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2027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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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학교
아침 시간이 되고, 기숙사 스피커에서 배식 순서에 따라 식사하러 오라는 방송이 나왔다. 영록은 대충 옷을 걸쳐 입고 태하와 함께 식당으로 걸어갔다.
영록이 태하에게 물었다.
“어제 그 사람들, 지금 식당에 있으려나?”
어젯밤 애국 청년 십자군들이 학교 건물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간 이후로는 그들 중 단 한명도 기숙사 주변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태하는 고개를 저었다.
“식당에는 지금 시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하고 마주치지 않으려고 아마 위층 교실 어디엔가 숨어 있지 않을까? 어차피 식사 만들어 주시는 분들이 교실로 올라오지는 않을 테니 말이야.”
영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식사 만들어 주시는 분들이 그 사람들 보면 빨치산들에게 가서 사실대로 일러바칠까봐 그러는 거겠지? 그 분들도 다 우리나라 사람들인데 설마 북한 놈들한테 우리나라 사람들을 팔아 버리기야 하겠어?”
영록의 말에 태하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야. 지금 이런 전쟁판 속에서 돈 몇 푼이면 동족이 아니라 가족이라도 팔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는 법이야. 식사 만들어 주시는 분들 중 그런 사람이 없으리란 보장도 없고.”
영록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식사 메뉴라고는 밥과 된장국, 김치뿐이었다. 그래도 배식 받으려는 아이들의 줄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거라도 먹어 둬야 굶주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영록과 태하가 식판과 수저를 챙겨 들고 있을 때, 웬 소녀 한 명이 쌩, 하고 배식 줄 앞을 지나갔다.
“어......? 유민아......?”
유민이었다. 영록은 며칠 만에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영록이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이름을 불렀다. 유민이 뒤를 휙,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반가운 표정으로 영록과 태하에게 다가왔다.
“마침 잘 만났네. 너희들, 나 좀 도와줘.”
유민은 두 사람을 잡아끌고 배식대 앞으로 데려갔다. 두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그녀를 따라갔다.
유민은 배식대 앞의 여성 공무원에 다가가 말했다.
“저, 선생님. 어제부터 학교에 감기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이 생겼어요. 그런데 이게 그냥 감기가 아니라, 무슨 전염병인 거 같아요. 아이들이 기침도 심하게 하고, 숨 쉴 때마다 아프다는 사람들도 있고..... 일단 증상이 있는 아이들은 교실로 옮겨서 격리시켜 놓은 중이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걔네들 밥을 따로 타서 가져다주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전염병’이란 말에 공무원은 흠칫 놀란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혹시, 코로나 바이러스, 그런 건 아니니?”
“저는 의사가 아니니까, 코로나 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애들이 기침 많이 하고 열도 많이 나고 숨 쉬기도 힘들다는 정도 밖에는 아는 게 없구요.”
여성 공무원의 표정에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지금 전쟁 중인데다가 한 곳에 많은 아이들이 집단으로 몰려 있었으니......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진짜 전염병이 돌았을 수도 있겠구나. 일단 네가 걔네들 밥 타서 가져다주렴. 대신 너도 그 아이들과 접촉하지 않게 조심하고. 나도 돌아가서 이곳에 의사들을 보낼 수 있을지 확인해볼게.”
“네, 감사합니다. 밥 가져다 줄 때 교실 앞에만 놔두고 올게요.”
공무원들은 주방으로 들어가 저희들끼리 무어라 속닥거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걸 본 유민은 영록에게 한쪽 눈을 찡긋, 거리며 씨익 웃었다.
유민과 아이들은 양손에 식판을 하나씩 가지고 3층 교실로 올라갔다. 유민이 식판을 내려놓고 교실 문을 노크했다.
조용히 교실 문이 열리며 검은색 사제 테러복을 입은 청년의 얼굴이 보였다.
유성모였다. 성모는 유민과 함께 밥을 가지고 온 영록과 태하의 얼굴을 스윽 한번 보고는, 혹시 다른 사람들이 더 따라오지는 않았는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불안한 듯 주위를 살펴보았다.
“공무원들한테는 여기 전염병 환자들을 격리 시켜서 밥을 따로 타서 가져다주어야 한다고 말했어요. 우리가 몇 번 더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밥 가져다 줄 테니까 먼저 식사하고 계세요.”
유민은 환하게 웃으며 성모에게 식판을 내밀었다. 성모는 기쁨과 걱정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으로 유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마워....., 근데, 전염병이라고 하면 공무원들이 확인하려고 올라오지 않을까?”
“오늘 온 공무원들은 여기에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게 퍼진 줄 알고 무서워 벌벌 떨고 있어요. 그 사람들은 절대 여기 올라오지 않을 거예요. 혹시 의사들이 온다 하더라도 몇 시간 후에나 올 거니까, 그 때에는 기숙사에 있는 다른 아이들더러 환자인 척 연기하라고 하면 되겠죠.”
유민은 활짝 웃어 보였다. 성모는 식판을 받아들고는 기특하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유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영록은 그 모습을 보고 기분이 침울해졌다. 저도 모르게 고개가 푹 숙여졌다.
유민은 아이들과 함께 식판을 들고 교실에 몇 번 왕복한 후, 뒤늦게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돌아왔다. 가뜩이나 부식 양이 적은 상황에서 애국 청년 십자군 30인분이 더 늘어나서 그런지, 밥과 국, 김치 모두 아주 조금씩만 남아 있었다. 아이들은 몇 숟갈 남지도 않은 음식들을 박박 긁어서 간신히 식판에 담아왔다.
공무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전염병이란 말에 모두들 황급히 돌아가 버린 모양이었다.
“오늘 도와줘서 고마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부탁해도 될까?”
유민은 씽긋 웃으며 영록과 태하를 보며 말했다. 영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태하의 표정은 약간 굳어 있었다.
“유민이라고 했지? 저 사람들이 너희들이 밖에 나가 있을 때 만난 애국 청년 십자군인가 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런데 저 사람들, 지금까지 뭐하다가 갑자기 이리로 오게 된 거라고 하니?”
태하의 물음에 유민이 대답했다.
“성모 오빠하고 애국 청년 십자군들은 유광수 목사님 모시고 교회를 탈출해서 잠시 동안 어느 교회 집사님이 가지고 있던 건물에 숨어 있었데. 그런데 식량을 구하러 나간 사람들이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 사람들 다 빨치산에 붙잡혀 유 목사님이 숨어 있는 곳을 다 불은건지 갑자기 숨어있던 건물로 빨치산들하고 폭도들 수백 명이 쳐들어 왔데. 그 때, 성모 오빠하고 저 30여명은 간신히 탈출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죽고 유 목사님도 잡혀 가셨데.”
유민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성모 오빠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며칠간 하수구에 숨어서 간신히 추격을 따돌렸데. 그렇게 한동안 숨어 있다가 추격이 잠잠해진 후에는 아버지 유 목사님을 구하려고 하수구에서 나와 찾아 다녔는데...... 이미 유 목사님은 빨치산들에게 처형당해서 그 시체가 시청 앞 가로등 위에 걸려 있었다는 거야. 지금도 그 놈들이 목사님 시체를 그대로 거기에 걸어 놓고 있다나봐. 생각 만해도 끔찍해.”
유민은 어깨를 부들거렸다.
“그럼, 저 사람들 일단 계속 여기 있을 거래?”
태하의 물음에 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여기에 피해 있으려나봐. 어차피 여기는 빨치산들이 안 오는 곳이니까 안전할거야.”
“너 아까 여기 전염병 돈다고 했잖아? 만약 의사들이 들어올 때, 빨치산들이나 폭도들도 같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려구 그래?”
유민은 별 걸 다 걱정한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성모 오빠가 이미 환자인 척 연기할 아이들을 구하고 있어. 의사들이 들어오면 걔네들이 환자라고 보여주면 되고, 의사들이 이상 없다고 하면 ‘아, 전염병이 아니었나보네요, 참 다행이에요.’하고 돌려보내면 될 거 아냐? 그리고 내 생각엔, 의사고 뭐고 아무도 안 올 거 같아. 지금 같은 상황에 전염병 돈다고 해서 이 학교에 의사를 보내고 빨치산들이 찾아오고 그럴 거 같아? 그 사람들한테는 그냥 전염병이 안 퍼지게 여기 있는 애들 아무도 못나가게 가둬 놓고 있는 게 훨씬 더 편한 일일거야.”
유민의 말에, 태하는 할 말을 잃은 듯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전 8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학교
유민과 아이들이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쯤, 험상궂게 생긴 애국 청년 십자군 몇 명이 몰래 아이들의 기숙사로 들어갔다.
그들은 기숙사 아이들에게서 ‘옷 좀 빌리자’ 며 자신의 몸에 맞는 옷들을 빼앗아 입고는, 무작위로 아무나 데리고 학교 5층 강당으로 데리고 가기 시작했다.
강당에 모인 아이들은 대략 30명 정도였다. 아이들은 불안한 듯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웅성이고 있었다.
“아, 씨발, 누가 떠들어? 내가 조용히 하고 있으라고 했지!”
누군가 강당 문을 쾅, 하고 발로 차며 들어왔다. 아이들은 모두 놀라 그 즉시 입을 다물었다.
딱 봐도 무섭게 생긴 청년 하나가 애국 청년 십자군 몇 명을 대동하고 강당 안으로 들어왔다.
180cm가 훌쩍 넘는 키에 몸무게도 100kg은 넘을 듯 엄청난 덩치를 가진 남자였다.
머리는 짧게 깎았는데 노란색으로 염색이 되어 있었고, 귀에도 피어싱을 4개나 하고 있었다. 반팔 티셔츠 아래로 보이는 팔에는 온통 일본식 문신들이 손목까지 가득 수놓아져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기가 죽어 숨죽인 채 그를 조심히 바라보았다.
청년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난 애국 청년 십자군 2지대장 마선욱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너희 고아들을 공짜로 먹여 주고 재워주고 있는 이 학교! 이 학교 세우고 너희들 지원해주는 사람이 우리 아빠, 국회의원 마두원이야. 다들 고맙게 생각하고 있으라고!”
선욱은 가늘게 찢어진 눈으로 아이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보다시피 우리는 이 곳 우성시에 들어온 빨갱이들하고 싸우고 있다. 지금 우리가 갑자기 여기에 들어오면서 빨갱이들 앞잡이 노릇하고 있는 공무원들 속이려고 이 학교에 전염병이 돈다고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게 되었는데, 좀 이따 공무원들이나 빨치산들이 진짜 전염병이 도는지 확인하려고 찾아올 수도 있어. 그 때!”
마선욱이 아이들을 험악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의사들이 오면 너희들이 환자인척 연기 좀 해! 그냥 몸 아프고 열난다고 하고, 막 기침하는 척 연기 좀 하란 말야. 알았어?”
억압적인 선욱의 말투에, 아이들은 모두 기 죽은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다들 연기 잘 해라. 만약 빨갱이들이나 빨갱이 앞잡이들한테 우리가 여기 있다는 소리 하는 새끼 있으면 그냥 배때기를 칼로 후벼서 내장 다 끄집어 내버릴 테니까, 입조심들 단단히 하고. 그리고 앞으로 계속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 상부상조하면서 서로 협조하는 사이가 되길 바란다. 알았으면, 환자 연기해야 하니까 다들 3층으로 내려가!”
선욱의 말이 끝나자, 그와 함께 있던 청년들이 아이들을 다그쳐 강당 밖으로 내몰았다.
“빨리 교실로 내려가!”
“야, 너, 안 가고 뭐 하냐? 안 뛰어, 씨발 새끼야?”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황급히 강당을 빠져나와 3층 교실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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