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27화 (27/217)

〈 27화 〉 2027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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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10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학교

유민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정오가 되기 전 빨치산 몇 명이 학교에 찾아왔다. 하지만 그들은 학교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교문 밖에 서서 눈에 보이는 아이들 몇 명을 교문 가까이로 불러냈다.

그들은 지금 학교 안에 몇 명이 있는지, 지금 환자들은 또 몇 명이나 있는지, 환자들의 증상은 어떤지 물어보았다. 이미 애국 청년 십자군들에게 교육 받은 아이들은 자신들이 들은 대로 빨치산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빨치산들도 과거 북한에 있었을 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처참한 세월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학교 안의 아이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거라 믿고 있었다.

빨치산들은 교문을 바깥쪽에서 쇠사슬로 허겁지겁 잠그고는 아이들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밥은 끼니때마다 빠지지 않고 가져다 줄 거이니, 너희들은 절대 학교 밖으로 나오면 아이 된다. 일단 아픈 아이들하고 안 아픈 아이들하고 먹고 자는 곳 모두 다 꼭 따로 따로 나누어 두고, 무슨 일 있으면 끼니 때 밥 가져다주는 사람들한테 소상히 말하라, 알았나?”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는 도망치듯 학교를 떠났다.

그 후로 학교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사나 구급대원들도 찾아오지 않았다.

환자가 있어서 그런지, 어제 까지 아침과 저녁 2끼만 가져다주던 공무원들이 오늘 부터는 아침, 점심, 저녁, 세 끼 모두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단, 학교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큰 통에 밥과 국, 김치를 가지고 와서 교문 안에 넣어주고 환자들의 상태는 어떤지 잠깐 물어보고는 바로 학교를 떠났다. 물론, 떠날 때는 밖에서 쇠사슬로 교문을 잠그는 것은 잊지 않았다.

점심부터 식사는 애국 청년 십자군들이 배식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애국 청년 몇 명이 밥, 국, 김치가 든 통을 식당으로 들고 들어오자, 식당 의자에 다리를 꼬고 거만하게 앉아 있던 마선욱이 거친 말투로 중얼거렸다.

“씨발, 분명히 정부에서 고기나 다른 부식들도 다 챙겨서 보내줬을 텐데, 그 거지 같은 빨갱이 새끼들이 중간에서 지들이 처먹으려고 다 쌔벼 가버린 거야. 그러니까 맨날 이 학교에는 된장이랑 김치만 보내는 거지. 이래서 공산당 빨갱이 개새끼들은 싹 다 잡아서 대갈통을 빻아 버려야 된다니까!”

마선욱의 위협적인 목소리에, 식당 안에 있던 다른 아이들은 모두 주눅이 들어버릴 정도였다.

­ 오후 7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학교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아이들은 교실과 기숙사 여기저기로 흩어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때, 마선욱과 그를 쫓아다니던 몇몇 양아치 같이 생긴 녀석들이 남자 기숙사를 돌아다니며 각 방마다 들어가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야, 너 방에 뭐 먹을 거 꼽쳐 놓은 거 없어? 있으면 내놔봐. 없어? 뒤져서 나오면 너 오늘 나한테 뒤질 줄 알어!”

저녁밥을 먹고도 부족한 건지, 마선욱은 자기 똘마니처럼 부리는 녀석들을 끌고 다니며, 함부로 아이들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야, 우리 아빠는 지금까지 너희들 공짜로 먹여 주고 재워줬고, 나는 너희들 지켜주러 피땀 흘리며 싸우고 다녔는데, 최소한의 고맙다는 의미로 먹을 거 하나 못 내놓겠냐? 나랑 우리 아빠가 베푼 은혜도 모르는 이 호로 새끼들아!”

마선욱은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들의 뺨을 후려치거나 발로 걷어차기 까지 했다. 아이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조금이라도 먹을 것을 몰래 챙겨 놓고 있었던 아이들은 마선욱에게 맞을까 두려워 그에게 음식을 넙죽 바쳐 버렸다.

마선욱 일당은 영록과 태하의 옆방에 까지 와 있었다. 옆방의 아이는 배고플 때 먹으려고 숨겨 놓았던 초콜릿 한 박스를 마선욱에게 들키고 말았다. 마선욱은 아이의 뺨을 후려치며 소리쳤다.

“새끼야, 맞기 전에 내놨으면 좋았잖아? 이래서 조선 놈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앞으로 맞기 전에 미리 알아서 잘 해라, 알았냐?”

뺨을 맞은 아이는 울먹이고 있었다. 마선욱이 초콜릿을 들고 희희낙락하며 방을 나가려 할 때, 보다 못한 태하가 방에서 나와 마선욱의 앞을 가로 막았다.

“중학생 초콜릿까지 뺏어 가는 건 좀 너무하시는 거 같은데요?”

영록은 방문 너머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이 광경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마선욱의 육중한 체구 앞에서, 170cm 가 조금 넘는 태하는 너무나 보잘 것 없어 보였다. 하지만 태하는 조금도 굴하지 않는 모습으로 허리를 곧게 펴고 그의 앞에 당당히 서 있었다.

“뭐?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마선욱은 어이없다는 듯 히죽거리며 손가락 마디를 우두둑거렸다. 태하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당당히 말했다.

“애들한테서 먹을 거 그만 뺏어 가라구요. 쪽팔리지도 않아요? 뭐, 말로는 공산당 빨치산들하고 싸우는 십자군이라면서, 하는 짓은 겨우 애들 음식이나 빼앗고 다녀요? 그러고도 무슨 애국......”

순간, 마선욱의 오른손이 태하에게 날아왔다.

영록은 태하가 맞는 줄 알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아, 아니, 이, 이 개새끼가......!”

마선욱이 당황한 듯 말을 더듬고 있었다.

뭐가 맞거나 부딪히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영록이 눈을 떴을 때 본 것은 마선욱이 태하에게 밀려 대여섯 걸음 뒤로 물러나 있는 모습이었다.

마선욱이 주먹을 크게 휘두른 순간, 태하는 허리와 무릎을 숙이는 것과 동시에 머리를 마선욱의 가슴에 부딪히듯 박아 버렸다. 복싱의 ‘더킹’과 비슷한 동작이었다.

태하의 머리가 마선욱의 가슴에 부딪히면서 마선욱의 주먹은 그대로 허공을 붕, 가르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태하가 두 손으로 마선욱의 가슴을 세게 밀어버렸다.

100kg이 넘는 거구인 마선욱이 왜소한 태하에게 밀려 버린 것이다! 이걸 보고 있던 다른 양아치들도 모두 놀라 입이 쩍 벌어졌다.

마선욱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런 개새끼가, 어디서 감히 기술을 써!”

마선욱은 소리를 지르며 태하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태하에게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렀다. 한 대라도 맞으면 코뼈든 광대뼈든 그대로 부서져 버릴 만큼 강력한 주먹이었다.

하지만 태하가 더 빨랐다.

태하는 마선욱의 주먹이 가까이 오는 순간순간마다 머리와 몸을 잽싸게 움직이며 공격을 모조리 흘려버리고 있었다. 그것도 너무 여유로워 보일 정도로 말이다.

한 대도 때리지 못한 마선욱이 약이 올라 마구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마선욱의 오른손이 다시 한 번 크게 헛치고 지나가는 순간, 태하가 휙, 하고 마선욱에게 덤벼들 듯 가까이 붙어 들어갔다.

태하는 오른발을 쑥 내밀어 마선욱의 발목을 걸어버리고는, 마선욱의 오른쪽 어깨와 팔꿈치를 두 손으로 밀어버렸다.

마선욱의 커다란 덩치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 씨발 새끼, 너 오늘 진짜 나한테 뒤졌어!”

마선욱은 허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에서 끙끙거렸다.

그 때, 기숙사 안으로 성모가 들어왔다.

다른 아이들로부터 마선욱이 기숙사에서 아이들한테 음식을 빼앗고 괴롭히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말리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마선욱이 바닥에서 끙끙 거리고 있는 장면을 보고는 이게 지금 무슨 일인가, 하고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멍하니 마선욱과 태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 때 마선욱이 욕설을 내뱉으며 일어나려했다. 성모는 그런 마선욱의 팔을 잡으며 말렸다.

“됐다, 그만해.”

성모는 마선욱을 질질 끌고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 마선욱은 성모와 다른 청년들에게 끌려 나가면서도 태하를 향해 마구 소리를 질렀다.

“너 이 새꺄~! 다음에 나한테 걸리면 아주 그냥 뒤질 줄 알어!”

영록은 성모가 마선욱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보며, 일전에 교회에서 만난 운용이가 성모 더러 제일 나쁜 형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하던 말이 다시금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고 나니 과연 성모가 나쁜 사람이 맞을까, 운용이란 아이가 괜히 이상한 말로 비방하려 한 게 아닐까 의심되기 시작했다.

영록이 다시 복도를 보니, 태하는 마선욱이 기숙사 밖으로 끌려 나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와..... 태하야, 너..... 진짜 싸움 잘하는구나. 정말 다시 봤어.”

방문 뒤에 숨어 있던 영록이 감동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태하는 멋쩍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이거 싸움 잘하는 거 아니라니까~ 전에도 말하지만 난 그냥 피하는 거랑, 피하다가 밀어서 넘어뜨리는 것만 잘 한다구, 그리고 이건 싸우는 기술이 아니라 싸움 피하는 기술이야.”

태하는 겸손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이미 영록의 눈엔 그가 엄청난 고수의 모습으로 보였다.

영록은 그 날 저녁부터 태하가 가져온 ‘모두를 위한 격투 무예’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이것만 열심히 보고 따라하면 자신도 태하 만큼 잘 싸울 수 있게 되리란 기대로 말이다.

태하는 그런 영록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너무 한꺼번에 많은 걸 보고 외우려고 하지 말고, 처음에는 책에 나오는 동작들 중 1가지만 숙지하고 그걸 꾸준히 반복해서 훈련해봐. 그게 훨씬 효과가 있을 거야.”

“이 동작들을 나 혼자 해보라는 거야?”

“응, 머릿속으로 ‘내 앞에 나를 공격하는 적이 있다’고 상상하면서 동작을 연습하는 거야. 가령, 거기 니가 보고 있는 페이지에 나오는 기술 있잖아? 상대가 내 멱살을 잡으려고 오른손을 뻗는 순간, 몸을 오른쪽으로 틀어주면서 왼손바닥으로 상대방의 팔을 쳐내는 거, 이거를 그 상황을 상상하면서 처음에는 천천히 연습해 보는 거지, 그러다가 조금씩 속도를 빨리 내가면서 빠르게 연습해보고, 나중에는 연습 상대와 함께 실제로 상대방 손을 막아보면서 연습해 보는 거야. 훈련이란 원래 이렇게 하는 거지.”

“혼자서 그러고 있으면..... 좀 쪽팔리지 않을까?”

“그럴 수 있지, 그럼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연습하면 되잖아? 아니면 나랑 같이 있을 때 연습하는 것도 괜찮을 거야. 나도 지금까지 똑같은 걸 그런 방법으로 연습해 왔으니까.”

영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 오후 8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 시청

리부일은 우성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린 채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의 입에는 오늘도 담배가 물려져 있었다.

“......그리 되었단 말이디? 결국, 남조선 아(아이)들이 눈치 챈 모양이구만 기래. 뭐, 일 없시오. 어차피 준비는 다 되어있으니, 올 테면 오라 하오. 그저 우리는 우리가 준비한대로 먼저 들어오는 아새끼들부터 차례차례 개박살내주면 그만이오.”

긴 통화를 마친 리부일이 손끝에서 다 타들어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후, 새 담배를 꺼내기 위해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담뱃갑 안에는 더 이상 담배가 남아 있지 않았다. 리부일은 빈 담뱃갑을 구겨 신경질적으로 현관 앞으로 던져 버렸다.

리부일은 오늘 저녁부터 한반도 전역의 한국군들이 대거 기동을 시작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동북4도와 평양을 포위하고 있는 한국군들은 물론, 우성시와 가까운 상아시와 인천광역시에 있는 한국군들도 매우 빈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리부일은 한국군이 곧 우성시로 공격해 올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휴전 협상까지 가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쉽구만...... 간나새끼들, 여기 화학가스가 없다는 걸 어찌 눈치 깐 건가? 혹시...... 남조선 특무(특수부대)가 이미 들어와 있는 건 아니겠지......?’

리부일은 전파와 유선이 모두 차단된 우성시 내에서 유일하게 사용되는 무선 채널을 통해 빨치산들에게 지령을 하달하기 시작했다.

“......금일 22시까지 외곽 방어진지들은 모두 해외 프롤레타리아(외국인 노동자)들로만 배치시키고, 공화국 전사들은 모두 우성 시내에 준비된 방어진지로 이동시키라우. 무기하고 탄들은 물론이고, 남은 식량들하고 남조선 괴뢰 전투 식량들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챙겨서 들어가라.”

무전을 마친 리부일 집무실에 있던 자신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집무실 창문 너머로, 시청 앞 광장 가로등에 매달린 시신이 바람에 흉물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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