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2027년 7월 12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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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2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시청
장주영의 말대로 우성시청은 이미 한국 계엄군에 의해 점령되어 있었다. 시청에는 다시 태극기가 높이 계양되었다.
시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K1A1 전차 2대가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차 주변으로 62사단 계엄군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시청 앞 광장에는 항복한 폭도 백여 명이 무릎 꿇려진 채 줄지어 앉아 있었다. 그들 곁에는 십여 명의 계엄군들이 총을 들고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지키고 있었다.
장주영이 UDU 대원들과 성모의 애국 청년 십자군들을 이끌고 시청 광장으로 들어왔다.
그가 시청 주변에 설치된 24인용 군용 천막으로 들어가 군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성모는 광장 앞 가로등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곳에 두 명의 군인들이 가로등에 걸려 있던 유광수 목사의 시신을 내려 영현백에 담고 있었다. 성모가 다가오자 군인들은 이 사람은 누구지? 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제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 유해 모시는 건 제가 할게요.”
그제야 군인들을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성모는 부친의 머리와 몸을 검은색 군용 영현백 안에 조심스레 넣고 지퍼를 올렸다.
참으려 했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성모는 부친의 영현백을 붙들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울음소리에 광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어느새 유민이 성모 곁에 다가와 있었다. 유민도 성모를 따라 울고 있었다. 성모가 울부짖는 모습에 그녀는 아마 자신의 부모를 잃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던 모양이었다.
영록은 멀리서 그 두 사람을 힘없이 바라보았다.
“갑자기 누가 곡소리를 내고 있는 거지? 저 학생들은 뭐고?”
시청 밖으로 나오던 김요한 소장이 울음소리를 이상하게 여기고 물었다. 곁에 있던 전속부관이 광장으로 내려가 상황을 확인하고 보고 했다.
“......유광수 목사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부관의 말에 김요한 소장은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
“자식이 부모 시신 수습하며 슬퍼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겠지. 저 친구들 방해하지 말고 일단 그냥 두라고 해.”
김요한 소장은 시청 광장을 돌며 지금까지의 전투 결과에 대한 보고를 직접 듣고 있었다.
이때, 사단 인사참모가 달려왔다.
“사단장님, 합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잠시 후에 국회에서 국회의원 몇 명이 계엄군 감독관 자격으로 이리로 온다고 합니다.”
김요한 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국회에서 또 무슨 시비를 걸려고 감독관을 보낸다는 거지? 감독관으로 오는 사람이 누구라고 하던가?”
“그게, 여기 우성시 출신 마두원 국회의원이 감독관 대표 자격으로 국회의원들을 이끌고 내려오고 있답니다.”
그 말에 김요한 소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계엄사령관이 뻔히 있는데도 국회에서 감독관을 보내겠다는 것도 어이없는 판에, 계엄 지역의 감독관을 그 지역 출신 국회의원으로 보내? 이 뭔 개 같은 수작이야!”
사단장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광장 주변에 있던 군인들 모두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오후 1시, 경기도 우성시 일월동 인근
62사단 수색대대 병력들이 일월촌 방향으로 달아나는 폭도들을 뒤쫓고 있었다.
폭도들은 주택가 사이로 요리조리 뛰어다니며 한국군들의 추격을 따돌리려 노력했다. 그들 모두 지금 목숨을 걸고 달리는 것이었다.
수색대대 병력들이 주택가의 좁고 짧은 길 위에서 폭도들을 발견하고 총을 쏘기 위해 겨냥할라치면 어느새 폭도들은 담벼락 너머로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지향 사격 자세로 격발하면 잘 맞지도 않았다.
폭도들과 수색대대원들의 숨바꼭질은 점심시간 넘어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씨발 외노자 새끼들, 저 새끼들 때문에 이 여름에 밥도 물도 제대로 못 먹고 좆나 고생하게 생겼네.”
수색대원들은 땀에 젖어 몸에 엉겨 붙은 전투복 때문에 짜증을 부리며 계속 폭도들 뒤를 쫓았다.
주택가 사이를 벗어나자 일월촌 방향으로 곧고 길게 뻗은 길이 나타났다. 그 길 위로 십여 명의 폭도들이 일월촌을 향해 헐레벌떡 뛰어 가고 있었다. 이제 수색대대원들이 사격하기 쉬운 지형이었다.
“나이스! 딱, 100m 사로 표적이랑 똑같네.”
수색대대원들은 바닥에 엎드려쏴 자세로 폭도들의 등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탕!
엎드려 쏴 자세로 폭도들을 조준하고 있던 수색대원이 총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의 방탄모 아래 머리는 앞뒤로 관통되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모습에 옆에 있던 수색대대원이 기겁하고 몸을 일으켰다.
탕!
다시 한 번 총소리가 들리고, 또 한명의 수색대대원이 쓰러졌다.
저격수였다.
“전부 길에서 벗어나 은엄폐해, 어서!”
수색대대원들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던 부사관 소대장이 소리를 질렀다. 수색대대원은 모두 주택 담벼락 옆으로 숨기기 위해 뛰어갔다.
탕!
또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미처 피하지 못한 수색대대원 한명이 더 쓰러졌다. 부사관 소대장은 분한 듯 이를 갈았다. 그가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현망에 대기 중인 청룡 장, 청룡 장, 당소 청룡 둘 이상”
[송신]
“당소 청룡 둘이라 알리고, 현 마이크부로 찰리에코 27468375 지점 수색 중 저격수에 의해 진격이 저지된 상태라고 알림. 사상자 3명 발생. 해당 지역에 화력 지원 요청 바람.”
[입감했다고 알리고, 잠시 대기]
3분 정도가 흘렀을 때, 다시 무전이 들어왔다.
[청룡 둘, 청룡 둘, 당소 청룡 장 이상]
“청룡 둘 송신.”
[귀소가 화력 지원 요청한 지역은 민간인 지역이라 민간인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기 때문에 화력 지원 불가하다고 알림 이상]
부사관 소대장이 답답하다는 듯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그럼, 저격수가 있는데 어떻게 전진하라는 말인지?!”
[......당소 청룡 장이라고 알리고, 현 위치에서 우회해서 이동하라고 알림, 이상]
“에잇, 개좆같네, 씨발!”
부사관 소대장은 욕설을 내뱉으며 무전기를 파우치에 집어넣었다.
앞에서 달려가던 폭도들은 거의 일월촌 입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폭도들이 일월촌으로 들어서자 카고 트럭 한 대가 입구로 들어와 길을 막아버리는 것이 보였다. 부사관 소대장은 간신히 화를 삭이며 소대원들을 이동시킬 준비를 했다.
오후 2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시청
시청 안으로 검은색 관용차 6대가 들어왔다. 군인들은 전쟁 중에 광장으로 들어온 민수용 자동차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맨 앞의 차량에서 거구의 남자가 내렸다. 185cm 가 훨씬 넘어 보이는 키에 마치 씨름 선수들을 보는 듯 한 단단하고 우람한 몸집을 가진 남자였다.
차량이 들어오는 것을 본 애국 청년 십자군 몇 명이 24인용 군용천막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 중 마선욱이 남자를 보고 그에게 달려왔다.
“아부지!”
남자는 마선욱의 아버지이자 우성시의 국회의원 마두원이었다. 마두원은 미소를 지으며 아들을 바라보았다.
“이 새끼! 고생 많았지? 내가 왔으니 우리 아들 고생도 끝이다!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마라!”
마두원은 마선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선욱이 나온 24인용 군용천막 안으로 성모의 모습이 보였다. 성모는 부친의 영현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마두원이 군용천막으로 들어왔다. 그는 성모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상심이 큰 거 다 안다. 하지만 아무 걱정하지 마라. 네 아버지와 나는 담임 목사와 장로 관계를 넘어 피를 나는 형제나 다름없는 친구였다. 장례부터 모든 과정은 이 장로님이 도와줄거니 아무 염려 말아라. 장례 이후 교회에 대한 것도...... 장로님이 다 알아서 도와 줄 거니, 넌 걱정 말아라.”
성모는 마두원에게 아무 말 없이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다른 차량에서도 마두원과 함께 우성시로 내려온 국회의원들이 내리고 있었다. 시청 안쪽에서 김요한 소장과 사단 참모들이 그들을 마중하러 나왔다.
김요한 소장은 그들에게 걸어가며 국회 대표 자격으로 온 국회의원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어떻게, 국회 대표들을 보냈다면서 다들 자유공화당하고 지네들 위성 정당 의원들만 보낸 건가? 민주시민당이나 다른 야당 의원은 아무도 없구만...... 설마, 이곳 계엄군을 자유공화당 마음대로 하겠다는 속셈인가?’
김요한 소장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계엄사령군을 본 마두원이 두 팔 벌리며 그를 맞이했다.
“김 장군! 수고 많았어요. 하루 만에 시청까지 수복하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김요한 소장은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 우성시를 완전히 수복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시 전체가 빨치산으로부터 안전한 단계라고도 볼 수도 없습니다. 지금은 기뻐해야 할 때가 아닙니다.”
“누가 뭐라고 했나? 아무튼 여기 서울에서 다른 의원님들도 모시고 왔으니, 안에 들어가 앉아서 이야기 나눕시다. 안에서 할 이야기가 많아요.”
김요한 소장은 국회의원들을 데리고 시청 안 건물로 들어갔다.
“저 학생들을 어떻게 쓰시겠다구요?”
김요한 소장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이번 난에 대해 조사하러 다닐 때 최소한의 무장 병력들을 대동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계엄군은 빨치산 토벌 임무로 바쁘고 우성시에 경찰력도 부재한 상황이지요. 그러니, 지금 우리는 저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애국 청년 십자군은 이미 대통령도 승인한 준 군사 조직입니다. 그들을 활용하는데 법적으로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만.”
마두원은 소파에 편안히 기대어 거만하게 김요한 소장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요한 소장이 말했다.
“그래봤자 겨우 학생 30여명 밖에 없는데, 저들이 무장해봤자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러십니까?”
“아, 그 문제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서울이나 다른 지방에서 이 니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청년들 100여명을 모아 이리로 모이라 했습니다. 당연히 모두 성인이구요.”
마두원의 말에 김요한 소장은 불현듯 그에 대해 들었던 말들이 기억났다.
‘마두원 저 새끼, 원래 전국구 건달이었다고 했지...... 그럼 지금 이리로 데려 오겠다는 놈들 모두 지 부하 조폭 새끼들이라는 건가? 그 조폭 새끼들 모아 여기서 무슨 짓을 하려고?’
김요한 소장의 불안한 표정을 읽었는지, 마두원이 걱정 말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애국 청년 십자군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 마시오. 내 듣기로는 저 학생들도 우성시를 수복하겠다고 총 들고 나서서 싸웠다면서요? 그런 위국헌신의 정신 가득한 학생들이라면 오히려 곁에 두고 있기에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또, 이번에 새로이 애국 청년 십자군에 들어올 청년들 역시 저 학생들만큼이나 이 나라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아무런 군사 훈련도 안 받은 어린 친구들인데, 도리어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애국 청년 십자군이 결성될 때 민주시민당 하고 야당들이 사병 집단 형성이다, 뭐다 하면서 쓸데없이 반대만 하지 않았더라면, 저 학생들은 좀 더 일찍 사격이나 체계적인 군사 훈련들을 받을 수 있었겠죠! 그랬다면 이렇게 우성시가 허무하게 빨치산들의 손에 넘어가지도 않았을 거구요! 군사 훈련은 지금이라도 시키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애국 청년 십자군에 새로 들어오는 친구들 모두 제 몸은 지들이 알아서 지킬 줄 아는 이들이니, 이제 그런 터무니없는 걱정은 안 해도 될 겁니다!”
마두원은 다리를 건들거리며 김요한 소장을 노려보았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62사단 참모들은 만일 지금 앞에 있는 상대가 국회의원만 아니었으면 김요한 소장이 결코 가만있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후 4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시청
마두원이 김요한 소장과의 대화를 마치고 시청을 나올 때, 그 앞에 성모가 서 있었다.
“장로님.”
“응, 그래. 밥은 먹었냐?”
“아뇨, 저, 장로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부탁? 무슨 부탁?”
성모는 마두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마두원은 그의 눈빛에서 분노와 증오를 느낄 수 있었다.
성모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마두원에게 속삭였다.
“오늘 잡은 포로들을...... 제게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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