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46화 (46/217)

〈 46화 〉 2028년 3월 4일 (1)

* * *

해가 바뀌고 2028년 2월 2일, 제주 남방 해역(동중국해)을 항해하던 한국 국적의 무역선이 일본 해군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

일본은 한국 무역선이 7광구 일대의 일본 영해를 무단으로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훗날 밝혀진 바에 의하면, 당시 한국 무역선은 기존의 무역 항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지점을 항해하고 있었다.

일본 해군은 한국 무역선을 향해 어뢰를 발사했다. 무역선이 어뢰에 피격당하면서 당시 배에 타고 있던 선원 46명 중 43명이 사망했다. 살아남은 3명은 일본 해군에 사로잡혀 일본 본토로 끌려가 범죄자 취급을 당했다.

이 사건 직후, 한국 정부는 당연히 일본 측의 사과와 배상, 생존자들의 국내 귀한을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은 또다시 무시로 일관했다.

2월 21일, 대통령과 합참의 지시를 받은 국군정보사령부 UDU의 모든 팀들이 해상을 통해 일제히 일본으로 침투했다. UDU 전체 팀들을 이끄는 현장 지휘관은 장주영이었다.

잠수함을 통해 일본 해안으로 은밀히 상륙하는데 성공한 장주영은 본부에 다음과 같은 무전을 보냈다.

“전원 침투 완료, 이제 곧 일본은 석기 시대로 되돌아 갈 것이다.”

2월 27일, 김창수 대통령은 천안 독립 기념관에서 특별 기자 회견을 열었다. 서울이 아닌 충청남도 천안, 그것도 독립 기념관에서 열린 이 날의 기자회견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알만한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내외신 기자들이 가득 모인 자리에서, 김창수 대통령은 일본을 향해 선전포고했다.

“대한민국 정부와 우리 국민들은 그간의 2차 한국 전쟁에 대한 무단 개입, 독도와 7광구에 대한 영토 침략, 국제법을 무시한 경제 보복, 항로 봉쇄 조치 등 이루 말로 다 형언하기조차 힘든 일본의 만행들을 참고 인내해 왔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번 달 20일, 일본 정부에 위에서 말씀 드린 모든 사항들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 독도와 7광구 등 한국 영토의 무조건적인 반환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지금 이 순간까지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상대국의 최후통첩을 무시하는 처사가 국제 관례상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일본 정부는 이미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장내가 술렁이는 가운데, 김창수 대통령은 기자들을 여유롭게 둘러보았다. 그 중에는 일본의 언론인들도 배석해 있었다. 대통령은 일본 기자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일본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 드립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군은 무고한 일본 국민들이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72시간의 여유를 드릴 것입니다. 일본 국민들은 그 시간 내에 모두 안전한 곳을 찾아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72시간 이후에는 도쿄, 오사카 등 일본 주요 도시와 육해공군 군사 시설이 있는 지역은 모두 한국군에 의해 파멸적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해 일본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는 바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분노의 찬 눈빛에, 일본 기자들은 주눅이 들어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의 선전포고가 있은 직후, 일본 언론들은 군사 전문가들을 초빙해 특별 방송을 긴급 편성해 내보내기 시작했다.

‘과연 한국군이 일본을 공격할 능력이 있는가?’

라는 주제의 방송이었다.

패널로 초대된 어느 군사 전문가는 이 질문에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지난 2차 한국 전쟁에서 보여준 것처럼 한국군은 아시아 최강의 육군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공군과 해군의 전력은 우리 일본에 미치지 못합니다. 한국이 섣불리 일본 본토에 상륙하려 하다가는 쓰시마해협(대한해협)을 넘어오기도 전에 모두 물고기 밥으로 변하게 될 겁니다. 아무리 강한 육군이 있다 하더라도 바다를 건너오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없는 거 아닙니까?”

어느 정도 군사 상식을 갖추고 있던 아나운서가 군사전문가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한국은 현무 시리즈 등 일본의 모든 지역을 공략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장거리 미사일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군이 가진 미사일들이 우리 일본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을까요?”

군사전문가는 가소롭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한국은 지난 2차 한국 전쟁에서 국산 미사일들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어요. 국운이 달린 전쟁에서조차 자신들이 개발한 국산 미사일들을 쓰지 않은 이유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본인들도 국산 미사일의 성능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 아니겠습니까? 행여 한국이 우리 열도를 향해 미사일 공격을 한다 하더라도 이미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와 맞먹는 수준으로 발전한 우리 방공망을 뚫어낼 순 없을 겁니다! X밴드 레이더부터 AN/TPY­2 사드 레이더, 해상에는 공고급, 아타고급 이지스 함들에다가 공중의 조기경보기들까지, 한국이 발사하는 미사일은 모두 부처님 손바닥 안에 손오공일 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부처님 손바닥 안에 손오공]

방송에 출연한 군사 전문가의 말은 그날 일본 주요 일간지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방송에서 나온 이야기를 믿고 대부분 안심하는 분위기였다.

일본에 침투해 있던 장주영과 UDU 대원들도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이야기에 모두들 재미있다는 듯 배를 잡고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 병신 원숭이 새끼들....... 우리가 국산 미사일을 못 믿어서 안 쓴 줄 아나? 북한군한테 구지 미사일을 많이 쓸 필요가 없었으니까 안 쓴 거지? 그리고 일본 방공망이 엄청 오밀조밀하게 잘 짜여 있어서 날아오는 미사일들 잘 잡아낼 수 있는 건 인정하겠는데, 과연 우리가 날리는 미사일들을 모두 막아낼 만큼의 요격 미사일들이 너희한테 있을까?”

일본 관동 지역 통합 레이더 기지 인근까지 침투해 공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장주영과 UDU 대원들은 슬슬 장비를 챙겨 작전을 준비했다.

김창수 대통령이 말한 72시간이 모두 지나고, 합참에서 정한 D­day 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2028년 3월 1일 00시,

일본의 방공 레이더에 한반도 전역에서 엄청난 양의 미사일들이 발사된 것이 포착되었다. 초고도 탄도 미사일부터 중장거리 급으로 보이는 중형 미사일까지,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들이 열도를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적 미사일 탐지! 모두 합쳐...... 250여기가 넘습니다!”

레이더를 통해 미사일들이 스크린을 꽉 채울 만큼 무수히 날아오는 것을 확인한 일본군들은 모두 겁에 질려 무전에 대고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처음부터 생각보다 많은 미사일들이 날아오자 일본 군부도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지스함의 SAM­3, SAM­6, 지상의 PAC­3가 일본을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들을 요격하기 위해 일제히 발사되었다. 일본 MD(미사일 방어 체제) 교리에 따라 1개의 표적 당 3발의 미사일들이 날아올랐다.

일본의 요격 미사일이 발사된 순간, 일본 방공 레이더에 또 한 무리의 미사일들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앞선 미사일들보다 더 빠르고, 더 많은 수의 미사일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한국 미사일 2파가 옵니다! 그 수는 모두...... 300여기입니다!”

“바보 같은 소리! 대체 한국이 얼마나 많은 미사일을 가지고 있다는 거냐? 250여 발을 쏘고 나서 바로 300여 발을 또 쏠 수 있다고? 그게 말이 되나?”

“그래도 지금 레이더에 미사일들이...... 잠깐, 한반도에서 또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끊임없이 날아오르는 미사일들을 보고, 일본 군부는 점점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장주영의 UDU 대원들이 작전 시작에 앞서 무장을 점검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일본 관동 지역 통합 레이더 기지를 점령할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최초의 미사일들은 버리는 셈 치고 옛날 구형 미사일들 죄다 소모한 거고, 2번째랑 3번째 미사일들은 스커드, 대포동 같이 북한에서 노획한 미사일들 발사한 거고...... 이 정도 날렸으면 일본이 가지고 있던 요격 미사일들은 모두 바닥났을 거 같은데요? 그렇죠?”

장주영은 총에 탄창을 결합하며 선임부사관에게 물었다. 선임부사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지스함이든 지상 포대든 남아 있는 미사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지금부터 우리 현무 미사일들이 주요 목표들을 때릴 준비를 하고 있겠군요.”

“오늘 합참에서 현무­4도 날린다고 했죠?”

“아마 그럴 겁니다. 정밀 타격은 현무­3가, 지역 타격은 현무­4가 날아오겠죠.”

“나도 최근에 안 건데, 우리나라 미사일이 이렇게 발전한 게 다 러시아 덕분 이었다면서요? 러시아가 모라토리엄 선언하고 우리나라에 진 빚을 무기하고 군사 기술 이전해주는 걸로 갚기로 했는데, 그 때 러시아에서 받은 미사일 기술 덕분에 지금 이렇게 일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장주영은 잠시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했다.

“전에 우리가 우성시에서 했던 말처럼, 이제 일본을 때려 부술 시간이 되었네요. 시작하시죠.”

선임부사관이 UDU 대원들을 정렬시켰다. 장주영은 작전 시작 전 훈시를 시작했다.

“이제 우리 군의 미사일들이 주요 목표들을 파괴하면 곧 공군기들이 일본 전역을 폭격하러 출발할 거다. 미리 말한 것처럼 우리는 그 전에 이 곳 통합 레이더 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고 빠르게 철수할 거다. 여기만 부셔놓으면 일본 조기 경보기들이 우리 전투기들을 먼저 찾아내도 쉽게 요격하기는 힘들어질 거야. 매번 작전할 때마다 내가 조용히, 은밀히 하라고 강조하곤 했는데, 오늘은 그럴 필요 없다. 시끄럽고 소란스러워도 되니까, 눈에 보이는 쪽바리들은 모조리 모가지 따버려.”

UDU 대원들 모두 노리쇠를 전진시키고 일본 통합 레이더 기지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일본에 침투해 있던 한국 UDU 대원들과 일부 국군정보사 요원들에 의해, 일본 전역의 레이더 기지들이 동시에 기습당했다.

징병제가 실시된 이후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했던 대부분의 일본군들은 인간의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혹독한 훈련들과 실제 전쟁까지 모두 경험한 한국 특수부대원들의 전투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UDU 등 한국 특수부대원들에 의해 모조리 전멸당했고, 일본이 자랑하던 방공망은 순식간에 파괴되었다.

그와 동시에 일본 이지스함과 각지의 공군 기지에도 한국군의 미사일들이 날아들었다.

앞선 미사일을 요격하느라 사용 가능한 미사일들을 모두 소모한 일본의 이지스함들은 함선에 탑재된 Mk.15 팰렁스 Block.1B 기관포로 최후까지 저항해 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아타고급 호위함 등 일본이 가진 다수의 주력 이지스함들은 한국의 현무­3 순항미사일에 피격되어 그대로 바다에 가라앉아 버렸다.

일본 공군도 전쟁 시작과 동시에 큰 피해를 당해 버렸다. 일본에 침투해 있던 국군정보사 요원들의 정밀 유도를 받은 미사일들이 공군기 격납고를 정확히 파괴해버렸다. 그와 함께 탄도 중량이 2톤에 달하는 현무­4 미사일이 일본 공군 기지의 활주로를 강타했다. 이제 일본에 남아 있는 제대로 된 활주로는 민간 공항만이 남게 되었다.

3월 1일 새벽이 되자 F­35, F­15K, KF­1 등 한국 공군 전투기들이 일본을 향해 일제히 이륙했다. 한국 공군기들은 대한 해협에서 공중 급유까지 받으며 쉴 새 없이 일본 본토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일본 전역은 말 그대로 불바다가 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부산에서 대기하고 있던 해병대들이 마린온 헬기에 탑승해 쓰시마 섬을 향해 날아갔다.

육군의 일본 본토 상륙 전, 쓰시마는 중간 보급 거점으로 삼기 위해 반드시 점령해야 하는 곳이었다.

쓰시마 섬에는 일본 수륙기동단 1개 대대가 방어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한국 해병대에 의해 5시간 만에 모두 전멸되고 말았다.

쓰시마 섬이 점령되자 한국군은 일본 본토에 주력군을 상륙시킬 준비를 시작했다. 북한 지역에 대기하고 있던 제 7기동군단이 유라시아 대륙 최강의 기갑 전력을 모두 이끌고 부산을 향해 남하하고 있었다.

3월 3일, 얼마 전까지 해상 자위대 호위대군이라 불리던 일본 해군이 한국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함선들과 경항공모함을 모아 한국 동해안으로 기동했다. 포항, 울산 등 한국 주요 공업지대를 폭격해 반격하려는 모양이었다.

일본 해군의 움직임을 파악한 한국 해군 7기동전단이 동해에서 일본 해군을 막아서며 치열한 해전을 시작했다.

이 해전으로 한일 양측 모두 수척의 함선을 잃으며 큰 피해를 입었다. 교전이 한창이던 도중, 한국 공군기들이 7기동전단을 지원하기 위해 날아오자 일본 해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일본 영해 쪽으로 퇴각해 버렸다.

한일 양국 중 그 어느 쪽도 승리했다고 보기 힘든 해전이었다.

하지만, 일본 해군 함선들이 동해안으로 북상하던 사이 한국 공군이 일본 해군 기지 대부분을 폭격해 초토화해버림으로써, 일본 해군 함선들은 귀항할 곳을 잃고 망망대해를 떠돌 수밖에 없게 되었다.

­ 오후 5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학교

2차 한국전쟁이 끝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또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2차 한국전쟁 초기 때처럼 뉴스에서는 한국군의 승전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었다.

‘저번에도 처음에 우리나라가 엄청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서울에 화학탄 떨어지고 우성시 점령당하고 나중에 엄청 고생했었지...... 전쟁은 절대 한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돼.’

매 시간 좋은 소식들만 이어지는데도, 영록은 뉴스를 보며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영록은 여전히 성부 학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성부 학교의 전쟁고아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시에 학자금과 생활비까지 모두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영록은 아직 진로나 대학 같은 건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또래 아이들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딱히 하고 싶은 게 아직 없었던 탓이다.

또 성부 학교에서 생활하는 것도 이제는 너무 익숙해지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사는 것도 딱히 큰 불편함은 없었고, 삼시 세끼 식사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마두원의 사업 법인이 모두 취소되며 원래 이곳 학생들은 모두 떠나고 영록과 같은 전쟁고아 아이들만 남아 있게 되었기 때문에, 문제아, 양아치들과 섞여 지내다가 괴롭힘을 당할 우려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일단 계속 여기서 고등학교까지 마쳐보자. 고3이 되면 어느 대학에 갈지, 어떤 전공을 하고 싶은지 찾을 수 있겠지.’

영록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영록은 성부 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하며 지난번 서점에서 사 온 강운예의 ‘모두를 위한 격투 무예’ 책을 틈틈이 보고 따라 하고 있었다.

책은 운동이나 무술 같은 것을 전혀 해보지 않은 사람이 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여 있었다. 영록은 책의 사진과 글을 보고 동작들을 허공에 혼자서 연습하곤 했다.

하지만 혼자서 연습하는 건 역시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연습해도 혼자서만 하다 보니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이렇게 하면 정말 상대 공격을 피하고 때릴 수 있는 건지, 내 공격이 정말 위력이 있는 건지 정확히 알기는 힘들었다.

특히 그래플링 같은 기술은 누군가와 직접 붙잡고 연습해야 하는데, 혼자서만 연습하려니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한번은 기숙사 방에서 혼자 연습하다가 옆방의 친구가 복도를 지나가다가 영록이 방안에서 혼자 낑낑거리는 걸 보는 바람에 엄청 쪽팔렸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무예 연습은 혼자 해도 지루하지 않고 꽤 흥미로운 편이었다.

책에는 무예 기술 뿐 아니라 운동 전 몸을 푸는 워밍업과 스트레칭, 근육 단련 방법까지 자세히 나와 있었다. 영록은 책에 나와 있는 데로,

운동 전 워밍업 ­ 운동 전 스트레칭 ­ 기술 훈련 ­ 근육 단련 ­ 운동 후 스트레칭 ­ 명상

이렇게 순서에 따라 연습을 계속해 보았다.

워밍업 때에는 밖에 나가 가볍게 달리기도 해보고, 학교에 있는 줄넘기를 가지고 뛰어보기도 했다. 근육 훈련 때에는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턱걸이, 스쿼트 등 체력 측정 때나 하던 운동들도 매일 조금씩 해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팔굽혀펴기와 턱걸이는 단 한개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나고 나자 팔굽혀펴기는 최대 20개까지, 턱걸이는 3개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냥 책을 보고 따라하는 건데도 땀도 많이 나고 몸에 조금씩 근육도 붙는 것 같고 운동 효과도 좋은 것 같았다.

영록은 매주 한 가지 기술을 숙달하겠다고 마음먹고 매일 매일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유민아...... 넌 지금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는 거니? 나중에 너랑 다시 만났을 때, 그 때는 내가 반드시 성모 형보다 더 강하고 멋지게 변해 있을게.’

유민은 해가 지났어도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 겨울, 기다리다 못한 영록이 성부 학교 선생님들에게 유민을 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들이 군과 경찰을 찾아가 수소문해봤지만 그녀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감옥에 들어가 있는 애국 청년 십자군들 명단에는 유민의 이름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경찰들은 유민이에 대한 실종 신고를 접수 받고 계속 찾아보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틈틈이 학교와 영록에게 연락해 유민이 학교에 돌아왔는지, 유민이에 대한 소식 들은 것은 없는지 확인 전화를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사이 한일 전쟁이 일어나고 다시 바빠졌는지, 요새는 경찰로부터 통 연락이 오지 않고 있었다.

또 한 번 전쟁이 일어났지만 전국 모든 학교들은 그대로 학사 일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은 이번 한일 전쟁의 불똥이 한반도에까지 튀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 예측하고 있었다.

참고서나 문제집 등 사야 할 학습서들이 더 늘어나고 있었다. 이번 주에 사야 할 학습서만 두 권이나 되었다. 영록은 수업이 끝난 후 시내 서점에 나가기 위해 기숙사 방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매달 정부에서 나오는 지원금들은 학습서를 사는데 모두 다 들어가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떡볶이를 사 먹거나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 먹는 것조차 영록에게는 큰 사치였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딱 만 원만 더 주었으면...... 아...... 이렇게 바라는 것도 너무 욕심인가?’

영록은 학교 밖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사 먹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 오후 6시, 경기도 우성시 일대

학습서를 사고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려 하니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탓인지, 3월의 저녁 바람은 여전히 뼈가 시리도록 쌀쌀했다.

학교까지 가려면 아직 15분 정도 더 걸어가야 했다. 영록은 외투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학교를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맞은편에서 한 소년이 걸오오고 있었다.

운용이었다. 그는 양손에 통조림이며 냉동식품 등 생필품들이 잔뜩 든 비닐봉지를 들고 어디론가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운용아!”

영록이 반가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 소리에 운용은 깜짝 놀란 얼굴로 그를 올려다 봤다.

“아, 형......!”

“웬 물건들을 이렇게나 많이 사가? 엄마 돌아오셨어?”

“응, 아, 아니, 그런게 아니라.......”

운용은 제대로 말을 못하고 우물쭈물거리고 있었다.

“집에 가는 길이야? 무거워 보이는데, 형이 집까지 들어줄까?”

손을 뻗자 운용은 짐을 든 손을 뒤로 빼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아, 아니, 괜찮아요, 혼자 들고 갈 수 있어요. 안녕히 가세요.”

운용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황급히 달아나 버렸다.

‘왜 저래? 그냥 도와주려 한 것뿐인데? 쟤 원래 저렇게 이상한 애였나?’

영록은 그의 의아하다는 듯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오후 7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학교

기숙사로 돌아온 영록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 돌아오니, 책상 위에 두고 간 핸드폰에 문자 하나가 와 있었다.

아까 만났던 운용이가 보낸 것이었다.

[형, 아까 죄송했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

영록은 고개를 갸윳거렸다.

‘뭘 도와달라는 거지? 설마 아까 그 많던 짐들 정리하는 거 도와달라는 거 아냐?’

영록은 조심스레 통화버튼을 눌렀다.

영록은 운용이 문자로 보낸 주소를 보고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다행히 그의 집은 학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운용의 집은 몇 달째 제대로 치우지도 않고 청소도 하지 않았는지 지저분하고 퀴퀴한 냄새까지 났다.

현관문을 열어줄 때부터 운용은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영록이 거실 소파에 앉자 그는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형, 어떻게 해요, 나......”

운용은 울먹이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영록은 그 얘기를 듣고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럼, 마선욱이 너희 엄마를 지금까지 여기저기 끌고 다니다가, 지금은 일월촌에 숨어 살고 있다고? 너네 엄마도 일월촌에 붙잡혀 있는거고?”

“네, 맞아요......”

“마선욱도 감옥 간 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그런데 왜 니가 그 나쁜 놈 먹을 걸 사다 날라야 하는 거야? 니네 엄마 어디 있는지도 알았잖아? 그냥 경찰에 신고하면 되는 거 아냐? 왜 바보같이 그놈 심부름이나 하고 있었던 거야?”

운용은 한참을 울며 아무 말 하지 못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엄마 때문에요.”

“응? 그게 무슨 말이니?”

“......엄마가,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고 했어요.”

“뭐???”

영록은 황당하다는 듯 운용을 바라보았다.

“아니, 왜 경찰에 신고를 하지 말래? 그게 말이 돼? 너네 엄마 마선욱 그 놈한테 강제로 붙잡혀 있는 거 아냐? 거기서 풀려나려면 경찰에 신고하기만 하면 되는데, 왜 하지 말라는 거니?”

“그게...... 엄마가....... 다 어른들의 사정이란 게 있다고....... 그래서 하지 말래요.......”

“어른들의 사정?”

영록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그 말을 전하는 운용도 그 뜻을 다 이해하고 말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운용이 말을 이었다.

“또...... 이건 말하면 안되는데...... 우리 엄마...... 지금...... 배에 아기를 가지고 있데요.......”

“뭐?!”

“그래서 그 아저씨들이...... 엄마 잘 먹이고 싶으면 내가 열심히 음식 날라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형, 진짜 앞으로 어떻게 해요....... 우리 엄마 앞으로 어떻게 해요.......”

운용은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영록도 참담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를 다독이던 영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 ‘그 아저씨들’ 이라고 했잖아? 그럼, 거기 마선욱 말고도 또 누가 더 있는거야?”

“거기 그 형 말고도 덩치 크고 몸에 문신한 아저씨들이 열명 넘게 있어요. 그리고 형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누나 한명도 있었구요.”

“누나? 내 또래 정도 되는?”

별안간 등골이 싸해지고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긴 여자애니? 혹시 이 애 아니니?”

영록은 자신의 핸드폰에서 유민의 사진을 찾아 보여주었다.

“맞는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비슷한 생긴 거 같긴 해요. 그 누나 나온 영상이 있긴 한데......”

“영상?”

운용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나쁜 형이 보내준 영상들이 있어요. 막, 엄마하고 막...... 그런데 영상 중에 그 누나가 잠시 나오는 부분이 있었어요. 잠깐만요.”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마선욱이 보내준 SNS 동영상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살짝 보아도 아무것도 입지 않은 사람들의 누런 살만 보이는 영상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운용은 보여주기 부끄러운 듯, 동영상을 앞으로 빨리 감으며 무엇인가를 찾았다.

“응, 이 누나예요.”

운용이 화면을 정지시키고 영록에게 보여주었다.

“헉!”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왔다.

동영상 화면 속에는 헐벗은 운용 엄마가 마선욱의 품에 안겨 입을 맞추고 있었다. 마선욱은 그녀의 커다란 젖가슴을 거칠게 주무르는 중이었다.

그들의 뒤로 세 명의 조폭들이 나체의 여자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모습이 약간 변한 것 같았지만, 영록은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가 유민이라는 사실을.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