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50화 (50/217)

〈 50화 〉 2028년 3월 5일 (2)

* * *

­ 오전 4시, 경기도 우성시 일월동

유민이 또 다시 임신했다는 사실에 조폭들은 한바탕 소란을 벌였다.

그러면서 박광은 또다시 임신한 사실에 절망해 화장실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유민을 거실로 끌고 나와 마구 뺨을 때리며,

“야 이 썅년아! 너 임신시킨 새끼가 누구야? 넌 씨발, 니 보지에 생으로 박고 질내사정하는데도 좋다고 헥헥거리며 가만 있었어? 그 새끼 누구야? 이번에 너 임신시킨 새끼 누구냐고, 씨발?”

하고 다그쳤다. 하지만 유민은 아무 말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엉엉 울 뿐이었다.

“그만혀~ 하루에도 수십번씩 다리 벌리는 년이 그걸 어떻게 일일이 기억햐? 됐어, 이미 엎지러진 물이여!”

전도한은 유민을 마구 때리는 박광을 간신히 말리고 소파에 앉혔다.

잠시 후,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힌 박광은

“이미 임신했으니 뭐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뭐 그럼...... 저번처럼 저년하고 노콘으로 질싸나 마음껏 하지 뭐.”

라더니,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조폭들도 그를 따라 킬킬거렸다.

그놈들은 그녀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조금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럼 뭐 술기운도 얼큰하니 달아올랐으니 지금부터 밤일 시작해야겠지? 아까 박광이 너 두 번이나 했으니께, 지금은 내가 일빠따로 이년한테 노콘 질싸 할겨. 이의 없지?”

전도한이 거실 바닥에 주저 앉아 울고 있는 유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웃었다.

“아, 씨발, 이럴 줄 알았으면...... 알았다, 알았다~ 니 먼저 해라. 근데 노콘으로 할 거면 꼭 한발 싸고 꼭 씻겨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여기서 죄다 병 걸리면 보건소도 못 가고 다같이 뒈질 수 있으니 다들 조심하고.”

조폭들이 킬킬거리며 네, 하고 대답했다.

전도한은 유민의 발목에 걸쳐 있는 팬티를 벗겨 영록이 있는 쪽으로 휙, 집어 던지더니, 울고 있는 그녀를 거실 좌측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거실 소파에 앉은 박광은 이번엔 운용 엄마를 옆에 끼고 그녀의 커다란 가슴을 주물럭거리며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 씨발, 저년하고 노콘 질싸는 내가 일빠로 했었어야 하는건데......”

그러다 옆에 앉아 있는 마선욱을 무섭게 쳐다보며 물었다.

“근데 진짜 이번에도 선욱 조카가 임신시킨 거 아냐? 저번에 저년 처음 임신한 것도 선욱 조카가 도한이한테 넘기기 전에 저년 꽐라로 만든 상태에서 질싸해서 임신한 거였다며?”

마선욱은 양손을 휘젓고 고개까지 도리도리 저으며 강하게 부인했다.

“이번엔 저 진짜 아니에요! 엄창 걸 수 있다니까요?! 제가 그 뒤로 얼마나 조심했는데요. 할 때마다 맨날 장갑 꼭 끼고 얼마나 안전하게 했는데~! 어쨌든 이번엔 저 진짜 아니에요, 믿어주세요!”

그 말을 들은 영록은 도끼눈을 하고 마선욱을 노려보았다.

‘그럼, 유민이를 처음 임신시키고 낙태까지 하게 만들었던게 바로......!’

영록은 머리속으로 마선욱을 어떻게 죽여야 할지 갖은 잔인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총으로 쏘고, 칼로 찌르고, 망치로 머리를 때려 죽여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중 지금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악......! 아......! 아아악......!”

방 안으로 끌려 들어간 유민은 아까보다 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잠시 후, 전도한이 유민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유민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그의 손을 잡고 밖으로 따라 나왔다.

전도한은 영록에게 보라는 듯이 그의 앞에서 유민을 세워놓고 다리를 벌리게 했다.

유민은 수치스러움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하얗고 진한 정액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킬킬거리며 유민을 데리고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쏴아, 샤워기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유민은 새벽까지 계속 조폭들에 의해 범해졌다.

놈들은 유민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강간하고, 화장실로 데려가 씻긴 다음 다음 놈에게 그녀를 넘겨주었다.

마선욱도 박광에 이어 세번째로 유민을 범했다.

“씨발 놈아, 죽기 전에 니가 좋아하는 년 따먹히는 거 실컷 구경이나 해라!”

그는 유민을 방으로 데려가지 않고 거실에 묶여 있는 영록 앞에 무릎 꿇고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유민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뒤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음...... 음...... 아......!”

아무리 막아보려 해도, 마선욱의 몸이 유민의 엉덩이에 부딪힐 때마다 그녀의 입에서는 계속 신음 소리가 세어 나오고 있었다.

마선욱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씨발, 개같은 년, 니년도 좋지? 이렇게 소꿉친구 앞에서 생으로 박히고 질싸당하니까 좆나 좋지, 씨발년아?”

영록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유민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영록은 그 모습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기 자신이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었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내가 유민이를 구할 수 있을 만큼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유민이 저런 짓을 당하지 않을만큼 지켜줄 수 있을 정도로 강했더라면......! 그런데 난 뭐야, 난 그동안 뭐하고 있었던 거냐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가 자기 눈 앞에서 처참한 꼴을 당하는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청테이프가 붙여진 그의 입안에서 우우, 우우, 울부짖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마선욱이 유민의 엉덩이에서 몸을 빼었을 때,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하얀 정액들이 품, 품, 소리를 내며 흘러나왔다. 마선욱을 킬킬 잔인하게 웃으며 유민의 엉덩이를 돌려 영록의 얼굴 앞으로 들이밀었다.

그렇게 악몽같은 시간이 계속되었다.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조폭들이 모두 잠이 들었다. 거실에서 영록을 감시하는 놈들도 많이 피곤했는지 코를 골며 곯아 떨어져 있었다.

영록은 조심스레 몸을 움직여 탁자 위에 있는 파인애플 통조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가 등을 돌려 묶인 손으로 더듬더듬 탁자 위의 통조림을 집어 들려고 할 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손으로 잡았다.

“헉!”

영록은 조폭들에게 걸린 줄 알고 깜짝 놀라 하마터면 비명이 터져 나올 뻔했다.

그가 돌아보았을 때, 알몸의 운용 엄마가 손가락을 입에 대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그의 등뒤에 묶인 청테이프를 풀어주기 시작했다.

손이 자유로워지자 다른 곳에 묶인 청테이프를 푸는 건 간단했다. 운용 엄마는 영록의 몸에 묶인 모든 청테이프를 뜯어내고 그가 입고 온 옷을 건네주며 판잣집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어서 여기서 도망가. 가서 내 아들 운용이한테도 멀리 도망가라고 하고...... 다시 여기 돌아오지 말라고 전해줘.”

운용 엄마는 울면서 그의 등을 떠밀어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살금살금 판잣집 문을 닫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영록은 부리나케 옷을 주워 입고 일월촌 입구가 있는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쯤 달렸을까,

‘잠깐, 이렇게 도망가면 안되잖아! 유민이를 구해서 가야지!’

그는 다시 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판잣집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조용히 판잣집 안으로 다시 돌아온 영록은 거실에 널부러져 자고 있는 조폭들을 지나 소파 뒤에 있는 장롱으로 향했다.

‘우선 유민이부터 구하고, 여기 모두 다 죽여버리자. 마선욱도, 유민이를 고문했다는 그 배 나온 놈도, 모두 다 총으로 쏴 죽여버리자!’

어린 영록의 눈에 살기가 가득해 보였다.

장롱 안에는 M­16A1 네 정과 탄창들이 가득 든 탄동이 들어있었다. 영록이 애국 청년 십자군 때 받은 적이 있던 것과 같은 모델이었다. 그는 탄통에서 탄창 하나를 꺼내 총에 결합했다.

총을 들고 방으로 가려는 찰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나머지 총을 놔두고 가면 다른 누군가가 이걸 들고 나를 쏠 수 도 있잖아?’

영록은 장롱 안의 총 세 정도 함께 어깨에 짊어졌다.

영록은 조용히 유민이 있는 거실 좌측 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총을 쥔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방안은 불이 꺼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영록은 총 세 정을 문 옆에 세워놓았다.

그리고 문을 잠그고, 방안의 불을 켜 보았다.

방안에는 넓은 이불이 펼쳐져 있었다.

그 위에 두 명의 조폭이 벌거벗은 채로 유민을 끌어안고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그들은 마지막에 가서야 유민과 관계했던 조무래기 조폭들이었다.

이불은 온통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흘러내린 하얀 정액들로 축축하고 끈적거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도 눈물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잠드는 순간까지 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를 본 영록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영록은 유민의 가슴 위에 올려져 있던 조폭의 손을 발로 걷어 찼다.

“어헉, 뭐, 뭐야!”

조폭이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그 순간, 그의 얼굴 앞에 총구가 들이밀어졌다.

“소리지르지마! 조용히 해!”

그 소리에 옆에 있던 조폭도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조폭들은 총을 들고 있는 영록은 보고 기겁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조폭들이 몸을 일으키자 영록은 그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철컥!

방아쇠는 당겨지지 않았다. 영록은 자신의 손가락 힘이 약해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는 줄 알고 손가락을 더 힘껏 당겨 보았다.

하지만 총은 발사되지 않았다.

영록이 총도 쏘지 못하고 낑낑거리는 걸 본 조폭들이 영록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총을 빼앗고 주먹으로 그를 때리기 시작했다.

“이런 씨발 개새끼가 어따 대고 총을 쏘려고 해? 돌았냐, 이 개새끼야?”

조폭들은 영록이 진짜로 자신들을 죽이려 한 것을 깨닫고 그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영록은 입술이 터지고 코에서 코피가 흘렀다.

영록이 가지고 온 총은 고장 났거나 영록의 손가락 힘이 없어서 총이 발사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영록이 너무 흥분한 상태였기에, M­16A1은 운반손잡이 아래 노리쇠를 당겨서 탄을 장전시키고 사격을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을 맞고 있던 영록은 점점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안 돼......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고! 여기서 유민이를 구해서 나가야 하잖아? 이 나쁜 놈들 어서 빨리 다 죽여버려야 하잖아?! 유민이가 앞에 있는데, 바로 앞에 있는데! 여기서 내가 쓰러지면 안 된다고!’

순간, 이전 ‘모두를 위한 격투 무예’에서 본 내용들이 떠올랐다.

[여러 사람에게 공격당하고 있고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는 상황이라면, 적을 유인해 되도록 1:1로 싸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영록은 조폭들의 주먹세례를 피해 방구석으로 쪼르르 도망갔다. 그는 거친 숨을 헐떡이며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조폭들을 노려보았다.

그의 머릿속에 책에 있던 다른 내용들이 계속 기억났다.

[일반적인 길거리 싸움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강한 쪽 손으로 먼저 공격하게 된다. 훈련된 복서나 격투기 선수처럼 약한 손을 잘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인류의 대부분은 오른손잡이다. 길거리 싸움에서 우선적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상대의 오른손이다.]

영록은 조폭의 오른손을 노려보았다. 지금까지 맞을 때에도, 조폭들은 모두 오른손으로만 자신을 때렸지, 왼손은 거의 쓰지 않았던 것 같았다.

[상대의 주먹을 피하려 한다면, 상대보다 키가 작은 경우 복싱의 더킹이나 위빙처럼 몸을 낮추면서 피하는 것이 유리하다. 반대로 상대보다 키가 큰 경우라면 자세를 낮추기보다 복싱의 스웨이 동작처럼 허리를 뒤로 젖히거나 백스텝으로 한 발 뒤로 물러나는 것이 훨씬 피하기 쉬워진다.]

“야, 이 새끼야, 어딜 도망가!”

조폭이 벽에 서 있는 영록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오른손 주먹이 영록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영록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무릎과 허리를 앞으로 숙였다.

조폭의 주먹이 영록의 머리 위를 붕, 하고 스치고 지나갔다.

[힘이 절대적으로 약한 사람이 강한 상대에게 위협 받는 순간이라면, 상대의 급소를 적극적으로 노려야만 한다. 인체에는 단 한 대의 타격만으로도 다른 부위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게 하거나 심지어 무력화시킬 수도 있는 부분이 여럿 있다. 그러한 부분을 우리는 급소라 부른다...... 인체의 급소 중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부분은 바로 남자의 낭심이다...... 낭심은 어떠한 형태의 공격이든 상대에게 큰 고통을 주게 된다.]

자세를 낮추고 있던 영록이 몸을 일으키며 손바닥으로 조폭의 낭심을 올려쳤다.

“끄아아아아아악~!”

조폭은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부여잡고 돼지 멱따는 소리로 꿱꿱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서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조폭은 황당하다는 듯이 영록을 노려보았다.

“이 쬐깐한 새끼가 죽고 싶어 환장했냐?”

다른 조폭이 영록에게 달려들었다.

[힘이 절대적으로 약한 사람이 강한 상대에게 위협 받는 순간, 그것이 자신의 목숨이나 주변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극히 위험한 상황이라면, 자신을 살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주변에서 무기가 될 만한 물건들을 적극 활용해서 맞서 싸우는 일은 정당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단, 상대에게 보복하고자 하거나 감정에 치우쳐 무력을 과하게 사용하여 상대에게 해를 입히게 된다면, 자신도 나라가 정한 법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영록은 그의 손을 요리조리 피해 M­16A1 소총이 떨어진 곳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소총을 다시 집어 들었다.

“뭐? 총 들고 뭐 어쩌려고? 병신 새끼, 너 총 쏠 줄도 모르지? 쏴 봐, 쏴 보라고, 이 병신 새끼야!”

조폭은 아까 영록이 총을 쏘지 못한 걸 기억하고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영록은 오른손으로 빠르게 노리쇠를 잡아 당겼다.

철컥

탄이 약실 안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조종간을 당기고 총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했다.

그리고 조폭의 얼굴을 정면으로 조준했다.

“그래, 쏴볼게.”

다다다다당!

영록의 얼굴에 피가 튀었다.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게 구멍이 숭숭 뚫려버린 조폭의 얼굴에서 붉은 피와 허연 뇌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총에 맞은 조폭의 몸뚱이가 바닥에 쿵, 하고 쓰러졌다.

영록에게 낭심을 맞고 바닥을 굴러다니던 조폭은 이걸 보고 까무러칠 듯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히, 히익~!”

그는 숨넘어가는 소리를 지르며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 나가려 했다. 영록은 즉시 그의 등에 대고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다.

다다다다당!

조폭의 몸뚱이가 붉은 피를 뿜어내며 문 앞에 쓰러졌다.

방 안 가득히 조폭들이 흘린 핏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영록이 갑자기 총을 바닥에 툭, 내려놓으며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유민을 구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끝없는 절망감이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결국, 사람을 죽여버렸구나...... 어차피 나쁜 놈들 다 죽여버리려 하긴 했지만...... 난 그럼 이제 살인자가 된 건가......? 그럼 유민이를 구하려고 경찰서에 전화해도...... 나도 살인자로 감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된 건가? 성폭행범에 살인범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 건가.......? 이제 나는 평생 성폭행범에 살인범으로 살게 되는 건가......?’

완전 패닉에 빠진 영록은 그 자리에서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눈앞은 온통 까맣게 되고, 머릿속은 백지처럼 하얗게 되어 버리는 기분이었다.

밖에서 조폭들이 소리 지르는 것이 들려왔다. 방안에서 싸우는 소리, 총쏘는 소리에 모두 놀라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철컥 철컥

누군가 방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거칠게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잠긴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한동안 멍하니 있던 영록에게 누군가 다가와 손을 잡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야, 지영록......”

그제야 영록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유민이 그의 앞에 주저앉아 그의 손을 붙잡고 눈물 흘리고 있었다.

“유민아......”

“야, 지영록...... 어쩌려고 이랬어...... 너 앞으로 어쩌려고 이런 거야.......”

유민은 울고 있었다. 영록은 자신도 모르게 목이 멨다.

“너 계속 여기 있으면 안 되잖아. 너 구해서 여기서 데리고 가려고...... 그러려고 그랬어.......”

“왜...... 왜 니가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데..... 너 나중에 잘 못 되면 어쩌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유민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영록은 이불을 끌어와 유민의 벗은 몸에 덮어주었다.

“우리, 오랫동안 친구였잖아? 같은 반인 적도 많았고...... 그동안 유민이 니가 나쁜 애들로부터 날 지켜준 적도 여러 번 있었잖아? 그래서...... 이제 내가 널 도와줄 차례인 거 같아서......”

유민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영록을 바라보며 이불 밖으로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붙들었다.

“너 어쩌려고 그래...... 넌 저 사람들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지 몰라. 그리고...... 나 도망가도 제대로 살 수 없어. 내가 여기서 도망가면...... 저 사람들 내 동영상 인터넷에 풀거라 했어, 그러면 나 그러면......”

영록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걱정마. 나한테 방법이 있어.”

유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방법? 무슨 방법?”

“내가 저 놈들, 싹 다 죽이고 여기서 너 데리고 도망 갈 거야. 저것들 다 죽이고, 저놈들이 가지고 있는 동영상 다 지우고 가면 돼. 이 총 있으니까 이제 아무 걱정하지마. 지금부터는 내가 널 지켜줄께.”

그 말에, 유민은 영록의 손을 붙잡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 영록아, 그 때....... 경찰서 앞에서 니 말 안 들으려 한거 미안해....... 내가 그 때 질못했어....... 니 말 들었어야 했던건데, 내가 잘못했어...... 그래서 내가 벌 받은 건가봐....... 미안해....... 영록아 미안해.......”

쾅! 쾅!

갑자기 문 밖에서 시끄러운 고함 소리, 문을 발로 걷어차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영록은 부리나케 M­16A1 소총을 집어 들고 문 쪽을 겨누고 섰다. 유민은 불안한 눈으로 영록의 등 뒤에 숨었다.

꽈직!

나무 부서지는 소리와 문이 부서졌다.

“유민아, 귀 막아!”

영록은 이렇게 소리치며 문을 향해 총을 총을 갈겼다.

다다다다당!

부서진 문틈 사이로 조폭들이 혼비백산해서 문 멀찍이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아, 씨발, 저 새끼가?!”

“야, 총! 총 다 어딨어?!”

“장롱 안에 총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저 새끼가 다 가지고 들어간 모양입니다!”

“씨발! 총소리 듣고 짭새들 달려 오는 거 어냐?!”

조폭들의 당황한 목소리가 방 안 까지 들려왔다.

영록이 유민의 손을 잡고 말했다.

“유민아,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저 나쁜 놈들 모두 죽여버리고 올 테니까. 그리고 나랑 같이 여기서 도망가자.”

영록은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조폭들은 소파, 장롱 뒤, 아니면 다른 방 문 뒤에 몸을 숨기고 겁에 질린 눈으로 유민의 방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거실 한 가운데 박광과 마선욱이 서 있었다.

하지만 영록은 바로 총을 쏠 수 없었다.

그들이 손에 식칼을 든 채, 임신한 운용 엄마를 방패 삼아 세워놓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운용 엄마는 왜 도망가지 않았냐는 듯, 원망하는 표정으로 영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씨발, 유민이 저년 데리고 나갈 거면 지금 당장 꺼져!”

박광이 운용 엄마 어깨 너머로 빼꼼히 영록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그냥은 안가. 니들 다 죽이고 갈 거야.”

마선욱은 헛웃음 소리를 내며 말했다.

“우릴 다 죽여? 하하하, 왜? 우리가 무슨 죽을죄를 지었길레?”

“.......유민이한테 한 짓만으로 니들 다 죽어도 마땅해! 오늘 내가 니들 다 죽여버릴 거야!”

“아~ 유민이 오늘 임신한 거 때문에? 아니면 전에도 한번 임신했다고 낙태하고 이번에 또 임신한 것 때문에 그러는 거야? 왜, 너는 못 따먹어본 그 년 보지, 우리가 졸라 따먹고 임신까지 시킨 게 그렇게 배알이 꼴렸냐, 이 개새끼야? 우리가 그년을 강제로 강간이라도 했다는 거야, 뭐야? 야, 착각하지 마. 너도 아까 다 봐서 알잖아? 저 년이 좋아해서 우리한테 보지 벌려준 거라고! 씨발, 우리가 박아줄 때마다 저년이 얼마나 좋아했냐? 아주 그냥 미쳐서 입으로는 하악하악 대고 밑으로 질질 싸고...... 너도 그 꼴을 다 봐놓고 무슨.......”

영록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그는 방아쇠를 당기며 소리 질렀다.

“유민이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이 개자식아!”

철컥 철컥

마선욱은 영록이 총을 쏘는 줄 알고 운용 엄마 뒤로 몸을 숨겼다. 다른 조폭들도 놀라 잽싸게 바닥으로 몸을 엎드렸다.

하지만 총은 발사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노리쇠를 당기지 않아 총이 안 나간 게 아니었다.

경황이 없어서 확인하지 못했는데, 이미 그의 총은 노리쇠가 뒤로 재껴진 상태로 탄피배출구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탄창이 다 비어버린 것이다.

뒤늦게 이를 깨달은 영록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뭐, 뭐야? 총알 없어?”

운용 엄마 등 뒤에 숨어 있던 마선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록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씨발, 이 개새끼가 어디 빈총 가지고 까불어!”

마선욱이 씩씩거리며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방안에 있던 유민이 밖으로 뛰쳐 나와 그의 손에 있던 소총을 낚아채 앞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총을 거꾸로 쥐고 개머리판으로 마선욱의 머리 옆쪽을 힘껏 내리쳤다.

“끄악!”

마선욱은 머리를 감싸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뭐해? 도망쳐!”

유민은 영록의 손을 잡고 다시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숨어 있던 조폭들이 그걸 보고 밖으로 달려나왔다. 박광도 운용 엄마를 밀치고 앞으로 달려왔다.

“야, 저 새끼 잡아!”

방으로 들어간 유민은 황급히 영록을 창문 쪽으로 밀었다.

“너 혼자 빨리 도망가! 얼른! 내가 오래 막지는 못 할 거야. 그 사이 최대한 멀리 도망가! 빨리! 빨리 도망가라고!”

유민은 그의 등을 떠밀며 재촉했다.

“야, 저 새끼 창문으로 도망친다! 어서 잡아!”

조폭들은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영록이 창문으로 뛰어내리려고 하자 소리를 지르며 쫓아왔다.

그들 앞을 유민이 막아섰다.

“유민아......”

영록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창문 아래로 뛰어내렸다.

­ 오전 5시, 경기도 우성시 경월천 인근

정처 없이 무작정 도망가던 영록은 경월천 근처의 야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영록을 잡기 위해 7명의 조폭들이 총까지 들고 그의 뒤를 쫓아왔다. 총은 가지고 있었지만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총소리를 들을까, 다행히 영록을 향해 쏘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직 3월인지라, 해는 아직 떠오르지 않은 상태였다.

한참을 앞만 보고 도망가던 영록의 앞에, 능선을 가로질러 쫓아온 조폭 2명이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이 개새끼...... 넌 이제 죽었어.”

조폭들이 영록을 향해 다가왔다. 영록은 당황해 뒤로 돌아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언제 달려왔는지, 5명의 조폭들이 그를 에워싸고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 씹새끼야. 어차피 죽일 거였지만 여기다 묻어줄 줄 몰랐다 이 개새끼야.”

“우리 동생 둘이나 보내버렸지? 이젠 너도 우리 동생들 따라 저승길 따라 갈 거다.”

영록의 등에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이제 죽는 걸까? 사람 살려 달라고 소리라도 쳐 볼까?’

하지만 소리 지르는 즉시 조폭들이 총을 쏴버릴 수도 있었다.

조폭들은 점점 영록을 향해 다가왔다.

그들 중 한 명이 영록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니 새끼도 우리 동생들처럼 몸에 총구멍 가득 내줄게. 마지막 할 말은 없냐? 유민이 그 개년한테 전할 말이라도 있으면 한 번 씨부려 봐.”

유민의 이름에, 영록은 이를 악물었다.

“니들이 유민이 한테 한 짓...... 반드시 천벌 받을 거야.”

조폭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대한민국 형법 형벌 조항 중에 천벌이란 벌은 없어, 이 병신아. 우리가 아무리 죄를 많이 지었어도, 천벌은 판사가 내릴 수 없어서 못 받아. 그러니까, 천벌은 하늘나라 가서 너나 많이 받아, 이 새끼야.”

조폭이 영록의 머리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영록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정말 끝인가......? 유민아...... 제발 넌 거기서 도망쳐서 살아남아야 해, 제발.......’

그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잠깐, 실례 좀 합시다. 거기 그쪽들, 지금 들고 있는 게 진짜 총 맞습니까?”

상냥한 말투의 남자 목소리였다. 그리 크지 않았지만 너무나 또렷했고 사방이 울리는 듯한 느낌마저 주는 목소리였다.

조폭들은 갑작스런 사람의 출현에 당황한 듯 뒤를 돌아보았다.

영록도 눈을 떠 목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5m 정도 떨어진 곳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분명 처음 본 사람이었는데, 영록은 그 남자가 매우 낯이 익은 것처럼 느껴졌다.

‘모두를 위한 격투 무예’ 책을 펼 때마다 책 표지 뒤편 저자 소개란에서 본, 바로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