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19화 (19/217)

〈 19화 〉 2027년 7월 2일 (3)

* * *

­ 오후 7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 제일교회

교회 입구 앞에는 오늘 새벽 죽은 세 아이의 시체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또, 그들 가까이 한 남자의 시체가 더 있었다. 세 아이 중 한 아이의 아버지였던 교회 집사가 아이들의 시체를 수습하겠다고 교회 밖으로 뛰어 나왔다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저격당해 죽은 것이었다.

저격수가 있다는 사실에 교회 사람들은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교회에서는 당분간 식사는 최소한의 양을 하루 1번만 배식하면서 버티기로 결정했다.

교회 안의 사람들이 실의에 빠져가고 있을 때 쯤, 폭도들의 진지로부터 한 남자가 백기를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교회 입구 진지에 있던 애국 청년 한 명이 이를 보고 소리쳤다.

“누군가 교회로 다가 오고 있는데요? 백기를 들고 있어요!”

집사와 장로 몇 명이 진지 쪽으로 달려와 전방을 바라봤다.

“......우리나라 사람 같은데? 빨치산이나 외국인 노동자는 아닌 거 같아.”

“어떡하죠? 이리로 오게 그냥 둘까요?”

“음...... 일단 가까이 오면 내가 나가서 몸수색을 할 테니, 이상 없으면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무슨 말을 하는가 한번 들어봅시다.”

부사관 출신 집사가 총을 들고 일어섰다.

남자가 교회 입구까지 걸어오자 부사관 출신 집사가 재빠르게 뛰어나가 그의 몸을 손으로 만져 수색한 후, 그의 허리를 끌고 교회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애국 청년 몇 명이 그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백기를 땅에 떨어뜨리며 말했다.

“나, 한국 사람이오! 우성시청 공무원입니다!”

“공무원 신분증 같은 거 있으면 내놔 보시오!”

남자는 조심스럽게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교회 사람들을 그제야 안심하고 총구를 내렸다.

“여기 어떻게 오신 겁니까? 저 폭도들이 보낸 겁니까?”

부사관 출신 집사가 날카롭게 물어봤다, 공무원 남자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네, 지금 우성시 전체가 빨치산과 폭도들에게 모두 넘어간 상태입니다. 우성시 전체가 인질이 된 거라구요.”

예비역 대령 출신 장로가 나서서 말했다.

“우성시 전체가 인질이라니, 적어도 저들과 싸우고 있는 우리는 인질이 아니오. 곧 우리나라 군이 여기 우성시를 구하러 올 거고, 그때까지만 버티면 저들도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겝니다.”

이 말에,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장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 안에만 계셔서 아무 것도 모르시는군요? 하긴, 전화도 인터넷도 안 되서 거의 모든 시민들이 모르고 있긴 하겠지만...... 아무튼 여기 계신 분들도 모두 빨치산들의 인질이 맞습니다. 지금 빨치산들이 우성시 이곳저곳에 화학가스를 설치했데요. 지난 번 서울에 떨어진 그 화학가스랑 똑같은 거라고 합니다. 그런 화학가스를, 40만 우성시민 전체를 몰살시킨 만큼 엄청난 양을 가져와서 만약 정부가 자기네들 요구를 들어 주지 않으면 다 터뜨려 이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를 죽여 버리겠다고 하고 있어요! 그러니 우리 모두 인질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남자의 말에, 모든 사람들의 낯빛이 어둡게 바뀌었다.

부사관 출신 집사가 나섰다.

“그럼 대체 북한이 요구하는 게 뭐라고 합니까?”

“역시, 더 이상 한국군이 북한군을 공격하지 말라는 것과 최대한 빨리 휴전 협상을 시작하라는 것이 가장 큰 요구사항인 거 같구요, 이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 동안 우성시에 먹을 양식이나 필요 물자, 전기, 가스, 수도 등을 끊지 말고 계속 공급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 이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1시간 당 1명씩 시민들을 공개처형한다고 했고.... 지금까지 4명이 시청 앞 광장에서 처형당했습니다.”

부사관 출신 집사가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누구누구가 처형당한 거죠? 그냥 아무나 지나가는 사람들 잡아다가 죽이는 겁니까?”

“일단 시의원들 중 자유공화당 출신 의원들을 먼저 잡아와서 처형하고 있어요. 자유공화당 출신 의원들이 모두 처형되면 다음은 자유공화당과 비슷한 성향의 보수당 의원들이나 반북 활동 경력이 있는 이들, 산업단지에서 외국인 노동자들 고용했던 공장주들과 공장 중간 관리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까지 잡아와 처형한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 정말 잠도 안자고 1시간에 1명씩 처형할 모양이에요. 처형할 때 총알도 아깝다고 외국인 노동자 시켜서 큰 칼이나 도끼 같은 걸로 목을 쳐 죽이고 있어요.”

소름끼치는 이야기에, 부사관 출신 집사도 흠칫 놀라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주변의 교회 사람들이 놀라 웅성이기 시작했다.

예비역 대령 출신 장로가 다시 말했다.

“그럼, 당신은 여기 왜 온 겁니까?”

공무원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빨치산들은 지금 이 곳에 모인 모든 분들이 교회에서 나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길 원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총과 무기는 그들에게 모두 넘기구요. 그리고......”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 교회의 담임 목사님을 빨치산들에게 내놓으라고 합니다. 만약 이 세 가지 요구를 듣지 않는다면, 교회 안에 화학가스를 터뜨려 모두 죽여 버리겠다는 말도 했구요.”

장로가 놀라 소리쳤다.

“아니! 우리 목사님은 왜요? 우리 목사님을 왜 내놓으라는 겁니까?”

“......잘 아시지 않습니까? 평소 목사님이 북한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다니셨는지. 게다가 지금 우성시에서 유일하게 북한 빨치산에 대항하고 있는 사람들도 이곳에 다 모여 있는데, 그들이 목사님을 곱게 볼 리 없겠지요.”

“오, 주여......”

장로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영록은 오후 내내 유민을 찾아다니고 있었지만, 도무지 그녀가 지금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하고 있었다. 교회가 워낙 큰데다가 건물 내부의 지리도 아직 익숙하지 않아, 영록은 근 2시간 가까이 교회 안에서 해매고 있었다.

유민은 오늘 새벽 교회로 음식을 나르던 아이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길길이 날뛰었다.

‘네 또래 아이들이 싸우다 죽어가고 있는데, 나는 계속 주먹밥 셔틀이나 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나도 싸울 테니 총을 달라고 말 할 거야!’

유민은 그렇게 말하고 어디론가 사라진 후,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대예배당 옆 교육관 빌딩으로 옮겨온 영록은 빌딩 맨 윗 층인 15층부터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각 층을 뒤지고 다니고 있었다.

12층 교육실 안에서는 교회 여집사들이 모여 기도 모임 같은 걸 하고 있었다. 문 밖으로 여집사들의 찬양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교육실 밖 긴 의자에는 어제 만난 남자 아이가 앉아 있었다. 아마 엄마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영록은 모른 채 하기 미안했던지, 그 아이에게 먼저 인사했다.

“......안녕?”

“......안녕하세요.”

아이는 자리에 앉은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받았다.

“무서워하지 마. 나 나쁜 사람 아니야.”

“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어제 네가 나도 이 옷 입고 있어서 무서운 형들인 줄 알았다고 했잖아?”

“네...... 죄송해요.”

아이는 벌써 울먹거리려 하고 있었다. 영록은 손사래를 치며 아이를 달랬다.

“아니, 네가 그렇게 말해서 내가 뭐라고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이 검은색 테러복 입은 사람들을 왜 무서운 형들이라고 생각는 건지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하는 거야.”

한참을 망설이던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도 성부 학교 다녀요?”

“응? 어...... 나 원래 여기 우성시 안 살고 서울 살던 사람이야. 그런데 전쟁 때문에 정부에서 여기 가 있으라고 해서 내려온 거야. 그런데 그건 왜?”

“성부 학교 다니는 형들, 여기 사는 애들 돈 뺐고 말 안 들으면 때리고, 이거 사와라 저거 사와라 막 부려먹고 못 살게 구는 나쁜 형들이에요. 교회 뒤에서 담배 피우고, 싫다는 여자애들 어디로 막 끌고 가기도 하고...... 아무튼 모두 다 정말 나쁜 형들이에요. 나도 많이 당해봐서 알아요. 나도 그 형들한테 몇 번씩이나 끌려가서 괴롭힘 당하고 맞고 그러다가 우리 엄마가 도와주셔서 간신히 빠져나왔어요.”

아이는 잠시 주변을 살피고는 한층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지금 그 나쁜 형들이 전부 다 형이 입고 있는 그 검은 옷 입고 무슨 군인처럼 하고 다니더라구요. 집사님들이나 장로님들 앞에서는 되게 착한 척 굴고 있어도, 자기네들끼리 있으면 막 욕하고 담배피고...... 그래서...... 형 처음 봤을 때 그 나쁜 형들이랑 똑같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이미 태하에게 성부 학교 학생들이 어떤지 들었던 터라 크게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도 지금 성부 학교에 있다고 말하면 얘 많이 놀라겠는데? 그건 말하지 말아야겠다.’

영록은 표정을 밝게 하며 말을 이었다.

“그랬구나. 어쨌든 난 그런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앞으로 나보면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근데 넌 몇 살이니?”

“14살이요.”

그의 말에 영록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럼 너 중 1이었어?”

영록은 처음 이 아이를 보았을 때 초등학생 3,4 학년쯤 되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중학생들 중에서도 체구가 작은 아이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 아이는 작아도 너무 작았다.

아이의 이름은 운용이라고 했다. 게다가 성도 영록과 같은 ‘지’씨였다.

“와, 신기하다. 원래 지씨가 흔하지 않은 성씨인데, 여기서 같은 지씨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저두요. 엄마도 지씨가 정말 희귀한 성씨라고 그랬어요.”

운용은 영록이 자신과 같은 지씨인 것을 알고 호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영록은 운용과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운용은 영록에게 검은 옷 입은 형들은 모두 나쁜 사람들이니, 절대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래도, 애국 청년 십자군 1지대장인가? 여기 담임목사님 아들이라는 성모 형은 그렇게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영록은 유민이 손 막 잡던 거 빼고, 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성모의 이름을 들은 운용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형 특히 조심하세요. 제일 나쁜 형이에요.”

영록은 운용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영록은 운용과 헤어진 후, 계단을 따라 중고등부실이 있는 7층까지 오게 되었다.

중고등부실 입구 가까이를 걸어가고 있을 때, 그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영록은 중고등부실 문을 조심스레 손가락 한 마디 만큼만 열고는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유민이 그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성모와 함께 있었다.

유민은 M­16A1 소총을 들고 있었다. 성모가 준 총이었다. 유민은 책상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쏴 자세를 하고 있었고, 성모는 그녀의 옆에 서서 팔과 어깨의 자세를 고쳐주며 총 쏘는 자세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었다. 두 사람은 시종 일관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영록은 그 모습을 한참 동안 훔쳐보았다. 무언가 말로 표현 못할 이상한 감정에, 그토록 찾아 헤매던 유민을 보고도 어찌 할 바를 몰라 계속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 두 사람은 책상 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계속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성모가 유민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유민은 성모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영록의 심장이 방망이질 당하듯 위아래로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갑자기 운용이 한 말이 떠올랐다.

[그 형 특히 조심하세요. 제일 나쁜 형이에요.]

영록은 어찌해야할지 몰라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야, 이 안에 성모 지대장 있냐?”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록은 너무 놀라 경련까지 일으키며 바닥에 넘어지듯 주저앉았다. 약간 험상궂게 생긴 애국 청년 십자군 한 명이 영록을 한심하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이 새끼? 왜 그렇게 놀라, 뭐 훔치려다 걸린 놈처럼? 야, 이 안에 성모 지대장 있냐고?”

“네? 네, 있어요.”

청년은 중고등부실 문을 열고 영록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청년은 성모에게 다가가 무어라 말을 전했다. 그러자 성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유민도 그의 뒤를 따라 나섰다.

영록은 자기도 모르게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지금 당장 유민과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자신이 유민을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길 바라면서,

영록은 황급히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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