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대동력 9,993년 13월 3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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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4시, 누리마루 경월당
“일어나셨군요. 대동에 오신 새로운 마루한이시여. 어디 몸에 불편하신 곳은 없으십니까?”
영록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금 늑대처럼 생긴 커다란 짐승 한 마리가 사람처럼 옷을 입고 두 발로 서서 상큼하게 웃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며 우리말로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온 건가? 아님, 지옥......? 그럼 지금 저게 천사인가? 아무리 봐도 천사 같이 생기진 않았는데, 그럼 악마......?’
영록은 연신 두 눈을 껌벅이며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이 생명체’를 쳐다보았다.
영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 생명체’는 다소 당황한 듯 헛기침을 하고는, 그에게 다가오며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흠흠, 제 소개가 늦었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곳 누리마루 경월당을 책임지고 있는 은대명이라 합니다. 앞으로 저를 부르실 때는 ‘당접사’라고 부르소서.”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영록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 여기가 어디라구요?”
“이곳은 누리마루의 경월당입니다. 대동에 새로 오시는 마루한들을 맞이하기 위해 위대한 어머니 신, 미한께서 준비해 놓으신 곳입니다.”
말을 들을수록 영록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마루한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죠? 미한은 또 뭐고...... 여기 우리나라 맞나요? 여기 어디에요? 상아시? 수원시? 분명 동굴 속 물에 빠졌으니까 경월천으로 나왔을 거 같긴 한데......”
은대명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이곳은 대동입니다. 대동에 오신 마루한을 뵙는 건 처음인지라 저 역시 매우 기쁘고 흥분되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할지 막막하긴 합니다만...... 우선 마루한이란 바로 누리마루를 통해 이곳 대동에 오신 당신과 같은 분을 뜻하는 말이랍니다.”
그 말에 영록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강운예 관장님도 마루한이란 말인가요?”
은대명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율도 태상국 기하 존함을 알고 계시는군요? 그분께서는 마루한이란 표현을 듣기 싫어하셔서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부르고 있지는 않지만, 예, 그분께서도 당신과 같은 마루한이 맞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상국 기하께서는 몇 년 전부터 이곳 누리마루에 머무시면서 자신이 계시던 곳으로 돌아가는 방법에 관해 연구하셨었지요.”
영록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지금도 그분이 이곳에 계시단 말씀인가요?”
은대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태상국 기하께서는 몇 주 전 수하들 몇 명을 데리고 자신이 계시던 곳에 다녀오는 데 성공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태상국 기하께서는 대동으로 돌아오시자마자 그 즉시 이곳을 떠나셨지요. 그곳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당장 백화로 가져가서 연구해야 하신다면서요.”
그 말에 영록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은대명이 물었다.
“마루한께서는 율도 태상국을 어찌 알고 계시는지요? 계시던 곳에서부터 두 분이 알고 지내시던 사이십니까?”
영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분을 찾으려고 동굴 속 물에 뛰어들었는데 여기로 오게 되었네요. 일단 강운예 관장님이 여기 계신 건 알겠는데...... 여기가 대체 어디인지 도무지 잘 모르겠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영록의 우울한 목소리에, 은대명은 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루한이시여, 너무 걱정하지 마소서. 만일 태상국 기하와 만나보고 싶으시다면 저희가 율도 대사관에 통지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마루한께서는 아무런 염려 마십시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제 제가 마루한의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영록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영록이에요.”
“지영록...... 맑고 아름다운 이름이군요...... 저희가 곧 식사를 준비해 대령할 터이니 드시고 기운부터 차리소서.”
은대명은 영록에게 허리를 굽혀 공손히 절을 한 뒤, 조용히 방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은대명이 자신과 닮은 ‘이 생명체’들 몇 명과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영록이 앉아 있는 침대 위에 크고 널찍한 반상을 올려주었다.
반상 위에는 수십여 가지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그윽한 냄새만으로도 영록의 식욕을 자극할 정도였다.
전골이나 찜 요리부터 구이나 부침도 있었고, 고기와 야채 음식들이 다양하게 차려져 있었다.
다만, 그 모양과 생김새는 전에 영록이 먹던 것과 확실히 달라보였다.
‘그래도 젓가락이랑 수저 쓰는 건 똑같은데......?’
영록은 반상 위에 놓인 젓가락으로 갈비찜처럼 생긴 음식을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한 입 맛을 본 영록은 너무 맛있어 놀라 까무러칠 뻔 했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기가 막히게 맛있는 음식이었다.
영록의 표정을 살피던 은대명이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경월당의 주방장이 자기 살아 생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이곳에서 마루한께 자신이 만든 음식을 대접해 드리는 게 평생소원이라고 말해왔는데, 오늘 그 소원을 풀게 되었군요.”
“너, 너무 맛있어요! 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봐요!”
“그 말씀, 꼭 주방장에게 전해주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저희는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드소서.”
며칠 굶은 탓에 배가 많이 고팠는지, 영록은 반상 위의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영록이 음식들을 비울 때마다 무슨 코스 요리처럼 새 요리들이 계속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영록은 배 터지도록 꾸역꾸역 먹어대는데도 음식들이 모두 다 너무 맛있는 덕에 계속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가 모두 다 나온 듯, 반상 위의 그릇들이 모두 다 치워지고 정갈한 차와 맛있어 보이는 떡들이 들어왔다.
‘무슨 고급 한식집 후식 같네...... 떡도 무슨 바람떡처럼 생겼고......’
영록은 빵빵하게 부른 배를 두들기며 떡과 차를 즐기며 입가심을 했다.
“드시는 데 부족함은 없으셨는지요?”
은대명이 웃으며 물었다. 영록은 떡을 손에 든 채 손사래를 쳤다.
“부족함이라뇨? 그럴 리가요. 정말 잘 먹었습니다. 너무나 맛있었어요.”
은대명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루한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다행입니다. 그럼 식후 편히 쉬시고, 궁금한 게 있으시거나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주소서.”
은대명이 밖으로 나가려 하자 영록이 다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 지금 물어봐도 돼요?”
“네, 물론이지요. 말씀하소서.”
“저 근데 당접사님은...... 누구세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 이름은 은대명이라고 합니다. 이 곳 누리마루의 경월당을 책임지고 있는 당접사지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저...... 이 질문이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제 생각에...... 당접사님은 사람이 아니신 거 같은데 어떻게 사람처럼 말을 하시는 거죠?”
그 말에 은대명은 조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저도 사람 맞는데요? 사람이니 당연히 사람 말을 하지요.”
“사람...... 이시라구요? 아니, 저 그게 제 말은, 저랑 생긴 게 완전히 다르시고 또, 아무리 봐도 당접사님은 사람처럼 생기시지 않아서...... 그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당접사님처럼 생겼나요?”
그제야 은대명은 영록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루한께서 원래 사시던 곳에서는 저희 같은 이들이 없었나보군요. 하긴, 어떤 마루한도 자신이 살던 곳에 대해 자세히 말한 적이 없었으니, 우리 같은 대동 사람들이 그걸 알 턱이 없죠. 아무튼 저나 저처럼 생긴 이들 모두 ‘사람’들이 맞습니다. ‘대동의 사람’이지요. 저처럼 생긴 사람들을 보통 ‘다모랑’이라 부른답니다. 물론 마루한처럼 생긴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르게 생긴 사람들도 많이 있답니다. 옛날에는 마루한과 닮은 이들만을 가리켜 ‘사람’이라 부른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만, 현재는 대동에 사는 이들 모두를 똑같이 ‘사람’이라 부르고 있지요. 모두 똑같이 ‘사람’이라 불리게 되면서 그간에 있었던 종족 간의 차별들도 많이 사라지고,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은대명은 짐짓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모든 나라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영록은 그의 말이 완전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저 그럼, 저처럼 이곳에 넘어온 사람들을 마루한이라고 부르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미한, 위대한 어머니 신이란 말씀도 하셨는데, 그분은 누구시지요?”
“그분의 존함은 윤예진이십니다. 대동으로 넘어오신 최초의 마루한이시지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동력의 원년은 그분이 이곳에 오신 해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분은 대동에 있는 모든 것들의 이름을 지으시고 우리에게 문명을 전해주신 분이십니다. 또한, 여러 종족들의 조상들을 낳으신 분이시기도 하시죠.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위대한 어머니 신이라 부르고 있답니다. 지금 미한께서는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는 신시라는 곳에 계시답니다.”
영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윤예진이란 분이 이곳에 오신 해부터면...... 지금 여기가 몇 년도죠?”
“대동력 9,993년입니다.”
영록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말도 안 돼......! 아까 윤예진이란 분이 지금도 신시란 곳에 살아 계시다면서요? 그럼 사람이 9,993년 동안이나 살아 있었다는 말이에요?”
“그분은 사람이 아니라 마루한이시니까요. 다른 모든 대동의 생명체들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늙어가고 결국 소멸해갈지라도, 마루한은 결코 늙지 않고 영원한 삶을 살아갑니다.”
은대명을 손바닥으로 공손히 그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당신께서도 그러할 것입니다. 당신께서도 마루한이니까요.”
영록은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지금 자신이 무슨 몰래카메라 같은 장난에 속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마저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은대명은, 사람이 무슨 변장 같은 걸 했다고 보기는 힘들 정도로 지나치게 정교한 ‘짐승’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주변의 가구들이며 아까 먹은 음식들이며, 아무리 봐도 장난이라고 하기엔 퀄리티가 심하게 높았다.
그래도 1만년 가까이 살았다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나, 자신도 이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말이나, 그 어떤 말도 이성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었다.
영록은 복잡한 머릿속을 계속 정리하며 질문 거리를 찾았다.
“그럼...... 강운예 관장님도 마루한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아까 강운예 관장님은 왜 마루한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셨죠?”
“태상국 기하께서는 마루한이란 말은 곧 신이란 말과 같다고, 자신은 결코 신이라 불리고 싶지 않으시다며 공식 석상에서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공표하셨습니다. 그 덕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지요.”
“지금 그분은 백화라는 곳을 향해 떠나셨다고 했지요? 거기가 어디지요?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인가요?”
“백화는 율도 최고의 대도시이지요. 태상국 기하가 율도를 세울 때의 근거지가 된 곳이기도 합니다. 대동 최대의 상업 도시이고, 율도의 국립 국문관과 국무관, 국학관도 모두 그곳에 위치해 있지요. 또 대원수부와 수군 본부 등, 태상국 기하가 지휘하는 율도군 정예 군단들이 밀집해 있는 군사 요충지이기도 합니다. 만일 그곳으로 가시고자 한다면, 말을 타고 가도 족히 몇 주는 걸리실 겁니다.”
영록은 그 후로도 생각나는 대로 계속 질문을 했다.
하지만 물으면 물을수록 의문과 의심만 더 커질 뿐이었다.
오후 1시, 누리마루 경월당
영록은 식사를 마친 후 방 밖으로 나가보려 했다. 그러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다모랑이 당황해하며 황급히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마루한이시여, 그 복장은 잠옷입니다. 밖에 나가시려거든 잠시만 안에서 기다려 주소서. 저희가 가서 얼른 입으실 옷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하더니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들은 무슨 올림픽 육상 선수가 100m 달리기를 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뛰고 있었다.
영록은 다모랑이 가져다준 옷을 받아 입었다. 마치 개량 한복과 같은 느낌의 편하면서도 따뜻한 옷이었다. 옷감은 비단인 듯 너무나 부드러웠고, 눈부시게 빛나는 보석 같은 실들로 나무와 새와 같은 그림들이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었다.
영록이 건물 밖을 향해 걸어 나가자 두 명의 다모랑들이 마치 경호원처럼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그들의 허리에는 칼인 듯 보이는 기다란 물건을 차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간 영록은 탄성을 질렀다.
건물 뒤편으로 까마득히 높은 산이 보였다. 얼마나 높은지 산 중턱에 구름이 걸려 있고 그 꼭대기는 아예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 구름 너머 산꼭대기에서부터 굵은 폭포수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백두산 장백 폭포, 아니,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더 높은 것 같아! 엄청 나다!’
영록은 폭포의 위용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곁에 서 있던 다모랑이 손가락으로 폭포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루한께서 저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영록이 놀라 외쳤다.
“네? 제가 저 폭포에서 내려왔다구요?”
“네, 폭포에서 이 앞에 호수로 내려오신 마루한을 저희가 건져 이곳으로 모셔왔지요. 매일 밤낮 누리마루 폭포에서 내려오시는 마루한들이 있는가 지켜보고 있다가 마루한이 내려오시면 빨리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그 분들을 구해서 이곳 경월당으로 모셔오는 게 이곳 사람들의 주된 임무입니다.”
폭포 아래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산 중턱 호수의 물줄기들이 다시 산 아래로 흘러내려 가 대동 각지로 퍼져 흐르고 있었다.
그 호수 바로 앞에 지금 이 경월당이 세워져 있었다.
경월당은 호수 앞 넓은 부지 위에 수십여 채의 기와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영록이 알지 못하는 처음 보는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분명 다들 기와집처럼 생기긴 했지만 교과서에서 보던 완전한 한국식 전통 가옥의 모습은 아니었다. 중국식인거 같기도, 혹은 동남아시아나 일본 양식의 건축물 같기도 했고, 2층과 3층짜리 건물도 여러 개 있는 것이 판타지 게임이나 영화 속에 나오는 건물 같이 보이기도 했다.
건물 사이사이에는 수목이 가꾸어진 정원도 있었고, 작고 예쁜 연못도 있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서 그런지,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보이곤 했다. 조금 걸으니 손도 시렸다. 영록은 윗옷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영록이 신기한 눈으로 경월당 일대를 구경하고 다니는 동안, 영록을 본 다모랑들이 그를 향해 허리를 숙이고 공손하게 인사를 해왔다. 영록은 깜짝 놀라 그들을 향해 똑같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 마루한이시여......”
어떤 이는 그의 앞에 무릎 꿇고 머리 위로 손을 내밀기도 했다. 영록이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자, 뒤에서 그를 경호하며 따라오던 다모랑이 그에게 귓속말로,
“마루한께서 손을 한 번 잡아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라고 가르쳐 주었다.
영록은 그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마치 커다란 짐승의 발을 잡는 듯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들이 느껴졌다. 그러자 그의 발 앞에 무릎 꿇고 있던 다모랑은 크게 감격해 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경월당 내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영록은 아까 자신이 눈을 뜬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밖에 다녀와서 그런지 방안이 무척 따스하게 느껴졌다.
방안에는 별다른 난방기구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손으로 방바닥을 만져보니 따스한 열기가 느껴졌다. 이곳도 온돌 같은 방식으로 난방을 하는 것 같았다.
영록이 쉬기 위해 탁자 앞에 앉자, 다모랑들은 시원한 차와 마치 화과자처럼 생긴 여러 다과를 내어 왔다. 차의 향긋하고 달콤한 향기가 금세 방안 가득 퍼졌다.
영록은 그들이 가져다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 모든 게 분명 꿈은 아닌 것 같아. 당연히 누가 지금 날 놀리려고 이러는 것도 아닐 것이고. 지금 이게 모두 현실 같기는 한데...... 대체 이런 세상이 실제로 있다니, 이걸 어떻게 믿어야 하는 거지?’
시원한 차의 맛이 머리까지 상쾌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내 목표는 그분을 찾아서 내가 강해질 수 있도록 가르침을 받는 거잖아? 그럼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뭐가 어떻든 무슨 상관이겠어? 여기가 어디는 빨리 강운예 관장님을 찾아 강해지자. 지금 이 순간에도 유민이는...... 지금 어디서 무슨 고생을 하고 있는지 모르잖아?’
갑자기 일월촌 조폭들의 은신처에 있던 유민이의 모습들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괜시리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태하 말로는 강운예 관장님은 체육관을 하시다가 10여 년 전에 갑자기 실종되셨다고 했었지? 그런데 그분은 자기 입으로 200여년 만이라는 처음, 이라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하셨어. 그럼 여기서 200년 넘게 사셨다는 말씀이었을까? 아까 그 윤예진이란 분도 여기서 1만년 가까이 살았다니까 강운예 관장님도 여기서 200년 넘게 살았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건 아닌데...... 분명 실종되신지 10년 정도 되셨을 텐데 어떻게 200여년이 지났다는 거지? 그건 정말 이해가 안 되는데.......’
영록이 홀짝거리며 어느새 차를 다 마시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모랑이 그의 빈 잔에 차를 더 따라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영록이 말하자 다모랑은 마치 큰 은혜라도 입은 사람처럼 감격하며 그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영록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이곳에서의 모든 것이 이해 안 되는 거 투성이지만, 어서 빨리 적응하려고 노력해보자. 어서 빨리 이곳에 적응하고, 어서 빨리 강운예 관장님도 찾고, 그리고...... 어서 빨리 강해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어서 빨리 유민이를 구하러 가자. 오직 이것만 생각하고 계속 방법을 찾아보자. 유민이가 했던 말대로, 계속 방법을 찾다 보면 결국 찾을 수 있을 거야. 분명히 그럴 수 있을 거야. 난 믿어.’
영록은 결연한 눈빛으로 가득 담긴 찻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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