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2027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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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 경기도 우성시 폐건물
한동안 인적이 끊긴 시내의 한 건물로 몇 개의 그림자들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유령이라고 되는 양, 계단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서도 발걸음 소리조차 내고 있지 않았다.
그림자들이 3층에 거의 올라왔을 때,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번뜩였다.
“치킨”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림자들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맥주”
그러자 어둠 속에서 서너 명의 그림자가 일어났다. 미리 도착해 있던 UDU 대원이었다.
장주영은 계단을 마저 올라가며 투덜거렸다.
“오늘 암구어 만든 새끼 센스...... 진짜 죽여 버리고 싶다. 그 많고 많은 단어 조합 중에서, 왜 하필 문어에 치킨, 답어에 맥주인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치킨엔 소준데 말입니다.”
“씨펄, 암구어 땜에 치맥 땡겨보긴 처음이네.”
UDU 대원들은 키득거리며 장주영을 맞이했다.
우성시에 침투한 12명의 UDU 대원들 모두 무사히 약속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그들 모두 전투는 물론 적과 단 한 번도 접촉하지 않고 작전 구역에 대한 수색을 끝마치고 돌아왔다. 그들은 각자 맡은 구역에 대한 수색 결과를 장주영에게 보고 했다.
모든 보고를 다 들은 장주영이 오른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그럼 결론은...... 여기 VX는 없는 거네?”
UDU 대원들 중 선임부사관이 말했다.
“빨치산들이 불특정 민간인들의 집 안에 숨기고 있다고 가정하지 않는 이상, VX는 여기 없는 게 확실해 보입니다.”
옆에 있던 한 대원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런데 정말로 빨치산 놈들이 아무 집이나 그 안에 숨기고 있었으면 어떻게 합니까?”
장주영이 대답했다.
“VX의 살상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실외에 설치하고 살포해야 해. 집 안 같이 실내에서 터뜨려봤자 밀폐된 공간에서 터지는 거라 주변에 큰 피해를 줄 수 없어.”
대원이 다시 딴지를 걸었다.
“그래도, 집안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터뜨릴 때만 딱, 집 밖으로 가지고 나올 수 도 있는 거 아닙니까?”
장주영은 답답하다는 듯, 대원의 머리에 꿀밤 한 대를 먹이며 말했다.
“야! 걔들이 우성시에 38곳에 VX를 설치했다고 했는데, 우성시 전체 인구에 피해를 주려면 최소 5톤 이상의 VX가 있어야 하거든? 그럼 5톤을 38로 나누면? 최소 1곳에 130kg 이상 무게의 VX가 있어야 한다고 봐야겠지? 그럼 그 130kg 넘는 화학 가스를 집 안에 숨겨 놓고 있다가 ‘자, 이제 딱, 터뜨릴 시간이다~!’ 하고 집 밖으로 딱, 꺼내 놓는 게 말 같이 쉬울 거 같냐? 그리고 그거 터뜨리는 놈은 살포 버튼 누르자마자 지도 중독 되서 뒤질 확률이 거의 99.9999999999% 인데, 지가 죽을 거 뻔히 알면서 그거 집 밖으로 내놓는 게 쉬운 일이겠어? 그리고 근본적으로다가, 130kg이 넘는 화학 가스들을 38개씩이나 북한에서부터 여기까지 들고 올 수나 있었겠냐?”
대원은 꿀밤 맞은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렸다.
선임부사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역시, 북한이 우리를 거짓말로 속인 모양입니다. 정말 우성시에 VX가 있다 하더라도 극히 소수의 양만 있을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그들로서도 도박이나 마찬가지였을 텐데, 우리를 상대로 시간 끌기를 하려 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 그 도박에 성공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장주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마 여기서 시간 끄는 동안 평양이나 개마고원의 군대들이 재정비할 시간을 벌려 한 것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장주영한 잠시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아마 다들 수색하면서 봐서 알겠지만, 빨치산 놈들하고 폭도 놈들이 일반 가정집들까지 진지화하고 우리군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차피 VX는 없었을 테니까, 우리 군이 공격해 온다면 민간인들을 방패 삼아 시가전을 벌이며 계속 시간을 끌어보려는 속셈인 거 같습니다. 이제, 우성시에 투입될 부대들로서는 쉽지 않은 전투를 각오해야 할 거 같네요.”
선임부사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장주영이 무언가 생각난 듯 무릎을 탁 치며 이야기했다.
“아, 전에 김 대리가 발견한 그 기뢰, 정보사에서 해당 기뢰의 유통 과정에 대해 추적해 보았다는데, 재미있는 결과를 알게 되었다는군. 해당 기뢰는 요새 몇 년간 판매된 적이 단 한 번 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말야, 어느 나라에서 그 기뢰를 수입해간 지 알아?”
“어딥니까? 진짜 북한은 아닐 거고, 어느 나라에서 사간 겁니까?”
그날, 우성시 서해 앞바다에서 기뢰가 영국산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던, 김 대리라 불린 UDU 대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물었다. 장주영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쪽바리들이었어.”
아까 장주영에게 꿀밤을 맞은 대원이 다시 딴지를 걸었다.
“에이, 그래도 쪽바리 새끼들이 빨치산 도와줘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비싼 기뢰까지 지원해 주겠습니까? 이건 좀 너무 나간 얘기인거 같지 말입니다?”
장주영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일단, 어디까지나 우리 정보사에서 일부 인원들만 추측하고 있는 얘기지만 말이야, 일본으로서도 이 전쟁이 결판 안 나고 질질 끌면 끌수록 분명히 이득인 부분이 있으니까 몰래 북한을 지원하면서 전쟁을 장기전으로 만드는 것 같다는 거야.”
“에이, 뭐, 이 전쟁이 오래가면 쪽바리들이 뭔 이득을 본다는 말씀입니까?”
UDU 대원의 물음에 장주영이 말을 이었다.
“만일 전쟁이 장기화되면 우리나라도 어쩔 수 없이 주변국에 물자 등을 지원받지 않으면 안 되거든? 우리가 가진 물자나 무기, 식량에는 한계가 있고 공장에서 찍어내는 거나, 무기나, 이것저것 전쟁 물자들 만드는 원자재 들여오는 거나 뭐, 여러 가지...... 결국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다 감당이 안 되니까 다른 나라에서 사오든 빌려오든 구해 와야 할 필요가 있단 말야. 옛날 1차 한국 전쟁 때도 그렇고, 한반도에서 전쟁 나면 그 물자들을 구하기 가장 쉽고 가까운 나라가 어디겠어?”
“......일본이지 말입니다.”
UDU 대원은 조금씩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얼마 전에 대통령이 일본에 물자 원조받으려고 할 때 민주시민당이랑 야당이 반대해서 국회에서 막혔잖아? 근데 계속 전쟁이 장기화 될 수밖에 없다면? 아무리 야당이 반대를 해도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어느 나라에서든지 물자 지원을 받아야 하는 수밖에 없겠지? 근데 지금 우리랑 가장 중요한 동맹이라는 미국이 러시아, 중국, 이란 세 나라랑 언제 전쟁 날지 모르는 분위기에 빠져 있으니까, 걔네 물자를 우리한테 보내주는 것도 참 애바스러운 부분이 있거든? 그렇다고 우리가 러시아나 중국한테 물자 지원해달라고 할 순 없잖아? 그럼 우리가 당장 지원 받을 수 있는 나라는 이제 어디 밖에 없다?”
장주영은 손가락으로 질문 한 UDU 대원을 가리켰다. UDU 대원은 완전히 이해했다는 듯 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일본 밖에 없지 말입니다.”
“그렇지!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때 미국한테 원자폭탄 2방 맞고 쫄딱 망했다가, 1차 한국 전쟁 때 우리나라에 전쟁 물자 팔아서 경제 회생시킨 역사가 있어. 근데 걔네들 요새 십여 년 동안 경제가 아주 십창 났었잖아? 그럼 그 십창 난 경제를 한 방에 역전시키는 방법이 뭐가 있겠어? 1차 한국 전쟁 때처럼 우리나라에 전쟁 물자 파는 게, 딱 쉽고 편하고 한방에 문제 해결하는, 만루 홈런 같은 방법 아니겠냐고? 그래서 이 쪽바리 놈들이 어떻게든 뒤로는 북한 놈들 지원해서 전쟁 오래 끌고 가게 만들어 놓고, 우리한테는 웃는 얼굴로 전쟁 물자 팔아먹으려는 속셈 아닌가, 합리적 의심이 가는 부분이지 않아?”
장주영의 말에 UDU 대원들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다른 대원 한 명이 조용히 손을 들고 질문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일본이 정말 북한을 지원하고 있는 거라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장주영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진지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럼 우리가 일본 본토에 침투해서, 다 때려 부술 준비를 해야겠지.”
오후 11시, 서울 청와대
전시 상황이니만큼, 청와대와 경복궁 일대는 군과 경찰 병력들이 물샐틈없는 방호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수도방위사령부에서 나온 전차와 장갑차들은 청와대로 들어오는 모든 도로를 틀어막았고, 경찰들을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에 대한 가방 속까지 확인하며 검문을 하고 있었다.
자정이 다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청와대 본관 대통령 집무실의 불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집무실 밖에까지 대통령이 고성을 지르는 것이 뚜렷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 개돼지만도 못한 새끼들, 도대체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야!”
대통령은 비서실장이 가지고 온 보고서를 집어 던지며 화를 내고 있었다.
비서실장 앞에 떨어진 보고서에는 차기 대선 후보들에 대한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가 들어 있었다.
[자유공화당 이정만 현 대통령 26%, 민주시민당 김창수 당대표 48%]
이대로라면 몇 달 후 대선에서 패배할 것이 불 보듯 뻔해 보였다.
이정만 대통령은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담배 한 개비를 집어 들었다. 비서실장이 뛰어와 그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대통령은 담배 한 모금을 빨고는 불안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민정수석한테, 전시 상황이라는 명목하에 대선을 내년으로 연기시키고 대통령직을 연장할 수 있는지, 법적으로 문제 되는 건 없는지 확인해서 보고하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이만 나가 봐.”
담배를 입에 문 대통령의 손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비서실장은 90도 가까이 허리 숙여 인사하고 뒷걸음으로 집무실을 나갔다.
비서실장이 나가자 마자 이어서 국방부 장관이 안으로 들어왔다. 대통령은 언짢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또 무슨 일입니까?”
국방부 장관은 조심스럽게 보고서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지금 막 국군정보사에서 보고가 들어와 달려왔습니다. 우성시에 침투한 정보사 UDU 대원들이 우성시 내에 VX 화학 가스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소량만 있을 것이라고 알려왔답니다.”
그 말에 대통령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 이제 우리 군이 우성시를 공격해도 되는 거예요?”
“네, 우성시 뿐 아니라 평양과 개마고원의 북한군에 대해서도 공격을 재개해도 무방할 것으로 사려됩니다.”
대통령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드리워졌다.
“이 시간부로 전군에 모든 전선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라고 전달하세요. 어차피 그놈의 화학 가스는 없으니까, 우성시에 대해서도 전에 보고했던 바와 같이 수복 작전 시작하라고 하구요. 내가 다 책임질테니 민간인 피해가 생겨도 상관하지말고 최대한 빨리 밀어버리라고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던 2차 한국 전쟁의 불꽃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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