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2027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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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08시, 경기도 우성시 효경동 에덴 모텔
잠결에 여자의 거친 신음 소리와 남자 아이들의 말소리가 귀에 거슬리게 들려왔다.
마선욱은 무어라 무어라 욕설을 중얼거리며 잠에서 깼다. 자는 동안 에어컨 바람 때문에 추웠는지, 자신도 모르게 이불로 몸을 돌돌 말아놓고 있었다.
모텔 방안에는 침대가 두 개 있었다. 한 침대는 마선욱 혼자 누워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울긋불긋 이레즈미가 가득한 그의 몸에는 훈장 하나가 금메달처럼 목에 걸려있었다. 이번 우성시 수복 기념으로 대통령에게 받은 명예 무공 훈장이었다.
그가 누워있는 침대 주변 바닥에는 양아치 녀석 셋이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녀석들도 모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이 누워있는 자리 주변에는 먹고 버린 맥주 캔들과 소주병, 오징어와 과자 등 마른안주 남은 것들이 어지럽게 버려져 있었고, 그 옆에 재떨이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담배꽁초들이 마치 고슴도치 마냥 박혀 있었다.
“먹은 것 좀 치우고 자라니까, 이 개새끼들 말 드럽게 안 들어 처먹네. 아침부터 쩔은 내 졸라 나잖아, 씨발.”
마선욱은 욕을 씨부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돌려 보니 옆 침대에서 양아치 두 녀석이 아침부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침대 가운데에는 발가벗은 운용 엄마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 양아치들은 그녀를 가운데에 두고 앞뒤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운용 엄마는 일주일 전 양아치들에 의해 이곳으로 끌려온 이후, 집에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쉬지 않고 그들과 몸을 섞고 있었다. 처음에는 윤간이었지만, 이제는 화간에 난교처럼 되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십 몇 년간 남자 없이 지낸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양아치들에게 온 몸을 내어주고 그 쾌락을 만끽히고 있었다.
“씨발 놈들, 아침부터 발정 났냐?”
마선욱은 양아치들의 머리를 한 대씩 쥐어박고는, 엎드려 있는 운용 엄마에게 다가가 앞뒤로 출렁이는 커다란 젖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아이를 낳은 여자의 유방은 솥뚜껑만 한 마선욱의 손으로도 한 번에 쥐어지지 않을 만큼 묵직했다. 아기에게 젖을 물렸던 유두는 다른 여자들과 비교해 도드라지게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아, 아힝~!”
양아치들의 성기를 앞뒤에서 받아내던 운용 엄마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헤헤, 떡 친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형님.”
“맞습니다. 그리고 이 아줌마 빨통하고 골반, 보기만 해도 꼴려 미칠 것 같은데 어떻게 참습니까?”
마선욱은 양아치 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헝클어뜨리고는, 화장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내가 화장실 다녀올 동안까지 한 발씩 싸고 그 아줌마 잠깐 쉬게 둬라. 바로 내가 쓸 거니까.”
“네, 형님, 다녀오십시오.”
마선욱은 문을 닫는 둥 마는 둥 하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 밖으로 고약한 냄새와 담배 냄새가 기분 나쁘게 풍겨 나왔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마선욱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양아치들은 운용 엄마에게 모두 한 발씩 다 쌌는지, 이제는 둘이 키득거리며 방바닥에 널브러진 쓰레기들을 봉지에 주워 담는 중이었다.
운용 엄마는 침대 위의 두 다리를 벌리고 엎드린 채로 힘겹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침대 시트는 온통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마선욱은 담배를 입에 물로 침대 위로 올라가 그녀의 엉덩이를 거칠게 주물렀다.
“중학생 애까지 딸린 아줌마가 젊은 애들 싱싱한 자지 맛을 보니까, 아주 그냥 뿅 가 죽겠지? 그치?”
그는 그녀를 바로 눕히고는 방금까지 담배를 물고 있던 입으로 그녀의 입술을 마구 핥아댔다. 운용 엄마는 얼굴을 찡그린 채 가만히 있었다.
마선욱은 여자를 품에 안고 그녀의 큰 가슴은 주물럭거리며 말했다.
“와, 역시 아줌마는 달라. 며칠 동안 밤새도록 몇 번씩이나 홍콩으로 보내줘도 지치지를 안잖아? 역시 경험이 있는 여자는 달라도 완전 다르다니까. 전에 그년이랑은 비교도 안 돼. 안 그러냐?”
그의 말에 양아치들이 낄낄거렸다. 운용 엄마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줌마가 우리한테 아주 협조적이라서, 아줌마 아들 그 동영상은 내가 곧 지워줄게. 뭐, 근데 풀려나면 집으로 돌아가서 굳이 그 병신같은 아들내미 키우면서 평생 살고 싶어? 아줌마도 아줌마 남은 인생을 즐겨야 하는거 아냐?”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줌마, 지금까지 우리랑 하면서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거 우리가 다 해줬잖아? 솔직히 말해봐, 아줌마도 좋아 죽을라고 했잖아, 안 그래? 지금까지 어떤 남자한테도 나랑 할 때 만큼 만족해본 적 없지? 이렇게 파릇파릇한 애들이 쉬지 않고 박아주는 것도 처음이고. 여자로서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그 병신 같은 아들내미 버리고 나한테 와. 내가 아줌마 데리고 살아 주면서 죽어도 여한 없을 만큼 박아줄 테니까.”
마선욱은 담배를 입에 물고 이죽거렸다. 운용 엄마는 말없이 마선욱에게 등을 보이고 돌아 누우려했다.
마선욱이 그녀를 붙잡아 억지로 자기 쪽으로 몸을 돌려놓고는, 움직이지 못하게 꽉 껴안고 그녀의 입술에 혀를 집어넣었다. 그녀는 웁! 웁! 소리를 지르며 그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우악스런 그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었다.
마선욱이 그녀의 다리를 벌리고 몸을 들이밀었다.
“뭐 싫으면 내가 강제로 데리고 있으면 되지! 내 애 임신하고 나도, 그 병신 새끼 지 새끼라고 계속 이뻐 보일까? 응?”
마선욱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여자는 슬픈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야, 맥주 남은 거 하나 가지고 와봐.”
일을 마친 마선욱이 양아치를 보고 소리쳤다. 양아치 한 녀석이 모텔 냉장고에서 남은 맥주 하나를 꺼내 마선욱에게 두 손으로 공손히 갖다 바쳤다. 마선욱은 맥주 캔을 따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켰다.
운용 엄마는 마선욱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그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혀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음문에서 질질 흘러 내린 하얗고 끈끈한 정액들이 침대 시트 위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마선욱은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그녀의 등을 기분 좋게 바라보았다.
“형님, 요즘 성모 형님이 신작 보내주신 건 없습니까?”
양아치 한 녀석이 물었다. 마선욱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운용 엄마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그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찔거렸다.
“신작? 무슨 신작?”
“왜, 그 거유민인가 기유민인가 하는 딸내미 있지 않습니까? 그년 새 사진이나 영상 같은 건 더 없는 겁니까?”
마선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아줌마만 겁내 따먹고 보니까, 이젠 어린년들이 고프냐?”
양아치는 머리를 긁적이며 키득거렸다.
“그 유민이라는 년, 그냥 딱 보기만 해도 졸라 따먹고 싶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성모 형님은 그년 언제쯤 버린신답니까?”
마선욱이 담배를 한대 꺼내 입에 물고는, 운용 엄마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러자 그녀는 몸을 일으켜 두 손으로 라이터를 받아 공손히 그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마선욱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그녀의 머리를 다시 사타구니 아래로 잡아당겼다. 운용 엄마는 말없이 마선욱의 성기를 입으로 물었다.
“씨발, 쫌 만 기다려봐. 안 그래도 우리 아버지가 성모, 내년이 아니라 올해 안에 필리핀 보내서 거기서 공부 시작하게 하신다니까. 성모도 그 거유민인가 하는 그년 따먹을 대로 졸라 따먹어서 이제는 질렸다고 하더라. 그년, 완전 창녀 다 됐다던데? 맨날 성모한테 박아달라고 좆나 발정 난 암캐처럼 헥헥 거리기나 하고, 이젠 지겨운 정도가 아니라 가끔 무서울 때도 있다더라.”
“원래 운동한 년들이 성욕도 졸라 쎄고, 밝히기도 드럽게 밝힌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여튼 그년은 성모가 필리핀 가기 전에 나한테 주고 갈거야. 아주 그냥 술 졸라 먹이고 꽐라로 만들어서...... 크크크, 그러고 나서 이 아줌마랑 거유민 그 년 둘 다 벗겨 놓고 좆나 돌려먹자고. 캬아~ 그년 빨통이랑 허리, 생각만 해도 기분 죽이네. 아주 잘 익은 아줌마 오나홀이랑 처녀는 아니어도 아직 탱탱한 어린 오나홀, 아주 극상품만 두 개가 되네, 시발. 크크크.”
마선욱과 양아치는 좋아 죽겠다는 듯 한참을 킬킬 거렸다.
“참, 아버님 말씀 나와서 말인데, 형님 아버님 오늘 서울 올라가셨지 않습니까?”
“응, 오늘이 광복절 아니냐.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식 오라고 해서, 급히 다녀오시게 되었다.”
“지난번에 형님 아버님 서울 다녀오셨을 때, 형님한테 그 훈장 나오고 그랬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돌아오실 때, 뭔가 좋은 소식이 또 있겠죠?”
마선욱은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잡아당기며 말했다.
“좋은 소식은 계속 되겠지. 좋은 세상 아니냐? 우리한테 좋은 세상.”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좋은 세상 계속 되야지 말입니다. 그리고...... 전에 형님이 아버님께 부탁드린다는 것처럼, 우리 나중에 다 군대 빠질 수 있는 거지요?”
“어차피 통일 되면 군대가 다 무슨 필요 있겠냐? 조만간 군대도 줄이고 모병제로 바꾸고 그러면 우리 모두 군대 갈 일은 없어지지 않겠냐? 그리고.......”
마선욱이 운용 엄마의 머리를 확 잡아들었다. 그녀는 헉,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입과 얼굴에 묻은 침과 애액이 끈적거리며 길게 늘러 붙어 있었다.
“우리가 이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군대 하나 빼주는 게 어디 대수겠냐? 우리가 나라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냐? 빨치산들이랑 싸웠지, 나라 배신한 빨갱이들 잡으러 다녔지, 그 정도 해줬으면 군대 정도는 그냥 빼줘도 되는 거 아냐? 아, 그리고 이미 우리 군대 생활 했잖아. 애국 청년 십자군! 전쟁까지 이미 했는데 그럼 다 된 거 아냐? 그럼 인간적으로다가 군대 면제 정도 보상은 당연한 거 아니냐? 그리고 이런 죽이는 아줌마도 마음껏 따먹고...... 크크크. 좋은 세상은 계속될 거야. 지금 대통령이랑 우리 아버지가 계속 살아 있는 이상, 좋은 세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다. 안 그래, 아줌마?”
마선욱은 운용 엄마의 뺨을 어루만지며 킬킬거렸다. 그녀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옆으로 홱 돌려 버렸다.
오전 10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학교
일월촌의 빨치산들이 일소된 이후, 거리 밖을 걸어 다니는 시민들의 수는 부쩍 늘어나 있었다. 우성시에 계엄령이 해제되지는 않았지만 전보다 통제가 많이 풀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아직 전쟁이 모두 끝난 것이 아니었고 사람들 마음속의 상처가 모두 사라진 것도 아니었지만 여전히 삶은 계속 되어야 했다.
길거리의 상점들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음식점, 술집들의 간판들도 다시 불을 밝혔다.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기 위해, 자기 스스로를 다독여 가며 삶의 현장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교육부에서도 전쟁이 거의 종식 단계에 이르렀으니, 8월 말부터 모든 학교가 개학하고 학사 일정을 다시 시작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성부 학교에 온 아이들에게도 이 소식이 전해졌다. 아이들은 너무나 길었던 방학, 학교 기숙사 안에 갇혀 답답하게 지내야만 했던 휴일들이 모두 지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학교 밖으로 나가 자유롭게 놀고 싶어 했다.
광복절 휴일을 맞이해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허락을 받고 학교 밖으로 외출했다.
태하도 새로 사귄 기숙사 다른 방 친구들과 함께 시내에 놀러 나간다고 했다. 태하가 함께 나가자고 권유했지만 영록은 밖에 나가기 귀찮다며 거절했다.
영록은 학생 식당에 홀로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마침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진행되는 8.15 광복절 및 정부 수립 기념식이 방송되고 있었다.
이정만 대통령이 내빈들과 악수하며 기념식장에 들어섰다. 어린 영록의 생각에, 대통령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욕심 많은 사람처럼 생긴 것 같았다.
군악대의 애국가 연주가 울려 퍼지고 태극기가 게양대에 높이 올랐다. 기념식장 안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태극기를 바라보았다.
TV 화면은 기념식장 안의 내빈들을 천천히 차례대로 비춰주고 있었다.
영록의 눈에 아는 얼굴이 보였다. 우성시 국회의원 마두원도 기념식에 참가하고 있었다.
‘저 사람 정말 조폭이라던데...... 그런데 어떻게 국회의원이 되었지? 우리나라는 조폭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걸까?’
TV 속 마두원은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내빈석 가장 맨 앞줄에 서 있는 지금 자신의 모습에 몹시 만족해하는 듯 보였다.
내빈들이 모두 자리에 앉고, 한 사람씩 연단으로 나와 기념식 경축사를 시작했다.
영록은 리모콘을 들어 채널을 돌렸다. 구지 그런 것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보았지만 채널도 별로 없고, 볼 것도 별로 없었다.
학교 TV는 지역 유선 방송인지, 채널 사이사이 마다 홈쇼핑 방송 채널이 엄청 많이 들어가 있었다. 영록은 전쟁 중에 홈쇼핑 방송이 나오는 것도, 또 그걸 보고 물건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홈쇼핑 쇼호스트들은 지금 판매 중 간장 게장이 마감이 얼마 안 남았다며, 곧 품절될테니 서두르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전쟁 중에도 사람들이 게장은 많이 사먹나 보네.......’
한참 리모콘을 꼼지락거리며 채널을 돌려보았지만 나오는 것마다 하품만 나오는 지루한 방송들뿐이었다.
어느새 채널은 한 바퀴 돌아 다시 지상파 방송 채널들로 돌아와 있었다.
지상파 3사 모두 여전히 광복절 기념식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이제서야 모든 행사가 끝나는지, 이정만 대통령이 내빈들의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맨 앞에 줄의 주요 인사들과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악수를 나눈 이들 가운데는 마두원도 있었다. 마두원은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며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를 했다.
이어서, 대통령은 이북5도 실향민 대표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이제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는지 한국전쟁 당시 남쪽으로 내려온 실향민들 가운데 살아계신 분들은 몇 분 남아 계시지 않다고 했다. 실향민 대표로 이 자리에 초대된 분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와 북녘 땅의 추억이 거의 없으신 분들이나 실향민의 후손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통령은 그들과 정답게 악수를 나누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대통령이 어느 젊은 실향민 대표와 악수를 나눌 때였다.
대통령의 손을 가볍게 흔들던 젊은 실향민 대표가 갑자기 그의 오른손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대통령의 몸이 앞으로 쏟아지는 순간, 젊은 실향민 대표가 왼손에 쥐고 있던 볼펜으로 대통령의 목을 찔렀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걸 보고 있던 영록도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대통령 곁에 있던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젊은 실향민을 제압해 그 자리에 쓰러뜨렸다.
대통령은 크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는 놀란 눈으로 자기 앞의 실향민을 쳐다보며 목덜미를 손으로 지긋이 누르고 있었다. 대통령의 목에는 상처나 피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경호원들은 다급히 대통령을 기념식장을 밖으로 안내하려 했다. 경호원들이 대통령의 어깨를 붙잡고 부축하려하자, 대통령은 필요 없다는 듯 그들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태연히 출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그렇게 대통령이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갔을 때, 갑자기 그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마치, 마취 총을 맞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동물처럼, 대통령의 두 다리가 그대로 꺾이며 붉은 카펫 위에 풀썩, 쓰러졌다.
놀란 경호원들이 대통령을 들쳐 엎고 출구 밖으로 뛰어나갔다.
경호원의 등에 업힌 대통령이 입에서 하얀 게거품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모든 장면들이 전국에 생방송으로 그대로 나가고 있었다.
영록은 자기도 모르게 입이 딱 벌어졌다.
‘뭐, 뭐야? 지금 대통령이 암살당한 거야? 정말로 죽은 거야?’
기념식을 생중계하던 방송사 아나운서들도 당황한 듯 말을 얼무버리고 있었다. 제대로 된 클로징도 없이 생방송이 끝나갔다.
기념식장 현장을 찍고 있던 카메라는 마지막 순간에 대통령을 볼펜으로 찌른 젊은 실향민 대표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 성취한 사람 마냥 뿌듯한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경호원들에 의해 끌려나갔다.
이 젊은 실향민 대표가 우성시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폭동을 주도하고 일월촌에서 살아남은 빨치산들을 이끌고 탈출했던 북한 정찰총국 45호실 공작원 조장이라는 사실은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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