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2027년 7월 4일
* * *
오전 10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 제일교회
주일 예배가 시작되었다. 대예배당 안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다함께 예배 찬송을 불렀다.
유민과 영록은 대예배당 가장 뒷자리, 출구에서 가까운 곳에 앉아 있었다.
영록은 찬송을 부르지 못했다. 교회도 처음이고 예배도 처음이고 성경도 없었다. 영록은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며 입만 벙긋 거리고 있었다.
옆에 앉아 있는 유민은 예배나 찬송은 아예 안중에 없는 듯, 고개를 숙이고 다리를 떨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어제 아침 이후부터 성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모 뿐 아니라 성모와 늘 같이 붙어 다니던 애국 청년 몇 명도 보이지 않았다. 몇몇 교역자들과 장로, 직분자들이 안 보인다는 소리도 있었다.
게다가 예배 전, 장로들은 유민이 가지고 있던 소총을 압수해 갔다. 유민은 어떻게든 소총을 뺏기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장로들과 집사들이 간신히 그녀를 설득했다.
“아가, 이따가 모두 다 교회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 때 총을 들고 있으면 그 놈들이 네게 무슨 해를 끼칠지 몰라. 아니면 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도 해코지 할 수도 있어. 그러니 모든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 총은 우리한테 맡기렴.”
유민은 마지못해 장로들에게 총을 넘겨준 후 성모를 찾아 이 상황을 하소연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유민은 성모와 청년들이 교회 어딘가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미리 도주로를 염탐하러 나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유 모를 불안함은 계속 되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생애 마지막 주일 예배 설교를 은혜롭게 마치고, 당당하게 폭도들 앞으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겠다던 유광수 목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강단 위에는 부목사와 대표기도를 하는 장로만이 올라와 있었다. 교회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담임 목사님이...... 안 오셨어......”
“마지막 예배는 본인이 직접 주관하겠다더니, 부목사님이 설교하시려는 거 같은데......?”
성가대의 찬양이 끝나고, 설교가 시작되었다.
역시 설교는 강단에 앉아 있던 부목사가 진행했다. 그는 담임목사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이, 성경 구절에 대한 설교를 이어나갔다.
“......이사야 41장 10절에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큰 고난과 환난이 닥쳤지만, 성도 여러분들 모두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마시고, 이 말씀을 굳게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지금도 우리 곁에 함께 하고 계시며, 그 증거를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시길 원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 이 말씀 붙잡으시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로움을 의지하셔야 합니다......”
우성 제일교회의 마지막 예배는 그렇게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예배가 모두 끝나고 직분자들의 안내로 사람들이 차례차례 교회 밖으로 나갔다.
이미 폭도들이 교회 가까이까지 와서 그 일대를 둘러싸고 있었고, 몇몇 빨치산들은 교회 앞마당까지 들어와 압수한 무기들의 수를 실샘하고 있었다.
교회 입구 쪽에는 애국 청년들이 만든 진지들이 모두 허물어져 있었고, 그 자리에 십 수 명의 공무원들이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와 놓고 교회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무원들은 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의 이름, 주민번호, 주소 등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다. 확인이 끝나면 공무원들은 사람들에게 확인서 한 장을 내어주며 이렇게 당부했다.
“이거 꼭 소지하시고, 다른 곳에 들르거나 하지 마시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매우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사람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확인서를 들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폭도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휘파람을 불고 야유를 퍼부었다.
영록과 유민은 아직 교회 뒷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아직도 예배당 안에는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곧 성모 오빠가 올 거야, 우린 여기서 기다리자......”
유민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영록에게 속삭였다. 영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영록도 지금 어디선가 갑자기 성모가 나타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 형, 혹시 유민이 버리고 혼자 도망간 걸까?’
이런 생각이 들자, 영록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줄 서 있는 인파들을 해치고, 한국군 전투복을 입은 빨치산 수십 명이 대예배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 모두 여러 종류의 총들을 들고 있었다. 총을 본 사람들은 다들 숨을 죽이고 그들의 눈치를 보았다. 영록은 그들의 모습에 기가 질려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움츠러들었다.
빨치산들은 예배당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쳐다보며 강단 앞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지금 누군가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이들을 이끌고 온 지휘관으로 보이는 빨치산 한 명이 강단 위로 올라갔다. 강단 위에는 오늘 설교를 담당한 부목사가 아직 자리에 앉아 있었다.
빨치산 지휘관의 쏘는 듯 날카로운 목소리가 대예배당 안에 울리듯 퍼졌다.
“동무, 동무네 교회 담임 목사는 지금 어디 있소? 유광수 목사 말이오.”
부목사는 한참을 동안을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무언가 작심한 듯, 고개를 들어 빨치산 지휘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담임 목사님은 지금 교회에 안 계십니다.”
그 말에 빨치산 지휘관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빨치산 지휘관은 부목사의 이마에 총구를 가져다 대고는, 간신히 화를 억누르는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간나새끼들이, 지금 우리를 가지고 논거이가? 야, 죽고 싶디 않으면 날래 말하라. 유광수, 지금 어디 있네?”
부목사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담임 목사님은 이미 어제 교회를 떠나셨습니다. 저도 지금 담임 목사님이 어디 계신지는 모릅......”
탕!
부목사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 대예배당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아직 대예배당을 나가지 못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영록은 귀를 막고 의자 밑에 고개를 처박았다. 유민은 놀라움과 분노로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강단 의자와 벽에 걸린 십자가 주위로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부목사는 의자에 걸터앉은 채로 즉사했다. 그의 이마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총격에 터져 버린 뒤통수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강단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날래 추격조 준비하라! 당장!”
빨치산 지휘관은 부하들에게 소리치고는 교회 안의 사람들을 모두 죽여 버릴 듯이 쏘아 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려버렸다.
유민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사님이 어제 떠나셨다구 했지?”
영록도 유민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말했다.
“응, 나도 그렇게 들었어.”
“그럼, 성모 오빠도 목사님이랑 같이 간 걸까? 목사님 아들이니까?”
유민의 얼굴에 슬픈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영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
유민은 의자에 등을 깊이 기대고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유민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시 생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우리, 예배 끝나면 도망가려고 했잖아? 근데 원래 계획대로 했다면 빨치산들 때문에 탈출이 힘들었을 거야. 그래서 급히 어제 탈출하는 걸로 계획이 바뀌었는데, 성모 오빠는 아버지의 뜻에 따르느라 나한테 아무 말도 못하고 급하게 따라 갈 수밖에 없었을지 몰라. 아니, 아마 그랬을 거야. 성모 오빠가 나를 배신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계획이 틀어진 것뿐이야.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잖아, 안 그래?”
유민은 원래 입고 있던 옷 등을 담은 쇼핑백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우리도 학교로 돌아가자. 성모 오빠가 우리가 성부 학교에 있었던 거 아니까, 곧 연락이 오거나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영록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따라 함께 일어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