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2027년 7월 2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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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1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 제일교회
한국군은 허를 찔리고 말았다.
빨치산들이 원자력 본부를 타격 할 것에 대비해 병력들을 대거 남쪽으로 이동시켰지만, 결과적으로 빨치산들의 계략에 놀아나고 너무나 쉽게 우성시를 빼앗기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우성시가 빨치산과 외국인 노동자 폭도들에 의해 점령되었다는 소식과, 북한이 최명순 시장을 통해 정부 측에 요구한 내용이 모두 언론에 공개되었다.
이미 한 차례 북한의 VX 화학가스 공격으로 엄청난 민간인 피해를 당한 한국으로서는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우성시에 사는 가족 친지, 지인들이 있는 국민들이 느끼는 슬픔과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국민들은 분열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는 우성시의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는 쪽과, 적의 협박에 넘어가지 말고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한반도에서 공산당의 씨를 모두 말려 버려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어 서로 충돌했다.
이 논쟁은 곧 거리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광화문 등 전국 각지에 있는 광장으로 나와 서로의 주장을 목소리 높여 외쳤다.
한쪽은 촛불을 들고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쪽은 태극기를 들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며 목청껏 소리쳤다.
한국 이정만 대통령으로서도 결정하기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이미 개헌을 통해 대통령 제도가 4년 중임제로 바뀌었고 다음 대선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정만 대통령에게 있어 이번 우성시 사건에 대한 결정이 자신의 재임 여부를 좌우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매시간 마다 자신과 같은 자유공화당 소속 시의원들이 계속 공개 처형당하는 일 또한,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되고 있었다.
대통령은 군으로 하여금 우성시 전체를 포위하는 대신, 평양과 개마고원의 북한군에 대한 모든 공격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우성시로 대통령 특사를 파견해 일단 빨치산들과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우성 제일교회 담임 목사 예하, 부목사들을 비롯한 모든 교역자들과 장로들을 비롯한 직분자들이 모두 대회의실에 모여 장시간 회의를 가졌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을 살리는 결정’을 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틀 후, 10시 주일 예배가 끝나면 교회 안의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애국 청년 십자군 등,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무기들은 모두 빨치산들에게 넘겨줄 것이며,
유광수 목사는 스스로 폭도들 앞으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겠다는 것.
그것이 교회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내용이었다.
성도들은 목사님, 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성도들의 울음소리는 교회 밖에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내일 모레, 우리가 교회 밖으로 나가면, 그놈들이 우리를 가만히 놔둘까?”
“뭐, 무기 버리고 담임 목사까지 넘겨주면,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안 건든다고 하잖아요?”
“그래도...... 북한 놈들 말을 어디 믿을 수 있어야 말이지......”
사람들은 허탈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얼마 남지 않은 교회에서의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영록은 여전히 대예배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유민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영록은 다시 그녀를 찾아다닐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도...... 그 형이랑 같이 있는 걸까?’
몇 시간 전 중고등부실에서 본 장면들이 계속 떠올랐다.
유민과 성모가 서로 다정하게 있던 모습들,
성모가 유민의 손을 잡은 모습,
그리고 웃으며 그를 바라보던 유민의 모습......
영록은 ‘지금 나를 괴롭히고 있는 감정이 질투인가?’ 하고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질투’, 라기보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상실감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하기야, 그 형은 키도 크고 잘 생겼으니까, 여자애들이 딱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잖아? 그 형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난 유민이가......’
그와 함께 12층에서 만난 운용이 했던 말들도 함께 떠올랐다.
지금 자신이 속한 애국 청년 십자군에 지원한 이들 대부분이 성부 학교 학생들이라는 것과,
그들이 예전부터 지금까지도 어리거나 약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나쁜 짓을 벌여왔다는 것,
그리고 자신더러 그들과 절대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하던 것까지.
거기에 운용은,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성모에 대해서도 좋지 않게 말했었다.
[그 형 특히 조심하세요. 제일 나쁜 형이에요.]
솔직히 영록이 보았을 때, 성모의 얼굴은 험상궂고 불량해 보이는 다른 애국 청년들에 비해 딱히 못된 일 잘하는 사람처럼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애들이 좋아할 만하게 키도 크고 잘생긴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영록은 운용의 말이 맞았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성모라는 사람이 정말 나쁜 사람이 맞기를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 형이 정말 나쁜 형이라면, 유민이도 그 형을 멀리하게 되겠지? 그 형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알아내서 유민이한테 알려주면, 유민이도 그 형일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민이 자신을 좋아하게 될 거란 보장도 없어 보였다.
그때, 며칠 전 바로 이 자리에서 자신이 울고 있을 때, 유민이 다가와 한 말들이 생각났다.
[야, 지영록, 난 괜찮으니까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마. 친구 사이에 미안한 건 없다는 말도 있잖아?]
친구 사이에......
친구 사이......
친구......
‘그래, 유민이는 나를 친구로 밖에는 생각하고 있지 않은데, 지금 나 혼자만 유민이를 좋아하고 있는 거잖아. 그냥...... 짝사랑하는 거였잖아......’
영록은 깊은 우울감을 느꼈다.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어깨는 푹 움츠려 들었다.
“야, 지영록. 밥 먹었어?”
유민이 어느새 다가왔는지, 영록의 뒤에서 그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영록은 유민의 목소리에 경기를 일으키듯 부르르 떨고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아, 유민아......?”
“얘가 뭘 그렇게 놀라? 너 놀라는 리액션이 점점 발전해 가는 거 같다?”
영록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몇 번 비빈 후 멋쩍게 웃어보였다.
유민은 어깨에 M16A1 소총을 메고 있었다. 아까 성모에게 받은 소총이었다. 그녀는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고는, 영록의 어깨를 잡아끌며 말했다.
“할 얘기가 있어, 일단 조용한데로 가자.”
“응? 할 얘기?”
갑자기 할 얘기라니, 그것도 조용한 데에서?
영록은 순간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까 내가 훔쳐본걸 알아버린 걸까? 설마 그거 때문에 나한테 따지려고 그러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도대체......?’
영록은 불안한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유민을 따라갔다.
유민은 영록을 데리고 사람들이 없는 교회 물품 창고로 들어갔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살피고는 영록에게 바싹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소리 내지 말고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우리, 주일 예배 끝나면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교회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유 목사님 일행들이랑 같이 몰래 도망 갈 거야.”
영록이 놀라 두 눈이 동그래졌다. 영록이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찔거리자, 유민은 손으로 재빨리 영록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넌 그냥 듣기만 해! 아까 성모 오빠가 나한테 같이 도망가자고 했어. 자기랑 애국 청년 십자군들이 목사님 모시고 자기들만 아는 길로 빠져 나갈 거라고, 그 때 나도 같이 도망가자고 한 거야. 빨치산 말만 믿고 그냥 밖으로 나갔다가는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냥 나갈 바엔 차라리 성모 오빠랑 도망치는 게 나을 거 같아. 그래서 내가 너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해서 간신히 허락 받은 거야.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넌 계속 내 옆에 붙어 있어. 성모 오빠가 신호주면 몰래 따라가기로 했으니까, 우리 둘은 그 때까지 대예배당 뒤쪽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면 돼. 알았지? 알았으면 고개 끄덕여봐.”
영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민은 그제야 영록의 입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는 영록에게 어깨에 메고 있던 M16A1을 보여주었다.
“나 아까 성모 오빠한테 이 총 받았어, 총 쏘는 방법도 배웠고! 아직 총알은 못 받았지만, 총알만 있으면 언제든지 공산당 빨갱이들하고 싸울 수 있어! 그러니까 너는 아무 걱정 하지 말고 나만 따라와. 영록이 너는 내가 지켜줄 테니까.”
유민은 영록에게 한번 보라는 듯 총기를 내밀며 해맑게 웃었다. 영록은 그런 그녀를 볼수록 더 마음이 심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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