다. 예린은 점점 싸늘해지는 그의 손을 붙잡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영록도 진이 다 빠진 표정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강예린! 지영록!”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정국이 언덕 위로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진채연도 함께 있었다.

정국이 영록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 다친 데는 없니?”

영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는 괜찮아.”

정국은 영록의 손을 맞잡고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고생 많았어.”

영록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손으로 예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린이 저기 있는데, 이제 예린이한테 가봐야지?”

그러자 정국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 그, 그래. 가 봐야지. 근데, 조금 이따가. 지금 말고. 응, 지금은 안 돼.”

정국은 멋쩍은 표정으로 머뭇거리고 있었다. 영록은 얘가 왜 그러지? 하는 표정으로 정국을 바라보았다.

진채연이 예린의 곁으로 다가갔다. 주혁을 붙들고 울고 있던 예린은 진채연이 자신의 곁에 앉자 그녀의 품에 안겨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진채연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야 예린이를 잡았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거 잘 알았지? 이제 언니랑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 알았지?”

예린은 진채연을 끌어안고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내가 잘못했어요. 그때...... 정말 잘못했어요. 진짜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너무 고마워요. 이 말 정말 해주고 싶었어요.......”

“어디 나한테 할 말만 많겠니? 엄마 아빠한테도 해야 할 말이 엄청 많을 거 같은데.”

그러면서 진채연은 손가락으로 언덕 아래를 가리켰다.

붉은 햇빛이 비치는 언덕 위로 붉은 방풍의를 두른 수십 명의 철기 무사들이 질서 정연하게 도열해 있었다.

그들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 올라왔다.

검은색 철갑에 은빛 보석이 세공된 화려한 갑주 위에 황금빛 사자 가죽으로 된 방풍의를 두른 키가 큰 철기 무사였다. 그의 왼쪽 어깨에는 황금빛 갈기가 가득한 커다란 수사자의 얼굴 가죽이 위엄 있게 달려 있었다.

그는 붉은색 술이 달린 챙이 넓은 검은색 투구를 벗고 언덕 위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영록은 그를 보고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 했다.

“강운예...... 관장님......?”

율도 태상국, 전군 대원수 강운예가 인자한 얼굴로 영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지난번 본 적 있는 최용준과 사승범도 함께 서 있었다.

“정말로 나를 따라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한 친구였나 보군. 어쨌든, 이렇게 여기서 다시 만나니 기쁘구나.”

강운예는 웃는 얼굴로 영록에게 손을 내밀었다. 영록은 두 손으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

“나를 따라 여기까지 온 건...... 그때 내게 말했던 그 이유 때문인가?”

“네, 맞습니다.”

“네가 나에게 말했던 그 생각, 여전히 변함없는 거고?”

“네, 그래서 강운예 관장님 찾아 여기까지 온 겁니다. 그 목표, 죽어도 바꾸지 않을 겁니다.”

영록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예전에 서울 강서구에서 체육관 할 때 나한테 배우겠다고 거제에서 주말마다 기차 타고 서울까지 올라오던 사람이 있었지. 원래 주말에는 자율 운동이라 따로 지도는 안 했는데, 그 사람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하도 갸륵해서 주말에도 체육관에 나와 그 사람을 가르쳐 주었어. 그런데 너는...... 나한테 배우겠다고 거제보다도 멀리 시공을 넘어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그 정성을 마다하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구나.”

강운예는 빙그레 웃으며 영록의 뺨을 어루만졌다.

“나와 함께 율도국 백화로 가자꾸나. 내가 너를 가르쳐 줄 테니, 힘들어도 불평불만 갖지 말고 끝까지 따라오는 거다. 알았니?”

영록은 기쁨에 가득 차 큰소리로 외쳤다.

“네!”

강운예는 예린에게로 다가갔다. 그를 본 예린은 아빠에게 달려와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 아빠~! 아빠, 너무 보고 싶었어요!”

예린은 강운예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다소 엄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강운예는 울고 있는 딸을 내려다보며 금세 표정을 풀고 예린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엄마가 집에서 많이 걱정하신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

강운예의 품에서 울먹이던 예린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율도군의 깃발을 들고 있는 철기 무사에게 다가가 깃발을 풀어 가지고 왔다. 그리고 다 타버린 장작더미 옆에 누워 있는 주혁에게로 다가갔다.

주혁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예린은 엉엉 소리 내어 울며 그의 몸 위에 율도군의 깃발을 덮어주었다. 그녀는 주혁의 얼굴을 덮으려다 말고 그의 목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다시 강운예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 무사님 군표가 왜 없어요? 이 무사님이랑 여기서 전사하신 분들, 저랑 영록이 지키려다 전부 돌아가셨는데....... 이 분, 아빠한테 은혜 갚아야 한다면서 정말 목숨 걸고 우리 지켜 주셨는데...... 아빠한테 이분 이름 알려드리고 싶은데 군표가 없어요....... 이분 이름 알고 싶었는데 군표가.......”

강운예는 예린에게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말했다.

“원래 4군단은 작전에 나갈 때 군표를 착용하지 않는단다.”

그는 율도군의 깃발로 주혁의 얼굴을 덮어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이다. 이름도 알고....... 이름이 주혁이었지....... 여기 와서 고맙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는데, 내가 너무 늦어버렸구나.”

강운예가 무사들을 향해 뒤돌아 명했다.

“이곳에서 전사한 무사들의 유해를 정중히 모셔라. 모두 상하지 않게 율도국으로 모셔가 후하게 장례를 치러 줄 것이다.”

무사들은 일제히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무사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예린은 아빠 품에 안겨 계속 울었다.

영록은 바닥에 놓아두었던 ‘모두를 위한 격투 무예’ 책들을 들고 강운예에게 다가왔다.

강운예는 예린과 영록, 정국을 데리고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의 등 뒤로, 따스한 햇살이 넘치도록 빛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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