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2027년 7월 12일 (1)
* * *
오전 4시, 경기도 우성시 태화산 일대
웅웅웅
공기를 울리는 프로펠러 소리가 밤하늘에 가득했다.
우성시의 태화산과 여동터미널, 경월천 일대로 8대의 KAH1 (한국형 경 공격 헬기)가 접근하고 있었다. 어차피 빨치산들은 레이더 등 항공기를 식별할 장비들이 전혀 없기 때문에 헬기들은 별다른 회피 기동 없이 우성시를 향해 최단 거리로 비행했다.
[목표 지점 도착 1분전...... 각기 타깃 포인트로 분산 이동, 각기 타깃 포인트로 분산 이동. 모두 행운을 빈다.]
[라저, 라저.]
8대의 헬기들은 저마다 맡은 목표를 향해 흩어지기 시작했다.
KAH1의 파일럿들은 HMD (헬멧 마운티드 디스플레이)의 나이트 비전 기능을 통해 어두운 밤에도 낮과 다를 바 없는 작전 수행이 가능했다.
태화산으로 이동하는 파일럿의 디스플레이에, 능선 여기저기에 배치된 폭도들의 모습이 열화상 영상으로 확인되기 시작했다. 능선 앞쪽에만 어림잡아 7, 80명의 사람이 곳곳에 진지를 파고 들어가 있는 모습이었다.
[로미오 메인, 로미오 메인, 여기는 로미오 식스라 알리고 현 시간 부로 포인트 탱고쓰리 타깃 확인, 현 시간 부로 포인트 탱고쓰리 타깃 확인.]
[로미오 식스, 웨폰스 프리, 웨폰스 프리.]
[로미오 메인, 웨폰스 프리 체크, 교전 시작한다.]
무전을 마친 파일럿이 뒤에 함께 타고 있는 무장관제사에게 말했다.
“복수는 나의 것, 영화 촬영 시작해보자.”
“라저.”
무장관제사는 파일럿의 말에 가볍게 웃었다. 그는 긴장을 풀고 KAH1 의 화력 통제 시스템에 표적들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이제 태화산의 폭도들도 육안으로 헬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리였다. KAH1 헬기의 M197 20mm 기관포가 능선을 조준했다.
두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20mm 기관포가 3열의 총구를 엄청난 속도로 회전시키며 총탄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아직 어두운 밤중인데도 능선의 피탄지에서 흙먼지 바람이 자욱하게 이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20mm 탄에 맞은 폭도들의 몸뚱이들은 그냥 ‘분해된다.’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갈가리 찢겨져 나가고 있었다. 진지 안에 웅크리고 숨어 있던 폭도들조차, 진지의 흙벽을 뚫고 들어온 탄에 그대로 벌집이 되었다.
KAH1 파일럿의 HMD에는 살아 움직이는 생존자를 표현하는 열체들의 형상이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디스플레이에는 체온 때문에 진한 검은 색으로 표시되는 폭도들이 피격 당한 후 점차 체온이 식어가며 밝은 녹색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단 3분도 되지 않아, 태화산 능선에는 더 이상의 열 흔적이 감지되지 않았다. 파일럿은 다시 무전을 시작했다.
[로미오 메인, 로미오 메인, 여기는 로미오 식스라 알리고 포인트 탱고쓰리 클리어, 포인트 탱고쓰리 클리어.]
[로미오 식스, 체크. 포인트 에코나인으로 이동, 포인트 에코나인으로 이동, 이상.]
[로미오 메인, 현시간부로 포인트 에코나인으로 이동 체크.]
파일럿은 헬기의 기수를 돌리며 무장관제사에게 말했다.
“박찬욱 감독 복수 3부작 중에서, 복수는 나의 것 다음 영화가 뭐였지?”
“다음이 올드보이, 그다음이 친철한 금자씨입니다.”
“음, 올드보이...... 이 전쟁 터지고 부대에서 비상 대기하면서 케이블 TV로 4번은 더 봤었지...... 빨리 전쟁 끝나고 부대 밖으로 신작 영화들 보러 나가고 싶어지네......”
KAH1은 태화산 북쪽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전 4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 서해안 산업단지 일대
한국군이 태화산과 경월천 등 우성시의 동쪽 내륙 지방을 공격 헬기로 두드리는 사이, 우성시의 서쪽에서는 인천에서 출발한 또 다른 헬기들이 새벽 바다를 건너오고 있었다.
헬기들의 선두에는 마찬가지로 KAH1 들이 앞장서 있었다.
그 뒤를, 705 특공연대 1개 중대 병력을 태운 KUH1 수리온 12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KAH1들이 우성 서해안 산업단지 공용 주차장 일대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폭도들을 기관포로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몇몇 폭도들은 헬기들이 무수히 나타나자 겁을 집어먹고 총까지 집어 던지고 줄행랑치고 있었다.
[랜딩 포인트 클리어, 랜딩! 랜딩!]
[골든이글 메인 체크, 현 시간부로 지상에 표범들을 풀어 놓는다, 이상.]
공중에서 KAH1이 사방을 경계하는 동안, 12대의 수리온 헬기들이 차례대로 공용 주차장으로 하강했다.
바퀴가 지면에 닿자마자 헬기 문을 열고 705 특공연대 병력들이 뛰어나왔다. 헬기에 타고 있던 1개 분대 병력들이 뛰어나가는 동안, 수리온 양측에 배치된 K12 사수들은 혹시 있을지 모를 적의 기습에 대응하며 주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705 특공 병력들은 모든 병력들이 착륙할 때까지 우선 주차장 일대를 점거하며 사주 경계를 실시했다. 1개 중대 모두 헬기에서 내리자 병력들은 일제히 산업단지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표범 퍼스트 컴퍼니 랜딩 완료, 표범 넥스트 컴퍼니 준비하라고 알림 이상.]
[표범 세컨드 컴퍼니 대기 중, 골든이글 이동시 무전 바람 이상.]
[골든이글, 현 시간부로 테이크오프, 이상]
헬기들은 다음 중대를 수송하기 위해 다시 인천으로 날아갔다.
705 특공연대 병력들은 신속하게 산업단지 건물들로 흩어져 건물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 곳 산업단지 건물들은 우성시 서쪽 구역 점령을 맡은 705 특공연대의 교두보가 되는 곳이었다.
“11시 방향 적 확인!”
“사격! 사격!”
선두로 가던 특공연대원이 M1 카빈 소총을 든 폭도 두 사람을 발견하고 소리 질렀다. 소대장의 사격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전 분대원들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한국군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던 폭도들은 그 자리에서 피범벅이 되어 쓰러졌다.
“총 든 놈 보면 묻지 말고 그냥 쏘라고!”
선두를 지휘하던 소대장이 무전을 통해 일갈했다. 특공연대원들 모두 긴장했는지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갑자기 자동차 부품 공장 쪽에서 요란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자세를 낮추고 공장 방향을 주시했다.
[백표범 장, 백표범 장, 당소 백표범 둘 이상.]
[백표범 장, 송신.]
[당소 위치 노멤버 파이브라 알리고, 지원 요청, 지원 요청 이상.]
[백표범 둘, 자세한 상황 보고 바람 이상.]
[당소 노멤버 파이브에 십여 명 이상의 무장 병력과 교전 중 이상.]
[백표범 둘, 입감했고, 현망에 대기 중인 백표범 하나, 백표범 하나, 등장 바람 이상.]
[백표범 하나, 송신.]
[당소 백표범 장이라 알리고, 귀측 위치에서 노멤버 파이브 북쪽으로 이동해 진입 가능한지 확인 바람, 이상.]
[가능하다고 알림, 이상.]
[백표범 장, 확인했고, 백표범 하나, 현시간부로 노멤버 파이브 북쪽으로 진입해 뒤에서 공격하라고 알림, 이상]
[백표범 하나, 확인.]
[백표범 둘, 백표범 둘, 당소 백표범 장이라 알리고, 백표범 하나 이동 중이니 현 위치에서 고착 견제 사격 실시하라고 알림, 이상.]
[백표범 둘, 확인.]
자동차 부품 공장 입구에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특공연대원들은 K15 경기관총을 위시로 우월한 화력을 앞세워 폭도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폭도들은 M1 카빈의 반자동 사격만으로 특공연대원들의 화력을 막아낼 수 없었다. 제대로 훈련조차 받지 못한 이 외국인 노동자들은 겁에 질려 각종 철근 부품들로 쌓아 만든 바리케이드 진지 아래 머리를 숙이고 숨어 버렸다.
폭도 한 명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고개를 든 순간, 하늘 위에서 진지 안으로 노란색 공 같이 생긴 물체가 떨어지고 있었다.
펑!
K201의 유탄이었다. 진지 안에 숨어 있던 폭도들의 터져 나간 몸뚱이 조각들이 밖으로까지 튀어 나왔다.
다른 폭도들이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 공장 안쪽에서 탄환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백표범 둘, 백표범 둘, 당소 백표범 하나라고 알리고, 당측 노멤버 파이브 도착했으니 사격 중지, 사격 중지 바람 이상,]
[백표범 하나, 당소 확인했다고 알림, 이상.]
폭도들과 마주 보고 교전을 벌이던 병력이 사격을 멈추자, 건물을 돌아 공장 안으로 들어온 특공연대원들이 폭도들의 뒤를 치기 시작했다. 이제 폭도들은 숨을 곳도 없이 진지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특공연대원들은 폭도들을 향해 점사로 사격하며 하나씩 하나씩 쓰러뜨려 나갔다.
순식간에 십여 명의 폭도들을 사살하고 자동차 부품 공장 입구를 점령한 특공연대원들이 맞은 편 대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맞은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도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위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대원들은 자동차 부품 공장 일대에 널브러진 폭도들의 시신들을 보며 말했다.
“모두 다 외노자(외국인 노동자)들 아냐?”
“응, 동남아시아나 파키스탄, 뭐 이런 데 사람들 같이 생겼네. 그리고 저 시신은...... 너무 찢어져서 어느 나라 사람인지 잘 모르겠고.”
“난 빨치산들이 우리나라 전투복 입고 있어서 싸울 때 구별 안 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직 빨치산들 모습을 한 번도 봇 봤지?”
“그러게, 여기는 다 외노자들만 있는 건가? 우리랑 닮은 얼굴은 통 보이지가 않네......”
특공연대원들은 다시 총구를 들고 주변을 경계하며 산업단지 일대를 점령해 나갔다.
오전 6시, 경기도 우성시 여동 톨게이트 일대
KAH1 헬기들이 휩쓸고 지나간 길 위로, 62보병 사단 소속 장갑차들과 병력 수송 차량들이 여동 톨게이트로 진입하고 있었다. 톨게이트와 도로 주변에는 산산이 조각난 폭도들의 시신들이 붉은 핏덩이가 되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62사단은 이번 우성시 수복 작전의 주력부대로 우성시 동족 내륙지역 점령을 담당하고 있었다. 62사단장 김요한 소장은 앞으로 우성시 계엄사령관의 역할도 겸임할 예정이었다.
K151 지휘차량을 타고 있던 김요한 소장은 전술 전화기로 계속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우성시 외곽에 있던 병력들이나 서해안 산업단지 쪽에 있던 병력들이나, 모두 다 외노자 폭도들이었다고? 그럼 빨치산들은? 북한 놈들은 모두 시내 안으로 숨어 들어가 있다는 건가? 이런 젠장......!”
김요한 소장이 주먹으로 조수석 문을 쾅, 내리쳤다. 옆에서 운전하던 운전병이 놀라, 사단장의 눈치를 보며 속도를 줄이고 조심스레 운전하기 시작했다.
과거, 김요한 소장은 이라크 전쟁 때 미군에 파견되어 그들이 시가전에서 얼마나 심한 피해를 당하였는지 직접 보고 들은 적이 있었다.
이번 수복 작전에서 적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빨치산들만 쓰러뜨리면 외국인 노동자 폭도들은 모두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빨치산들은 이미 한국군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는 듯 폭도들을 앞에 세우고 자신들은 모두 다 뒤로 빠져 버린 상황이었다.
‘적장은 생각보다 약은 놈이다...... 북한군 전체가 궤멸 직전인 상황 속에도 혼자서 한국의 시 하나를 점령했을 정도의 실력이면, 여간내기는 아니겠지......’
전화기를 내려놓은 김요한 소장은 입 주위를 쓰다듬으며 앞으로 적장과 어떻게 전략 싸움을 벌여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쨍!
운전병이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김요한 소장이 깜짝 놀라 앞을 바라보니, 지휘차량 전면 유리에 탄환이 박혀 산산이 금이 가 있었다. 방탄유리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개전 첫날 저격당할 뻔 한 상황이었다.
“이런, 씨부랄 개새끼들! 지금 어디서 쏜 거야!”
사단장 지휘차량 주변의 병력들은 앉아 쏴 자세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탄이 날아온 곳은 명확하지 않았다.
뒤편에서 따라오던 K1A1 전차에서 의심되는 건물을 향해 전차포를 쏘려는 듯 포신을 돌리고 있었다.
이를 본 김요한 소장이 급히 전술 전화기를 들었다.
“야, 아직 민간인들 대피도 안 된 상황이니까, 전차 쏘지 말고 대기하라고 해. 빨갱이들 죽이기 전에 국민들부터 죽어 나가는 꼴 보고 싶어!? 에잇! 개 같은 시가전......!”
사단장은 또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운전병은 겁에 질린 듯,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불안하게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다시 천천히 악셀을 밟았다.
오전 8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학교
성부 학교에서도 우성시 일대에서 울려 퍼지는 총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성모는 학교 옥상으로 올라가 쌍안경으로 우성시 일대를 둘러보았다. 너무 멀어 잘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분명 여기저기서 교전하는 소리가 분명했다. 서쪽 바닷가에서도, 동쪽 도로 방향에서도, 총소리는 점점 시내 방향을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성모는 쌍안경을 내려놓으며 함께 있던 애국 청년 십자군들에게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나라 군이 왔다...... 이제 됐어! 밑에 애들한테 전부 무장 챙기라고 그래! 이제 우리도 싸우러 나갈 거야!”
성모는 자신의 M16A1 소총을 집어 들고 다시 우성시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시청 쪽을 향하고 있었다.
검은색 테러복을 입은 30명의 애국 청년 십자군들이 무장을 들고 학교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록은 기숙사 복도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때, 영록이 있는 기숙사로 누군가 급히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유민이었다. 그녀는 어느새 지난번 성모에게 받은 검은색 테러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야, 지영록! 너 여기서 뭐 해? 너도 같이 안 갈 거야?”
유민의 말에 영록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어? 나, 나도 가야 돼?”
“당연하지! 너도 애국 청년 십자군 가입했잖아! 다 나가는데 너만 여기 가만있을 거야?
“그치만, 우리 지금 총이나 무기도 하나 없잖아? 무기도 없이 따라가 봤자 무슨 도움이나 될까?”
그러자 유민은 답답하다는 듯, 영록을 기숙사 방으로 끌고 들어가 그의 옷장에서 테러복을 꺼내 던져 주었다.
유민이 갑자기 방으로 들어온 탓에, 짧은 반바지에 민소매 티를 입고 침대에 누워 책을 보고 있던 태하가 깜짝 놀라 이불로 몸을 가리고 누워 버렸다.
유민은 영록을 노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총이 있건 없건 그건 큰 문제가 아니야, 의지와 용기가 있느냐가 문제인 거지. 너 더 이상 겁쟁이가 되고 싶지 않다며? 성장하고 싶고 변하고 싶다고도 했지? 그럼 이 옷 입고 나 따라와. 못 견디게 무서워도 이겨내 보라고! 한번 이겨내면 그다음부터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까!”
유민이 이렇게 무서운 눈빛으로 영록을 바라보는 건 처음이었다.
두 사람이 한참을 그렇게 서 있을 때, 침대 위의 태하가 이불 속에서 얼굴만 쏙 내밀고 조심스레 말했다.
“저...... 유민아? 쟤 아무래도 니가 있으니까 옷 못 갈아입고 있는 거 같은데? 그리고 나도 옷이...... 좀.....”
“응? 으응?”
그 말에 유민은 화들짝 놀라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태하는 한숨을 쉬며 영록을 바라봤다.
“......나갈 거야?”
영록은 테러복을 주워 입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보려고......”
“여전히 나는 말리고 싶긴 하다. 구지 네가 저 전쟁 통에 나갈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유민이에게 겁쟁이로 보이고 싶지 않아.”
영록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태하는 이불 밖으로 나와 2층 침대에 걸터앉았다.
“너한테는 쟤가 너를 어떻게 봐주는지가 그렇게 중요해?”
태하는 천진난만하게 다리를 앞뒤로 흔들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영록은 태하가 하는 말과 행동이 서로 너무 언발란스하다고 생각했다.
오전 9시, 북한 평양 남쪽 방어지대
10일 넘게 중단되었던 2차 한국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경기도에서 벌어진 우성시 수복 작전을 시작으로, 평양과 개마고원 동북 4도를 포위하고 있는 한국군들이 일제히 포문을 열고 공격을 시작했다.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인 상황에서도 한국군은 평양과 개마고원 일대에 무인 드론으로 삐라(심리전 전단지)를 대량으로 살포하는 한편, 확성기를 통해 심리전 방송을 계속하며 북한군의 투항을 유도하고 있었다.
심리전의 성과는 예상외로 괜찮았다. 사방이 고립되어 식량까지 부족해진 평양에서는 매일 밤 수백 명의 병력들과 북한 주민들이 탈주하고 있었다.
이제 도망칠 사람은 거의 다 도망쳤다고 판단한 한국군은, 청와대의 공격 재개 명령과 동시에 평양을 향해서도 무차별 무차별 폭격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대대장 송호원 중령이 이끄는 수기사(수도기계화보병사단) 81전차대대 K2 흑표 전차들은 평양의 남쪽, 평양개성 고속도로와 평양원산 고속도로의 분기점에서 여단으로부터 공격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성시 사건으로 인해 전군의 공격이 중단된 동안 송호원 중령과 대대원들 모두는 일주일 넘게 푹 쉴 수 있었다. 그 덕에 그 어느때보다 컨디션이 좋을 수 밖에 없었다.
주임원사와 대대 군수장교가 열심히 뛰어다닌 덕에, 며칠간 대대원들의 식사는 전투식량이 아니라 식판에 나오는 병영식을 먹일 수 있었다. 급양대에서 받아온 쌀과 여러 부식들을 가지고 대대 취사 트레일러를 이용해 취사병들이 직접 조리한 따끈한 밥, 국, 반찬들이 대대원들에게 지급되었다.
공격 준비에 앞서, 81전차대대원들은 오늘 아침 식사도 병영식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자신의 전차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송호원 중령 역시 식사를 마치고 민간에서 지원 나왔다는 캔커피를 마시며 주임원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래도 대대원들에게 제대로 된 밥을 먹일 수 있으니 마음이 좀 놓이는군요.”
“애들 모두 좋아라 하지요. 뭐, 전쟁 나기 전에는 맨날 짬밥 먹기 싫다고 PX에 틀어박혀 살던 놈들도, 한 달 가까이 전투식량만 먹이니 취사장 음식이 그리워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주임원사요, 근데 어제 그 돼지들은 어디서 난 겁니까? 설마 급양대에서 살아 있는 돼지를 그냥 주었을 리는 없을 텐데요?”
주임원사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그거 말입니까? 그게, 사단에서 부식 추진해 오다가 저기 저 부근에 빈집에서 꿀꿀거리는 소리가 들리길래 가서 보니까, 집주인은 피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돼지들만 있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몰고 온 거지요.”
“설마, 집주인한테 훔쳐 온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그랬다가 군사경찰대에 끌려가는 거 뻔히 아는데 제가 왜 그랬겠습니까? 전쟁 동안 고생하는 우리 대대원들 고기 좀 먹이고 싶어 그런 거지, 절대 훔친 건 아닙니다. 아무렴요!”
주임원사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언성을 높이는 버릇이 있었다. 큰 목소리로 바득바득 아니라고 하는 주임원사를 보며, 송호원 중령은 씁쓸하게 웃었다.
쌔액~!
그 때, 머리 위로 전투기들이 평양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한국군 KF1 전투기들이었다.
“시작되려는 모양이네요. 이제 우리도 준비합시다.”
송호원 중령은 다 마신 캔을 던져 버리고 자신의 전차로 달려갔다.
전차에 타 KJCCS(Korea Joint Command & Communication System, 합동지휘통제체계)를 확인해보니, 후방에서 사단, 군단 포병들의 포격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전문이 하달되어 있었다.
송호원 중령은 전차 밖으로 몸을 내놓고 쌍안경으로 평양 인근을 관측했다. 공군 전투기와 육군 포병 화력이 평양을 초토화하고 있었다. 평양 일대는 건물이 부서지며 뿜어내는 연기구름으로 온통 희뿌옇게 보이고 있었다. 펑, 펑, 폭발음은 쉬지 않고 들려왔다. 불길에 휩싸여 붉게 타오르는 건물들도 보였다.
대통령은 이번에도 합참에 백린탄 사용을 지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합참의장 박현국 대장은 말로만 대통령에게 그리하겠다고 하고, 평양을 공격하는 군 지휘관들에게는 백린탄 사용을 엄금했다. 다만 청와대에 백린탄을 사용했다고 보고용으로 보낼 사진만 조금 찍어서 보내라고 지시했다.
저 멀리 평양 중심부에 있던 105층짜리 류경 호텔이 한국군의 폭격에 가루가 되어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평양 최고의 랜드마크가 사라지는 순간이로군.”
송호원 중령의 이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느라 쌍안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폭격이 시작되고 두어 시간이 지났을 때, 무전기를 통해 여단의 지시 사항이 내려왔다.
[81대대 선두로 평양 시내로 진입한다! 각 전차 자유 교전 허가, 각 전차 자유 교전 허가.]
송호원 중령은 웃음이 나오는 걸 감출 수 없었다.
전차 안에 있던 이태근 하사가 내선으로 말했다.
“대대장님, 최초로 평양을 점령하시게 된 것 축하드립니다. 이제 우리 대대, 북한의 류경수 사단처럼 나중에 송호원 대대, 아님 송호원 여단, 송호원 사단으로 불리는 거 아닙니까?”
송호원 중령은 웃는 얼굴로 화답했다.
“우리나라가 북한도 아니고, 설마 사람 이름을 부대 이름에 갖다 붙이겠나?”
“왜 안됩니까? 우리 사단 1여단 133대대가 옛날 강재구 소령 이름 따서 대대 이름이 재구 대대인데 말입니다.”
“앗, 생각해 보니 그러네......?”
“지난번 황주 전투에서 우리 대대가 적 류경수 사단도 전멸시키고, 815, 820군단 때려잡을 때도 크게 한몫하지 않았습니까? 군단장님이 대대장님한테 태국무공훈장 줘야 한다고까지 말씀하신 거, 대대에 다 소문 났지 말입니다? 이런데 이번에도 우리 대대가 전군 최초로 평양에 입성하기만 한다면, 우리 대대 이름을 대대장님 이름으로 바꾸는 거,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이지 말입니다. 송호원 대대? 호원 대대? 입에도 짝짝 잘 달라붙는데 말입니다?”
“아, 비행기 좀 그만 태워~ 근데...... 너 이 새끼, 너 아까부터 은근슬쩍 대대장 이름 너무 막 부른다?”
“앗!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송호원 중령은 웃으며 전 대대 전차들에게 평양으로 진격을 명령했다.
기대했던 대로, 송호원 중령의 81전차대대 K2 흑표 전차들이 한국군 최초로 평양에 입성했다.
이미 평양은 폭격으로 인해 완전히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각 전차, 적 보병 대전차 무기에 각별히 유의할 수 있도록 하고, 계속 사주 경계하며 따라올 수 있도록.”
대대 선두에 선 송호원 중령이 각 전차에 무전을 보냈다.
한국군 K2 흑표 전차들은 두루섬 일대 대동강을 가로지르는 충성의 다리를 건너 평양 중심지역으로 진입했다. 이곳 역시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들과 먼지로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3시 방향, 다수의 적 보병 발견! 3시 방향, 다수의 적 보병 발견!]
대대 무전을 들은 K2 전차들의 포탑이 모두 우측으로 회전했다. 송호원 대령은 쌍안경으로 3시 방향에 있다는 적 보병들을 찾아 보았다.
평양역과 김일성광장이 보이는 방향에서, 구식 북한군복을 입은 셀수도 없을 만치 많은 사람들이 도로를 꽉 매우며 전차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무기 같은 건 들려있지 않았다.
그 중에는 커다란 하얀 천으로 백기를 만들어 들고 있는 이도 보였다.
송호원 중령이 다급히 각 전차들에 무전을 보냈다.
“항복하러 오는 사람들인 것 같다. 각 전차, 사격하지 말고 사주 경계 자세만 유지할 것.”
예상대로, 그들은 폭격에서 살아남은 북한 준군사조직에 가입된 이들이었다.
한국군의 폭격에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모습이었다.
북한 사람들이 전차 200m 가까이까지 접근해오자, 송호원 중령은 전차에 설치돤 확성기로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는 대한민국 육군이다! 투항하는 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 투항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 엎드려라! 무기가 있는 자는 모두 무기를 땅에 내려 놓아라!”
이 말을 들은 북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일제히 무릎 꿇고 엎드리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기가 없다는 의미로 상의까지 벗어 던지기까지 했다.
송호원 중령이 둘러보니, 투항하는 자들의 수는 대략 수만 명이 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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