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37화 (37/217)

〈 37화 〉 2027년 8월 6일 (1)

* * *

­ 오전 7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학교

아침 식사 시간이 되자, 기숙사의 아이들은 배식 순서에 따라 지하 1층 식당으로 삼삼오오 몰려갔다. 성부 학교에 온 아이들은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다들 친구도 많이 사귀고 표정도 한결 밝아져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고 혼자된 고통은 많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록은 말을 튼 친구가 같은 방을 쓰는 태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학교에 온 후 대부분의 시간을 유민과 함께 애국 청년 십자군을 따라다니며 보냈기 때문이었다.

오늘따라 태하는 아침 식사 생각이 없다고 했다. 영록은 혼자서 학교 식당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식판을 들고 배식대 앞으로 길게 줄을 선 학생들은 즐겁게 재잘거리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군이 우성시를 다시 점령한 이후, 학생들에게 밥과 된장국, 김치만 배식되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급식 메뉴는 다시 전처럼 풍요로워졌다. 오늘 아침 식사 메뉴만 해도 토스트 빵과 잼, 버터, 옥수수 스프, 씨리얼, 우유, 과일샐러드, 삶은 계란과 오렌지 쥬스가 나왔다.

풍성해진 메뉴들만큼 학생들의 표정도 한층 밝아진 모습이었다.

이들 가운데에서, 영록은 외로이 식판을 가슴에 붙이고 뻘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영록 앞에는 여학생들 셋이 식판을 들고 서 있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그리 재미있게 하는지 몸을 이리 저리 흔들어 대며 까르르 웃고 떠들고 있었다.

“하하, 그래서 걔한테 뭐라고 했는데?”

“뭐라고 하긴, 관심 없으니까 그냥 꺼지라고 했지.”

“아~ 너무 불쌍하다. 걔 어떡하니?”

“어떡하긴 뭘 어떡해? 너 같으면 불쌍하다고 그런 애 만나주고 싶니?”

그 때, 영록 바로 앞에 있던 여학생 몸을 이리 저리 흔들며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뒤에 서 있던 영록과 가볍게 부딪혔다.

그런데 하필이면, 여학생의 엉덩이가 영록의 사타구니 사이에 닿아버렸다!

식판을 들고 멍 때리는 표정으로 서 있던 영록은 그녀의 엉덩이가 자신의 그 곳에 닿자 대경실색하며 펄쩍 뛰듯 뒤로 물러섰다. 반면 여학생은 자기가 어디에 부딪혔는지도 느끼지 못한 듯, 놀라서 안절부절 못하는 영록을 돌아보고는,

"아, 미안."

한 마디 하고는, 다시 친구들과 웃으며 떠들었다.

영록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자신이 일부러 부딪힌 것도 아니었는데 마치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갑자기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여학생이, 경찰서 9호 조사실에 있었던 대학생 누나처럼 보였다.

자신을 향해 뒤돌아선 여학생의 뒷모습은 마치 조사실 간이침대에 발가벗겨진 채로 뒤돌아 누워있던 그녀의 뒷모습인 것 같았다.

지금 식당 안에서 그를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영록은 지금 이 공간 안에 있는 사람 모두가 다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록은 배식을 기다리는 줄에서 빠져 나왔다.

손에 들고 있던 식판은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기숙사를 향해 뛰어갔다.

“벌써 밥 다 먹고 온 거야? 아니면 아침 식사 메뉴가 형편없어서 그냥 나온 거야?”

너무 일찍 돌아온 영록을 보고, 화장실에서 막 씻고 돌아온 태하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영록은 아무 대답 없이 자기 침대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 오전 8시, 경기도 우성시 목감동

운용 엄마는 이틀만에 집에 돌아왔다. 양아치들이 오늘 아침에서야 풀어준 모양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몹시 초췌했고, 걸음 걷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집에 들어온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운용도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운용 엄마는 가장 먼저 화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샤워기 물 트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 떨어지는 소리 너머로, 엄마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운용도 함께 울음이 터져 나올 뻔 했다.

그때 거실 탁자에 올려둔 엄마의 핸드폰에 SNS가 도착했다.

놀랍게도, 보낸 이의 이름은 ‘새 주인님♡’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SNS 미리보기에 이렇게 써 있었다.

[오늘 저녁 00시까지 0000으로 나와, 노예 년아.]

운용은 분노와 두려움으로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 오전 9시, 경기도 우성시 일월동

어제부터 일월촌 주변을 포위한 한국 계엄군들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 있었다. 빨치산들은 바짝 긴장했다. 이미 그들 사이에서도 ‘남조선 괴뢰군들 가운데 가장 정예들이 우리를 치러 왔다.’는 풍문이 돌고 있었다.

리부일은 한국군들이 새벽 야음을 틈타 기습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일월촌의 전 병력이 외곽 방어선에 투입되어 밤새 경계를 섰다.

하지만 한국 계엄군들은 계속 포위망을 유지하고만 있을 뿐, 별다른 공격 준비 움직임은 없었다.

아침 해가 뜨고, 밤새 뜬눈으로 지새운 일월촌의 빨치산들과 폭도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이미 몇몇 외국인 폭도들은 빨치산들의 감시를 피해 자신의 책임 지역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코를 골며 잠들어 있기도 했다.

심지어 빨치산 대원들조차

‘야간에 공격을 아이 했으니, 다음 날 야간에 공격하겠지. 머리에 총 맞았다고 벌건 대낮에 공격하겠나?’

하고 안심하는 이들도 많았다.

리부일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계속 최전선을 순찰하며 한국 계엄군들의 동태를 살피던 그도 이제는 마음을 놓았는지, 일월촌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털썩 주저앉아 참모들에게 말했다.

“이제 일 없을 거 같구만기래. 일단 전사들하고 인민들에게 식량 배급하고 아침부터 먹이라우. 그리고 저녁 6시까지 전체 인원은 3교대가 나 올 수 있게 나눠서, 2개조는 경계, 1개조는 휴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편성하라우.”

밤새 계속된 열대야 속에서 쉬지 않고 순찰을 돌은 탓인지, 긴장을 놓자마자 심한 갈증이 몰려왔다. 리부일은 수통의 뚜껑을 열고 벌컥 벌컥 물을 마셨다. 수통은 한국군 예비군 부대에 남아 있던 치장물자 중 하나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갈증이 가시니 담배 생각이 절실했다. 리부일은 주머니를 뒤져 담뱃갑을 꺼냈다. 하지만 담뱃갑 안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짜증스럽게 빈 담뱃갑을 구겨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참모 중 하나가 언덕으로 리부일의 아침 식사를 가져다주었다. 오늘 아침 식사는 뜨거운 물을 부어먹는 형태의 비빔밥 전투식량이었다. 리부일은 비빔밥을 몇 숟갈 뜨지 않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밥 생각 보다는 담배 생각이 더 간절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45호실 공작원들 나갈 때 담배 한 보루만 가져오라고 부탁할걸 그랬나보군.’

불현듯, 리부일의 마음속에 다시 기회가 있을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뭐이야......? 뭔데 갑자기 이런 괴이한 기분이 드는기야?’

60 넘게 군에 몸담은 자의 육감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경고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 언덕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일월촌 아래를 둘러보았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주변의 참모들의 불안하다는 듯이 물었다.

“중장 동무, 무수기 일이라도 있음네까?”

한참 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리부일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하늘이었다.

하늘에서 아주 작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집중해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들리지도 않을 만큼 아주 작은 소리였다.

리부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거이...... 뭐이야......?”

참모들이 일어서서 리부일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올려다보았다.

일월촌 남쪽 하늘에서 눈에 보일 듯 말 듯 한 까만 점들 한 무리가 몰려오고 있었다. 마치 이동하는 철새 무리처럼 보이기도 했고, 뿌연 먼지 구름처럼 보이기도 했다.

까만 점들은 거의 일월촌과 같은 높이의 상공에서 최단거리로 날아오고 있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리부일과 빨치산 참모들의 눈에 까만 점의 실체가 정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국군의 무인 항공 드론이었다. 한국 계엄군들이 비밀리에 컨테이너에 싣고 들어온 물건이 바로 이 것이었다.

프로펠러가 달린 드론 50여기에는 저마다 20리터 말통 크기의 케이스가 부착되어 있었다.

드론들은 미리 시스템에 세팅된 좌표에 따라 일월촌 이곳저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드론은 건물 위에 멈춰서 있기도 했고, 어떤 드론은 건물 안으로까지 날아 들어가기도 했다.

빨치산들과 폭도들, 인질로 붙잡혀 있는 한국인들도 모두 일월촌 일대를 날아다니는 드론들을 목격했다. 생각치도 못한 드론들의 출현에, 그들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넋을 놓고 드론들의 비행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 빨치산들은 밤샘 탓에 상황 판단력이 흐려졌는지, 드론을 보고도 즉각적인 조치를 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한국 계엄군들은 일월촌이 가까이 보이는 시가지에 임시 전술 지휘소를 차려놓고 있었다. 그 곳에는 전날까지 우성 실내 체육관에 감춰 놓았던 군용 컨테이너들도 도착해 있었다.

군용 컨테이너 안에는 무인 항공 드론을 조종하는 육군 드론봇 전투단원들이 각자의 기기 앞에 앉아 드론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컨테이너들 앞에는 이들을 통제하는 드론봇 전투단장이 전술 테이블 위에 여러 대의 모니터를 두고 각 드론들의 상황을 영상으로 체크하고 있었다.

“드론 1진이 모두 목표지점에 도착했습니다.”

드론봇 전투단장이 우성시 계엄군사령관 직무 대행 62사단 부사단장에게 작전 준비 완료 상태임을 보고했다. 모니터를 통해 함께 상황을 지켜보던 부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시오.”

부사단장의 지시가 덜어지자, 드론봇 전투단장이 헤드셋에 달린 마이크로 드론 조작병들에게 즉시 명령을 내렸다.

“현 마이크부로 ‘유격장 가스실’ 작전 시작, 가스! 가스! 가스!”

드론을 조작하고 있던 수십 명의 병사들이 동시에 커맨드 버튼을 눌렀다.

일월촌 일대의 드론들이 일제히 쉬익!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케이스에서 희뿌연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빨치산과 폭도들은 처음에는 연기에 놀라 당황하다가 이내 눈물 콧물을 쏟으며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드론이 뿜어내는 연기는 최루가스의 일종인 CS가스였다. 군인들이 유격 훈련 화생방 교육 때 가스실에 들어가 마시는 그 CS가스였다.

CS가스와 접촉한 이들은 모두 눈과 코, 피부의 따가움을 이기지 못하고 가스를 피해 이리 저리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도망은커녕 눈도 제대로 못 뜨고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상태에서 입과 코로 침과 콧물을 질질 흘리고 고통에 몸부림칠 뿐이었다.

일월촌 내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드론들이 일월촌의 50여 곳에 골고루 분산되어 CS가스를 뿌려놓은 탓에,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스연기를 피해 달아날 곳은 오직 일월촌 바깥 밖에는 없었다.

드론 1진이 모든 CS가스를 분사하고 복귀하기 위해 기수를 돌리자, 곧장 대기하고 있던 50여기의 드론 2진이 일월촌을 향해 날아올랐다. 드론들은 50여기씩 총 5개진까지 준비되어 있었고, 드론들은 돌아올 때마다 다시 CS가스를 재충전 받을 예정이었다.

드론들이 쉬지 않고 날아오며 CS가스를 뿜어대자, 일월촌에 있던 모든 빨치산들과 폭도들은 순식간에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 버렸다.

일월촌에 인질로 붙잡혀 있는 한국인들도 이 CS가스를 들이마시고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살상력이 없는 CS가스의 특징 덕에, 괴롭긴 하겠지만 죽을 염려는 없었다.

일월촌으로 곧게 뻗은 진입로를 향해, 한국군 K808 차륜형 장갑차가 90km/h의 속도로 전력을 다해 달려들고 있었다.

장갑차는 일월촌 입구를 가로 막고 있던 카고 트럭을 그대로 들이 받았다. 그 충격에 카고 트럭은 일월촌 안으로 주욱 밀려나버리고, 일월촌 입구는 완전히 개방되었다.

입구 주변에도 총을 든 빨치산들과 폭도들이 있었다. 그들은 CS가스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일월촌 안으로 들어온 장갑차를 향해 총을 겨누려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장갑차 위에 달린 RCWS 무인 총탑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주변에 있던 빨치산들과 폭도들에게 K­12 기관총탄을 쏟아 부었다. 그와 동시에 장갑차 후면의 해치가 열리며 안에 있던 병력들이 뛰어나왔다.

13 특수임무여단의 특전사 병력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보호두건이 결합된 K­5 방독면에 방호수갑을 착용하고 있었고, 워리어 플랫폼 신형 방탄 헬멧과 패널을 삽입하는 방탄복까지 입고 있었다.

탕, 타다당! 탕! 탕! 타다당!

총 12명의 특전사들은 하차 하자마자 정교한 사격으로 적들을 눈 깜작할 사이에 쓸어버렸다. CS가스 때문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던 빨치산들과 폭도들은 총 한번 못 쏴 보고 맥없이 쓰러져 갔다.

특전사들은 대부분 STC­16A2 소총을 들고 있었다. 원래 K­1A1 기관단총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STC­16을 대테러전 버전으로 개량한 총이었다. STC­16A2는 탄이 사람 몸을 관통하지 못하게끔 가스압이 조절되어 있었다. 적과 민간인이 혼재된 상황에서 적을 관통한 탄에 민간인이 맞거나 부상을 당하는 상황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탄의 위력이 줄어든 만큼 상대를 제압하거나 한 방에 살상하는 능력도 함께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특전사들은 총에 맞아 쓰러진 빨치산과 폭도들의 가슴과 머리에 한 방씩 더 탄을 박아 넣으며 확인 사살을 했다.

특전사들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너무나 효율적이었다. 이들 대부분 2차 한국 전쟁 초기부터 북한 지역에서 전투를 벌여온 베테랑들이었다. 이들은 입구의 적들을 모두 정리하자마자 물 흐르듯 흩어져 이동하기 시작했다.

특전사들은 2개조로 나누어 입구 쪽 주변 건물들로 진입해 수색을 시작했다. 입구 주변 잔적들을 소탕하고 후속 병력들의 진입을 엄호하기 위함이었다.

K808 장갑차 안의 선탑 장교는 특전사들을 대신해 지휘 본부로 무전을 보냈다.

“당소 코뿔소 하나, 코뿔소 하나 라고 알리고, 현 마이크부로 퍼스트 웨이브가 게이트 하나 진입 완료했고, 당측 피해 없다고 알림, 이상.”

[코뿔소 하나, 흑표 알파 퍼스트 웨이브 피해 없이 게이트 하나 진입 완료 입감했고, 게이트 하나 이제 안전하고 세컨드 웨이브 진입 가능한지 확인 바람, 이상.]

“현 마이크에 흑표 알파 게이트 하나 청소 중이라 알리고, 모두 클리어 되고 세컨드 웨이브 진입 가능해지면 다시 알리겠구나, 이상”

특전사들이 건물 안으로 진입하기 전, 특전사 중대장이 K­5 방독면 음성진동판에 부착된 워리어 플랫폼 무전기로 중대원들에게 명령했다.

“총 든 놈은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고, 총을 들지 않았어도 성인 남자는 일단 적이라고 생각하고 상황에 따라 판단하도록.”

특전사들은 발소리를 죽이고 사주경계를 하며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CS 가스로 희뿌연 해진 건물 안에 붉은 레이저 빛들이 어지러이 춤을 추었다. 특전사들의 총에는 모두 레이저 표적지시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모두 K­5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는 터라 조준 사격 자세를 취하기 힘들었는데, 레이저 표적지시기 덕분에 지향 사격 자세 상태에서도 근거리 탄착점에 정확한 사격이 가능했다.

선두로 이동하던 특전사 대원이 건물 안에서 목을 부여잡고 땅바닥에 구토를 하고 있는 빨치산 두 명을 발견했다. 그들 곁에 놓인 총을 본 특전사 대원은 지체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당! 타다당!

STC­16A2는 단발과 연발 두 가지 기능만 있었지만, 특전사들은 조종간을 연발로 놓고도 세발씩 정확히 끊어서 점사로 사격했다.

다른 특전사 대원들이 총에 맞아 쓰러진 빨치산들에게 다가가 머리와 가슴에 다시 한 방씩 쏘며 확인 사살했다. 적들의 숨이 완전히 멎은 것을 확인한 이들은 곧 다른 곳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탕! 탕!

맞은편 건물에서 총탄이 날아왔다. 총소리를 들은 빨치산들이 건물 안에서 사격한 모양이었다.

특전사들이 신속하게 총탄이 날아온 방향의 건물로 접근했다. 중대장의 수신호에 따라 특전사 대원 하나가 전술조끼에 달린 폭음섬광탄을 꺼내 안전 고리를 뽑아 들었다. 중대장이 건물의 문을 열자 대원이 문 안으로 폭음섬광탄을 투척했다.

쾅!

귀를 찢는 소리와 함께 문 밖까지 눈부신 섬광이 번쩍였다. 특전사 대원 둘이 문을 박차고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곳에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4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둘은 총을 든 남자였고, 둘은 민간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였다. 특전사들은 총을 든 자들을 먼저 쏘아 쓰러뜨리고, 총을 들지 않은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그 자리에 밀쳐 쓰러뜨렸다.

“고개 숙여! 머리에 손 올리고 고개 숙여! 고개 숙이라고!”

“살려주세요! 우리 북한군 아니에요! 여기 끌려온 사람들이에요!”

남자와 여자는 CS가스 때문에 거의 울부짖으며 소리 질렀다. 특전사들을 그들의 몸을 수색한 뒤 창가로 데리고 가 서 있게 했다.

선봉으로 들어온 특전사 팀이 건물 입구 일대 건물들을 수색하며 사살한 적의 수는 30여명이 넘었다. 그들 모두 CS가스 때문에 정신 못 차리는 상태에서 특전사들에게 순식간에 당해버렸다.

입구를 완전히 장악한 특전사 중대장은 대원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한 후, 장갑차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 선탑 장교에게 엄지 하나를 펴 보였다. 선탑 장교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무전을 보냈다.

“당소 코뿔소 하나라고 알리고 흑표 알파가 게이트 하나 장악 완료했다고 알림. 세컨드 웨이브, 서드 웨이브 모두 진입 가능하겠구나, 이상.”

[당소 입감했고, 세컨드 웨이브 현 마이크부로 출발한다고 알림, 이상.]

무전이 끝나자 일월촌으로 향하는 진입로로 특전사들을 태운 9대의 K808 장갑차들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리 위로는 CS 가스를 가득 채운 새 드론들이 일월촌 일대를 날아다니며 쉴 세 없이 가스를 뿜어대고 있었다.

리부일은 수통의 물로 옷소매를 적셔 입과 코를 틀어막아 보았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얼굴은 온통 시뻘겋게 달아올라 미칠 듯이 따끔거렸고,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기침을 할 때마다 폐가 찢어질 듯 아프기까지 했다.

“남조선 괴뢰군 이 종간나 새끼들...... 하다하다 뭐 이런 개좆같은 짓을...... 쿨럭!”

리부일은 빨치산들에게 수건이나 천쪼가리들을 물에 적셔 마스크처럼 쓰게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CS가스를 막는데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따가움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비비거나 피부를 만진 이들은 더 끔찍한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잘 훈련된 북한 정찰총국의 최정예들도 더 이상 정상적인 전투를 수행할 수 없었다.

일부 외국인 폭도들이 CS가스를 피해 건물에서 뛰쳐나와 일월촌 언덕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하지만 일월촌 언덕 아래는 모두 한국 계엄군들이 물샐틈없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도 모두 방독면을 착용한 상태였다.

“총 든 놈은 무조건 쏴! 사격! 사격!”

계엄군들이 총을 들고 있는 폭도들을 향해 조준 사격을 실시했다. 눈물 콧물에 침까지 질질 흘리며 언덕을 뛰어내려오던 외국인 폭도들은 총에 맞아 그대로 땅바닥에 나자빠졌다. 그들의 시신이 언덕을 따라 데굴데굴 굴러 내려왔다. 계엄군들은 언덕 아래까지 굴러온 폭도들의 시신을 향해 다시 한 번 사격을 가하며 확인 사살했다.

총을 들지 않은 외국인 폭도들은 언덕 아래까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계엄군들이 뛰어나와 개머리판으로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케이블타이로 손발을 묶어 질질 끌고 갔다.

한국인들이 일월촌을 탈출해 언덕을 내려오는 경우, 일단 여자와 아이들은 무조건 안전하게 후방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성인 남자의 경우 만약을 대비해 손을 등 뒤로 해서 케이블타이로 묶어 따로 격리시켰다. 이들 가운데 민간인으로 변장한 빨치산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CS가스는 일월촌을 너머 인근 동네에서도 맡을 수 있었다. 작전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민간에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에, CS가스를 조금이라도 맡은 시민들이 놀라 대피하기 시작했다. 이를 대비해, 62사단 부사단장이 곳곳에 배치한 병력들이 경광봉을 들고 시민들은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안내했다.

“작전 중에 사용한 최루가스입니다! 살상력이 있는 가스가 아니니 안심하시고, 안내에 따라 대피해주십시오!”

시민들은 손으로 입과 코를 막고 군인들의 안내에 따라 일월촌과 멀리 떨어진 곳을 향해 대피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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