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대동력 9,993년 13월 43일
* * *
오후 9시, 대월국 성산번 번주 직속 영지
이제 내일이면 14월이었다.
대동에서 13월의 마지막 날인 43일은 일 년 중 밤의 시간이 제일 길고 낮의 시간이 제일 짧은 ‘동지’라 했다.
대월국과 태진 두 도깨비 나라에서는 동지 때마다 낮에는 수수떡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고, 밤에는 한적한 곳에 커다란 모닥불을 피워놓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술과 돼지고기를 먹으며 다 함께 춤과 노래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성산백 심운보가 직접 다스리는 영지 여기저기에서도 도깨비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한창 잔치를 벌이는 중이었다. 성산백 가문의 본성인 ‘성산성’의 높다란 첨탑 위에서 내려다보니, 영지 내의 모닥불 빛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백여 개가 넘었다.
하지만 잔치는 생각만큼 떠들썩하지 않았다. 흥겨운 노랫소리도 자주 들려오지 않았다.
작년보다 잔치에 참여한 도깨비들의 수가 부쩍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성산성과 가까운 곳에서도 수십 명의 도깨비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둥글게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은 큼지막한 사발에 동동주를 가득 따라 연신 들이키는 중이었다.
해가 지고 밤이 무르익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려 하지 않았다.
모닥불 가까이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한 도깨비들이 서로의 사발에 동동주를 부어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해 동지 잔치는 전혀 흥이 나질 않는군. 사람들도 많이 없고 말이야.”
“얼마 전 번주님 따라 누리마루 갔던 수백의 장정들을 초상 치르지 않았는가? 시신도 하나 못 가지고 와서 빈 무덤이나 써야 하고 말이야. 그나마 살아 돌아온 자들 중에서도 몸 성히 돌아온 이는 별로 없다 하더군. 평생 반병신 불구로 살아야 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라 하고. 마을마다 초상 치른 집, 초상집이나 마찬가지인 집이 한두 집이 아닌데, 이 마당에 사람들이 잔치에 나오려 하겠는가?”
“그 때문인가, 낮에 수수떡 돌리러 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던 것 같더군. 그러고 보니 아까 건넛마을에서 온 아낙은 수수떡이 아니라 장례 음식 남은 걸 이웃들에게 돌리고 있었지. 아마 그 집도 번주님 따라 나간 누군가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 모양이야.”
“근데, 장정들 수백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구지 대동에 새로 오신 마루한을 모셔야 할 이유가 어디........”
“쉿! 요새 무사들이 사방 천지 죄다 쑤시고 다니면서 입단속 못하는 것들 잡아다 성안의 지하 감옥에 처넣고 있다는 얘기 못 들었어? 마루한 이야기는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는 번주님의 엄명이 떨어진 지가 언제인데!”
“아뿔싸, 요 입이 방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네.......”
“하여간 네 놈은 그 주둥아리 때문에 제명에 못 죽지. 조심 좀 하라구.”
“그럼 주둥아리 잘못 놀려서 경을 치고 죽기 전에, 오늘 이 주둥아리에다가 동동주나 배 터지게 들이붓고 죽어버리는 게 낫겠군. 오늘 그냥 아주 먹다 죽자구. 먹다가 죽으면 호상(??)이니 말이야.”
두 도깨비는 침울한 표정으로 사발에 든 동동주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가무(??) 없는 잔치판에 실증 난 이들은 일찍 자리를 파하고 번화가를 찾아가기도 했다. 오늘따라 성산 번화가의 홍규 (대동에서 모든 형태의 유흥업소를 일컫는 말)들이 즐비한 거리는 다른 때 보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거리에는 무사, 번군들로 보이는 장정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웃고 떠드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다들 무엇인가에 짓눌려 있거나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할 만큼 고주망태가 되어 거리를 떠돌고 있었다.
성산은 대월국 중에서도 가장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이곳에 있는 홍규들은 수도 은허나 여러 대도시들의 그것에 비해 초라하고 궁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외모도 대도시에 비하면 보잘것없어 보였다.
대동의 홍규는 크게 술과 안주, 음식 등을 파는 일반 술집인 ‘주가’ , 춤과 노래를 부르는 기녀가 있는 ‘기루’ , 몸을 파는 유녀가 있는 ‘유곽’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기루의 기녀들은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우거나 손님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매상을 올리는 역할을 주로 했다. 이들 중 특출 난 미모와 재주를 가진 이는 대동의 연예인이라 할 수 있는 ‘예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천운이 따르는 아주 극소수에게만 해당하는 일이었고, 잘 되어봐야 돈 있고 권세 있는 이의 첩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녀들은 매창불매음(????)이라 하여 ‘노래는 팔지언정 몸은 팔지 않는다.’ 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강제적인 규약이 아니었으므로 모든 기녀들이 이를 죽을 때까지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스스로 매춘을 하는 기녀들은 많았다. 몸을 파는 것이 아니더라도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즐기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어떤 나라에서는 ‘관기’라 하여 나라에서 기녀들을 직접 관리하는 곳도 있었는데, 이곳 관기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벼슬아치들에게 몸을 바쳐야 하기도 했다.
한번 기녀를 하면 반드시 죽을 때까지 기녀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관기를 제외하고 모든 기녀들은 엄연한 일반인의 몸이었다. 나라에 따라 신분의 고하는 있을지언정 직업으로서의 선택은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기녀 생활을 하면서도 평범하게 연애를 하는 경우는 많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예도 있었다. 결혼 후에도 기녀를 할지 말지는 본인 스스로 결정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곽의 유녀는 달랐다.
대동에서 유녀는 대부분 전쟁 포로이거나 노예였다. 즉, 신체의 자유가 구속된 여자들이었다.
대월국은 예로부터 천제국과 더불어 가장 노예 상업이 발달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들은 전쟁과 약탈을 통해 수많은 노예들을 붙잡아왔다. 가장 많이 노예로 끌려온 이들은 초원길의 혼혈 유랑민들과 대동 동부의 아리랑들이었다.
북쪽의 두억시니들도 노예로 붙잡혀 오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두억시니들은 덩치가 크고 힘도 세었지만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포악했기 때문에 노예로 쓰기 곤란한 점이 많았다. 두억시니 여자들도 남자 못지않게 힘이 센 데다가 거칠기 이를 데 없어서 유녀로 쓰기 적합하지 않았다. 덩치도 보통 남자들보다 훨씬 크거니와 외모도 다른 종족들에 비해 흉했기 때문에 굳이 두억시니 여자를 찾아 돈을 내고 유곽을 찾는 이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때문에 두억시니 노예들은 남자든 여자든 모두 무사들의 감시하에 도로 건설, 방어시설 건축 등 중노동 현장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다.
두억시니가 아닌 다른 종족의 남자들은 주로 장원의 농노로 삼았고, 여자들은 높으신 분들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노예가 되거나 유곽으로 보내져 유녀가 되었다. 얼굴이 반반한 이들은 귀족들의 성적 노리개가 되는 일도 있었다.
유곽은 대부분 노예를 붙잡아 온 번주, 영주의 소유였다. 그들은 붙잡아 온 여자들을 유곽에 가둬놓고 강제로 남자를 받게 하여 돈을 벌어들였다.
유곽에서 태어난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들 역시 평생 노예로 살아가야 했다. 사내아이라면 두 발로 걷고 말귀 알아들을 나이만 되면 어미에게서 떨어져 장원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농노로 살아야 했다. 여자아이라면 유녀인 어미와 함께 그 유곽에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몸이 컸다 싶으면 초경을 하기 전이라도 곧장 제 어미와 함께 남자를 받아야만 했다.
끌려온 노예가 아니더라도 일반 평민이 스스로 유녀가 되는 일도 있었다. 전쟁터에서 남편이나 가족을 잃은 여인들이 생계가 막막하여 스스로 몸을 팔기도 했던 것이다. 제 발로 유곽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홀로 산이나 들, 농지 등을 돌아다니며 주로 평민들이나 계급이 낮은 이들을 상대로 술병에 담은 술을 팔며 매춘을 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대동에서는 이런 여자들을 ‘들병이’라고 불렀다. 술병 하나 들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들병이들은 술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곳이 산이든 들이든, 사람이 있는 곳이든 없는 곳이든 개의치 않고 돗자리를 펴고 몸을 팔았다. 대동에서 벌건 대낮에 사람들 지나다니는 노상에서 벌거벗은 남녀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그것은 열에 아홉 들병이와 그녀에게 술과 몸을 산 남정네들이었다.
대월국에서는 이 들병이들을 철저하게 단속했다. 들병이들 때문에 번주나 영주들이 유곽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까 봐 우려했던 것이다.
성산에 있는 유곽들은 거의 대부분 성산백 심운보의 것이었다. 그 역시 들병이들 때문에 꽤나 골치를 썩고 있었다. 단속 때문에 대월국에서 들병이 노릇이 힘들어진 여자들이 북쪽 거록 두억시니들을 상대하러 국경을 넘는 일까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들병이들은 두억시니들에게 제 몸만 파는 게 아니라 성산의 여러 정보들까지 돈을 받고 팔아넘기곤 했다.
기루와 유곽들이 모여 있는 거리로 들어가는 다리 위에는 13자 (대략 4m) 높이의 장대 위에 목이 베인 도깨비 여자들의 머리와 벌거벗은 몸뚱이들이 흉물스럽게 걸려 있었다. 국경을 넘어 두억시니들에게 가다가 적발된 들병이들이었다. 심운보는 이들을 모두 간자(간첩) 협의로 처형해 버렸다. 그리고 본보기로 보이기 위해 이곳에 효수해 놓은 것이다.
죽은 여자들의 머리는 긴 머리카락으로 장대 위에 묶어 걸어놓았고, 목이 없는 몸뚱이들은 손이나 발에 줄을 걸어 매달아 놓았다. 시신들 앞에는,
‘대월국의 법을 어긴 자, 이처럼 될 것이다.’
라는 글귀가 함께 걸려 있었다.
술 취한 도깨비들은 효수된 들병이 여자들의 시신에 침을 뱉기도 하고 오줌을 싸기도 했다. 나무작대기로 목 없는 여자의 덜렁거리는 가슴을 쿡쿡 찌르며 킬킬거리는 놈도 있었다.
성산에서 가장 괜찮은 여인들이 모여 있다는 기루 춘일관 안에는 저녁나절부터 많은 이들이 찾아와 기녀들을 옆에 끼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곳은 돈과 권세를 가진 자들이 아니면 들어오기 힘든 곳이었다. 성산백 심운보와 가신들도 자주 찾는 곳이기도 했다.
마침 심운보의 맹약 무사 하나가 기녀 하나를 데리고 춘일관을 나오고 있었다. 무사는 갑주나 전포를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무사임을 표내고 싶었는지 허리춤에 기다란 장자검을 매달고 있었다. 그는 거나하게 취해 한 손으로 기녀의 허리를 껴안고 그녀의 몸을 더듬으며 길을 걷는 중이었다.
무사의 품에 안긴 기녀의 얼굴은 이곳 성산에 있는 기녀들 중 가장 아름다운 축에 속할 정도로 빼어났다.
그녀는 도깨비가 아니라 아리랑 출신이었다. 대월국에서는 도깨비가 아닌 다른 종족의 여자가 유녀도 아니고 기녀로 있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은허나 대도시라면 모를까, 성산과 같은 변방이라면 더더욱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기녀의 하늘하늘거리는 얇은 하얀색 비단옷 사이로 갈색의 탄탄한 피부가 드러났다. 쇄골 아래 깊게 파인 저고리 속으로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가슴골이 선명히 드러나 있었다.
“자고로 여자는 역시 아리랑이나 미호랑 여자들이 대동 최고지! 순종적이고 지고지순한 것이, 날카롭기만 하고 다루기도 까다로운 우리 도깨비 여자들과는 완전히 딴판이라 가히 좋거든! 참, 그건 그렇고 네 이름이 무엇이라고 했지?”
무사는 무엇이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입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여자는 손으로 무사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교태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채연인데, 제 이름도 제대로 기억 못 하시는 것이옵니까?”
무사는 껄껄 웃었다.
“그렇지! 채연이라 했지! 내가 술이 많이 됐나, 자꾸 깜빡깜빡하네그려.”
“그런데 매일 같이 오시던 다른 분들은 다 어디로 가셨는지요? 매일 저 찾으시던 그 붉은 머리 무사님도 안 보이시고...... 오늘같이 좋은 날 성안에서 근무라도 서고 계신 겁니까?”
기녀의 말에 무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두 다...... 갔다.”
“네? 갔다니요? 어디로 말입니까?”
“영영 갔다. 누리마루 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버렸다.”
무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그 녀석 대신 내가 앞으로 널 보살펴 주고 잘 대해 줄 거라 한 거 아니냐. 더는 묻지 마라. 말하는 것도 아프다.”
도깨비 무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러다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채연이란 이름이 본명은 아닐 테지? 너희 기녀들은 원래 예명이나 가명을 쓰곤 하지 않느냐? 그럼 네 본명은 무엇이냐?”
“부끄럽게 그건 왜 물으시옵니까?”
“네 자태만큼 진짜 이름도 이쁠 것 같아서 물은 것이다. 가르쳐 주면 안 되겠느냐?”
“제 본명은...... 아까 나으리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를 미치도록 만족시켜 주신다면 가르쳐 드리겠사와요.”
채연이란 기녀의 손이 무사의 허리 아래를 훑고 내려갔다. 그녀의 새끼손가락이 무사의 다리 사이에 그것을 살짝 건드리고 지나갔다. 순간 무사의 얼굴이 빨개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자, 어서 객잔으로 가자! 가서 빨리 방부터 잡자구!”
“꺄아~♡”
한껏 흥분한 무사는 기녀를 번쩍 안아 들고 객잔을 향해 달려갔다.
객잔의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간 무사는 거칠게 기녀의 옷부터 벗기기 시작했다.
“아앙~♡ 나으리, 거칠게 하면 싫어요. 제발 부드럽게......”
채연의 말에도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무사의 손은 멈출 줄 몰랐다. 그는 벌써부터 헉헉, 가쁜 숨을 내쉬며 순식간에 기녀의 속옷까지 모두 벗겨 버렸다.
“아잉, 몰라요~”
기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며 두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크고 단단해 보이는 그녀의 가슴은 팔에 눌려 더욱 크게 부풀어 있었다. 무사는 도저히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는 헐레벌떡 자신의 옷을 모두 벗어 입구 쪽으로 집어 던지고는 발가벗겨진 기녀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살며시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무사의 혀가 기녀의 입안으로 파고들어 마치 뱀처럼 그녀의 혀를 휘감았다. 그는 두 팔로 기녀의 몸을 부러뜨리려는 듯 꽉 감아 조이고는 마치 잡아먹을 듯이 기녀의 입술을 혀를 빨아대고 있었다.
기녀의 봉긋하고 탄력 있는 젖꼭지가 그의 몸을 애간장 태우듯 살살 문지르고 있었다. 무사는 황홀감에 젖어 점점 정신을 놓기 시작했다.
무사는 기녀를 번쩍 안아 침대로 데려가 눕혔다. 그는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고 손으로 가슴을 주무르며 입으로 빨기 시작했다. 기녀의 입에서 간드러진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녀의 몸을 핥아대던 무사의 혀가 점점 그녀의 몸 아래로 내려갔다. 그럴수록 기녀의 숨소리도 함께 거칠어졌다.
무사의 혀가 기녀의 다리 사이로 내려가려는 순간, 그녀가 손으로 무사의 머리를 가볍게 잡으며 그를 멈춰 세웠다.
“나으리, 그 전에...... 약속 정말 지키실 수 있는 거지요?”
그녀의 말에 무사는 몹시 감질난다는 표정으로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하던 거나 마저 하자꾸나.”
하지만 기녀는 무사의 머리를 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이 년이 기루에서 술 파는 년이라고 쉽게 보시고 거짓말로 절 꾀이신 건 아니시지요? 저를 성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마루한을 뵐 수 있게 하실 만큼 무사님이 정말로 높으신 분이 맞으시지요?”
“그렇다고 하지 않았느냐? 나는 성산백 각하가 가장 아끼는 맹약 무사이니라! 얼마 안 있어 성주나 영주가 될 수도 있는 몸이야! 내가 책임진다는데 누가 감히 뭐라 할 수 있겠느냐? 물론, 마루한과 마주 보고 앉아 장시간 이야기 나누는 건 힘들겠지만, 잠시만이라도 그분을 뵙는 건 내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라.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그리도 마루한을 뵙고 싶어 안달이란 말이냐?”
“나으리께서는 모르십니까? 마루한의 숨결이 한 번이라도 닿은 이에게는 장수의 축복이 있을 것이오, 마루한의 손길이 한 번이라도 스친 사람에게는 재물의 축복이 쏟아진다는 사실을요?”
“음, 나도 어려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만......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이더냐?”
“그럼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이 년이 직접 확인해보면 되지 않겠사옵니까? 그런데 혹시...... 나으리께서는 절 마루한 앞으로 데려갈 능력이 안 되는 거 아니십니까? 아니면, 마루한이 어디 계신지도 모르시고 있는 거 아니십니까?”
기녀는 몸을 획 돌려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무사는 다급히 그녀의 손을 잡으며 소리쳤다.
“무슨 소리! 내가 왜 마루한이 계신 곳을 몰라! 알고 있으니까 널 그분께 데려가겠다고 약속 한 거 아니냐?”
“기녀와의 하룻밤을 위해 허세 부리고 거짓말하는 무사님들이 어디 한두 명인 줄 아십니까? 그럼 지금 마루한이 어디 계신지 한번 말씀해 보시지요. 성산백 각하의 생신 때나 이런저런 잔치들이 있을 때마다 성산성에 자주 가 봤기 때문에, 저도 그곳 지리는 훤히 잘 알고 있습니다. 나으리가 저를 속이시려는 건지 아닌지부터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니 마루한이 지금 어디에 계신지 한번 말씀해 보세요. 거짓말인 거 같으면 전 바로 기루로 돌아가겠어요!”
그 말에 무사는 기녀를 꽉 끌어안고는 거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의 목소리로 소리쳤다.
“본채 6층! 마루한은 성산백 각하의 집무실이 있는 곳 바로 옆방에 모시고 있느니라! 그곳은 성산백 각하와 가족분들이 거주하는 곳의 바로 위층일 뿐 아니라 평소 성산백 각하가 집무를 보시는 곳이기도 하여 경비가 가장 삼엄한 곳이니라! 게다가 각하 가문의 보물 창고도 그곳에 있지! 바로 그곳에 마루한이 계시느니라! 마루한 뿐 아니라 율도국 태상국 영애도 함께 그곳에 있고! 어떠냐? 이래도 내 말이 거짓말인 거 같으냐?”
그제야 기녀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두 팔로 무사의 목을 다정스럽게 껴안았다.
“나으리의 말씀은 다른 자들과는 달리 확실히 진심이 느껴집니다. 이제 나으리를 믿을 수 있을 거 같사옵니다.”
기녀는 무사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그리고 능숙한 솜씨로 그의 목덜미와 젖꼭지를 혀로 애무하기 시작했다.
“흐음~!”
무사는 기녀의 기가 막힌 혀 놀림에 신음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기녀는 그의 다리 사이에 무릎 꿇고 앉아 그의 육봉을 손에 쥐고 입으로 빨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그녀의 손이 위아래로 율동감 있게 움직였다. 무사는 하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괴로운 듯 몸을 비비 꼬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무사가 기녀를 침대 위에 쓰러뜨렸다.
“아앙, 나으리~♡”
무사의 몸이 기녀의 몸 위에 포개졌다. 그녀의 두 다리가 무사의 허리를 감쌌다.
무사는 기녀를 끌어안고 그녀의 다리 사이에 육봉을 들이밀었다. 이미 그녀의 다리 사이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의 것이 그녀의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기녀는 하악, 숨넘어가는 소리를 질렀다.
무사의 몸이 거칠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때마다 기녀는 눈동자를 뒤집으며 헐떡거리는 교성을 내질렀다.
“아! 나으리! 하악, 하악, 나으리! 너무 좋아요! 아학, 하악!”
무사가 몸을 일으켜 두 손으로 그녀의 양쪽 젖가슴을 꽉 움켜쥐며 기고만장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가 너 미치도록 만족시켜 준다고 그랬지? 어떠냐? 진짜 미칠 거 같지?”
“네, 정말 미칠 것 같아요! 미쳐 죽어버릴 거 같아요, 나으리! 아학, 하악!”
기녀는 입에서 침까지 질질 흘리고 있었다. 무사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외쳤다.
“그럼 이제 너도 약속을 지켜라! 네 진짜 이름이 무엇이냐?”
“진채연...... 진채연이 본명이에요. 아학, 저, 저는 진짜 이름을 그대로 쓰는 거예요, 나으리! 아학, 하악! 나으리! 저 지금 미칠 거 같아요! 나으리, 나으리!”
기녀가 양팔로 무사의 목을 감싸 안았다. 무사는 기녀의 몸을 껴안고 더 빠르게 몸을 흔들었다. 그녀의 다리도 무사의 허리를 더 세게 조여오고 있었다.
무사가 곯아떨어진 것을 확인한 기녀는 침대에 걸터앉아 가지고 있던 물부리 (파이프 담배와 비슷한 연초 피우는 도구)를 들어 한 대 태우고 있었다. 그녀는 침대에 엎드려 코를 골며 잠든 무사를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도깨비 사내들은 다들 겨우 이 정도밖에 못 하나? 억지로 연기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네.”
물부리를 다 태운 그녀는 알몸 위에 얇은 옷 하나만 간단하게 걸쳐 입고 방 밖으로 나갔다. 밤이라 그런지 객잔 복도에는 돌아다니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계단으로 한 층을 내려가더니, 구석에 있는 작은 방의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똑똑똑똑똑
이윽고 방문이 열렸다. 방 안은 아무런 불도 켜놓지 않아 몹시 어두웠다. 문을 열어준 사람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기녀는 말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스르륵, 조용히 문이 닫혔다.
기녀는 방 안에 있는 침대 위에 편하게 다리를 꼬고 앉으며 어둠 속의 사람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냈어요. 성의 본채 6층 성산백 집무실 바로 옆방에 계시답니다.”
어둠 속에서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성산백이 거주하는 곳 바로 위층이로군. 6층이면 그 가문의 보물이나 진귀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장소가 있는 곳이라 알고 있는데.”
“마루한 만큼 진귀한 이가 세상에 또 있을까요. 그러니 보물 창고 가까이 고이 모셔두고 있는 거겠지요.”
기녀는 탁자 위에 놓인 지필묵으로 성산성의 대략적인 도면을 그리고는 번군들이 경비를 서는 곳과 6층까지 침투하기 용이한 곳 등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율도의 흑영단이었다.
흑영단은 강운예의 정보기관이었다. 이백여 년 전 강운예가 ‘황금사자단’을 창설할 때 정보 수집 전문 부대로서 함께 만들어진 이들은, 흑영(??)이란 이름 그대로 강운예의 검은 그림자가 되어 대동 여기저기에서 정보를 수집해 보고하고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되는 여러 은밀한 임무를 도맡아 수행하고 있었다.
마루한과 영애 예린이 납치되어 간 날부터 흑영단은 가장 먼저 작전에 투입되어 대월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단원들과 함께 이들을 찾아다니던 중이었다.
기녀의 원래 이름은 유경패, 대월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율도국 흑영단원 중 한 명이었다.
어둠 속에 얼굴을 보이지 않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대월국 내 흑영단을 이끄는 소단주였다. 흑영단은 마치 점조직처럼 이루어져 있어서, 흑영단원 개개인은 자신과 자신의 주변 동료 몇 명을 제외하고는 다른 동료들이나 상관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특히 소단주 이상 관리자급 간부들의 경우에는 부하들에게 마저 그 얼굴이나 이름 등 신상에 대해 전혀 알리지 않는 때도 있었다.
보고를 모두 들은 소단주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생했다. 이제부터의 일은 4군단이 알아서 할 것이다.”
유경패는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4군단 무사들이 벌써 성산까지 들어와 있습니까?”
4군단은 율도국에 있는 여러 군단들 중 오로지 비정규전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군단이었다.
강운예는 계몽 전쟁 이후 아직 살아남아 있던 반란 세력의 주요 인사들과 율도국을 침략해 갖은 전쟁 범죄를 일으킨 다른 나라의 귀족, 군 지휘관들을 추적해 체포 / 사살하거나, 반란 세력 혹은 다른 나라에 붙잡혀간 사람들을 구출해 오는 임무를 수행할 전문적인 부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에 그는 곧 각 부대의 우수한 무사들을 모아 4군단을 창설했다.
지난 수십 년간, 4군단은 강운예의 지시에 따라 흑영단과 함께 비밀스럽고 민감하며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임무에 수도 없이 투입됐다. 그들의 손에 처단되었거나 율도국으로 붙잡혀 온 이들의 수는 수천이 넘었다. 그들이 무사히 구출해 데려온 이들의 수는 그 배에 달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대동에서 율도국 4군단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아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 그저 ‘강운예가 보내는 죽음의 사자들’이라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강운예가 보내는 죽음의 사자들’이 이번엔 마루한과 영애를 구출하기 위해 대월국 성산에 들어온 것이다.
이번에 구출해야 할 대상이 마루한과 태상국 강운예의 친딸, 영애 예린이니만큼 그 어느 때 보다 그들을 신속하게 작전 현장에 투입했던 것이다.
소단주가 유경패의 물음에 대답했다.
“자세한 건 말해줄 수 없다는 거 잘 알지 않는가? 돌아가 다음 명을 기다리도록.”
유경패는 어둠 속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 소단주가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서도 ‘진채연’이란 이름을 쓰고 있나?”
유경패는 살짝 오른쪽 입꼬리를 올리고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그 진채연이란 이름, 자네 친구 이름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친구가 아니라 재수 없던 계집애였어요. 원래 이 바닥 기녀, 유녀들이 그렇게 많이들 하고 있더군요. 마음에 안 드는 애 이름을 자기 가명으로 쓰는 거 말이죠.”
“그렇군...... 아무튼 끝까지 신분 노출되지 않도록 보안에 유의해주게나.”
유경패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웃어 보이고는 조용히 방 밖으로 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