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2027년 7월 1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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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 제일교회
금방이라도 교회를 향해 달려들 것만 같던 폭도들의 기세가 주춤해졌다.
폭도들은 우성 제일교회와 200m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그 주변을 둘러싸듯 포위하고 있었다. 몇몇 폭도들은 주변 상가 위로 올라가 교회 내부를 살피는가 하면, 책상, 의자 등 각종 집기들을 끌고 와 도로를 막고 진지를 만들었다.
더 이상 폭도들이 다가오지 않자, 교회 안의 사람들은 일단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장로님들, 집사님들하고 우리 애국 청년들이 총 들고 지키고 있으니까 폭도들도 쉽게 못 덤비는 모양이네요.”
“그러게, 만약 우리 중에 아무도 무기가 없었어봐. 우리는 다 죽은 목숨이었을 거야.”
“진짜 우리 유광수 목사님은 하나님과 기도로 소통하는 분이 맞는가 봐요. 목사님이 기도하시는 중에 환란에 대비해 무장하라는 계시를 받으셨다잖아요. 그래서 미리부터 정부에 승인받고 무기 지원 받고 해서 이렇게 대비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안 그랬으면 우리 모두 어떻게 될 뻔 했겠어요?”
“이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하나 봐요, 순종!”
교회 안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대예배당, 소예배당, 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 교육관 등에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들 중에는 불안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고,
모든 통신이 차단된 탓에 연락이 닿지 않는 가족의 생사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고,
폭도들에게 넘어간 생업 현장 때문에 낙심하는 사람도 있었고,
교회 관계자들을 붙잡고 집요하게 상황을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아무런 걱정도 없이 예배당 의자에 기대어 잠든 사람도 있었고,
둥글게 모여 기도와 찬양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는 무사히 넘어가는 모습이었다.
성도들과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을 즈음, 교회 교육관 5층 회의실에서는 예비역 대령 출신 장로가 애국 청년 십자군과 교회 직분자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젊은 부목사가 예비역 대령에게 물었다.
“일단 폭도들이 지금 당장 교회를 들이칠 거 같지는 않습니다만, 장로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예비역 대령은 낡은 국방부 다이어리를 펼치고 그 안에 메모한 내용을 확인하며 대답해주었다.
“아까 확인해보니, 폭도들 모두 총으로 무장하고 있는 건 아니었어요. 총 보다는 몽둥이나 쇠파이프 같은 걸 들고 있는 놈들이 더 눈에 띄었죠. 하지만 우리는 정부에서 받은 M16A1 소총 80정과 M60 기관총 3정, 아주 오래 됐지만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M1 카빈도 140정이나 가지고 있습니다. 폭도들도 우리가 무장한 걸 보았을 테니 쉽게 다가오지는 못할 겝니다."
예비역 대령은 자신의 의자 옆에 놓아 주었던 M16A1 소총을 들어 보였다.
"우리 장로, 집사들이야 모두 다 옛적 군대를 다녀왔으니까 당연히 이 총들을 모두 쓸 줄 알고, 또 애국 청년들한테도 장로, 집사들이 계속 교육해주고 있으니 그들도 금방 숙달될 겝니다. 하지만 아쉬운 건, 모두 다 자기 총의 영점을 못 잡은 상황이라는 거에요. 애국 청년 십자군이 창설되고 아직 단 한 번도 사격 훈련 같은걸 해보지 않아서, 정확한 사격을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봅니다. 일단 폭도들이 쳐들어온다면, 최대한 지근거리에서 싸우는 수밖에 없을 거에요.”
예비역 대령은 다이어리를 몇 장 옆으로 넘기며 말을 이었다.
“문제는 폭도들이 아니라 빨치산들입니다. 지금 한국으로 들어온 빨치산들은 정찰총국 소속이거나 옛날 경보교도지도국 소속 특수부대들일 겝니다. 북한 특수부대들의 전투력은 모두 우리나라 특수부대들과도 비교할만한 수준일 거에요. 특히 사격 솜씨에 대해서는 무시무시한 소문들이 많은 놈들이지요. 옛날,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에 북한 특수부대원이 헬기 레펠을 하며 내려오는 우리 특전사 요원을 단 한방에 이마 한가운데를 맞춰 버리는 일도 있었죠. 지금, 그 정도 전투력을 가진 북한 빨치산 놈들이 우리 교회로 쳐들어온다면...... 오로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을 겝니다.”
장내에 적막이 흘렀다. 예비역 대령은 분위기를 전환시키려는 듯, 계속 이야기했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무사히 넘긴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일단 한 고비는 넘겼지만 이제 앞으로가 더 문제군요. 우리 교회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 수는 성도, 비성도 다 합쳐서 1만 여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교회에는 이들 모두를 먹일 식량은 없어요. 당장 내일 아침부터 끼니를 걱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예비역 대령은 말에 젊은 부목사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이런 사태가 일어날 거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잖습니까? 그래서 쌀이며 부식이며 교회에 준비된 것이 거의 없는 형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입을 줄이지 못할 거라면, 사람들에게 배분할 밥 양을 줄이던지 아니면 밖에서 식량을 구해 와야겠지요."
예비역 대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순 없으니, 당장 오늘 저녁부터 배급하는 밥 양을 줄여야 합니다. 일단, 아까 낮에 만들었던 주먹밥 보다 절반 정도씩 작게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줘 봅시다. 그래도 못 먹는 사람이 생길 거 같긴 하지만...... 그리고,”
예비역 대령이 성모와 애국 청년 십자군 지대장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젊은 친구들이 몸이 빠르니까, 새벽에 교회 밖으로 나가서 인근 편의점이나 마트 등에서 먹을 것들과 생필품들을 있는 데로 다 가지고 와주었으며 좋겠어. 오늘 밤은 제일 가까운 교회 앞 편의점부터 먼저 시작하지. 도둑질을 시키는 거 같아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찔리기는 하지만, 일단 이 곳 사람들부터 먹여 살리는 게 더 중한 문제 아니겠나? 물건 값은 나중에 교회에서 모두 물어주는 걸로 하고, 그리 준비하는 게 좋겠네.”
성모와 청년들은 예비역 대령의 말에 예, 하고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록은 교회 대예배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멍 하니 있었다.
‘학교에서 우릴 찾고 있겠지? 거기도 지금 난리 나서 우리를 잊었으려나? 태하는 뭐하고 있을까? 내가 안 돌아와서 태하가 많이 걱정하고 있을 텐데......’
위급한 상황이 모두 지나가고 상황이 좀 안정되니, 잡다한 생각들이 쉬지 않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아까 자신이 입은 옷 때문에 무서운 형들인 줄 알았던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를 보고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서 울컥했을 때의 감정이 다시 기억났다.
갑자기 오만가지 침울한 생각들이 영록의 마음을 괴롭혔다.
그러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부끄러운 기억들까지 자꾸만 떠올랐다.
눈앞에 이 곳 교회에 오기 전 폭도들에게 쫓기던 상황이 다시 그려졌다. 유민이 폭도와 격투를 벌이는 모습들, 유민이 힘에 밀려 폭도에게 깔리던 모습들, ‘야, 지영록!’ 하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도와 달라고 소리치던 모습들,
그런데도 못 들은 척, 땅바닥에 쓰러져 가만히 있던 자신의 모습......
‘아까 유민이가 도와 달라고 소리쳤을 때, 그 때 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 아니, 왜 하지 않으려 했지......? 왜......? 나는 이 것 밖에 안 되는 병신인가......? 만약 그 때 유민이가 잘 못 되기라도 했으면 난......?’
영록은 손바닥으로 계단 난간을 쾅, 내리쳤다. 계단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잠시 영록을 쳐다보았다.
영록의 시뻘겋게 달아 오른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영록이 성부 학교에 처음 온 날, 유민과 학교 계단에 함께 앉아 했던 약속의 말들이 또다시 귓가에서 맴돌았다.
[야, 지영록, 너도 분명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아무리 무서운 걸 보고 겁나는 일을 당해도 피하거나 숨지 말고, 한번 당당히 싸워보는 거야.]
이제 그 말들이 영록의 마음을 더 괴롭히고 있었다.
‘피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숨지 말았어야 했는데...... 죽더라도 유민이를 구하려고 싸웠어야 했는데...... 난 구제불능인건가? 난 안되는 건가? 난 절대 변할 수 없는 건가......?’
영록이 혼자 계단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누군가 영록의 어깨를 두드렸다.
“야, 지영록, 너 여기서 뭐해? 밥 안 먹어?”
유민이었다. 유민은 쟁반에 담긴 주먹밥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밥 왔어, 밥 먹어. 갑자기 교회로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아까 점심때보다 주먹밥을 작게 만들 수밖에 없었데. 그리고 1인당 한 개씩이니까, 배고파도 참아.”
영록은 말없이 유민이 건넨 주먹밥을 받았다. 유민은 영록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을 눈치 챘다. 그녀는 쟁반을 계단 위에 내려놓고는 영록에게 가까이 다가와 앉으며 물었다.
“야, 지영록. 너 울었어? 무슨 일 있었어?”
영록은 흠칫 놀라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아까...... 아까는 너무 미안해, 너 위험한데 도와주지 못해서......”
유민은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무언가 알았다는 듯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까? 아~ 그 동남아 새끼들? 야, 괜찮아~ 너도 그 때 방망이에 맞아서 다친 상태였잖아.”
“그래도, 아무리 무섭고 겁나도 절대 피하거나 숨지 않겠다고 너하고 약속했는데, 벌써 못 지킨 거 같아서......”
영록은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땠다. 유민은 안쓰럽게 웃으며 영록의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아~ 사람이 어떻게 한 번에 변하니? 천천히 성장해가면서 변해 나가는 거지. 야, 지영록, 신경 쓰지 마. 너도 봤지만 내가 남자하고도 1:2로 싸워도 이기는 여자잖아? 누가 안 도와줘도 다 이길 수 있다구. 난 괜찮으니까 이제 울지 마. 응? 이제 그만 울어. 다른 사람들 다 쳐다보잖아. 쪽팔리니까 그만 좀 울어.”
유민의 다독임에도 영록의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영록은 울먹이는 와중에도 ‘미안해’ 라고 계속 말하고 있었다.
“야, 지영록, 난 괜찮으니까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마. 친구 사이에 미안한 건 없다는 말도 있잖아? 다 이해하고 괜찮으니까, 이제 그만 울어, 응?”
유민은 영록의 곁에 앉아, 진정될 때까지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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