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23화 (23/217)

〈 23화 〉 2027년 7월 7일

* * *

­ 오전 3시, 경기도 우성시 서해 앞바다

새벽 미명 아래 파도 소리만이 가득했다.

우성시의 서해 바다 여기저기에는 낡은 M­1 카빈 소총을 든 폭도들이 2, 300m 간격으로 늘어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여름이었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새벽바람은 제법 쌀쌀했다. 폭도들은 모두들 위에 겉옷을 하나씩 더 걸쳐 입고 나와 있었다.

사시사철 따뜻한 기후를 가진 동남아시아에서 온 폭도들은 밤새 바다 바람을 맞는 일에 힘겨워 했다. 몇몇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빨치산들의 지시를 어기고 모닥불을 피웠다. 불이 오르자 다른 곳에 있던 폭도들도 불을 쬐기 위해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모닥불 열기에 몸이 노곤해진 폭도들은 총 개머리판을 베개 삼아 땅바닥에 드러누워 쪽잠을 청했다. 그들도 모두, 이 바다를 통해 그 누가 들어오겠냐며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폭도들이 모닥불을 피워 놓은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해안 절벽으로, 검은색 잠수복에 다이빙 장비를 갖춘 사람들이 아무 소리도 없이 물 밖으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해안 절벽에 달라붙어 아주 은밀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이는 소리는 모두 파도소리에 묻혀 도저히 사람이 들을 수 없었다.

선두에 선 인원이 주위를 둘러보니, 저 멀리 모닥불 불빛이 보이고 그 주변에 폭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대부분 드러누워 있거나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 완전히 경계를 푼 모습이었다.

그림자들은 표범 같이 절벽을 올라와 해안 너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총 12명의 그림자들이 해안선을 지나 내륙으로 들어가는 동안, 이들의 낌새를 눈치 챈 폭도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한국 군군정보사령부 UDU 대원들이 우성시 침투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물범 알파, 물범 알파, 당소 물범 브라보, 이상.”

[......송신]

“......당소 물범 브라보라고 알리고, 현시간부로 마이크 골프에 도착했다고 알림, 이상.”

[......물범 알파 입감했다고 알리고, 다음 시에라까지 무전 침묵한다고 알림, 이상.]

“......입감했다고 알리고, 물범 브라보 아웃, 이상”

내륙으로 들어온 UDU 대원 12명은 신속히 잠수 장비들을 인근 야간에 파묻어 은닉하고, 빨치산들이 많이 입고 있는 디지털 픽셀 무늬 전투복으로 갈아입었다.

UDU팀의 지휘관 장주영이 복장을 갈아입는 동안, 한 대원이 다가와 물었다.

“실장님, 아까 바다에 그거 보셨습니까?”

대원은 장주영을 실장이라 부르고 있었다. 국군정보사령부에서 근무하는 특수정보 요원들은 그들 존재 자체가 군 기밀사항에 해당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서로가 서로를 군 계급이 아닌 부장, 과장, 실장 등 일반 회사의 직함으로 부르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뭐, 기뢰 설치 된 거?”

“네, 그런데 제가 오면서 그 기뢰들 위치 찍느라 유심히 확인하면서 왔는데 말입니다, 그것들 전부 다 영국에서 만든 거였지 말입니다.”

장주영은 전투복 상의 단추를 채우며 그럴 리가? 하는 표정으로 대원을 바라보았다.

“확실해?”

“제가 얼마 전까지 EOD 교육 받고 와서 확실히 기억하지 말입니다. 그거, 생긴 거나 뭐로 보나, 딱 영국산 감응 기뢰 맞지 말입니다.”

장주영은 땅바닥에 앉아 전투화 끈을 마저 조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지금 북한 빨치산들이 우성시 앞바다에 설치한 기뢰들이 모두 영국산 기뢰들이라고?’

북한 빨치산들이 한국 해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기뢰 등을 부설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부설된 기뢰들이 북한에서 쓰이지 않는 영국산 기뢰들이라면, 이는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영국이 북한에 기뢰나 무기를 수출할 리는 없었다. 또, 북한이 기뢰 등의 무기를 밀수하려 했다면 러시아나 중국 쪽에서 들여오는 것이 훨씬 더 싸고 수월했을 것이다.

영국 기뢰는 모든 상황에서 신뢰할 수 있을 만큼 성능이 좋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 중 영국 기뢰를 수입하는 나라는 몇 개국 없었다. UAE와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그리고 일본 정도였다.

“......이거 본부에 보고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대원이 걱정스럽게 묻자, 복장 착용을 모두 마친 장주영이 자리에 일어서며 말했다.

“지금은 무선 침묵 시간이니까, 이따가 다시 교신망 열리면 말로 하는 거 보다 KJCCS(Korea Joint Command & Communication System, 합동지휘통제체계)로 보내는 나을 거 같다.”

장주영은 대원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말했다.

“아주 꼼꼼하게 잘 봤어. 지금 한 것처럼 화학무기도 잘 찾아줘.”

칭찬 받은 대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장주영은 넷워리어를 켜고 우의를 뒤집어썼다. 혹시 빛이 멀리 세어나가지 않기 하려 함이었다. 그는 넷워리어 장비를 통해 국군정보사령부에서 지정해 준 수색 구역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확인을 끝낸 장주영이 넷워리어를 닫고 우위를 전투 배낭 안에 챙겨 넣으며 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이제부터 3인 1개조로 흩어져서 각자 지역으로 이동한다. 내륙을 들어갈수록 전파 방해와 감청이 심해지고 있다니까, 정해진 시간 외의 무전은 삼갈 수 있도록. 다들 알겠지만 우리의 목적은 우성시 안에 VX 화학가스가 실제로 있는지 확인하는 거다. 그러니 불필요하게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유의하고, 당연히 전투도 회피할 수 있도록. 만약 부득이하게 전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최대한 소리 나지 않게 처리하고, 티 나지 않게 치워 버려. 알았지?”

3명씩 조를 나눈 UDU 대원들은 다시 새벽어둠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그들은 움직일 때 발걸음 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 오전 6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시청

장주영은 두 명의 부하 대원들을 이끌고 우성시내로 좀 더 깊숙이 침투하고 있었다.

이제 해상박명이 시작되고, 점점 어둠이 거치고 있었다. 그들은 인적이 없는 길을 찾아 빠르게 이동하며 시내로 향했다.

저 멀리 시청 건물이 보이고, 멀리서도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장주영과 UDU 대원들은 거리의 건물들 사이로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은 시청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어느 상가 건물의 옥상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제 햇살이 지평선 위를 밝히고 있었다. 장주영은 전투 배낭에서 디지털 망원경을 꺼내 시청 방향을 살폈다.

시청 앞 광장에는 수십여 명의 빨치산과 폭도들이 모여 있었고, 시청 건물 안에서 풍채가 좋은 60대 남자가 빨치산들에 의해 끌려 나오고 있었다.

빨치산들은 남자를 시청 앞 광장에 있는 파란색 새마을천과 투명 비닐이 깔린 곳으로 끌고 갔다. 멀리서도 남자가 발버둥 치며 소리 지르는 것이 들려왔다.

“아, 싫어, 제발......! 제발 살려줘~! 내가 뭐든 다 할께! 사과하려면 사과하고, 무릎 꿇고 빌라면 무릎 꿇고 빌께! 제발 목숨만은 살려줘, 제발!”

남자는 새마을천이 있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려는 듯 사력을 다해 몸부림쳤다. 그러자 빨치산들은 무자비하게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한동안 흠씬 두드려 맞은 남자는 이제 저항도 못하고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남자가 파란색 새마을천 위로 끌려오자, 빨치산 지도자로 보이는 남자가 그의 앞으로 나왔다. 새벽의 고요함 덕분에, 빨치산 지도자의 카랑카랑한 북한말이 장주영이 있는 곳까지 선명하게 들여왔다.

“야, 이 반동 놈에 새끼야. 니는 사내새끼로 좆 달고 태어나가지고, 자존심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네? 그동안 우리 조선에 대해 입에 담지도 못할 험한 소리로 비방하기 바빴던 간나새끼가, 이제 제 목숨이 경각에 오니까 뭐이 어드래? 사과하고 무릎 꿇을 테니 살려 달라? 하~! 너 참 인생 편하게 사는 구나야!”

빨치산 지도자는 남자를 향해 침을 뱉었다.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너 같은 악질 반동 하나 지키겠다고, 핏덩어리 같은 젊은 아새끼들 수십이 뒤졌어! 넌 그런 아새끼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니? 그 아새끼들은 비록 적이었지만, 예우해줘도 충분할 만큼 다들 용맹한 아(아이)들이었어, 그런데 그 아(아이)들 목사라는 새끼가 칠칠치 못하게 지금 뭐하는 거이야? 어디, 입이 있으면 한번 말해보라!”

남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빨치산 지도자 앞에 무릎 꿇고는 머리를 조아리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빨치산 지도자의 말이 계속 되었다.

“예수 믿는 것들은 원래 이리 죽으면 순교라고, 예수처럼 영예스럽게 죽는 것이 평생 자랑이 되고 천국 가는 지름길이라고 하더만, 목사라는 새끼가 아주 가관이구만 기래! 이거 뭐, 말로만 목사였던 거 아이야? 수만 명의 사람들한테는 예수 믿으면 죽어서도 천국 간다고 말하고 다녔을 놈이, 왜 지가 죽는 걸 두려워하며 이러는 거이지? 왜, 너 죽으면 천국 못 갈까봐 그러는 거이야? 아이면, 목사로서 니가 말하고 다니던 예수 천국이란 게 애초부터 없었으니까, 사람들한테 했던 말들이 모두 거짓말이었으니까 죽는 게 무서워서 그러는 거이야? 허, 참~! 목불인견이야, 목불인견! 이보라우! 더 볼 거 없으니, 이 새끼 그냥 모가지 따 버리라우!”

남자가 절규하며 빨치산 지도자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려 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빨치산들을 달려들어 군화발로 그를 짓밟기 시작했다.

다섯 명의 빨치산들이 남자에게 달려들어 그의 팔 다리를 붙잡았다. 남자는 뭐라 알 수 없는 소리로 짐승처럼 꽥꽥 소리를 질렀다. 빨치산 중 한 명이 대검을 가지고 남자의 머리로 다가갔다. 빨치산은 대검을 역수로 꽉 잡고 남자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남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려주세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장주영은 디지털 망원경을 눈에서 땠다. 구지 망원경으로 보지 않아도 상황을 모두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검을 들고 있던 빨치산의 손에 남자의 피 묻은 머리가 들려 있었다. 머리가 떨어져 나간 남자의 팔다리는 아직도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빨치산들은 남자의 머리와 몸뚱이를 시청 앞 큰 도로의 가로등 위에 매달았다. 누군가 시청 안에서 하얀색 천에 두꺼운 매직으로 벽보를 써서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빨치산들은 벽보를 남자의 시신에 매달린 가로등 기둥에 길게 세로로 내려 뜨렸다.

벽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남조선 사이비 악질 정치 먹사 유광수]

‘목사’도 아니고, ‘먹사’였다.

장주영은 북한 놈들이 ‘먹사’라는 뜻을 알고 쓴 걸까 궁금해졌다.

“빨치산 새끼들이 매 시간 공개 처형 하고 있다더니, 진짜 계속 하는 모양입니다. 근데 저 사람, 그 사람 아닙니까? 자유공화당 지지한다고 정치 발언 많이 하고 북한에 대해 계속 공격적인 이야기 쏟아내던 그......”

옆의 대원의 물음에 장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유광수 목사, 그 사람 교회가 여기 있었는지 몰랐네. 빨치산들이 여기 들어와 있는 이상, 살아남기는 힘들었겠지.”

대원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저 양반, 반대 당이나 북한에 대해 깔 때는 거의 무소불위 천하무적인 것 마냥 아주 대차게 말하고 돌아다니고, 심지어 자기가 옳다는 일이라면 목사 주제에 하나님하고도 맞짱 뜰 수 있다는 듯이 말하고 다니더만, 정작 가실 때는 아주 구슬픈 예술 영화 하나 제대로 찍고 가십니다? 저 광경을 저 목사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봤으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지 말입니다. 저래 죽는 걸 봐도 과연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 하고 떠받들 수 있겠습니까?”

장주영은 디지털 망원경을 전투 배낭에 다시 집어넣으며 허탈하게 말했다.

“그 교회 사람들이 저 광경을 못 봤으니...... 이제 저 목사는 순교자로 숭배되고 거의 신화에 가까운 소설들이 쓰이겠지. ‘우리 목사님은 북한 공산당에 당당히 맞서다가 순교하시고 하나님 곁으로 가셨다......’ 뭐, 그 바닥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일단 우리는 여기서 간단하게 요기나 좀 하면서 상황을 더 지켜보고, 다음 포인트로 이동할 준비하자고.”

장주영과 UDU 대원들은 배낭에서 압축 식량 하나씩을 꺼내 한 입 베어 물며 계속 시청 방향을 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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