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62화 (62/217)

〈 62화 〉 대동력 9,993년 13월 38일 (2)

* * *

­ 오전 9시, 누리마루 남쪽 숲 대월국 성산번 무사단 야전 군영

지휘관 천막으로 전령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각하, 구천락이 보낸 영매가 도착했습니다! 지금 마루한이 청림촌에서 남쪽을 향해 이동 중이라는 보고입니다! 구천락과 그 수하들이 그 뒤를 쫓고 있다 합니다!”

잘게 부서진 메밀묵에 두툼하게 썬 돼지고기와 밥을 넣고 비빈 묵밥으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던 심운보는 탁자 위에 그릇을 탁,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야간 수색하고 돌아와 취침하고 있는 인원들을 모두 깨워라! 군영을 지킬 최소 인원만 남기고 모든 병력은 지금 당장 청림촌 남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심운보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무사들은 각자의 천막에 잠들어 있는 번군들을 깨워 무장시키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군영은 한바탕 소란스러워졌다.

감옥에 갇혀 있던 진채연도 이를 눈치챘다.

‘갑자기 군영이 시끄러워졌다. 필시 병력들이 급히 출동해야 할 일이 생긴 거야.’

진채연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았다.

몸 안의 독 기운이 거의 빠져나갔는지, 이제 그녀는 마비에서 풀려난 듯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웃옷뿐이지만 옷으로 몸을 가릴 수 있게 되었다. 밤새 감옥에 갇힌 여자들이 알몸으로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가련해 보였는지, 어느 도깨비 군사 하나가 여자들의 옷을 돌려주었던 것이다.

진채연이 원래 입고 있던 옷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에게는 누구의 것인지 주인을 알 수 없는 도깨비 사내들이 입는 커다란 저고리 하나를 던져 주었다. 웃옷뿐이라 하체를 훤히 드러내놓고 있어야 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입고 있는 것 보다야 나은 일이었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무장을 마친 성산번의 무사들이 군영 밖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말을 탄 심운보도 대열의 중앙에서 무사들과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진채연은 감옥의 나무 창살 뒤에 기대어 얼마나 많은 병력들이 군영 밖으로 이동하는지, 군영 안에는 몇 명이나 남아 있는지 유심히 수를 세어보고 있었다.

­ 오전 9시, 누리마루 청림촌 남쪽

청림촌 시장의 인파 속에서 구천락과 도깨비들을 간신히 따돌리고 청림촌을 빠져나온 아이들은 나무숲 사이에 몸을 숨기고 한숨 돌리는 중이었다.

자신의 짐들을 확인하던 예린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아악! 멧돼지 고기하고 여행 식량들 모두 깜박하고 객잔에 두고 왔어! 오뜩해!!!”

예린은 거의 오열하기 직전의 표정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괜찮아, 내가 누리마루에서 받아온 떡들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 당분간 이걸로 버티자.”

영록이 위로하듯 말했지만, 예린에게 전혀 위안이 되지 못했다.

“떡? 떡은 그냥 간식이지 밥이 아니잖아? 떡 조금 있는 거 가지고 누구 코에 붙이겠어? 아이고 내 아까운 고기들, 그거 진짜 아까워서 오뜩해~!!!”

예린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발을 동동 굴렀다.

정국이 말했다.

“아무래도 도깨비들이 계속 영록이 널 쫓아올 모양이야. 그, 전에 나한테 총 맞은 그놈, 끝까지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어.”

영록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도대체 왜 저들이 날 쫓아오는 거지? 나한테 뭘 바라고 저러는 거야?”

“네가 마루한이니까, 그리고 네가 태상국의 비급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니까 계속 쫓아오는 거지.”

“정말이지 마루한이 대체 뭐라고...... 날 데려가 도대체 뭘 어쩌려는 건지 이해가 안 돼. 날 데려간다고 무슨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닐 텐데.”

정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영록이 네가 알고 있는 네가 살던 세상의 조그마한 지식이라도 이곳 대동에서는 엄청난 도움이 돼. 지금까지 대동에서 일어난 모든 문명들은 마루한들이 가지고 온 그 조그마한 지식들에서 시작한 것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널 우러러 보고 떠받들게 될 거야. 마루한은 곧 신과 같은 말이니까 말이야. 그러니 당연히 모든 국가에서 마루한인 너를 데려가고 싶어 하겠지. 그만큼 너는 이 대동에서 그 무엇보다도 위대하고 놀라운 존재야. 너만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거겠지만.”

영록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정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 무엇보다 위대하고 놀라운 존재라고? 약해 빠지고 보잘것없는 내가?’

정국은 자신의 짐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영록과 예린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큰길로 가다 보면 여지없이 도깨비들과 다시 마주치게 될 거 같아. 조금 힘들더라도 숲길을 통해 이동하도록 하자. 다음 마방이 있는 곳에 도착하면 거기부터 세마를 놓아 타고 가도록 하고.”

영록이 다급히 말했다.

“네 말대로 도깨비들과 언제 다시 마주칠지 모를 일이야. 전에 그 누나가 이쪽으로 좀 더 가다 보면 율도 대사관이 나온다고 했어. 차라리 율도 대사관으로 들어가서 무사들에게 보호받으면서 안전하게 백화로 가는 게 더 낫지 않겠어?”

그의 말에 정국은 잠시 예린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그래, 우리끼리 백화로 가나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백화로 가나, 우리가 마루한과 태상국의 비급을 찾아 돌아온 건 변함없는 사실이니까...... 가뜩이나 도깨비들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 불안한데 우리끼리 가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대사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예린도 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일단 대사관으로 가자. 영록이랑 아빠 책 있으니까 돌아가서 엄마 아빠한테 좀 덜 혼나겠지.”

세 사람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남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오전 10시, 누리마루 남쪽 숲 대월국 성산번 무사단 야전 군영

진채연이 한동안 감옥 너머를 관찰한 결과, 현재 군영 안에는 기껏해야 십여 명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은 듯 했다. 그마저도 나이가 많거나 몸이 불편한 자들인 것 같았다.

근처에 있는 도깨비들이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밤새 수색하고 돌아온 놈들까지 다 깨워서 어디를 그리도 급히 달려간 건가? 비호대 놈들, 잠도 안 재우고 고생시킨다며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던데.”

“마루한이 어디 있는지 알았다나 봐. 그러니 성산백 각하까지 모두 출동한 거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이제 야전 군영을 옮겨야 할 때도 되었는데 이렇게 다 나가 버리면 어쩌자는 건지......”

“군영을 옮겨야 한다니, 그건 또 뭔 말인가?”

“자네 그 얘기 못 들었어? 율도의 무사들도 이곳에서 수십 리 밖에 안 떨어진 곳에서 지금 한창 마루한을 찾고 있다더군. 우리가 누리마루에 들어온 걸 율도 놈들에게 들키면 안 되지 않나? 원래 그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오늘 점심 전에 이곳에서 더 남쪽에 있는 곳으로 야전 군영을 옮기려 했는데, 아마 마루한 때문에 군영 옮기는 것도 뒤로 미루고 모두 다 나간 모양이야.”

그 이야기에 진채연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마루한이라면, 혹시 예린과 황자님이 데려간 바로 그 소년을 말하는 건가? 그 소년이 마루한이었다고? 내 말에 태웠던 바로 그 소년이? 설마......’

그녀는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하기야, 그때 도깨비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그 소년을 넘기라고 한 건 아닐 테지. 그렇게 악착같이 소년을 쫓아간 걸 보면...... 그리고 이곳 가까이에 우리 율도 무사들도 있단 말이지?’

진채연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임시 감옥은 나무로 만든 울타리처럼 사방으로 나무 창살이 둘러쳐져 있을 뿐, 천정이 붙어 있지는 않은 구조였다.

도깨비들은 진채연이 그 정도 높이는 손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실력의 무사라는 걸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구천락이 그녀에 대해 누구에게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침 감옥 주변을 감시하는 도깨비가 화장실이라도 가는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진채연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검지를 입술에 대고 감옥 안의 여자들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반디와 다른 여자들은 진채연이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몰라 불안한 눈으로 그녀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표범같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감옥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반디는 몰론 여자들 모두 놀라 크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간단하게 감옥을 탈출한 진채연은 천막 사이에 숨어 첫 번째 표적을 물색했다.

마침 그녀 앞에 등을 돌리고 앉아 혼자서 아침밥을 먹고 있던 중년의 도깨비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밤, 반디를 끌고 나갔던 바로 그놈이었다.

진채연은 뒤꿈치를 들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인지라 발걸음 소리는 조금도 나지 않았다.

도깨비는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 듯, 묵밥을 후루룩거리며 게걸스럽게 처먹고 있었다.

그의 바로 등 뒤에까지 다가간 진채연은 아무 소리도 없이 도깨비의 목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컥......!”

진채연은 오른손 팔뚝으로 도깨비의 목을 조르고 왼손으로 그의 머리를 강하게 밀어젖혔다. 유술 기술 중 맨손조르기 (리어 네이키드 초크)였다. 도깨비는 숨이 막혀오는 고통에 새하얀 얼굴이 금방 시뻘겋게 변했다. 입안에 있던 밥알들이 튀어나오고 광대뼈 사이로 움푹 들어간 눈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 충혈되었다.

도깨비는 진채연의 팔을 붙잡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이내 팔다리에 힘이 풀린 채 그대로 혀를 길게 빼고 정신을 잃어버렸다.

“아, 더러워......”

진채연은 팔뚝에 묻은 밥풀들을 털어내고 도깨비 곁에 있던 창을 집어 들었다. 날카로운 삼각형 창날 아래 상대를 걸어 당길 수 있는 갈고리 하나가 붙어 있는 대월국 특유의 무기였다.

진채연은 창을 거꾸로 들고 쓰러져 있던 중년 도깨비의 목을 내리찍었다. 확인 사살이자 어젯밤 일에 대한 복수였다.

그녀는 상체를 숙이고 천막 사이를 돌아다니며 다음 표적을 찾기 시작했다. 군영 안에 있는 도깨비들을 혼자서 모두 처리하려는 것이었다.

불과 몇 분 만에 성산번 야전 군영에 남아 있던 십여 명의 도깨비들은 모두 진채연에 의해 소탕되었다. 그녀의 무예를 대적할만한 상대는 이곳 군영에 단 한 명도 없었다. 도깨비들 모두 1합도 부딪혀 보지 못한 채 그녀의 창에 목숨을 잃었다.

‘묵직한 맛에 휘두르는 월도도 좋지만, 가볍고 민첩하게 찌르는 창도 제법 재미있고 괜찮은데?’

그녀는 임시 감옥으로 돌아와 문을 열어주고 여자들을 풀어주었다.

“어서 다들 도망쳐요. 놈들은 남쪽을 향해 내려갔으니 그쪽은 피하고, 다들 살던 곳으로 안전히 돌아갈 수 있길 빌어요.”

여자들은 감옥에서 나와 눈물을 흘리며 진채연을 향해 연신 감사하다며 허리를 숙여 절을 했다.

황급히 군영을 도망가는 다른 여자들과 달리, 그녀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반디였다.

“왜 안 가요?”

진채연이 의아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반디는 진채연에게 다가와 두 손으로 그녀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리고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나, 갈 데가 없어요......”

“원래 살던 곳이 있잖아요? 그곳에 계신 어머니한테 돌아 가아죠.”

“내 가족 모두...... 그날 도깨비들한테 다 죽었어요. 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봤자 더 이상 있을 데도 없어요......”

반디는 진채연의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다. 진채연은 그런 반디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럼, 여기서 날 좀 도와줄래요?”

반디는 눈물을 삼키며 기쁜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진채연은 반디에게 나무와 옷감 등 불에 잘 타는 땔감들을 모아 가져오게 했다. 그동안 그녀는 도깨비들의 천막 두 개를 헐고 도깨비들이 갑옷이나 무기 손질할 때 쓰는 기름을 찾아서 그 위에 흠뻑 뿌리기 시작했다.

반디가 땔감을 가져오자 두 사람은 그것들을 천막 자리 위에 올려놓고 마찬가지로 무기 손질 기름을 듬뿍 뿌렸다.

준비가 다 되자 진채연이 근처 화로에 있던 불씨로 횃불을 만들어 가지고 왔다. 반디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언니, 뭐 하시려구요?”

진채연은 땔감 위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나는 원래 율도군 무사에요. 이제 이 근처에 있는 율도 무사들을 이리로 부를 거예요. 부디 이 신호를 도깨비들보다 우리 무사들이 먼저 보고 달려와 줘야 하는데......”

“그럼 제가 더 도와 드릴 일은 없나요?”

그녀의 말에 진채연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부디 율도 무사들이 한시라도 빠르게 이리로 달려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두 곳의 천막과 땔감들에 불이 붙었다. 기름을 잔뜩 뿌린 덕에 짙은 검은 연기가 숲의 나무들 너머 저 높은 하늘 위로 거세게 솟구쳤다.

­ 오전 11시, 누리마루 남쪽 숲, 대월국 성산번 무사단 야전 군영으로부터 북쪽으로 20리 떨어진 지점

최기와 율도 대사관에서 나온 무사들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마루한을 찾기 위해 넓디넓은 누리마루 남쪽 숲을 뒤지며 수색을 벌이고 있었다.

허기는 말안장에 비상 전투 식량으로 가지고 다니는 육포와 미숫가루로 간단히 때우고, 잠도 하루 두세 시간 잠시 눈 붙이고 일어나는 게 전부였다. 군마들도 마초가 아닌 숲속에 아무렇게 난 들풀을 뜯어 먹고 개울물로 목을 축이며 쉼 없이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대사관으로 전령을 보내 마루한이 납치된 사실을 알린 상태였다. 대사관에서는 율도 행정부에 이 사실을 보고하는 한편, 누리마루와 가장 가까운 초원길을 담당하는 율도군 5군단에도 지원 요청을 보냈다. 아마 지금쯤 누리마루를 향해 율도군들이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최기는 지원 병력들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 무사의 자존심이 이를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반드시 자신들의 손으로 잃어버린 마루한을 되찾고 말겠다는 무사로서의 오기가 그의 육신을 지탱하고 있었다.

“앗, 저기를 보십시오!”

앞서서 말을 달리던 무사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저 멀리 검은 연기가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연기는 나란히 두 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를 본 최기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저것이 만일 봉화라면, 적 발견 신호 아닌가?”

율도의 봉화 신호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졌다. 평상시 특이 사항이 없을 경우 봉화대의 연기나 불빛은 하나, 적 출현 또는 적 발견시 둘, 적이 접근해 오면 셋, 적이 국경 또는 아군 지역으로 넘어와 위기가 고조되면 넷, 적과 교전이 시작되면 다섯 개의 연기나 불빛으로 이를 알리는 것이다.

“이 숲에서 저렇게 티 나게 연기를 만들어낸다는 건 분명 누군가가 보내는 신호임이 틀림없다! 명적 (소리 나는 화살)을 쏘아 올려라! 수색 중인 전 중대를 이곳으로 집결시킬 것이다!”

최기의 명에 따라 곁에 있던 무사가 하늘 위로 명적을 쏘아 올렸다.

휘이이이이익!

피리 소리처럼 날카로운 명적 소리가 숲 일대에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얼마 있지 않아 사방에서 거친 말발굽 소리가 최기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검은 갑주의 율도 무사들이었다.

­ 오전 12시, 누리마루 남쪽 숲 대월국 성산번 무사단 야전 군영

진채연과 반디는 혹시라도 불길과 연기가 사그라질까 봐 땔감들을 끊임없이 가져와 불 위에 쌓고 그 위에 무기 손질 기름을 있는 대로 뿌렸다. 그녀들의 노력 덕분에 두 개의 검은 연기 기둥은 쉬지 않고 하늘 위로 계속 솟아올랐다.

진채연은 죽은 도깨비의 바지를 빼앗아 입고 있었다. 다 큰 처녀가 언제까지 허연 다리와 엉덩이를 훤히 드러내놓고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잠시 후, 어디선가 우직한 말발굽 소리가 대지를 울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소리는 북쪽으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와 주었구나......!”

진채연은 크게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북쪽을 바라보았다. 반디는 말발굽 소리에 두려웠는지 진채연의 등 뒤에 숨어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을 곁눈질로 훔쳐보고 있었다.

이윽고 천지를 진동하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광이 나지 않는 칠흑빛 철갑으로 온몸을 감싼 율도 무사들이 도깨비들의 군영으로 말을 치달려 들어왔다. 일부 무사들은 말에서 뛰어 내려 활과 총을 겨눈 채로 군영 일대 천막 하나하나를 빠르게 뒤지며 남아 있는 이들이 없는지 수색하기 시작했다.

무사들이 군영 일대를 점거하는 사이, 최기와 몇몇 무사들이 불길 앞에 서 있는 진채연과 반디에게 다가왔다. 무사들은 도깨비의 저고리를 입고 도깨비들의 창을 들고 있는 한자손 여인을 기이하게 여기며 조심스레 다가왔다. 하지만 무사들의 자존심인지, 그녀들을 향해 무기를 빼 들지는 않았다.

“그대들이 연기 신호를 보낸 분들이오?”

최기가 진채연에게 물었다. 진채연은 최기의 갑주의 복식과 부대 문장을 보고 그가 대사관 주재무관임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왼손으로 창을 잡은 상태로 오른손을 올려 최기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대원수부 백영단 소속 진채연 대위입니다.”

“대원수부 백영단이라면 백화에서 태상국과 태상국 가족 분들의 경호를 담당하는 부대 아닌가? 아니, 백영단 소속 무사가 어찌 이곳 누리마루에 있는 겐가? 그리고 이 군영은 대체 뭐고?”

진채연은 최기에게 영부인의 지시로 영애 예린과 주나라 황자 정국을 찾으러 왔다가 도깨비들의 기습을 받아 대월국 도깨비들에게 붙잡혔던 일과 그 사이 예린과 정국이 마루한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던 일, 그리고 이곳은 마루한을 납치하기 위해 누리마루로 들어온 대월국 도깨비들의 군영이며 그들은 지금 모두 마루한을 뒤쫓기 위해 청림촌 남쪽을 향해 나가 있다는 것까지 소상히 설명을 해 주었다.

그녀의 설명을 들은 최기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그럼 여기서 더 지체할 여유가 없겠군. 어서 빨리 청림촌 남쪽으로 이동해서 마루한은 물론 영애와 황자님을 찾아 도깨비들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게 급선무일 테니.”

율도국 무사들이 군영에 남아 있던 도깨비들의 말 한 필을 진채연에게 가져다주었다.

“지금 그대의 무장이 마땅치 않으니 적과 조우하게 되면 잠시 뒤에 물러서 있으시게. 싸움은 우리들만으로도 충분할 테니.”

최기의 말에 진채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사가 적을 눈앞에 두고 뒤로 물러서는 것은 수치라 배웠습니다. 부디 그 말씀은 거두어 주십시오.”

진채연은 무사가 가져다준 말에 가볍게 뛰어올랐다. 그리고 반디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반디는 수줍어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의 뒤에 올라탔다.

“전 중대, 지금부터 청림촌 남쪽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가는 도중 보이는 무장한 도깨비들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사살하라! 그들에게 조금의 자비도 보이지마라! 모두 박살 내라!”

“모두 박살 내라!”

“모두 박살 내라!”

최기의 선창에 따라 모든 율도 무사들이 ‘모두 박살 내라!’라며 고함을 질렀다. 이는 율도군의 전투 구호였다. 다른 무사들과 함께, 진채연도 창을 높이 들며 ‘모두 박살 내라!’를 따라 목소리 높여 외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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