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2027년 8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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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경기도 우성시 일월동
빨치산들이 새벽에 일월촌에서 도망치려던 가족들을 붙잡아 왔다. 남편과 아내, 초등학생 남자아이 이렇게 3명이었다.
이들은 일월촌 외곽 건물에서 커튼 몇 개를 밧줄처럼 이어 붙여, 이걸 붙잡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하지만 이들의 탈출 시도는 너무 쉽게 발각되었고 말았다.
그들은 탈출하다 붙잡혀 왔으니 이제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몹시 불안해하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리부일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아이)는 올해 몇 살이오?”
남편이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9살......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그때, 아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부부는 어떻게 돼도 좋으니 저희 아이만이라도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 이제 겨우 9살이고 학교도 다녀야 하는 아이입니다. 제발 저희 아이만이라도 살려주세요.”
리부일은 그들의 눈빛을 피하려는 듯, 일부러 뒤돌아서서 말했다.
“부모도 없이 아(아이)만 혼자 내보내면 저 아(아이)는 어찌 먹고 살란 말이오? 전쟁 통에 부모 없이 홀로 남겨진 아이는, 야생 속을 어미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어린 짐승과 진배없소.”
리부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옆에 선 참모에게 나지막한 귓속말을 하고는 다시 붙잡혀 온 가족들을 돌아보았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오. 여기 있는 동안 먹고 사는 건 문제없게 해줄 테니, 두 번 다시 도망갈 생각일랑은 하지 말기요.”
그 말에 남편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리부일을 바라보았다.
“그럼...... 아무런 처벌도 없이 그냥 살려주신다는 말씀입니까?”
“여기 온 남조선 인민들 중 도망 안 가고 싶은 동무레 누가 있갔오? 내 어찌 그 마음을 모르겠냔 말이오. 그치만 어찌하오? 지금 우리는 전쟁 중인데. 그러니 동무들이 이해 좀 해주었으면 하오. 내 이번은 돌려 보내줄 거이니, 자숙하시오.”
리부일이 손짓하자 빨치산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나갔다. 남편과 아내는 리부일을 돌아보며 연신 ‘감사합니다’하고 소리쳤다.
곁에 서 있던 참모가 리부일에게 말했다.
“......본보기로 처형하실 줄 알았습네다.”
리부일은 주머니에서 몇 개비 남지 않은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총 들고 싸울 전사들도 필요하지만, 남조선 괴뢰군을 막아줄 총알받이들도 필요하디 않갔어? 도망가는 놈들 볼 때마다 다 쏴 죽이면, 우린 우리가 쓸 방패들을 스스로 부러뜨리는 거이야.”
리부일은 담배에 불을 붙인 후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본보기로 처형하는 건 이미 시청 앞에서 많이 했지 않네? 그것도 남조선 정부하고 협상을 빨리 이끌어내려고 한 짓이디, 우리가 사람 죽이고 싶어서 안달 나 그런 건 아니지 않네? 빨치산은 결국 인민들의 협조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는 작전이야. 이제 우리한테는 여기 코딱지만 한 일월촌 언덕 하나 밖에 안 남았는데, 이곳 인민들 인심마저 잃어버리면 남조선 괴뢰군들하고 한 판 붙기도 전에 내부에서부터 먼저 무너지는 수가 있어.”
연기를 내뿜는 소리는 마치 한숨을 내뱉는 것과 같았다.
“또, 인민들이 무슨 죄가 있갔네? 이 전쟁이 죄가 있는 거이지. ”
가족들이 끌려나간 직후 45호실 공작원 조장이 들어왔다. 리부일은 담배를 입에 물고 그를 맞이했다.
“벌써 다녀왔네? 옷이 아주 깨끗한 거 보이, 오가는 동안 남조선 괴뢰군들과는 인사도 안 하고 온 모양이구만기래.”
“네, 일 없었습니다.”
“그래, 새로운 동향이라도 있는 거이야?”
조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성시로 남조선 괴뢰군의 지원 병력이 도착했습네다. 첫 번째 지원 병력은 특전사 13 특수임무여단으로, 검은 베레모와 흑표 흉장을 통해 식별했고, 인원은 2개 대대 이상 도착한 것으로 파악됩네다.”
리부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특전사 13 여단이면 참수 부대 중 하나라는 그...... 남조선이...... 기어이 여기에 특전사까지 들이밀었구나야...... 조만간 결착을 지을 생각인가 보구만기래......”
조장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부대는...... 컨테이너 트럭을 통해 장비를 가지고 온 부대인데, 정확히 어떤 장비를 사용하는 부대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네다.
“컨테이너? 무신 컨테이너?”
“확실한 건 알 수 없지만, 포나 전차와 같은 중화기는 아닐 것으로 판단됩네다. 그리고 소화기나 탄약 등 보급품을 운반하는 차량이라면 보급이 끝나고 돌아갔어야 했는데, 계속 이곳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앞으로의 작전에 쓰일 장비라고밖에는 판단할 수 없을 것 같습네다.”
리부일은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며 말했다.
“동무네 조원들은 언제 다시 나가나?”
“48시간 후 입네다.”
“그때, 꼭 그 컨테이너에 무어를 들고 왔는지 확인해 보기오. 남조선 특전사들까지 왔다면, 뭔가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칠 장비를 가지고 온 걸지도 모르니까.”
조장은 리부일을 향해 경례를 하고 다시 돌아갔다.
오전 10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경찰서, 현 국회 특위 임시 조사 본부
영록은 오늘도 지하 1층 조사실 앞 계단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의 눈은 멘탈이 나간 듯 초점 없이 멍한 상태였다.
지난번 거리에서 본 유민과 성모의 모습이 여전히 그의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었다.
‘두 사람...... 어디까지 간 걸까? 설마...... 유민이가 성모 형과 잔 걸까?’
그날, 성모가 건물 안으로 유민을 데리고 들어가며 그녀의 엉덩이를 만지던 모습이 계속 생각났다.
그러면서도, 유민은 계속 웃고 있었다.
영록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그 충격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키스까지 한 거면 사귀는 건 맞는 거 같아. 두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이제...... 나는 기회가 없는 걸까?’
영록은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유민이 좋아서 그녀만 바라보고 계속 졸졸 따라다녔는데,
결국, 끝은 다른 사람의 품에 안겨 키스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거라니......
이제까지는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유민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용기는 없었지만,
이제는 더이상 고백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게 된 것 같다는 생각에, 세상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위층에서 사람 몇 명이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영록은 누가 오든 말든 고개를 푹 숙이고 풀죽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계단 위에서 마선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그거 사왔냐?”
“네, 형님. 아까 나가서 사가지고 왔습니다.”
“크크, 그거 살 때 가게 주인이 뭐라고 안 하든? 민증 확인 같은 것도 안 하고?”
“에이, 요즘 전쟁 때문에 다 먹고 살기 힘든 판인데, 우리라도 팔아주면 그저 고맙다고 하지, 뭘 그리 꼬치꼬치 캐묻겠습니까?”
“씨발, 잘됐네. 할 때 다 그거 끼고, 다 하면 옆에 샤워기 있으니까 잘 씻어라. 이미 다른 형님들이 몇 번씩 돌려먹고 우리 준거니까, 괜히 병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네, 형님.”
마선욱과 그를 따라다니는 양아치들은 계단 앞에 서 있는 영록은 안중에도 없는 듯, 뭐가 그리 신나는지 연신 키득거리며 조사실 방화문 안으로 들어갔다.
오후 12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경찰서, 현 국회 특위 임시 조사 본부
근무 교대 후, 영록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근무자 휴게실로 쓰이고 있는 전 경찰 당직실로 들어가 TV를 켜고 누워 버렸다.
며칠간 먹는 게 먹는 거 같지도 않았고, 자는 게 자는 거 같지도 않았다.
눈을 감으면 그때 생각이 계속 나고, 눈을 뜨고 있어도 그때 모습이 아른거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TV라도 억지로 보고 있어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TV에서는 전황을 전하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한국군은 개마고원을 천천히 점령해가며 남아있는 북한군들을 조여 들어가고 있고, 전쟁 종식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이어서 다음 보도가 나왔다.
[......특검은 민주시민당 김창수 대표가 전쟁 전 북한의 도발 정황들과 현재 한반도 전역에 침투한 북한 빨치산들의 활동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는 증언들을 확보하고, 이에 김 대표를 국가보안법 위반 및 내란 혐의로 조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특검은 민주시민당 당사 및 김 대표 자택에 대한 압수 수색을 진행할 예정이며......]
눈으로는 뉴스를 보고 있었지만 저게 통 무슨 말인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머리에 남지도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TV를 보고 있을 때, 작고 뚱뚱한 조폭 하나가 휴게실로 들어왔다. 그는 혼자 있는 영록을 보고는 손짓하며 말했다.
“야, 너 쉬는 시간이지? 위병소로 가봐. 뭐 시킬 거 있다니까.”
영록은 주섬주섬 신발을 신고 일어나 힘없는 발걸음으로 위병소로 나갔다.
위병소 근무자들은 배달 음식이 가득 든 봉지 두 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영록이 다가오자 봉지를 내밀었다.
“지하 1층 9호 조사실에 갖다 줘.”
영록은 말없이 봉지를 받아들고 지하 1층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조사실 안에서 비명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영록은 방화문을 지나 복도 끝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9호 조사실로 걸어갔다.
잠시 일전에 다른 조사실에 음식을 가져다줄 때 보았던 거꾸로 매달려 고문당하던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다리와 엉덩이에 박혀 있던 스테이플러들과 몸을 타고 흘러내리던 붉은 핏방울들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고 있었다.
순간 영록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지금 저 안에도 고문당한 누군가가 있겠지? 빨리 음식만 전해 주고 나가자.’
9호 조사실 앞에 서서 노크를 하니, 안에서 사람들의 웃는 소리와 왁자지껄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중에는 평소 자주 듣던 목소리도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목소리도 들려왔다.
여자 목소리였다.
아니, 여자가 내는 소리였다.
거친 숨소리와 아픈 듯한 신음 소리,
애달프고 구슬프게 울부짖는 소리였다.
영록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조사실의 문이 열렸다.
예상대로 안에는 마선욱과 그를 따라다니는 양아치들 5명이 있었다.
그들 모두 위아래 옷을 훌떡 벗고 있거나, 팬티만 입은 채로 의자와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었다.
그 중 마선욱 만이 일어나 있었다.
영록은 마선욱의 벗은 몸을 처음으로 보았다. 원래 거구인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선욱의 어깨부터 허벅지까지는 일본 야쿠자들이 하는 이레즈미가 울긋불긋하게 문신 되어 있는 것은 오늘에야 처음 알았다. 왼쪽 팔뚝의 벗은 여자 문신과 등 뒤의 이빨 튀어나온 일본 오니의 문신이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그는 영록에게 등을 보인 채로 몸을 마구 앞뒤로 흔드는 중이었다.
몸은 그가 흔드는데, 어디선가 여자의 신음 소리가 계속 들렸다.
방 안에 들어가자마자 숨이 탁 막혔다. 조사실 안은 양아치들이 피워 대는 하얀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연기 때문에 바로 앞에 있는 것도 잘 안 보일 정도였다.
“야, 왔냐? 밥 가지고 들어 와.”
양아치 중 한 녀석이 영록을 향해 담배 든 손으로 손짓을 했다. 영록은 쭈뼛거리며 조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조사실로 들어서자 복도와는 다른 알 수 없는 서늘한 한기에 소름이 돋았다.
“야 누구냐?”
마선욱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밥 왔습니다, 형님.”
“앞에 세팅하고 있어. 바로 한 발 싸고 갈라니까.”
“네, 알겠습니다. 형님.”
영록은 양아치들이 시키는 조사실 바닥 위에 음식들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양아치들을 키득거리며 배달 온 음식들의 포장들을 까기 시작했다.
마선욱이 여전히 몸을 흔들며 말했다.
“야, 밥가지고 온 쟤는 또 누구냐?”
그러자 양아치 한 녀석이 영록을 툭툭 치며 물었다.
“야, 너 이름 뭐냐?”
영록은 바짝 쫄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영록인데요......?”
“형님, 지영록이라고, 왜 학교서부터 우리 따라온 그노마 있지않습니까? 걥니다.”
“아, 작고 삐쩍 꼴은 걔?”
갑자기 마선욱의 몸이 더 빠르게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아, 아아, 아아~!”
그러자 여자의 자극적인 신음 소리는 더 커지고, 더 빨라졌다.
영록은 조심스레 마선욱이 있는 곳을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마선욱의 널찍한 등짝 너머로, 여자의 나신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여자는 마선욱처럼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는 두 손이 수갑에 채워진 채로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마선욱은 손으로 여자의 몸을 매만지며 그녀의 엉덩이에 쉬지 않고 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그가 몸을 흔들 때마다 팡, 팡, 팡 소리가 조사실 가득 울려 퍼졌다.
영록은 벗은 여자의 몸을 난생 처음 보았다. 그는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돌린 채, 서둘러 봉지에서 그릇들을 꺼내놓고 있었다.
갑자기 마선욱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수갑에 매달린 여자도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비명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축 처졌다.
“아, 씨발, 간만에 하니까 좆나 나오네. 크크크. 이제 밥 먹자.”
마선욱은 여자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고는 그의 남근에서 콘돔을 둘둘 잡아 빼며 킬킬거렸다. 그는 정액이 가득 들어 있는 콘돔을 축 늘어진 여자의 등 위에 얹어놓고는 밥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맛있게 드십시오, 형님!”
“오냐, 이제 먹자~!”
마선욱이 자기 몫의 그릇을 들었다. 영록은 그만 조사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 마선욱이 그를 불러세웠다.
“너, 지영록이라고 했지? 밥은 먹었냐?”
“네, 먹었어요.”
“너 몇 살이라고 했지?”
“00살이요.”
“너 전에 서울에 살다가 왔었다고 했지?”
“네, 맞아요.”
“야, 너 근데 아다냐?”
“네???”
마선욱의 물음에 영록이 깜짝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새끼~ 너 씨발 아다냐고? 여자애 따먹어 본 적 없냐고?”
영록의 얼굴이 새빨게졌다.
“아, 아, 네......”
영록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주변에 있던 양아치들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아, 형님. 딱 봐도 아다 같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이런 쪼다 새끼가 여자 따먹을 줄이나 알겠습니까?”
“얘 그냥 범생이 스타일인 거 같지 않습니까? 공부만 하느라 뭐 할지나 알까요?”
영록은 얼굴이 화끈거려 더는 있을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마선욱이 그를 다시 불렀다.
“야, 좀만 기다려. 형이 너 아다 때는 거 도와줄 테니까.”
“네???”
마선욱은 당황해하는 영록의 모습이 우스운지 썩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등 뒤를 가리켰다.
“저 뒤에 저년 보이지? 형이 이따 저년 데리고 니 성교육 해 줄 테니까, 다 먹을 때까지 쫌만 기다려. 그동안 너도 우리랑 같이 고생 많이 했는데, 이 정도는 보상해줘야지.”
그가 가리킨 뒤로 조금 전까지 마선욱과 함께 신음 소리를 내며 헐떡이던 여자가 천장에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마선욱과 양아치들은 그녀를 풀어줄 생각도, 하다못해 밥이라도 먹일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의 긴 머리는 심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얼굴로 보았을 때 스무 살 초중반쯤 되어 보였다. 그녀는 추워서 몸을 떠는 것인지 울고 있는 것인지 계속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저년, 엊그제부터 형님들한테 졸라 돌림빵 당했더니 이젠 좆나 순종적으로 변한 거 같더만. 완전 발정 난 암캐 다 됐어. 좆물이고 뭐고 다 받아 들이더만, 씨발 년.”
“아직 대학생이라 그런지 좆나 박았는데도 보지가 탱탱한 거 같지 않습니까?”
“그래도 아직 뻣뻣해. 몸이 익지를 않았어.”
“저년, 이번에 잡혀들어온 년들 중 제일 어린 거 같지 않습니까? 뭐 하는 년이랍니까?”
“뭐 또, 민주시민당에서 어쩌고저쩌고하는 일 하는 년이겠지. 거기서 알바를 했건 뭐를 했건 연관이 있으니까 잡혀온 거 아니겠냐? 하여튼 민주시민당하고 관계된 것들은 다 빨갱이들이라 죄다 가만두면 안 돼. 다 십창을 내버려야 해.”
마선욱은 비열하게 웃으며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웠다. 영록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 자리에 안절부절못한 모습으로 계속 앉아 있었다.
양아치들은 음식을 다 먹고는 빈 그릇을 봉지 안에 대충 쑤셔 박아 치워 버렸다. 양아치 한 녀석이 방구석에 치워 놓았던 콘돔들을 가져와 봉지에 담았다. 그 수는 한 움큼이 넘을 정도였다.
“자, 소화 시키는 동안 이 새끼 아다 때줘야지? 야, 너 이리와 봐.”
마선욱은 영록의 어깨를 잡고 천장에 매달린 여자에게로 데리고 갔다.
그는 여자의 몸을 빙글 돌렸다. 여자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저항할 힘도 없어 보였다.
여자의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영록은 순간 멈칫했다.
“뭐 하냐, 새끼야. 옷 안 벗어?”
마선욱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손바닥으로 영록의 등짝을 후려쳤다. 영록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허겁지겁 옷을 벗기 시작했다.
영록이 바지를 내리자 양아치들이 박장대소하며 웃기 시작했다.
“씨발, 거기 달린 게 고추냐? 좆나 작아 보이지도 않네, 씨발.”
“야, 저년, 우리랑 박다가 저 새끼랑 박으면 아무 느낌도 안 나겠다. 저 새끼 완전 우리 아빠 도장만 하네.”
마선욱도 같이 낄낄거리며 영록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야, 다 벗었으면 이제 니가 하고 싶은 거 해봐.”
“에, 네?”
“아, 씨발, 병신아. 이 년 빨통을 주무르든 빨든 니가 해 보고 싶은 거 마음껏 해보라고! 이 새끼, 병신같이 줘도 못 먹네.”
마선욱이 다시 한번 영록의 등을 찰싹 때렸다.
영록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여자의 가슴을 만지기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만져보는 여자 가슴이었다.
여자의 가슴은 부드럽고 말캉했다.
손바닥 안으로 여자의 젖꼭지가 느껴졌다.
영록의 심장은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쿵쾅거렸다.
그냥 만지고 있어도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여자는 계속 고개를 떨군 채 가만히 있었다.
“자, 이제 키스하고 싶으면 해봐.”
마선욱이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강제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 영록은 유민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벗은 여자의 몸이 유민의 몸인 것만 같았다.
“아, 새끼~ 이것까지 도와줘야 해? 자, 얼굴 가까이 대라고.”
마선욱이 영록의 뒤통수를 여자의 얼굴 쪽으로 밀었다. 영록의 가슴에 여자의 젖가슴이 포개졌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영록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여자의 허리를 껴안은 두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오후 1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경찰서, 현 국회 특위 임시 조사 본부
서너 명의 조폭들이 9호 조사실로 들어와, 이제 자기들 차례라며 마선욱과 양아치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아이들은 모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
영록은 여전히 이들과 함께 있었다.
“와, 간만에 원 없이 하니까 존나 개운하네.”
“그러게 말입니다. 내일 또 오면 안 됩니까?”
“이따 형님들한테 말해 놓을게. 자, 담배나 피러가자.”
마선욱은 양아치들과 함께 경찰서 뒤 흡연장으로 갔다. 영록은 계속 그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마선욱이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며 영록을 바라보았다.
“야, 지영록. 어땠냐, 좋았냐?”
영록은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양아치들은 그걸 보고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깔깔거렸다.
“찐따 새끼가 아다 땠으니, 좋아 죽지 말입니다.”
“마, 이제 이 형님 잘 따라다녀. 그럼 자다가도 떡이 생기고 오늘처럼 떡칠 일도 생기니까.”
그들의 말에 영록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양아치 중 한 명이 말했다.
“아, 근데, 이제 성모 형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유 목사님 죽었으니까, 이제 바로 교회 물려받는 겁니까?”
마선욱이 어이없다는 듯이 양아치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며 말했다.
“새꺄, 성모가 지금 몇 살인데 교회를 물려 받냐? 게다가 지금 목사도 아닌데, 교회에서 뭘 할 수나 있겠냐?”
“그, 그럼 성모 형님 이제 교회 뺏기는 겁니까?”
양아치는 아픈 듯 한쪽 눈을 찡그리고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말했다.
“교회는 당분간 우리 아버지가 관리해 줄 거야. 일단 다른 데에서 목사 한명 청빙해 와서 담임 목사로 세운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성모는 내년에 외국으로 유학 보내서 거기서 목사 안수까지 받게 한 다음에 귀국시켜서 교회 담임 목사로 세울 거야. 성인이 되고 목사 안수까지 받은 후에 교회를 물려받아야 아무 문제없게 되니까 말이야.”
“근데 원래 교회라는 게, 아버지가 아들한테 물려주고, 이런 건 원래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안되는 게 어디 있어, 새꺄! 다른 교회 다 그렇게 하는데. 그리고 우리 교회 알고 보면 우리 아버지랑 성모 아버지 유목사님이 다 성장시킨 건데. 따지고 보면 우리 아버지랑 성모 아버지 꺼지, 누구 거야? 그리고 나중에 성모랑 내꺼가 되는 거고.”
마선욱을 낄낄거리며 기분 좋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럼, 성모 형님 유학가면, 그 냄비도 데려간답니까?”
“냄비? 아, 그년~ 그 기유민인가, 거유민인가 하는 년?”
그들의 입에서 유민의 이름이 나왔다. 영록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기 시작했다.
“요즘 성모가 그 년에 푹 빠져 있는 거 같긴 하더만. 맨날 그년 옆에 끼고 돌아 다니고. 근데 모르지. 성모 그 새끼 원래 연애하면 금방 싫증 내는 타입이라, 사귀다가 몇 번 따먹으면 질려서 그냥 버릴걸?”
“그 년 00살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생긴 것도 그렇고 몸매도 그렇고 완전 아이돌 뺨 후려치게 생겼던데, 어떻게, 성모 형님 홈런은 치셨답니까?”
“홈런? 새끼야, 성모가 어떤 새끼인데, 홈런도 좆나 여러 번 쳤지. 처음부터 만루홈런이라고 하더만.”
“와, 성모 형님 대박~!”
마선욱과 양아치들을 뭐라 하는지 알 수 없는 말로 떠들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근데 성모가 유학 갈 때 그년까지 데리고 가지는 않을걸? 걔도 그냥 엔조이하다가 버릴 거 같던데. 성모가 그년 버리면 그때는 내가 좀 데리고 놀면서 따먹어야겠다. 그년 몸매 졸라 오지던데, 씨발.”
“그년 몸매 보셨습니까? 어떻게 아십니까?”
“성모가 다 보내줬지, 새끼들아. 원래 우리는 각자 따먹은 년들 사진 찍어서 서로 나눠보거든? 이 정도는 돼야 진짜 불알친구 베스트 프렌드 아니겠냐? 아, 니들도 그년 몸매 한 번 볼래? 아까 그년하고 비교도 안 돼, 씨발. 몸매 졸라 오져. 보자마자 쌀 수도 있어.”
마선욱은 키득거리며 뒷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양아치들도 모두 그의 뒤로 몰려들었다.
“와, 씨발. 이 년 몸매 개지렸다.”
“허리가 저렇게 날씬한데 어떻게 빨통이 저렇게 클 수 있냐? 골반도 장난 아니고...... 어린년이 벌써부터 저렇게 크면, 나중엔 얼마나 더 커지는 거야?”
“성모 형님이 졸라 만져 줘서 커졌나 보지, 뭐. 근데 씨발, 저년도 완전 발랑 까진 년인가 보네. 저렇게 시키는데로 사진 다 찍은 거 보니.”
“와, 형님! 저년 나중에 나한테도 한번 대달라고 하면 그냥 줄 거 같이 생겼어.”
양아치들의 말에, 영록은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조심스럽게 양아치들 뒤로 가서 그들 어깨 너머로 마선욱의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핸드폰에는 유민이 사진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어디서 났는지, 유민이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부터,
하의를 벗고 군복 사이로 팬티와 브래지어가 드러나게 찍은 사진,
아예 속옷 차림으로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의 유민은 부끄러운 듯이 웃고 있었다.
유민의 이런 표정은 영록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마, 다른 것도 보여줄까?”
마선욱이 천천히 사진들을 옆으로 넘기기 시작했다.
헐벗은 유민의 사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새로운 사진이 나올 때마다 양아치들이 탄성을 질렀다.
“씨발, 죽기 전에 저런 년 따먹어 보면 소원이 없겠다.”
영록은 더 이상 지켜 볼 수 없었다.
속옷만 입은 유민의 사진과, 아까 조사실에서의 여자 모습이 계속 눈앞에 번갈아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