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2027년 8월 6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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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경기도 우성시 일월동
드론들이 쉬지 않고 뿜어내는 CS가스로 인해 일월촌은 그야말로 유격장 가스실과 다를 바 없는 상태로 변해 버렸다.
K808 장갑차로 수송된 13특수임무여단 특전사들이 희뿌연 CS가스를 뚫고 일월촌 깊숙이 전진해 들어갔다. 일월촌 안으로 진입한 특전사들의 수는 벌써 1개 대대 규모가 넘었다.
일월촌 여기저기에서 특전사들의 총기에 달린 레이저 표적지시기 붉은 점들이 가스 연기 사이로 어지러이 움직이고 있었다.
타다당! 타다당!
절제된 총소리가 산발적으로 이어졌다. 특전사들이 지나간 곳마다 총에 맞아 쓰러진 빨치산들과 외국인 폭도들의 시신들이 즐비했다.
간간히 총을 쏘며 저항하는 빨치산들도 있었지만, CS가스 때문에 제대로 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눈물범벅이 되어 앞도 제대로 못 보는 상황에서 총을 난사하다가 특전사들의 정확한 사격에 하나하나 쓰러져 갔다.
한국군들이 일월촌의 절반가량을 점령해가고 있을 때, 최전선에서 수색을 하던 특전사 대원 3명이 어느 건물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건물 안에는 빨치산 1명이 숨어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얼굴 전체를 물에 적신 수건으로 가리고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버티고 서 있었다.
특전사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빨치산은 나이프를 손에 쥐고 벽 뒤에 기대어 숨었다.
끼익~!
문이 열리고 특전사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숨어있던 빨치산이 선두에 있던 특전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왼손으로 특전사의 방독면 턱 부분을 잡아 들어 올리려 했다. 방독면을 벗기려 한 것이다.
하지만 뒷목을 스냅 단추로 걸어 잠그는 목끈 덕분에 방독면은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당황한 빨치산이 방독면 보호두건을 멱살 잡듯 붙들고 나이프로 복부를 마구 찔렀다. 그의 손에 나이프가 살을 파고드는 느낌이 전해지지 않았다. 방탄조끼에 나이프가 막힌 것이다.
뒤에 있던 특전사들이 달려와 빨치산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당!
빨치산은 머리에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특전사 목의 보호두건을 꽉 붙들고 있었다. 빨치산에게 붙들려 있던 특전사는 발로 그를 걷어 차 바닥에 쓰러뜨리고는 기분 나쁘다는 듯 머리와 가슴에 확인 사살을 가했다.
“사격 중지! 민간인 3명 발견!”
특전사들은 민간인을 발견할 때마다 몸수색을 하고 후속하는 팀에게 이들을 인계 후 계속 전진했다.
민간인들은 특전사들에 의해 일월촌 진입로 방향으로 안내되었다. 일월촌 진입로에는 특전사들이 타고 들어온 K808 장갑차들이 대기 중이었다. 장갑차에 민간인들이 10명가량 모이면 곧바로 후방으로 이송시켰다.
후방으로 이송된 민간인들은 CS가스에서 벗어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몸을 회복시켰다. 군 의무대 병사들이 그들에게 물을 건네며 건강 상태를 체크했다. 일월촌에서 구출된 민간인들의 옷에는 여전히 CS가스의 성분들이 가루처럼 묻어 있어서, 그들에게 다가가는 의무병들도 그 냄새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쏟으며 콜록거렸다.
구출된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며 울먹이고 있었다. 온몸에 남아 있는 CS가스의 매캐한 냄새들 때문에 나는 눈물일 수도 있었지만, CS가스보다 더 두렵고 고통스러웠던 인질 생활에서 벗어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더 많았다.
“현 마이크부로 서드 웨이브 투입, 세컨 웨이브 임무 구역 인계 후 전진.”
계엄사령관 62사단 부사단장은 대기 중이던 705 특공연대를 투입시켰다. 705특공연대는 13특수임무여단이 점령한 구역들을 인수 받아 해당 지역에서 경계 작전을 펼치고, 점령 구역을 인계한 특전사들은 모두 미수복 지역으로 투입되어 전투를 벌일 예정이었다.
공교롭게도, 13특수임무여단과 705 특공연대의 상징은 둘 다 표범이었다. 정확하게는 13여단이 검은 표범 흑표, 705 특공연대는 갈색 표범이었다.
진입로 일대가 모두 한국군에 의해 점령되었기 때문에, 705 특공연대는 장갑차를 타지 않고 도보로 일월촌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도 모두 방독면을 착용한 상태였다.
705 특공연대원들에게 점령구역을 내어주고 더 많은 특전사들이 미수복 지역 전투에 투입되자 일월촌 점령 속도는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CS가스를 피해 언덕 아래로 달아나는 폭도들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일월촌 안에 남아 끝까지 자신이 맡은 구역을 사수하겠다던 빨치산들도 CS가스의 독한 연기를 이기지 못하고 언덕 아래로 몸을 날려 도망가는 자들이 속출했다.
물론, 그렇게 도망 나와 봤자 언덕 아래에서 대기하던 계엄군들의 좋은 사격 훈련 표적 밖에는 안 되었지만 말이다.
오전 10시, 경기도 우성시 일월동
탕!
일월촌을 2/3 가량 점령했을 무렵, 특전사들의 전진이 멈춰 섰다.
단발의 총소리가 울리고, 선두에서 수색하며 나가던 특전사 대원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가 쓴 K5 방독면 양안식 렌즈 부분은 탄에 맞아 깨어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탕!
다시 한 번 총성이 울리고, 그 뒤를 따라오던 특전사 한명이 또 쓰러졌다. 다행히 탄은 그가 입은 방탄조끼의 방탄패널에 맞았다. 그는 고통에 끙끙거리며 응용포복 자세로 건물 벽 뒤로 몸을 숨겼다.
“1시 방향 저격수! 모두 은폐 엄폐!”
수색 중이던 특전사들은 모두 몸을 숨기고 저격수의 위치를 찾아 주변을 노려보았다. 대략적으로 탄이 날아온 방향은 눈치 챘으나 아직 저격수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현망에 대기 중인 블랙팬서 장 등장 바람.”
[블랙팬서 장 송신]
“당소 블랙팬서 찰리원이라 알리고, 현재 인디아 델타 쓰리 지역에서 저격수로 인해 이동 불가, 인디아 델타 쓰리 지역에서 저격수로 인해 이동 불가, 이상.”
[저격수 위치 확인되는지?]
“현재 당소 시야에서는 확인 불가라고 알리고, 탄도로 볼때 인디아 시에라 포 지역으로 추정된다고 알리는구나, 이상”
[인디아 시에라 포 확인했고, 블랙팬서 찰리원 현 위치 대기 바람, 이상]
특전사들의 무전이 끝난 후, CS가스를 뿌려대던 드론 몇 대가 저격수의 위치로 추정되는 지역으로 날아갔다.
후방에서 드론들을 조종하는 육군 드론봇 전투단원들은 드론에 설치된 카메라와 열추적 장치로 저격수의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한 대의 드론이 특전사들과 200m 떨어진 어느 건물 안에 숨어 있는 사람의 열원을 찾아냈다. 드론의 열추적 장치에는 건물 창가에 숨어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감지되고 있었다.
SVK12 저격소총을 든 45호실 공작원은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바닥 넓이만큼 아주 살짝 열어놓은 미닫이 창문 틈 사이로 스코프를 통해 일월촌 일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역시 CS가스 때문에 총을 들고 서 있기도 힘들었다. 그는 연신 눈물을 흘리면서도 시뻘게진 오른쪽 눈을 부릅뜨고 표적을 찾아 눈동자를 이리 저리 움직였다.
자신의 저격이 시작되자 일월촌 일대를 누비던 특전사들 모두 귀신같이 모습을 감추었다. 역시, 잘 훈련된 이들의 움직임은 가볍지 않고 태산과도 같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공작원은 더 이상 표적을 찾을 수 없게 되자 분한 생각이 들었다.
공작원의 귀에 미세한 진동 소리가 느껴졌다. 공작원은 가스를 뿌려대던 드론들이 움직이는 소리라는 걸 직감했지만, 설마 그 드론들이 자신을 찾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위치가 노출된 것도 모르고 계속 건물 안에 머물며 스코프에 새로운 표적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일월촌으로부터 700m 가량 떨어진 22층 아파트 옥상에 13특수임무여단의 저격수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위치 인디아 시에라 에잇 건물 3층 좌측에서 2번째 창문, 거리 782m, 사수, 준비되는 즉시 대 저격전 실시]
명령이 하달되고, 4명의 저격수들은 자신의 K14A1 저격소총을 들고 스코프를 조절해 목표를 찾기 시작했다. 782m라면 K14A1 유효사거리의 거의 최대치에 가까운 거리였다.
저격수들은 건물 위에 떠 있는 드론을 보고 빨치산 저격수가 숨어 있는 건물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스코프 배율을 조금씩 조율해가며 적 저격수가 숨어있다는 창문을 찾기 시작했다.
“타겟 인 사이트(Target in sight)......”
저격수 한 명이 중얼거렸다. 그의 스코프에 아주 미세하게 열린 창문 틈으로 살짝 나와 있는 총구의 소염기 부분이 확인되었다.
부사수들은 드론이 보내온 건물 안에 숨은 빨치산 저격수의 열상 사진 자료를 저격수들에게 PDA로 보여주었다.
“창문 바로 뒤, 노출 면적은 최대 가로 52, 세로 46.”
4명의 저격수들은 모두 표적의 위치를 향해 조준을 실시했다. 창문이 빛에 반사되어 건물 안은 잘 보이지 않았다. 저격수들은 드론이 보낸 열상 사진을 통해 대략적인 위치를 가늠해 조준하고 있었다.
“풍속, 풍향, 기압 확인하고, 전 사수 스텐바이.”
저격수 지휘관의 통제에 따라 저격수들이 사격을 준비했다. 저격수들이 사격 준비에 들어가자 그들의 몸은 마치 돌처럼 굳어져 한 치의 움직임도 없어졌다. 그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사격!”
4명의 저격수들이 동시에 격발했다. 부사수들은 망원경을 통해 탄착점을 확인했다.
표적이 숨어 있는 건물 창문에 동그란 구멍 4개가 동시에 뚫렸다. 창문 안쪽에서 튄 붉은 핏물이 스코프를 통해서도 보였다. 창문 틈 사이로 살짝 나와 있던 총의 소염기 부분이 이제는 가늠쇠가 거꾸로 뒤집어진 채 하늘 위를 보고 있었다.
건물 위에서 대기하던 드론이 창문 쪽으로 내려와 건물 안을 확인했다. 드론의 카메라에 얼굴을 감싼 손수건이 온통 붉은 피로 뒤덮여진 한 구의 시체가 창문 아래 쓰러져 있는 모습이 잡혔다.
“타겟 클리어. 반복한다, 타겟 클리어.”
저격수 지휘관은 짧게 무전을 날리고 사격을 마친 저격수들의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했다. 저격수들은 별 일 아니라는 듯 스코프를 통해 계속 새로운 표적을 찾아보고 있었다.
오전 11시, 경기도 우성시 일월동
이제 일월촌의 거의 모든 지역이 한국군에게 점령되어가고 있었다.
리부일은 최전선에서 빨치산들을 이끌며 최후의 항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특전사들에게 한국군에게서 노획한 크레모아를 터뜨리거나 부비트랩 제작용 TNT나 콤포지션 폭약에 도화선을 붙여 던지는 등, 최대한 화력으로 맞서 보았다.
하지만 사방이 온통 CS가스로 뒤덮여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황에서, 방독면도 없이 특전사들을 상대로 버티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레이저 표적지시기의 붉은 점들이 빨치산들의 몸에 찍히는 순간, 붉은 점이 있던 곳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빨치산들의 수는 시시각각 줄어들고 있었다.
“이제 더는...... 시간 버는 것도 아무 쓸모 없겠구나야.”
리부일은 물에 적신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쿨럭 거리며 쓸쓸히 중얼거렸다. 그의 전투복 상의는 이미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도 탄에 맞은 상태였다.
타다당! 타다당!
갑자기 건물 담벼락 너머로 두 명의 특전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총격에 리부일 주변에 있던 빨치산들이 모두 쓰러졌다.
리부일은 총에 맞은 어느 빨치산의 시신을 방패삼아 특전사들에게 달려들었다. 특전사들이 연발로 총을 쏘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던 STC16A2의 특성상 사람을 관통해 뒤에 숨은 적까지 맞출 수 없었다.
리부일이 붙잡고 있던 빨치산 시체를 앞에 있던 특전사에게 밀어 버렸다. 그의 시야가 가려지는 순간, 특전사의 방탄조끼 아래 하복부를 향해 권총으로 다섯 발을 쏘았다.
그와 동시에 그도 가슴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 왔다. 다른 특전사의 사격에 당한 것이다.
리부일은 이를 악물고 힘겹게 두 손으로 권총을 파지하고 특전사의 방독면 안면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검은 방독면 사이로 시뻘건 피가 터져 나왔다. 특전사는 총에 맞아 쓰러지는 순간에도 리부일을 향해 대응 사격을 했다. 리부일의 몸에 예닐곱발의 탄이 박혀 버렸다.
온몸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방금 전까지 CS가스 때문에 오장육부가 뒤집어지는 고통에 시달렸던 리부일은, 이제 몽롱한 어지러움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입안에서는 CS가스의 매운 냄새보다 비릿한 피 냄새가 더 진하게 느껴졌다.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겨 왔다.
‘이제 끝인 거이야......?’
저 멀리서 총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한 무리의 특전사들이 더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리부일은 손에 든 권총의 탄창을 꺼내 보았다. 약실에 있는 것까지, 남은 탄은 이제 겨우 3발뿐이었다.
리부일은 다시 탄창을 결합하고 진지 방향으로 기어가려 몸을 수그렸다. 하지만 그의 몸은 단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두 손을 땅에 짚고 일어나려 했지만 팔에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땅바닥은 그가 흘린 피가 사방으로 번져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 쓰러진 그를 잡아 일으켰다. 희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장 동무! 정신 차리시라요! 이제 더는 여기서 버틸 수 없습네다. 모두 우리 공작원들이 봐 놓은 길로 빠져 나가야 합네다!”
정찰총국 45호실 공작원 조장이었다.
조장은 쓰러진 리부일을 부축해 일으키려다가, 그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많은 피를 흘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리부일은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
“난 어차피 나가지도 못하고 여기서 죽을거이야...... 남아 있는 공화국 전사들이 이제 몇이나 있네?”
“공작원들 포함해서 40여명은 될 거입네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많이 살아 있었구나, 리부일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제부터 동무가 남은 전사들을 이끌라우. 시간이 없으니 어서 가라. 그리고...... 가기 전에 저짝에 있는 저것 좀 나한테 가져다 주갔어?”
리부일은 턱으로 진지 쪽에 떨어져 있던 작은 리모콘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그의 손에 리모콘을 가져다 쥐어주었다.
조장은 리부일에게 마지막 거수경례를 했다.
“......반드시 중장 동무를 대신해 혁명의 과업을 완수하겠습네다.”
리부일은 경례를 받을 힘이 없었다. 그는 눈 깜박임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조장이 뛰어간 후, 특전사들이 다가오는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리모콘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려놨다.
순간, 그의 바로 옆에서 인기척이 났다. 돌아보니 그의 옆에 일가족으로 보이는 다섯 명이 울먹이는 눈으로 그를 불안하게 쳐다보며 지나가려 하고 있었다. 아직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리부일의 눈동자가 망설임에 크게 흔들렸다.
“손에 뭘 쥐고 있다!”
“손에 있는 거 내려 놔! 내려놓으라고!”
특전사들의 외침이 가까이서 들려왔다. 그들은 이제 리부일을 잡을 수 있는 거리까지 들어와 있었다.
리부일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의 곁을 지나던 일가족을 향해 들릴 듯 말듯 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용서하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게 전쟁아이오....... 전쟁 중이니 나도 어쩔 수 없오....... 동무들이 이해해 주시기요....... 미안하오.”
리부일이 손에 든 리모콘을 꾹 눌렀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먼지 기둥이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살아남은 빨치산들을 데리고 일월촌을 탈출하던 공작원 조장이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폭발이 일어난 곳은 리부일이 있던 곳이었다.
조장은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기분을 꾹 참으며 살아남은 이들에게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우리 공작원들이 드나들던 작은 길이 있다. 그리로 나가도 남조선 괴뢰군들이 있긴 하갔지만 특별히 많거나 하지는 않아 포위되지는 않을 거다. 동무들 모두 다음 집결지는 숙지 했갔지? 남조선 괴뢰군들을 보면 죽을 각오로 봉쇄선을 뚫고 나가서, 거기서 다시 만나는 걸로 하자우.”
거기서부터 조장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는 아무도 그의 표정을 보지 못하도록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오후 7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중고등학교
영록은 태하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들어와 있었다.
지난 번 일 때문인지, 영록은 자신의 곁에 여학생들이 오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었다.
오늘 배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섰을 때에도 영록 앞에 여학생 한 명이 서 있었다. 영록은 태하를 앞에 세우고 자신이 태하 뒤로 가서 섰다. 영문을 모르는 태하는 얘 왜 이래? 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식판을 가지고 자리에 앉았을 때, 식당 TV에서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우성시 계엄 사령관은 일월동 일대를 점거하고 민간인들을 인질로 잡고 있던 북한 특작부대, 이른바 빨치산들을 모두 소탕하고 대부분의 민간인들을 안전하게 구출해 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군의 피해는......]
반찬으로 나온 탕수육을 맛있게 냠냠 씹어 먹던 태하는 뉴스 보도를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드디어 다 끝났나보네. 이제 학교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있게 될까?”
영록은 밥 먹는 것도 잊고 계속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진압 과정에서 일부 빨치산들이 우리 군의 봉쇄선을 뚫고 탈출했으며, 군은 군견 및 추적 전문 부대를 투입해 이들을 끝까지 추격 섬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지는 보도 내용에 영록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직 다 끝난 건 아닌가봐.”
“그래도 도망간 빨치산들은 많지 않은 모양이니까, 더 이상 큰 위협은 되지 않을 거야.”
“그럼...... 이제 여기는 군인들이 많이 필요한 위험한 곳은 아니게 된 거겠지? 북한군, 빨치산, 외노자 폭도들은 이제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으니까, 애국 청년 십자군 이런 것도 필요 없게 되는 거겠지?”
“그 사람들이 정말 여기 우성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다면, 이제 곧 스스로 해체하겠지. 우성시는 안전해졌고 전쟁도 조만간 다 끝난다니까. 그런데 애초부터 순수한 뜻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면...... 뭐 더 오래 있을 지도 모르지.”
태하는 맛있게 밥을 먹으며 대답했다.
태하와 달리 영록은 기쁜 소식에도 입맛이 돌지 않았다.
눈은 계속 TV 뉴스를 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계속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오후 8시, 경기도 우성시 목감동
누군가 쉬지 않고 벨을 누르고 있었다.
운용은 밖을 내다보지 않고도 그들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안방에 있던 운용 엄마가 창백해진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힘없는 모습으로 현관으로 걸어갔다.
“엄마...... 문 안 열면 안돼?”
운용이 벌벌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슬픈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문이 열리고, 마선욱과 양아치들이 집 안으로 몰려들어왔다.
“아, 씨발~! 아줌마, 미쳤어? 왜 나오라는데 나오지도 않고, 연락을 해도 받지를 않아?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약속을 어겨, 엉?”
마선욱은 운용 엄마의 멱살을 붙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운용 엄마의 반팔 블라우스 옷깃이 뜯어지며 어깨와 가슴골이 훤히 드러났다.
운용은 겁먹은 표정으로 거실에 서 있었다. 양아치 중 하나가 그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후려지며 말했다.
“병신아, 지금부터 니 엄마 너 때문에 여기서 우리한테 벌 받을 거니까, 니 방 들어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있어.”
운용은 머리를 감싸고 자기 방으로 후다닥, 도망치듯 들어갔다. 양아치들은 그런 운용을 보며 낄낄 거리고 웃어댔다.
“아줌마가 안 오니까 결국 주인님들이 여기까지 어려운 발걸음 했잖아. 죄송하지도 않아?”
운용 엄마는 손을 앞으로 모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아줌마, 아니, 야 이 개 같은 노예년아! 주인님이 왔으면 어떻게 해야 해? 내가 다시 가르쳐 줘야 알아들어? 엉!”
마선욱이 운용 엄마의 엉덩이를 손으로 때리며 소리를 질렀다. 운용 엄마는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브래지어와 팬티까지 벗어 내려놓은 운용 엄마는 마선욱과 양아치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아들이 들을까 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 주인님들께 복종하는 노예년입니다. 제 아들의 죄가 모두 씻겨질 때까지 주인님의 강한 자지로 저를 벌해 주세요......”
그녀는 낄낄거리고 웃고 있는 양아치들 앞에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운용은 자기 방 문틈 사이로 이 광경을 모두 보고 듣고 있었다.
그의 뺨 아래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선욱이 그녀를 일으켜 입을 맞추었다. 운용 엄마는 그의 목을 끌어안고 혀를 내밀고 그의 키스에 몸을 맡겼다.
마선욱이 먼저 운용 엄마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방 안으로 들어가는 사이, 마선욱의 손은 쉬지 않고 추잡스럽게 그녀의 커다란 엉덩이와 젖가슴을 주무르고 있었다.
한 녀석이 동영상이라도 찍으려는 듯, 핸드폰을 들고 그들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아항~ 아학~! 주인님~ 주인님, 이흑~!”
그들이 방 안으로 들어간 지 몇 분 되지도 않아 운용 엄마의 교성이 시작되었다. 그 소리는 운용의 방까지 크게 들려왔다.
양아치들은 거실에서 담배를 피며 가위 바위 보로 다음 차례를 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운용의 집에 재떨이가 없는 걸 보고 주방에서 밥그릇을 하나 가져와 재떨이 대용으로 쓰고 있었다.
마선욱은 몇 십분 만에 안방에서 나왔다.
“저 아줌마, 떡감 개지려. 엉덩이도 존나 커서 뒷치기 할 때 박는 느낌이 존나 찰지지 않냐?”
“그러다 엉덩이라도 때려주면 존나 미쳐서 암캐처럼 허리 흔듭니다. 십몇 년 남편 없이 살아서 그런가, 자지가 존나 고팠던 모양이에요.”
마선욱이 나오자, 다른 양아치 녀석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 문이 열린 사이, 침대 위에 땀에 젖은 운용 엄마가 양아치 녀석의 배 위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위 아래로 몸을 흔들며 교성을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운용은 자기 방 문 틈에 눈을 대고 계속 훔쳐보고 있었다.
이어서 다른 양아치 녀석이 안방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아 버렸다.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채, 엄마의 거친 신음 소리만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한참을 돌아가며 한 명씩 안방에 들어가던 양아치들이 마침내 운용 엄마의 허리를 잡고 거실로 끌고 나왔다. 양아치들은 운용 엄마에게 배 아래를 간신히 덮는 하얀색 티셔츠 하나를 입혀 놓은 상태였다.
“야, 병신 새끼야. 나와 봐!”
양아치가 운용의 방문을 두드렸다. 운용은 겁에 질러 후다닥 방 밖으로 뛰어 나왔다.
마선욱이 엄마의 허리를 붙들고 현관 쪽으로 데리고 가는 중이었다. 엄마는 행여나 아들에게 부끄러운 꼴이 보일까 봐 한 손으로 티셔츠를 잡아 다리 사이를 간신히 가린 채 고개를 푹 수그리고 끌려갔다. 그녀의 안쪽 허벅지 사이에서는 하얀색 끈적이는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양아치 중 한 녀석이 운용이의 머리를 손으로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야, 니네 엄마는 우리가 다시 데리고 갈 테니까, 당분간 니 엄마 찾지 마라. 알았냐 병신아?”
마선욱과 양아치들은 그렇게 엄마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갔다.
운용은 그 자리에 엎드려 통곡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엄마가.......!”
그의 울음소리는 양아치들의 품에 안겨 끌려가는 그의 엄마의 귀에까지 선명하게 들리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