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32화 (32/217)

〈 32화 〉 2027년 7월 15일

* * *

­ 오후 5시, 경기도 우성시 62사단 계엄군 임시 야전 사령부

계엄군은 우성시청과 가까운 건물을 통째로 빌려 임시 사령부로 사용하고 있었다.

건물 3층에 마련된 지휘통제실에는 우성시 전역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보고가 시시각각 들어오고 있었다.

지휘통제실에서 근무하는 수십 명의 행정병들은 보고받은 상황에 대한 내용을 상황판과 사판, 컴퓨터 시스템에 일일이 입력하느라 정신없이 손을 움직였다.

지휘통제실 중앙에는 계엄사령군 김요한 소장이 턱을 괴고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찰리에코 47265720 지점에서 아군 부상 2명 발생, 적 부비트랩에 의한 부상입니다.”

“찰리에코 47264492 지점에서 아군 전사 1명, 부상 1명 발생, 적 부비트랩에 의한 전사상자 발생입니다.”

“찰리에코 46255993 지점에서 아군 부상 3명 발생...... 역시 적 부비트랩에 의한 부상입니다.”

지휘통제실로 들어오는 보고는 계엄군들이 빨치산들의 부비트랩에 계속 당하고 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빨치산들은 일월촌 인근에 엄청난 양의 부비트랩을 매설해 놓고 계엄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 하나하나를 수색하며 전진해야 하는 계엄군들은 이 부비트랩에 계속 당할 수밖에 없었다.

빨치산들이 사용하는 부비트랩은 종류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건물 문을 열고 들어가면 폭발하는 장력식 부비트랩부터,

발목 높이에 인계철선을 설치하고 누가 지나가가다 걸리기만 하면 바로 폭발하는 것도 있었고,

심지어 한국군이나 민간인의 시체 아래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눌러 놓았다가 누군가 시체를 들추면 폭발하게 만든 것도 있었다.

그들은 수류탄이나 TNT, 콤포지션과 같은 군용 폭발물 외에도 LPG 가스통 등 민간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을 이용한 사제 폭발물도 활용하고 있었다.

계엄군의 피해가 계속되자 김요한 소장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었다.

“일단, 오늘 수색은 여기까지 시키고 병력들 모두 철수시켜! 그리고 돌아올 때 아무것도 만지거나 밟지 않게 조심하라고 일러!”

계엄사령관의 지시는 지휘통제실에 있던 통신병들에 의해 즉시 각 제대로 전달되었다.

“군단 EOD 지원은 언제 도착한다고 하나?”

김요한 소장이 작전 참모에게 물었다. 작전 참모는 노트에서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계엄사령관에게 보고했다.

“내일 오후 2시 군단 EOD 반 7명 도착 예정입니다.”

“EOD 1개 반으로 부비트랩 해체하면서 전진하려면, 이 전투 1년은 족히 걸릴 거다. 군단에서 EOD를 더 보낼 수 없으면 합참으로 바로 보고해서 다른 제대 EOD 반을 보내달라고 요청해! 최소 5개 반은 필요하다고 하고!”

“네, 알겠습니다.”

작전 참모는 즉시 전술 전화를 돌려 합참으로 전화했다. 김요한 소장은 답답해 못 견디겠다는 듯 앞에 놓인 보고서를 우악스럽게 구겨버렸다.

그의 곁에 있던 인사 참모의 테이블에 있던 전술 전화가 울렸다. 인사 참모는 전화를 받아 몇 마디 나누고는 얼굴빛이 싹, 변했다.

인사 참모가 전화를 끊자 김요한 소장이 재촉하듯 물었다.

“무슨 전화야?”

인사 참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애국 청년 십자군들이 최명순 시장하고 4급 이상 시청 공무원들을 모두 우성 경찰서로 잡아갔다고 합니다.”

“뭐? 계엄사령관인 내 지시도 없이 시장이랑 공무원들을 잡아갔다고? 감히, 누구 마음대로 사람을 잡아가!”

김요한 소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휘통제실 안의 분위기는 완전히 냉랭해졌다.

인사 참모는 식은땀을 흘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마두원 의원 지시라고 합니다. 그들을 빨치산과의 내통 혐의로 조사해야 한다면서......”

김요한 소장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이런, 좆같은 자공당(자유공화당) 국회의원 새끼들! 계엄사령관을 개호구로 보나, 어디서 지들 마음대로 하고 있어! 엊그제도 지들 좆대로 포로들 싸그리 죽이더니, 이제는 우리 국민들까지 죽이려고?”

김요한 소장은 지휘통제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 뒤를 부관과 몇몇 참모들이 뒤쫓아 갔다.

­ 오후 7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경찰서, 현 국회 특위 임시 조사 본부

영록은 경찰서 지하 1층 계단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아직 어린 영록에게 1시간 넘게 소총을 어깨에 걸고 있는 일은 큰 고역이었다. 총을 메고 30분만 지나도 어깨가 아프고 쑤셔왔다.

그럴 때마다 영록은 주변에 누가 없나 눈치를 보고는, 잠시 총을 내려놓고 어깨를 돌리며 스트레칭 했다. 그러다 어디선가 발걸음 소리라도 들릴라 치면, 다시 잽싸게 어깨에 총을 메었다.

영록이 있는 지하 1층은 각종 조사실로 이용되고 있었다. 지하 2층부터는 유치장이었다.

방화문 너머로 간간히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대부분 뭐라 하는지 알 수 없는 고함 소리와 비명 소리였다.

퍽, 퍽,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도 들렸다.

영록은 그 소리들이 들려올 때마다 저도 모르게 머리털이 곤두서고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잠시 후, 조사실 쪽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계단 쪽으로 나오고 있었다. 영록은 자세를 고쳐 서고 짐짓 군기 들린 척 해 보였다.

방화문이 열리고, 무섭게 생긴 애국 청년 십자군 네 사람이 한 남자를 끌고 나왔다.

애국 청년 십자군들은 하의는 검은색 테러복을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모두 반팔 티셔츠나 러닝셔츠만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몸은 모두 하나 같이 문신으로 가득했다.

조폭들이나 할 법한 일본 이레즈미들이 대부분이었다.

“씨발, 시장 양반, 1시간 쉬고 다시 시작할 거니까, 아래 내려가서 잘 생각하고 있으셔. 우리도 괜히 힘 빼고 싶지 않거든?”

머리를 짧게 깎은 거구의 남자가 애국 청년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남자에게 말했다.

시장,

끌려가는 남자는 최명순 우성 시장이었다.

최명순 시장은 잠옷 같이 생긴 트렁크 하나만 입고 있었다, 그의 온 몸은 온통 피멍이 들어 있었고, 안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있었다. 심지어 입에서 침까지 흘러내렸다.

영록은 저도 모르게 끌려가는 시장을 넋을 놓고 쳐다보았다.

그러자, 맨 뒤에서 따라가던 애국 청년 한 명이 영록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뭘 쳐다봐? 근무나 똑바로 서, 병신아.”

영록은 그 자리에 자빠져 버렸다.

얼마 후, 영록의 자리에 다른 인원이 근무 교대를 왔다.

교대하고 돌아가는 길에 아까 맞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눈에선 여전히 눈물이 핑 돌고 있었다.

영록은 기숙사에서 마선욱의 주먹을 손쉽게 피하던 태하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에 태하는 잘 만 피했는데, 왜 나는 못하는 거지? 역시 나는 안 되는 걸까......?’

생각해보니, 영록은 태하의 무예 책을 보고 따라해 본 적은 그 때 딱 한번 외에는 없었다.

‘한 번 보고 연습한 거 가지고는 역시 안 되는 거겠지. 태하가 이 모습을 봤으면 계속 더 많이 연습해야 한다고 잔소리 했을 거야......’

영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경찰서를 나와 숙소로 걸어갔다.

숙소까지 절반쯤 걸어왔을 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야, 지영록.”

유민의 목소리였다.

영록이 고개를 들어보니 그의 앞에 유민이 서 있었다.

유민은 여전히 검은색 테러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총은 그녀에게 다소 커 보이던 M­16A1이 아니라 작은 K­1A 기관단총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계속 머리를 풀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긴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영록에게 다가왔다.

“근무 끝났나 보네? 숙소로 가는 거야?”

“응? 으, 으응. 이제 들어가서 가서 쉬려고.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오랜만은 무슨, 며칠이나 지났다고.”

유민은 활달하게 웃어 보였다.

두 사람은 숙소 방향을 향해 같이 걸었다. 영록이 조심스레 물었다.

“너...... 이제 머리 풀고 다니는 구나?”

“응? 아~ 이거? 성모 오빠가 나는 머리 풀고 다니는 게 더 예쁘다고 해서......”

영록의 말에 유민의 얼굴이 발그레 해졌다. 영록은 무언가 모르게 가슴이 아팠다.

유민이 말을 이었다.

“......성모 오빠 기다리다가 답답해서, 잠깐 바람 쐬러 나온 길이었어.”

“응, 그, 그렇구나......”

“성모 오빠가 그러는데, 애국 청년 십자군은 이제 공산당 빨갱이들하고 내통한 사람들 잡으러 다니는 일을 맡게 되었데. 나라를 배신하고 빨갱이들한테 붙은 사람들 말이야.”

유민의 말에, 영록은 잠시 전 조사실에서 끌려나오던 최명순 시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까 경찰서에서, 여기 우성 시장 붙잡혀 온 거 봤어.”

“시장은 바로 붙잡혀 왔나 보구나? 빨갱이들에게 협조 한 사실들 조사 받았겠네. 그러게, 시장이나 되었으면 죽는 한이 있었어도 빨갱이들한테 붙지 말았어야지. 이제 와서 후회해도 늦었지, 뭐.”

유민은 성모와 애국 청년 십자군들과 어울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줄곧 ‘빨갱이’란 단어를 쓰고 있었다.

영록도 빨치산에 동조하거나 협력한 사람들은 법대로 조사받고 처벌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까 최명순 시장이 당한 일은 어린 영록이 보기에도 정당한 조사 과정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런데, 시장을 잡아서 조사하는 사람들이...... 막 때리고 고문하는 거 같아. 그 주변에 있으면 사람들 비명 소리도 들리고, 거기서 나오는 사람들 모두 멍투성이가 돼서 끌려 나와.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영록의 말에 유민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빨갱이에게 물들은 사람들이 순순히 ‘내가 잘못했어요.’하고 불겠니? 성모 오빠가 그러는데, 만약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안 되는 일이겠지만, 지금 같이 전쟁 중일 때는 범죄자들한테 빨리 자백 받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해도 된다고 했어.”

유민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단호히 말했다.

“그게 고문이든 뭐든 다 말이야.”

영록은 그녀를 당황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고문이든 뭐든 다 된다고......? 그럼 전에 방파제에서 포로들 죽이는 것도 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야?”

유민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 외노자 폭도들 모두 빨갱이들한테 붙어서 우리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사람들도 죽이고 별의 별 나쁜 짓 다 한 사람들이라고! 너 전에 길에서 외노자 새끼들이 우리한테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기억 안나? 죽을죄를 지었으면 빨리 죽여야지, 그런 놈들을 포로랍시고 언제까지 공짜로 먹여 살려주고 있어야 해?”

영록은 그녀의 이런 차가운 말과 표정을 처음 보았다.

숙소로 가는 동안에, 유민은 성모와 애국 청년 십자군을 옹호하는 이야기를 계속 했다.

하지만 영록의 귀에는 아무런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의 변한 모습이,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 오후 10시, 경기도 우성시 62사단 계엄군 임시 야전 사령부

김요한 소장의 개인 집무실 겸 숙소는 건물 8층에 마련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합참의장과 한참을 통화하고 있었다.

그가 합참에 보고한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마두원의 월권행위가 도를 넘었다.]

[거기에 불법적인 체포, 고문이 이루어지고 있다.]

계엄사령관의 보고를 받은 합참의장은 여러 방면으로 확인을 한 후 청와대에 이를 보고했다.

하지만, 청와대로부터 내려온 지시는 그저 어이없기만 한 것이었다.

“......그럼, 그런 놈이 하고 있는 짓을 그냥 놔두는 것도 아니고, 저더러 적극 지원하라는 말씀입니까?”

김요한 소장은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코드원의 지시 사항이네.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이해하주길 바라네.]

“도대체 코드원은 무슨 생각으로......! 지금 아무런 재판 없이 백여 명의 포로들이 학살당했습니다. 시장과 공무원들은 법적 절차도 없이 구금되고 고문까지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7, 80년대를 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일들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걸 내가 왜 모르겠나? 코드원이나 마두원이나 다 같은 자유공화당이니...... 뭐 이러는 이유는 뻔한 거 아니겠나? 자네, 이번 계엄 사령관 직 수행하면 바로 중장 진급 바라보지 않나? 그냥 몸 사리는 게 좋을 게야.]

합참의장과의 통화가 끝났다.

김요한 소장은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이런, 개 씨발 좆같은 쓰레기 새끼들!!!”

한참을 앉아 있던 김요한 소장은 주먹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소리를 질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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