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2027년 8월 31일
* * *
오전 3시, 경기도 우성시 인근 서해 앞바다
인천광역시에서 날아 오른 8대의 육군 헬기들이 서해 바다를 건너 우성시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 중 KUH1 수리온 지휘 헬기에는 어깨에 다시 별 두개의 녹색 견장을 착용한 김요한 소장이 탑승해 있었다. 그의 옆자리에는 장군의 지휘봉이 놓여 있었다.
그는 헤드셋에 연결된 전술 전화기로 박현국 합참의장과 통화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다.
[......그동안 국군정보사와 비밀리에 작전을 추진해오느라 자네는 물론 다른 많은 지휘관들에게 자세한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네. 국방부나 청와대에서 계속 합참과 군사령관들을 감시하고 통화 내용까지 모두 감청하고 있어서 함부로 말 할 수도 없었고. 그 점, 이해해주게나.]
“전 괜찮습니다. 이제라도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래, 김 장군 자네도 이제 원래 자리로 돌아가 하던 일을 마저 해야지. 우성시로 돌아가면 그 쓰레기들 마음껏 다 치워버리시게. 반항하는 쓰레기들은 모조리 소각해버려도 좋아.]
“바라던 바입니다. 그 쓰레기들을 아주 깨끗하게 치워 버리겠습니다.”
김요한 소장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전 4시, 경기도 우성시 덕진 선착장
국군정보사에 의해 류광택 사후 북한 쿠데타 세력 대부분이 다시 김성운의 통제를 받고 있음이 확인되고, 개마고원 일대에서 지속되던 남북 양측의 전투 행동은 모두 중단되었다.
김성운은 한국군에 휴전 제의와 더불어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다. 그동안 개마고원에 고립되어 있던 쿠데타 세력, 호위사령부 병력 양측 모두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거기에 갖은 전염병까지 창궐해 매일같이 수백여 명의 비전투 손실이 발생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한국군은 김성운 측에 식량 제공은 물론, 의료진과 약품 지원까지 약속했다. 식량과 의료 물품을 실은 한국군 군용 차량들이 개마고원의 북한군 진영으로 향했다. 아사 직전에 전염병으로 신음하던 많은 북한군과 북한 인민들은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들어오는 한국군 차량을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따뜻이 맞이해 주었다. 얼마 전까지 전쟁을 벌였다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양국 군 사이에는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언론에서는 연일 이정만 전 대통령과 자유공화당이 벌여온 그간의 적폐들이 낱낱이 공개되고 있었다. 특히 언론들은 자신들이 당했던 언론 통제와 탄압 내용들을 소상히 보도했다.
이어서 우성시에서 벌어진 '애국 청년 십자군'이란 가면을 쓴 조폭들의 민주시민당 관련자 납치 / 구금 / 폭행 / 고문 / 불법 수사 / 협박에 의한 거짓 진술 강요 등의 범죄 행위에 대한 보도가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과거 7, 80년대 군사 정권에서나 이루어지던 일들이 이 시대에 재현되었음 알게 된 국민들은,
“도대체 이 정권이 공산주의 국가와 다른 게 뭐가 있나?”
라며 크게 분노했다.
언론에 의해 이번 ‘우성시 애국 청년 십자군 사건’의 주범은 자유공화당 마두원 의원이며, 그가 이정만 대통령의 사주로 조폭들을 우성시로 데리고 와 불법적인 납치와 고문을 자행했음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사람들을 고문한 이유가 민주시민당 김창수 대표에게 북한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씌우고자 거짓 자백을 받아내려 했다는 사실 역시 드러났다.
경찰과 검찰보다 먼저 기자들이 마두원 의원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서울에서 종적을 감춘 후였다.
전국 각지에서 촛불 집회가 계속 되었다. 이제 촛불 집회의 주된 구호는,
“고문 정권 물러나라! 자공당(자유공화당)은 해체하라!”
로 모아지고 있었다.
마두원의 가족들이 탄 검은색 승용차가 덕진 선착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정세가 어찌 돌아가는지 눈치 챈 마두원은 급히 일본으로 밀항할 준비를 해놓고 있었다. 그는 덕진 선착장에 준비시켜 놓은 배를 타기 위해 급히 차를 몰았다.
조수석에 탄 마선욱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어떻게든 밀항하는 배에 운용 엄마와 유민을 태우고 일본으로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우리 식구들 탈 자리도 부족한 판에 그깟 계집애들은 뭐 하러 데려가려고?”
하고, 아버지 마두원에게 꾸지람만 들은 탓이었다.
앞좌석의 마선욱이 아쉬움에 입맛을 쩍쩍거리고 있을 때, 뒷좌석에 타고 있던 마두원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마두원이 전화를 받았다.
“응, 나야. 무슨 일이야? ......뭐?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이 새끼야?”
통화음이 어찌나 큰지, 그의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차 안 가득 울렸다.
[형님, 여기 오지 마시고 어서 빨리 도망가셔야 합니다! 지난 번 경찰서에 쳐들어왔던 그 투 스타 있지 않습니까, 그 김요한인가 뭔가 하던 장군? 지금 여기 선착장에 그 양반이 헬리콥타에다가 군인들 좆나 끌고 와서 아주 그냥 난리가 났습니다!]
마두원이 급히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다. 마두원 가족이 탄 차는 지나가는 차량 한 대 없는 새벽 도로 한 가운데에 멀뚱히 멈춰 섰다.
김요한이란 이름을 들은 마두원의 표정은 흙빛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김요한 그 새끼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나? 그 새끼, 대통령 각하한테 모가지 짤려나간지가 언젠데?”
[모가지 짤렸는지 다시 붙었는지 그건 제가 잘 모르겠고, 어쨌든 그 양반이 김요한이가 맞는 건 확실합니다! 게다가 군인들까지 잔뜩 와가지고 선착장에 있던 우리 애들 죄다 잡아서 묶어가지고 군인 트럭에다가 그냥 막 실어 버리고 있습니다!]
“그럼 배는? 일본 가는 배는 어떻게 됐어?”
[지금 배도 모두 군인들이 싹 다 올라타서 뒤지고, 난리도 아주 보통 난리가 아닙니다! 우리도 여기 계속 있다가는 군인들한테 붙잡힐 판이라 오래 못 있을 거 같습니다! 형님, 바닷길은 틀린 거 같으니께, 일단 딴 데 숨어 계시면서 다른 길을 알아봐야 할 거 같습니다!]
마두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눈동자를 이리 저리 굴리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차 돌려...... 일단 우성 경찰서로 가자. 거기 애들더러 다들 차 준비해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해.”
마두원의 차량이 급히 유턴해서 우성시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선욱은 우성 경찰서로 간다는 말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아버지 몰래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오전 4시, 경기도 성남시 청계산 국군 통합 정보 상황실
북한 김성운이 휴전을 제의해 온 이후, 항상 밤낮으로 전시 비상 대기를 지속해오던 국군 통합 정보 상황실도 모처럼만에 평시 근무 태세로 전환되었다. 항상 수십 명이 북적거리던 상황실에는 이제 당직사령 1명과 당직부사관 2명, 상황병 4명만이 남아 있었다.
상황실의 대형 스크린에는 각 군에서 올라오는 보고에 따라 한반도 전역의 병력 배치 현황 및 전투 상황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었다.
2027년 8월 31일 오전 4시 기준으로, 한반도에서 병력이 이동 중이거나 전투가 진행되는 곳은 통합 정보 상황실 스크린에 단 한 곳도 표시되지 않고 있었다.
“그래, 시끄러운 전쟁보다 이렇게 조용한 평화가 더 좋은 거지. 응, 아무렴.”
금일 당직사령은 아무 일 없이 조용하기만 한 스크린을 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는 졸음을 깨기 위해 탕비실에서 스테인리스 컵에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타서 상황실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이제 전쟁 끝났으니까, 통합 상황실 운영비 남은 걸로 탕비실 정수기 좀 얼음 나오는 걸로 바꿔달라고 해야겠어요. 얼음이 안 나오니까 이 더운 여름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꿈도 못 꾸고 있잖아?”
“이제 곧 가을입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계절은 갔고 따끈한 믹스 커피의 계절이 왔지 말입니다. 커피는 막심, 달달한 막심 믹스 커피 아닙니까?”
당직부사관이 능청스레 너스레를 떨었다. 당직사령은 장난스럽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나같이 겨울에 얼어 죽는 한이 있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먹는 ‘아아파’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어.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계절은 사시사철 언제나 그대로에요. 예외적인 계절이란 있을 수 없어.”
“정수기 바꿀 돈 남아 있으면 그 돈으로 탕비실에 냉장고 하나 들여놓는 게 더 안 낫겠습니까?”
“정수기는 어차피 렌탈이라 한 달 운영비에서 2,3만원만 나가면 되지만, 냉장고 바꾸려면 암만 중고로 가져와도 한 번에 십여 만원 가까이 나가야 하잖아요? 짠돌이 행정보급관이 사주기나 하겠어요? 어디서 공짜로 얻어온다면 모를까, 냉장고는 무리야, 무리.”
두 사람이 잡담을 나누며 웃고 떠들고 있는 도중, 해군작전사령부로부터 긴급 보고가 수신되고 있었다. 책상에 턱을 궤고 꾸벅꾸벅 졸고 있던 상황병들이 눈을 비비며 수신된 내용들을 상황실 스크린에 입력했다. 순간, 상황병들은 잠이 싹 달아난 듯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당직사령님, 해작사(해군작전사령부)로부터의 보고입니다! 일본 해상자위대...... 아니, 일본 해군 함선 5척이 독도 방향으로 기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직사령은 너무 놀라 커피 잔을 쾅, 하고 내려놓고 스크린을 바라봤다.
스크린에는 독도 남동쪽으로부터 일본 함선들이 한국 영해를 침범해 북상하고 있는 모습이 표시되고 있었다.
“이런, 미친 쪽바리 새끼들이, 거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와? 지금 독도 근처에 우리 해군 함선이 있나? 공작사(공군작전사령부)도 지금 상황 알고 있고?”
“현재 동해에서 작전 중인 우리 함선은 없습니다. 공작사에는 지금 상황 전달 중입니다.”
“합참에도 긴급 상황 보고 올리고, 육군 측에도 지금 가용한 지대함 무기가 동해안 쪽에 있는가 확인해봐!”
“네!”
간만에 평화를 되찾은 듯 했던 통합 정보 상황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며칠 전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당직사령이 영내 방송으로 취침 중이던 모든 상황병들을 기상 시켰다.
[상황발생, 상황발생, 영내의 모든 병력들은 현 시간부로 근무 정위치, 영내의 모든 병력들은 현 시간부로 근무 정위치!]
당직사령이 영내방송을 하고 다시 스크린을 돌아 봤을 때, 상황병이 떨리는 목소리로 다급히 그를 불렀다.
“당직사령님, 지금 일본 해군이...... 동중국해 방향으로도 기동하는 함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함선들의 항로가...... 7광구에 있는 우리 해양 플랜트 방향입니다!”
“7광구?! 그쪽으로 기동하고 있는 일본 함선 수는 또 몇 대라고 하나?”
“해작사 보고로는 3대라고 합니다. 모두 헬기를 탑재한 구축함들로 판단된다고 합니다.”
당직사령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7광구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다량으로 매장되어 있어, 이전부터 한일양국이 이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곳이었다.
과거 한일 양국은 1974년 ‘한일 대륙붕 협정’을 맺고 7광구를 공동으로 개발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 측이 일방적으로 개발을 거부하면서 ‘공동 탐사가 아니라면 한일 중 한 국가가 단독으로 7광구를 개발할 수 없다.’는 협정의 조항으로 인해 그동안 한국은 이 7광구에 대해 제대로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7광구에 대한 ‘한일 대륙붕 협정’은 2028년 종료될 예정이었는데, 그러면 일본은 국제법상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더 가까운 것을 들어 7광구의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자 한국은 독도와 마찬가지로 7광구 곳곳에 해양 플랜트를 설치하고 경찰 병력들을 상주시키며 7광구 일대의 실효 지배권이 한국에 있음을 전 세계에 천명해 버렸다.
수십 년의 세월동안 7광구의 경제적 가치를 두고 군침을 흘리던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에 한국이 마치 자신의 영해를 빼앗아간 것처럼 제소했지만, 한국은 ‘과거로부터 7광구 일대의 영해는 단 한시도 우리의 바다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라며, 일본의 주장을 단호히 반박해 버렸다.
지금 일본은 오랫동안 분쟁을 벌여온 독도와 7광구 두 곳 모두를 동시에 습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것도 한반도 내에서의 전쟁이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틈을 이용해, 마치 남의 집에 몰래 들어오는 도둑처럼 한국의 영해를 침범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종전 단계였다고는 하지만 한국군의 인공위성,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등 주요 정보 자산들은 아직도 북위 38도 이북 지역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있었기에, 오늘과 같은 일본 해군의 기습적인 영해 침범을 보다 빠르게 확인할 수 없었다.
통합 정보 상황실 스크린에 독도와 7광구를 향해 점점 다가가는 일본의 함선들이 표시되고 있었다. 지금 당장 공군기를 출격시킨다 하더라도 일본 해군을 저지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잠시 후, 대구 비행장에서 독도를 향해 F15K 1개 편대가 긴급 발진했다. 몇 분 후, 광주 비행장에서도 7광구를 향해 KF1 1개 편대가 이륙했다.
공작사로부터 한국 공군기의 이륙 보고가 통합 정보 상황실로 들어왔을 때, 그와 동시에 독도와 7광구의 경찰들로부터 일본 해군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는 보고가 접수되었다.
그것은 독도와 7광구에 주둔하고 있던 경찰들이 보낸 마지막 보고였다.
오전 8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 경찰서
김요한 소장은 여동 톨게이트와 태화산 일대에서 붙잡아온 애국 청년 십자군들, 아니 마두원의 수하 조폭들을 모두 우성 경찰서 지하 2층 유치장에 가두게 했다.
바닷길을 통한 일본으로의 밀항에 실패한 마두원은 우성 경찰서에 있던 수하 조폭들과 함께 차를 몰고 우성시를 빠져 나가려 했다. 하지만 계엄군이 이미 도로란 도로는 모두 봉쇄하고 있었다.
수하 조폭들이 필사적으로 온 몸을 내던져 계엄군들을 막는 사이, 마두원은 몇몇 조폭들과 함께 태화산을 넘어 우성시를 빠져나갔다. 계엄군들은 태화산까지 쫓아가 수하 조폭 대부분을 붙잡았지만, 아쉽게도 마두원을 놓치고 말았다.
계엄군들은 케이블타이로 두 손이 묶인 조폭들을 경찰서 유치장으로 끌고 가 처넣었다.
얼마 전까지 무고한 사람들을 붙잡아 와 가두었던 바로 그 곳에, 이제 그 자신들이 갇히게 된 것이다.
끌려가는 도중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자가 있으면, 계엄군들은 그들을 총 개머리판으로 무자비하게 찍어버렸다. 계엄군 전체에 ‘조폭들에게 절대 인정사정 베풀지 마라’는 지시가 미리 하달되었기 때문이었다.
김요한 소장은 경찰서 정문에 서서 유치장으로 끌려가는 조폭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곁으로 계엄군 군사경찰대장이 다가와 보고 했다.
“입수한 애국 청년 십자군 명단과 대조했을 때, 현재 16명 정도 부족합니다.”
김요한 소장은 끌려가는 조폭들을 노려보며 무심히 대답했다.
“그 16명 사진이나 몽타주 확인해서 마두원 그 새끼하고 같이 수배령 내려. 반드시 한 놈도 빠짐없이 싹 다 잡아서 내 앞으로 끌고 올 수 있도록.”
“네, 알겠습니다!”
군사경찰대장이 보고를 마치고 돌아갔다.
그의 뒤로 김요한 소장을 대신해 계엄군을 이끌었던 부사단장이 와 있었다. 김요한 소장은 그를 보고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부사단장도 웃는 얼굴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단장님.”
“고생은 무슨, 나는 그냥 먹고 놀고 편히 있다가 왔을 뿐인데. 오히려 자네가 정말 고생이 많았지. 나를 대신해 빨치산들 완전히 박살내고 우성시까지 되찾지 않았나? 그 공로는 절대 잊지 않을 걸세.”
“사단장님이 미리 입안해 놓으신 작전 계획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었을 겁니다. 사단장님이 돌아오셨으니, 이제 제가 좀 쉴 수 있겠군요.”
두 사람은 기분 좋게 웃었다.
“아까 합참에서 상황 보고가 내려왔습니다. 오늘 새벽 일본 해군이 우리 독도와 7광구 해양 플랜트들을 모두 점령했다더군요.”
부사단장과 함께 우성 경찰서 일대를 거닐던 김요한 소장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쪽바리 새끼들이 기어이....... 평화 헌법을 개헌하자마자 바로 침략이라니, 역시 그 더러운 민족성이란 건 세월이 지나도 어디 안 가는가 보이.”
“국군정보사 측에서는 이미 얼마 전부터 일본이 곧 우리를 향해 이와 같은 군사적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고 미리 예견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일본은 이번 2차 한국전쟁을 통해 상공업 분야에서 전쟁 특수를 누리고 경제를 회생시키는 발판이 마련되길 원했는데,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걸 하나도 주지 않았으니 이제 우리에게 있는 걸 하나라도 더 빼앗아 갖겠다는 도둑 심보를 부릴 거라면서 말이죠.”
김요한 소장은 우습다는 듯,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일본은 여전히 우리를 아래로 보고 있었던 게야.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군사력도 모두, 자기들보다 한 수 아래라고 착각에 빠져 살고 있는 거지. 지금은 2027년인데, 일본 정치인들은 우리 한국을 아직 1990년대 정도 수준으로 밖에 인정하지 않고 있는 거 같아. 현재 한국과 일본의 실질적인 차이도 알지 못하고 있으니...... 감히 겁도 없이 우리를 상대로 선제공격을 하는 거지.”
“지금 이 전쟁이 끝나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서둘렀을지도 모르지요.”
“그럴 수도 있지. 아마 우리가 지금 이 2차 한국 전쟁을 벌이며 어느 정도 전력 손실을 입어 당장 자기네와 전쟁을 벌이기는 힘들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군. 만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일본의 정보 수집력이 형편없다는 뜻일 테지. 우리 군은 이번 전쟁을 오래 치르지도 않았고 전력과 장비의 손실도 거의 없어. 오히려 처치 곤란하던 구형 전력들을 깨끗하게 소비했고 신형 국산 무기들에 대한 실전 테스트들만 잘 마친 셈이지. 지금 우리가 대통령 유고 상태가 아니었고 깨끗하고 명석한 지도자가 이 나라에 대통령으로 있는 상황이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일본으로 쳐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을 거야.”
“독도와 7광구를 빼앗긴 건 아쉽지만, 일본과의 결전은 다음 대통령이 선출된 이후로 미루어질 수밖에 없을 거 같군요.”
“그럴 수밖에. 하지만 우리는 절대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거야. 우리의 때는 곧 오게 될 거라구. 그 때가 되면 일본 쪽바리 새끼들 모두 뼈저리게 느끼게 되겠지. 아, 우리가 진주만 기습 때보다 더 병신 같은 짓을 저지른 거구나, 잠자는 거인의 코털을 건드린 정도가 아니라, 한창 싸우느라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호랑이의 꼬리를 발로 밟은 거구나, 하고 말이야. 이제 일본에게는 처참한 말로만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두 장군의 얼굴은 결연하지만 차분한 표정이었다. 두 장군은 한동안 경찰서 일대를 산책하며 환담을 나누었다.
오후 6시, 경기도 우성시 62사단 계엄군 임시 야전 사령부
김요한 소장은 오랜 만에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그동안 부사단장은 사단장 집무실이 아닌 원래 자신이 쓰던 부사단장실에서 업무를 보았기 때문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사단장 집무실에는 약간의 먼지가 쌓여 있었다.
계엄군 사령관이 돌아오기 무섭게 각종 결재 서류들이 밀려들었다.
‘이 놈의 군사 행정 문서들은 해가 변해도 줄어들지를 않네.......’
김요한 소장은 씁쓸히 웃으며 서류철들을 하나하나 읽어보기 시작했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집무실 안으로 군사경찰대장이 보고서를 들고 들어왔다. 달아난 마두원과 그 일당들에 대한 수배 및 추적 계획에 대한 보고서였다.
“......혹시 이 조폭 새끼들 잡다가 저항하는 놈 있으면 그냥 사살해도 상관없다고 전해. 단, 이 놈 마두원만은 꼭 살려서 내 앞으로 데려오라고 하고. 알았지?”
김요한은 보고서에 사인을 하고 돌려주었다. 군사경찰대장은 서류철을 받아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보고서에 따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사단장님이 아셔야 할 사항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응? 그게 뭔데?”
“저희 군사경찰대 여군 중위가 조폭들에게 붙잡혀 온 여성들을 조사하는 도중 한 여대생을 통해 확인한 내용인데...... 마두원의 조폭들이 우성 경찰서에서 고문과 폭행 뿐 아니라 여성들을 대상으로 집단 성폭행과 성착취까지 범했다고 합니다.”
“뭐......? 그게 사실이야?”
김요한 소장은 놀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군사경찰대장은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측 여군 중위가 조사한 그 여대생이 바로 집단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조폭들은 우성시가 수복된 이후부터 바로 며칠 전까지 붙잡아온 여성들을 대상으로 장기간 집단 성폭행을 지속해 왔다고 합니다. 여대생의 증언에 따르면 피해자는 그 여대생 뿐 아니라 30대 여성 1명과 최근에 끌려온 여학생도 1명 있었다고 합니다.”
김요한 소장은 손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이런 개 쓰레기 같은 새끼들을 봤나........! 그럼, 자네가 말한 그 다른 피해자들은 모두 어디 있나? 잡혀왔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건가?”
“그것이, 여군 중위가 확인해본 결과 조폭들에게 잡혀온 이들 중에는 여대생이 말한 30대 여성과 여학생은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다른 곳에 따로 가둬 놨거나, 붙잡히지 않고 달아난 녀석들이 데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우선, 붙잡은 녀석들부터 하나하나 심문해봐! 혹시 피해자들의 소재를 알고 있는 놈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군사경찰대 수사관들 모두 풀어서, 조폭 일당들이 생활했던 곳 수소문해서 거기도 다 뒤져보라고 하고!”
군가경찰대장은 경례를 하고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김요한 소장은 조폭들이 벌인 일에 역겨움을 느꼈다.
오후 8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학교
영록은 저녁 식사 이후로 줄곧 계단 위에 앉아 교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저녁을 먹으며 본 뉴스에서 우성시 관련 소식이 나왔었다. 우성시의 애국 청년 십자군 조폭들이 자유공화당 마두원 의원의 탈출을 돕다가 모두 계엄군들에 의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어서 계엄군 민사참모라는 사람이 나와 다음과 같이 인터뷰를 했다.
[이정만 전 대통령의 비호 아래 결성되었던 우성시 애국 청년 십자군은 오늘 이 시간부로 불법 단체로 규정되어 강제 해산되었습니다. 이 시간 이후로 그 누구도 애국 청년 십자군의 이름으로 모이거나 활동할 수 없으며, 어떠한 이유로도 무기를 소지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를 어길 시엔......]
애국 청년 십자군이 강제 해산되었다!
영록은 애국 청년 십자군이 없어졌으니 이제 유민이 학교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단 위에 앉아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밤이 깊어지고 어둠이 내린 후에도 그녀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아무런 기약도 없는 유민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앉아 있는 영록의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태하가 다가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애국 청년 십자군이 해산되었지만, 그 앞에 많은 사람들이 계엄군에 체포되었다고 했잖아? 유민이도 혹시 계엄군에게 조사받으러 가서 오늘 못 오는 건지도 모르니까, 일단 기숙사로 들어가자.”
영록은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태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유민이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계엄군이 잡아가? 걘 거기 조폭들처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일단 애국 청년 십자군에 가입되어 있었으니까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지. 너 역시 거기 가입했었으니까 너도 나중에 계엄군에 불려가서 조사 받을 수도 있는 거고....... 하여튼 유민이는 오늘 안 올 거 같으니까 일단 나랑 같이 안으로 들어가자. 계속 여기 있다가는 모기한테 왕창 피 뜯길지도 몰라.”
태하는 영록의 손을 잡아끌고 기숙사로 데려갔다. 영록은 태하의 손에 이끌려가면서도 교문 쪽을 계속 뒤돌아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