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31화 (31/217)

〈 31화 〉 2027년 7월 13일

* * *

­ 오후 9시, 경기도 우성시 일월동

빨치산들과 살아남은 폭도들이 대부분 일월촌으로 복귀한 가운데, 이제 한국군은 서쪽 해안가 산업단지 구역과 동쪽 내륙지대를 탈환하고 양쪽에서 일월촌 방향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일월촌 근방에서는 지금도 간간히 한국군과 빨치산 사이의 총격전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리부일은 참모들과 수행 병력 몇 명을 대동하고 일월촌 외곽 경계지역 일대를 순찰 중이었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일월촌으로 들어가는 길은 오직 단 하나 뿐이었다. 나머지는 비탈진 언덕을 기어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만일 한국군이 일월촌 아래 언덕을 기어 올라온다면 마치 중세 공성전을 벌이듯 언덕 위 건물에서 대기하고 있는 빨치산들과 폭도들의 공격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다고 한국군이 일월촌을 향해 폭격을 감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리부일이 일월촌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물론 인근 사람들까지 모두 일월촌으로 끌고 와 인간 방패를 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조선 괴뢰군들로서는, 오직 병력으로 건물 하나하나를 점령하고 남조선 인민들을 구해내면서 들어오는 방법 외에는 아무런 방도가 없을 겁네다.”

참모에게 병력 배치 현황에 대해 보고를 들으며 걷고 있던 리부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남조선 아새끼들이 미친 척하고 이 짝을 밀어 붙이다가 여기 인민들 상하기라도 한다면, 남조선 인민들 민심이 이반 되서 안되니끼니 함부로 준동치는 못 할거이야. 남조선 인민들 성정에 제 나라 인민들 죽여 가며 전쟁하는 꼴은 죽어도 못 볼끼니 말이야. 아, 기라고, 남조선 대통령 선거도 얼마 남지 않았다 했디?”

“네, 석 달 후입네다.”

“지금 대통령 아새끼도 지 한 번 더 해먹고 싶어 안달 나 있다 했으니, 공연히 여기에 대고 도박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거이야.”

리부일은 걸음을 멈추고 참모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기래도, 우리 공화국 전사들이 절대 긴장 놓지 않도록 감독 똑바로 하라우. 이번에 남조선 괴뢰군 놈들이 이 도시에 VX를 설치했다는 말에도 넘어가디 않고 그냥 들이쳐 들어온 거 보면, 분명 남조선 특무들 중 정예들이 우리 몰래 침투해 들어와서니 도시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녔다는 말 아니가써? 남조선 특무들은 반드시 이리로도 뒤지러 들어올 거이야. 이번엔 쥐새끼 한 마리 들어오지 못하게 철통 같이 지키라우! 알갔나?”

“네, 알겠습네다!”

참모들은 순간 긴장한 모습으로 리부일의 말에 대답했다.

리부일은 외곽 지역 뿐 아니라 한국군의 침투가 예상되거나 은신할 가능성이 높은 구역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참모들과 병력 배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의논 했다.

이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던 중, 어디선가 여자의 울부짖는 듯 한 신음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들과 가까운 곳에 있는 판잣집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간나새끼들...... 이런 시국에도 밤 되니끼니 밤일 생각이 간절해졌나 보구나야.”

리부일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뒤 따르던 참모들과 수행 병력들도 이 소리를 듣고 지들끼리 귓속말로 수근 거리며 키득거렸다.

이렇게 그냥 지나치려고 하던 리부일은 몇 걸음 걷다가 다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판잣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한 두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리부일은 발걸음을 돌려 판잣집으로 걸어갔다. 참모들과 수행 병력들도 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리부일이 판잣집 문을 밀고 들어가 보니, 예닐곱 명의 외국인 폭도들이 집 안 가득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속옷만 입은 채 자리에 앉아 있거나 편하게 드러누워 있었다. 그들 주변에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술병 여러 개가 이리 저리 굴러다녔다.

모두들 얼큰하게 술에 취했는지, 리부일과 빨치산들이 집 안으로 들어와 있는데도 누구 하나 개의치 않고 제 나라 말로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문 옆에는 한국인 아버지와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아들이 철사로 손이 뒤로 묶여진 채 무릎 꿇려져 있었다. 그들은 모두 발가벗겨진 상태였고, 입에는 속옷으로 재갈이 물려져 있었다.

그들은 아까 인근 마을에서 인질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폭도들에게 얻어맞았는지, 얼굴 여기저기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방 쪽을 바라보고 울고 있었다. 폭도들의 시끄러운 목소리들과 입에 물린 재갈 때문에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우, 하고 알 수 없는 소리도 질렀다.

리부일은 폭도들을 헤집고 방 쪽으로 들어갔다. 그제서야 폭도들은 ‘이건 뭐야?’하는 눈빛으로 리부일과 빨치산들을 퀭하니 쳐다봤다.

방 안에는 큰 이불이 넓게 펼쳐 있었고, 두 명의 여자와 두 명의 외국인 폭도가 그 위에 올라 있었다.

그들 모두 실오라기 하나 없이 발가벗고 있었다.

방안에는 퀴퀴한 땀 냄새와 몸 냄새가 역겨울 정도로 진동했다.

여자들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어머니와, 중학생 정도의 딸이었다.

그녀들도 모두 손이 등 뒤에 철사로 묶여진 상태였다. 폭도들은 그녀들을 이불 위에 무릎 꿇고 엎드리게 하고는 엉덩이를 붙잡고 몸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폭도가 어머니의 커다란 젖가슴을 마음껏 주물렀다. 어머니는 새어나오는 신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린 딸의 가슴은 아직 여물지 않아 있었다. 딸을 겁탈하고 있던 폭도는 그녀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당기며 허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딸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그녀는 아픔에 겨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리부일은 이 모습을 보고 분노가 폭발했다.

“에미교양도 없는 종간나새끼들!”

리부일은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빨치산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반동새끼들 싹 다 끌러 내라우!”

총을 든 빨치산들이 집 안에 있던 폭도들을 밖으로 끌어냈다. 폭도들은 여전히 술에 취해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지, 제 나라말로 무어라 지껄이며 빨치산들에게 저항했다.

빨치산들이 순순히 밖으로 나오지 않는 폭도들의 얼굴을 개머리판으로 내리 찍었다. 결국 집안에 있던 폭도들 대부분 피떡이 되어 밖으로 끌려 나왔다.

밤중의 소란에 일월촌 주민들과 빨치산들이 밖으로 나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리부일은 9명의 폭도들을 길 위에 일렬로 꿇어 앉혔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 들으라는 투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지금 전쟁터야! 공화국의 자랑스러운 전사들이 남조선 괴뢰군들을 상대로 혁명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투쟁하는 영광스러운 자리다, 이 말이야! 그런데 이 반동새끼들은 이 영광의 혁명 과업지에서 술이나 쳐 먹고 인민들을 강간하고 있었어! 이게 어디 사람의 탈을 쓰고 할 짓이냔 말이야! 전선 군기 위반을 다스리는 건 다른 형벌은 없어, 오로지 총살뿐이야!”

리부일은 주변을 향해 이렇게 외친 후, 옆구리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폭도들 한 명씩 한 명씩 뒤통수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

9명의 폭도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처형되었다. 주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집 안으로 숨어버렸다.

“치우라우.”

리부일은 수행 병력들에게 차갑게 명령했다. 빨치산들이 폭도들의 시신들을 어디론가 옮기기 시작했다.

리부일이 집안을 들여다보니, 손에 묶인 철사를 풀은 아버지와 아들이 방으로 달려가 어머니와 딸의 묶인 손을 풀어주고 서로 부둥켜안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리부일은 고개를 돌린 채 집 문을 닫아주었다.

­ 오후 10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시청 인근 계엄군 임시 숙소

영록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어제 본 장면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것 같았다.

총에 맞아 피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들,

머리가 터지고 하얀색 뇌수가 흘러나오는 모습들,

시청 광장 앞에 매달려 있던 머리 잘린 시신의 모습들......

영록은 한참을 괴로워하다가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함께 온 애국 청년 십자군 몇 명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영록은 손등으로 땀을 훔친 후,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자리에 누웠다.

이 때, 갑자기 누군가 숙소로 들어와 불을 켰다.

“야, 새끼들아, 모두 일어나!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모두 복장이랑 무기 챙기고 다들 따라와! 빨리! 빨리!”

마선욱이었다. 영록은 마선욱이 지르는 소리에 놀라 부리나케 이불 밖으로 나와 복장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영록은 애국 청년 십자군들과 함께 총을 들고 시청으로 걸어갔다. 이제 영록에게도 전술조끼와 M­16A1 소총이 지급되었다.

아직 제대로 된 사격 훈련은 받지 못했지만 오늘 오전 간단히 총기 사용법에 대한 교육도 받았고, 소염기 위해 바둑알을 올려놓고 비사격 격발 훈련을 하기도 했다.

탄도 30발씩 가득 채워놓은 탄창을 5개씩이나 받았다.

그래도 여전히 어린 영록에게서는 군인 티가 조금도 나지 않았다.

시청 앞에는 군용 트럭 십여 대가 서 있었다. 그 주변에는 오늘 도착한 신입 애국 청년 십자군들이 삼삼오오 모여 건들거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 모두 인상과 떡대가 일반인 같지 않았다. 영록은 그들이 혹시 말로만 듣던 조폭이 아닐까 생각했다.

“야! 트럭 뒤에 둘씩 둘씩 짝 지어서 서 있어! 야, 거기 뭐하냐! 셋 말고 둘씩 있으라고, 이 병신들아!”

마선욱의 고함 소리에 영록은 쭈뼛거리며 트럭 뒤 한쪽 편에 총을 들고 서 있었다.

“야, 이 새끼야, 탄창도 결합 안하고 뭐하고 있어!”

마선욱이 영록의 총을 보고는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영록은 겁에 질려 손을 벌벌 떨며 전술조끼에서 탄창 하나를 꺼내 총에 결합했다. 탄창을 결합하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잠시 후, 수십 명의 신입 애국 청년 십자군들이 어디선가 백여 명의 폭도들을 이끌고 시청 광장으로 나타났다. 그들 모두 오늘까지 한국군에 포로로 잡힌 자들이었다. 폭도들의 손은 모두 케이블타이로 묶여져 있었다.

“트럭에 타, 이 새끼들아!”

신입 애국 청년 십자군들은 마치 깡패처럼 말하며 무섭게 폭도들을 트럭에 태우기 시작했다. 조금이라고 꿈지럭 거리는 자가 있으면 지체 없이 개머리판으로 후려치거나 군화발로 걷어찼다.

폭도들은 울상을 지으며 트럭에 타기 시작했다.

모든 폭도들이 트럭에 타자, 애국 청년 십자군들도 폭도들을 감시하기 위해 각 트럭에 나누어탔다. 영록도 트럭 뒤편에 올라탔다.

트럭들이 일제히 시동을 켰다. 요란한 엔진 소리가 밤하늘을 울렸다.

영록이 탄 트럭이 출발하기 전, 성모와 유민이 둘이 함께 시청 광장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유민은 시청에 온 이후 영록과 헤어져 줄곤 성모와 함께 있었던 것 같았다. 성모 곁에 있는 유민은 평소와 달리 머리를 뒤로 묶지 않고 길게 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맨 앞에 서 있던 군용 트럭의 앞자리에 나란히 들어가 앉았다. 영록이 앞쪽 트럭에 탄 유민을 보기 위해 고개를 이리 저리 움직이려던 찰나, 트럭들이 일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 오후 11시, 경기도 우성시 해우 방파제

애국 청년 십자군들과 포로들을 태운 군용 트럭들은 서해안의 해우 방파제로 향했다.

방파제에 도착한 애국 청년 십자군들은, 포로들을 거칠게 끌어 내렸다. 포로들은 서툰 한국말로

“제발 때리지 마세요.”

라고 외쳤지만, 그들은 조금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백여 명의 포로들은 애국 청년 십자군들이 시키는 대로 방파제 위로 올라가서 바다를 보고 길게 줄지어 섰다.

포로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 몸을 부들부들 떨며 몹시 불안해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제 나라 말로 종교 경전을 중얼거리는 소리들도 들려 왔다.

방파제 입구 앞에는 애국 청년 십자군들 서너 명이 포로들 도망가지 못하게 길을 막고 서 있었고, 그 뒤로도 수십 명이 담배를 피우며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영록은 트럭 앞에서 방파제 쪽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 애국 청년 십자군들 사이에서 나란히 서 있는 성모와 유민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서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둘 다 전처럼 웃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는 전보다 더 가까워져서 서로의 어깨가 닿을 거리에 서 있었다.

마선욱이 K­15 기관총을 들고 방파제 끝으로 걸어갔다. 그는 포로들의 등 뒤를 따라 걸으며 섬뜩하게 웃고 있었다.

방파제 끝에 도착한 마선욱이 멀리 떨어져 있는 성모를 바라보았다.

성모가 마선욱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마선욱은 K­15 기관총의 멜빵을 어깨에 메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마선욱이 포로들의 등 뒤에 총을 쏘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총에 맞은 포로들은 모두 피를 뿜으며 방파제 아래 바다 속으로 떨어졌다.

총소리에 기겁한 포로들이 바다에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걸 본 애국 청년 십자군들이 방파제로 뛰어와 바다에 빠진 포로들을 향해 총을 갈겼다.

총소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 되었다.

달빛에 비친 밤바다는 피로 붉어졌다.

애국 청년 십자군들은 물에 떠오르거나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이 보이면 바다를 향해 마구 총을 쏘아 댔다.

그렇게 20분 정도가 흘렀다.

“물 밑에 숨은 놈도 지금쯤이면 다 익사했을 겁니다. 이제 다 해치웠으니 돌아갑시다!”

성모가 애국 청년 십자군들에게 외쳤다. 그들은 총을 어깨에 걸치고 킬킬 거리며 모두 트럭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이 광경을 지켜보던 영록은 벌벌 떨고 있었다.

순식간에 백여 명의 사람들이 학살당한 모습에, 영록은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야, 안 타?”

함께 트럭을 타고 온 애국 청년 한 명이 영록을 툭 치며 말했다.

영록은 얼빠진 얼굴로 아무 말 없이 트럭에 오르려 했다.

다리가 심하게 후들거렸다. 영록은 몇 번이나 발을 헛디디다가 간신히 트럭 위에 올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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