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24화 (24/217)

〈 24화 〉 2027년 7월 8일

* * *

영록과 유민이 떠나 있는 사이, 학교도 전쟁의 풍화를 피해가지 못했다.

우선, 선생님들과 급양사 등 학교에서 일하는 분들 모두 빨치산과 폭도들에 의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덕분에 학교 안에는 아이들만 덩그러니 남겨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며칠간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했다.

다행히 이틀 전부터 시청에서 공무원들이 빨치산들의 감시를 받으며 학교로 나와 아이들에게 아침, 저녁으로 식사를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시청에서 보내주는 부식은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매 끼니마다 밥과 된장국, 김치만이 배식 되었다고 했다.

기숙사로 돌아온 영록을 보자, 태하는 씁쓸하게 웃으며 그를 반겨 주었다.

“......너 죽은 줄 알고 걱정했는데, 살아서 돌아오니 다행이다.”

못 보는 사이 태하는 볼 살이 약간 빠진 거 같았다.

태하 말로는 식사가 전에 비해 형편없어지고, 학교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게 된 점 빼고는 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했다. 아이들은 아무런 기약 없이 학교 내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 빨치산들이나 폭도들이 우리를 감시하러 오기도 해. 하지만 여기에 모두 어린 학생들만 있는 걸 아니까, 그냥 밖에서 슥 훑어보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 그 녀석들은 여기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거 같아.”

학교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식사를 만들어주는 시청 공무원 세 명뿐이었다. 빨치산들과 폭도들은 거의 1시간에 1번씩 거리를 순찰하면서 학교 앞을 지나가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그들이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영록은 태하에게 밖에서 들은 이야기를 모두 해주었다. 태하도 빨치산들이 이 곳 우성시에 화학가스를 설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랐다. 지금껏 학교 안에만 갇혀 있었던 데다가 여전히 핸드폰 등 모든 통신기기가 먹통인 상황이라, 밖의 상황이 어떤지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태하 역시 지난 번 서울에서 벌어진 화학가스 공격으로 부모님을 여의었기에, ‘화학가스’라는 말만 들어도 몹시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그 VX 화학가스라는 게 무색무취라고, 눈에도 안보이고 냄새도 안 나서 사람이 지금 여기에 가스가 있는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다며? 그래서 화학가스가 총이나 폭탄보다 더 무서운 거 같아.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다는 게......”

태하는 어깨를 움츠리며 몸서리쳤다.

비단 태하 한 사람 뿐 아니라, 지난번 서울에 떨어진 화학가스 미사일로 인해 한국 국민 모두는 화학가스에 대한 공포심을 뼛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다. ‘우성시에 전 시민들을 몰살할 만한 양의 화학가스가 있다!’는 한 마디 말에 모든 전쟁 행위를 중단시킬 정도로 말이다.

영록은 성부 학교로 돌아온 후 전과 같이 낮에는 태하와 함께 교실에 가서 자습을 하고, 밤에는 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지냈다.

태하와 영록은 좋아하는 장르가 매우 비슷했다. 역사, 그 중에서도 세계사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두 사람은 모두 중세 기사들에 매료되어 있는 것까지 똑같았다.

“역시, 총이나 포가 없다고 전제 한다면, 프랑스의 장다름 같은 플레이트 메일로 무장한 중기병들을 이길 군대는 세상에 없었을 거야.”

“맞아, 만약 중세 시대 프랑스에 나폴레옹의 반만큼이라도 되는 명장이 있었더라면, 프랑스가 그 중기병들을 이끌고 유럽 전역을 정복했을 지도 몰라. 100년 전쟁 때에도 초반부터 영국에 세 번이나 대패당하는 일도 없었겠지.”

두 사람은 세계사 이야기 뿐 아니라 각종 밀리터리, 무기 관련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었다. 태하가 가지고 온 책들 중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용되어온 각종 무기들에 대한 설명이 총망라되어 있는 밀리터리 상식 책도 있었다. 두 사람은 그 책을 함께 보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 이야기’로 지금 현실의 ‘전쟁’을 잊으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민은 대체 무얼 하고 지내는지, 영록은 한동안 유민과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핸드폰이 안 되서 연락할 방법도 없었고, 여자 기숙사로 찾아 가자니 쑥스러워 발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었다. 식사 시간 되면 볼 수 있으려나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배식 순서가 어긋나는 건지 식당에서도 통 그녀와 만날 수 없었다.

영록은 혹시 유민이 성모를 찾으러 학교에서 도망나간 건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건 아닌 거 같았다.

그렇게 영록이 학교로 돌아온 지 5일째가 되어 가고 있었다.

­ 오후 11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학교

11시가 넘었고, 불이 켜진 기숙사 방도 얼마 없었다.

영록도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열대야와 모기 때의 기승으로 쉽게 잠이 들것 같지 않아, 팔베개를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차였다.

갑자기 기숙사 밖에 소란스러워졌다. 여기 저기 방들이 다시 불이 켜졌다.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남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조용! 빨치산들이 눈치 채면 안 되니까 모두 조용히 해줘! 우리는 원래 이 학교 학생들이야! 빨치산들하고 싸우는 애국 청년 십자군들이라고! 그러니 다들 조용!”

애국 청년 십자군이라는 말에, 영록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영록이 일어나자 2층 침대 위의 태하도 덩달아 깨어났다.

“밖에 무슨 소리야? 무슨 일 났어?”

태하가 물었다. 영록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창문 밖으로 몸을 빼꼼히 내밀어 보았다.

기숙사 건물 사이에는 검은색 테러복에 각종 총기들을 손에 들고 있는 남자들 수십 명이 헉헉거리며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영록이 우성 제일교회에서 본 애국 청년 십자군들이 맞았다. 그들은 그동안 어디서 무얼 하다 왔는지 검은 옷은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며칠 씻지도 못한 듯 구질구질 한 모습이었다.

“야, 씨빨, 거기 좆만아, 그만 내다보고 들어가 쳐 자라고!”

밑에서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청년이 험상궂은 얼굴로 영록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영록은 깜짝 놀라 창문을 닫고 쏙 들어가 버렸다.

영록이 황급히 창문을 닫자, 태하가 걱정스럽다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괜찮아? 밖에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야?”

영록은 한참을 우물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응, 밖에 나갔을 때 교회에서 본 사람들이야...... 괜찮아.”

애국 청년 십자군들은 기숙사 건물 사이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고는, 학교 밖에 빨치산이나 폭도들이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모두 학교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들은 행여나 학교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누가 찾아오지 않을까 걱정하며 불도 켜지 않았다. 그들은 개개인이 가지고 있던 랜턴 불빛에 의존해 화장실을 찾아갔다.

그동안 모두 제대로 씻지도 못한 것 같았다. 그들은 화장실로 들어가 모두 훌떡 옷을 벗고 온 몸에 물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비누 냄새가 이렇게 향기로운 줄 오늘에야 알았네.”

청년들은 샴푸가 없어 비누로 머리까지 감으면서도 몹시 즐거워했다.

먼저 다 씻은 사람들 중에서는 역시 학교 화장실에 있던 비누로 옷과 속옷들을 빠는 인원도 있었다.

그렇게 다 씻은 인원들은 지하 1층 학교 식당으로 내려갔다.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뒤져 보았지만 그 안에도 마땅히 먹을 만한 것은 없었다. 누군가가 김치 냉장고에서 김치 박스를 꺼내 왔다. 청년들은 밥도 없이 게걸스럽게 김치를 손으로 잡아들고 꾸역꾸역 씹어 삼키며 주린 배를 채웠다.

씻고 어느 정도 허기도 달랜 애국 청년 십자군들은 기숙사의 아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19살 학생을 불러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했다. 이 학교에 지금 있는 학생 수는 몇 명인지, 교사들은 몇 명이나 머물고 있는지, 외부인들이 얼마나 자주 오는지, 빨치산과 폭도들은 얼마나 자주 오는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학생은 애국 청년들의 투기에 눌렸는지, 바들바들 떨며 묻는 말래 아는 데로 모두 대답했다.

한참 동안 질문이 오고 가고 있을 때, 누군가 급히 식당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순간, 애국 청년 몇 명이 가지고 있던 총을 집어 들고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식당 문이 벌컥 열리고, 한 소녀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식당 안에서 학생에게 질문을 하고 있던 청년을 보고 기쁨에 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성모 오빠!”

유민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학생을 앞에 두고 질문을 이어 나가던 성모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민은 눈물을 글썽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성모도 그녀의 곁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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