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2027년 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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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경기도 우성시 62사단 계엄군 임시 야전 사령부
8층 계엄군 사령관 집무실로 사단 민사참모가 들어왔다. 집무실 책상에서 골치 아픈 표정으로 보고서들을 들여다보던 김요한 소장이 고개를 들고 그를 맞이했다.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나?”
민사참모는 계엄사령관에게 경례를 올리고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네, 사단장님이 예상하셨던 대로 지금 마두원이 부리는 놈들 중 대부분이 조폭 건달 출신이 맞았습니다. 전과가 없는 놈이 없다시피 할 정도였습니다.”
김요한 소장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거봐,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다고 했지? 그건 그렇고, 지금 우성 경찰서에 잡혀 들어간 사람들 상태는 어떻다고 하던가?”
“그게......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민사참모가 침통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부고발자의 첩보에 따르면 모두 심한 고문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이 건달 녀석들이 어디서 배웠는지, 7,80년대 군사정권에서나 쓰던 갖은 고문들을 다 자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통닭구이처럼 거꾸로 매다는 고문부터 구타, 전기고문, 물고문까지, 악질적인 고문이란 고문은 다 하고 있다는 첩보입니다.”
김요한 소장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미친놈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사람한테 함부로 고문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그 놈들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을 고문 하는 거지? 그들이 빨치산들에게 협력한 사실을 실토하라고 고문하는 건가?”
“그런 것도 있는데, 고문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민주시민당 김창수 대표가 빨치산들과 내통하고 있다고 시인하라는 것이랍니다.”
“뭐? 야당 대통령 후보를 빨치산과 내통한 것처럼 꾸미려고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있었다고?”
김요한 소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난 번 합참의장과의 통화 중 알게 된 대통령이 마두원을 그토록 감싸는 이유에 대해 모든 해답을 찾은 듯 했다.
‘대통령이 왜 이 곳으로 마두원을 보내고 애국 청년 십자군이라는 말도 안 되는 준군사조직까지 붙여주고 온갖 권력을 다 실어주었는지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군. 다음 대선에서 어떻게든 재선에 성공해 보려고 야당 대권 유력주자를 이런 식으로 보내버리시겠다? 씨발, 이런 개새끼를 지금까지 대통령이랍시고 보좌해 왔으니......’
김요한 소장은 불안한 듯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한참 동안 생각에 빠졌다.
고민스러운 듯 눈동자를 이리 저리 움직이며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던 그가 무언가 결심한 듯, 책상 위의 전화기를 들었다.
“계엄사령관이다. 현재 예비대 병력 중 가용한게 얼마나 되지? ......2개 대대? 그럼 전차나 중화기는? 음...... 음...... 오케이, 그럼 지금 가용한 병력하고 장비들, 11시까지 시청 앞으로 모두 집결시켜. 당연히 모두 실탄 지급하고...... 전투? 그래, 내가 직접 지휘하는 전투다. 알아들었으면 빨리 준비하도록!”
김요한 소장은 전화를 끊자마자 자신의 권총을 허리춤의 홀스터에 챙겨 넣었다.
민사참모가 불안한 듯 물었다.
“사단장님, 어찌 하시려 하십니까?”
김요한 소장은 그를 향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보면 모르겠나? 우성 경찰서 점령하고 사람들 구출하러 갈 거네.”
오후 12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경찰서, 현 국회 특위 임시 조사 본부
점심시간이 되자 조사실에 있던 애국 청년들이 중국집에 음식을 시킨 모양이었다. 배달 오토바이가 음식 담은 봉지를 경찰서 입구에 맡기고 갔다.
영록은 새로 온 애국 청년 십자군의 간부로부터 이 음식들을 지하 1층 6호 조사실로 가져다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거의 매일 지하 1층 계단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지만, 조사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영록은 침을 꼴깍 삼키고 음식을 들고 지하 1층 계단 앞 두꺼운 방화문을 밀고 들어갔다.
가운데 긴 복도 양측으로 5개씩 방이 배치되어 있었다. 조사실은 총 10곳이었다.
아직도 방 2곳에서는 고함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영록은 바싹 긴장한 상태로 6호실 문을 조심스레 노크했다.
“누구야?”
안에서 남자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록은 오금이 저리는 걸 간신히 참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식사 가지고 왔는데요.”
6호실 문이 열리고 머리를 빡빡 민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그는 바지만 입고 상의는 벗고 있었는데, 그의 등에는 커다란 용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열려진 문틈으로 조사실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는 작은 간이침대와 의자 여러 개가 있었다. 침대와 의자에는 6명의 애국 청년들이 앉아 담배를 피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방 안은 환기가 잘 되지 않는지 희뿌연 담배연기로 가득했다.
그들이 앉아 있는 곳 너머로는 목욕탕 타일이 깔려져 있었고 샤워기와 작은 욕조도 놓여 있었다.
그리고 타일이 깔려있는 곳 천정에는 옷 한 벌 입지 않고 발가벗겨진 남자가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남자는 천장에 매달려 빙글 빙글 돌고 있었다.
그의 다리와 엉덩이, 배 여기저기에는 검은색 가는 철선 같은 게 박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두꺼운 스테이플러가 몸에 박혀 있는 것이었다. 스테이플러가 박힌 상처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남자의 입술은 계속 움찔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영록에게까지 들리지 않았다.
“야, 음식 주고 얼른 꺼져.”
빡빡 머리 남자는 영록의 손에서 음식 봉지를 잡아채듯 가져갔다. 그러고는 쾅, 하고 조사실 문을 닫아 버렸다.
영록은 멍한 표정으로 조사실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걸어가는 내내 천장에 매달려 피 흘리는 남자의 모습이 눈앞에서 계속 아른거렸다.
‘저 사람들은 빨치산들에게 협력한 것 때문에 고문당하고 있는 걸까? 성모 형은 유민이한테 빨리 자백받기 위해 고문이든 뭐든 다 해도 된다고 말했다고 그랬지? ......그게 정말 옳은 일일까?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이라지만 저렇게 때리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게 괜찮은 일인 걸까? 난...... 아직 어려 잘 모르지만 이건 아니야...... 어떤 이유로도 사람을 때리는 일이 정당화 되면 안 되는 거잖아......’
영록이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다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 때, 갑자기 경찰서 내에 방송이 울려 퍼졌다.
[대기 중인 애국 청년 십자군들은 모두 무장한 상태로 정문 앞으로 집합! 반복한다! 대기 중인 애국 청년 십자군들은 모두 무장한 상태로 정문 앞으로 집합!]
성모의 목소리였다.
영록은 화들짝 놀라 자신의 총을 놓아둔 근무자 휴게실로 달려갔다.
영록은 총을 가지고 급히 경찰서 정문 밖으로 뛰어 나갔다.
밖에 나가자마자 그의 앞에 펼쳐진 광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문 앞에는 수십 명의 애국 청년 십자군들이 총을 든 채로 입구를 막고 서 있었고, 맞은편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무장한 군인들이 경찰서를 에워싸고 있었다.
심지어 군인들 뒤로는 기관총과 K4 유탄발사기를 탑재한 전투 차량들은 물론, 전차와 장갑차까지 와 있었다.
김요한 소장이 이끌고 온 계엄군들이었다.
계엄군들은 애국 청년 십자군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지는 않았지만, 모두들 무서운 눈빛으로 경찰서 정문을 막고 있는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영록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애국 청년들 뒤로 가서 함께 섰다.
계엄군들 사이에 있던 김요한 소장이 지휘차량에서 확성기를 가져와 애국 청년들에게 외쳤다.
“......다시 한 번 경고한다. 너희가 불법적으로 체포하고 감금하고 고문하고 있는 이들의 신변은 지금부터 우리 계엄군이 관리한다. 불응하거나 저항한다면 계엄사령관의 권한으로 너희를 제압하고 안으로 들어가겠다. 불필요한 유혈 사태가 일어나게 만들지 마라.”
애국 청년들 앞으로 성모가 나와 소리쳤다.
“불법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공산당 빨갱이들에게 협조한 반역자들을 잡아와 죄가 있는지 캐내는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불법적인 일을 했다고 하는 겁니까?”
김요한 소장 곁에 있던 법무참모가 확성기를 받아 소리쳤다.
“헌법 제 12조 1항,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속, 압수, 수색, 심문을 받지 않는다. 헌법 제 12조 2항,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 헌법 제 12조 7항,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구속의 부당한 방법에 의한 것일 경우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처벌할 수 없다...... 왜, 헌법만으로도 설명이 부족해? 형사소송법이나 형법,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까지 다 읊어줄까? 가장 기초적인 헌법을 기준으로 들어도 지금 너희들이 하고 있는 것 모두가 다 불법이야! 이 나라에 헌법보다 앞서는 기준이라도 있다는 건가? 아니면 너희들이 헌법보다 위에 있는 존재들이야? 이래도 아닌 거 같으면, 어디 한 번 아니라고 말해봐! 그 순간 너희가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
법무참모 곁에 있던 장교들이 애국 청년 십자군들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그들이 말하는 하나하나를 증거로 삼을 요량이었다.
성모는 분한 듯 이를 악물었다.
“자, 저것들 상관하지 말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서 갇혀있는 사람들 모두 구해서 나와! 저항하는 놈은 제압해도 좋다! 나 계엄사령관이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밀고 들어가!”
김요한 소장의 명령에 선두에 서 있던 계엄군들이 경찰서 정문으로 물밀듯이 밀고 들어왔다. 애국 청년 십자군들은 감히 계엄군들에게 손도 대지 못하고 정문 옆으로 밀려 버렸다.
영록도 계엄군들을 피해 후다닥 문 옆으로 비켜섰다. 그는 불안한 듯 두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경찰서 안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계엄군들의 부축을 받아 밖으로 빠져 나왔다. 몇 명은 아예 계단을 걷지도 못해 군인들의 등에 업혀 나온 이들도 있었다.
이들 중 사지 멀쩡히 성한 사람은 얼마 없었다. 모두들 구타와 고문으로 온몸이 멍투성이 상처투성이 반송장이 된 상태였다.
계엄군들은 군 의무대가 있는 곳으로 갇혀 있던 사람들을 이동시켰다. 상태가 그나마 괜찮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치료를 실시했고, 심한 고문으로 상태가 위중한 사람들은 즉시 차량에 태워 군 병원으로 후송했다.
밖으로 나온 사람들 중에서는 최명순 우성 시장도 있었다. 그는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고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다.
김요한 소장이 군용 간이 침상에 누운 그에게 다가가자, 시장은 입술을 부르르 떨며 간신히 오른손을 그에게 내밀었다. 김요한 소장은 그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계엄군이 경찰서를 포위하고 붙잡아 온 사람들을 데려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마두원이 우성 경찰서로 달려왔다.
그는 양복을 입은 덩치 큰 사내 수십 명을 대동하고 김요한 소장이 있는 곳을 향해 계엄군들을 밀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이봐, 당신! 누구 마음대로 이 빨갱이 새끼들을 풀어 주는 거야?”
마두원은 김요한 소장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소리쳤다.
갇혀 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던 김요한 소장은 옆구리에 찬 권총 홀스터를 손으로 짚으며 마두원 앞으로 나아갔다.
“누구 마음대로? 계엄사령관인 내 마음대로 했습니다. 왜요? 뭐가 문제라는 겁니까? 씨발.”
마두원은 울그락 푸르락 거리는 얼굴로 그에게 덤벼들 듯 소리쳤다.
“뭐 씨발? 당신 미쳤어? 당신 눈에는 국회의원인 내가 보이지도 않아? 난 지금 국회 대표 자격으로 여기 나와 공산당 빨갱이들과 붙어먹은 놈들을 조사하고 있어! 일개 육군 소장 따위가 국회를 능멸하고 우리가 하는 일을 방해해? 너 정말 죽고 싶어?”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이게 국회에서 하는 일이야? 니네들 자유공화당이 하는 거지, 아냐?”
“뭐? 뭐! 이, 이 새끼가......!”
마두원이 김요한 소장의 멱살을 잡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 그러자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전속 부관이 마두원의 손을 쳐내고는 권총을 뽑아 그의 얼굴을 겨누었다. 주변에 있던 군사경찰 특수경호대도 소총을 들고 마두원과 일당들을 노려보았다.
계엄군들의 경호를 받고 있는 김요한 소장은 거칠 것 없이 속에 있던 말들을 퍼붓기 시작했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 새끼가 어디서 자꾸 반말에 욕설이야, 씨발. 야, 니가 지금 잘나서 국회의원 된 줄 알고 까부는 거냐? 자유공화당이랑 대통령이 똥 싸고 다닌 거 뒤에서 다 치워주고 다닌 덕에 그 금배지 받은 거 아냐? 안 그랬으면 너 같이 배워먹지 못한 건달 새끼가 여의도에 들어갈 수나 있었을 거 같아? 야, 마두원. 국회의원 되면 국민들이 죄다 니 발밑에 있게 될 줄 알았냐? 일개 국회의원 따위가 헌법보다 위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니가 조폭들 데리고 와서 한 짓이 무슨 국회 조사야? 조사가 아니라 억울한 사람들한테 누명 씌우려고 협박하고 고문하는 거지.”
“너, 이 새끼...... 군복 벗고 싶어 쳐 돌았냐?”
“너희 같은 개쓰레기들한테 굽신거리면서 군 생활 연명할 바에야 차라리 깨끗하게 군복 벗는 게 나아. 어디 내 군복 벗길 수 있으면 벗겨 봐. 경고해두는데, 니가 내 군복 벗기기 전에 내가 먼저 니 새끼랑 니들 새끼들 손목에 쇠고랑 채울 거야. 누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자고.”
김요한 소장이 손짓을 하자, 군사경찰 특수경호대원들이 총으로 마두원과 그 일당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마두원과 일당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버텼지만, 이내 계엄군들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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