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15화 (15/217)

〈 15화 〉 2027년 7월 1일 (6)

* * *

­ 오후 3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시청

우성시 시청 앞 광장에는 마지막까지 시청을 사수하던 경찰 시신들이 폭도들에 의해 들려 나오고 있었다. 폭도들은 경찰들이 가지고 있던 총과 탄약들을 수거하는 한편, 그들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 중 지갑이나 시계 등 값나가는 물건들도 모조리 빼 자기 주머니에 챙겨 넣고 있었다.

시청 건물 여기저기에는 여전히 매캐한 화약 냄새와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리부일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두 명의 빨치산을 대동한 채 시청 안으로 들어갔다.

시청 5층 시장 집무실은 이미 북한 공작원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최명순 우성 시장은 집무실 바닥에 무릎이 꿇려진 채 머리에 손을 얹고 있었고, 공작원 중 한 명이 그의 곁에서 총을 겨누고 있었다.

리부일은 시장을 흘끔 쳐다보고는,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어허, 이보라우 동무들, 이케 예의가 없어서리 어따 쓰갔어? 기래도 남조선 한 구역을 책임지는 시장 동무인데 무릎까지 꿇려 놓고, 기라믄 아이 되는 거이지? 전쟁 때 장교를 포로로 잡아도 다 대우를 해주는 판에, 시장을 포로로 잡았는데 대우를 이케 하면 아이 되지. 안기래? 날래 일으켜 세우라우.”

리부일은 시장의 업무용 데스크에 두 다리를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공작원들이 최명순 시장을 일으켜 세웠다.

“시장 동무, 일 없소. 거기 편히 앉아서 내말 듣소.”

리부일은 소파를 가리켰다. 최명순은 조심스레 소파에 앉아 리부일을 쳐다봤다.

“시장 동무, 보다시피 이곳 우성시는 우리 자랑스러운 공화국 전사들에 의해, 남조선의 이정만 괴뢰 정권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소. 축하하오!”

리부일은 건조하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이곳 인민들의 수가 40만이 넘는다 들었소. 40만...... 어마어마한 숫자 아이오? 시장 동무, 시장 동무의 핵심적인 임무는 이 40만 인민들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오. 아이 그렇소?”

“......맞습니다.”

최명순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조용히 대답했다.

리부일이 담배를 끄기 위해 재떨이를 찾아보았지만, 최명순은 담배를 피지 않는지 집무실 안에는 재떨이가 보이지 않았다. 리부일은 그냥 책상 위에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시장 동무...... 40만 인민들의 목숨이 이제 동무에게 달렸소. 인민들을 위해 우리에게 협조하시오. 뭐 어려운 거 시키지는 않을 테니 일 없을 것이오.”

“지금 당장 우성시를 함락했다고 해서,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곧 한국군들이 이리로 몰려올 겁니다.”

최명순의 말에, 리부일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내래 지금 동무한테 협조해 달라 부탁하는 거 아이오? 동무, 내래 지금 동무한테 이정만 괴뢰 정권의 반역자가 되라고 강요하려는 게 아이오. 어차피 동무는 이정만의 자유공화당 사람도 아이지 않소? 민주시민당에 오래 계시면서 우리 공화국을 위해 햇볕 정책에도 깊이 관여하셨던 거 내 이미 잘 알고 있소. 그 점 때문에 우리 공화국 내에서도 동무를 존경하는 인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오?”

리부일은 책상에서 다리를 내리고 바르게 앉아 최명순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무,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래 동무더러 남조선을 배신하라고 강요하는 게 아이오. 동무가 해야 할 일, 이 도시 40만 인민들의 목숨을 살리는 결정을 하라, 이 말이오! 최명순 동무, 내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 생각이 있소?”

한참을 생각하던 최명순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말씀해 보시죠.”

“내, 동무라면 말이 통할 줄 알았지. 자, 그럼 잘 듣소......”

리부일은 빨치산들과 함께 시장 집무실을 나섰다. 시청을 나가는 그의 표정은 무척 만족스러워 보였다.

시청 정문 앞에, 한국군 전투복에 바라클라바를 쓰고 있는 빨치산 대원 세 명과 45호실 공작원 조장이 리부일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들은 리부일을 보자 절도 있게 경례를 올렸다. 전투를 마치자마자 이리로 달려온 듯, 빨치산들의 전투복은 피와 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우성시 일대의 남조선 괴뢰군들은 모조리 소탕되었습네다.”

"현재 해외 프롤레타리아(외국인 노동자)들로 태화산과 경월천 일대에 경계 병력을 배치할 수 있도록 인원을 편성하고 있습네다. 배치가 완료되는 데로 다시 보고 드리겠습네다.”

리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 때, 공작원 조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성시내에 예상치 못한 저항 세력들이 남아 있습네다.”

리부일은 발걸음을 멈추고 황당하다는 듯, 공작원 조장과 빨치산들을 쏘아 보았다.

“방금 여기 남조선 괴뢰군들은 싹 소탕했다고 보고하고서니, 그건 또 무시기 그지 발싸개 같은 소리야? 저항 세력이라니, 소상히 말해보라.”

“우성시 대형 교회에 무장한 인민들이 진을 치고 지키고 있습네다. 정확한 병력 수는 아직 파악이 안 되었고, 현재 주변의 인민들이 계속 그쪽으로 숨어들고 있다고 합네다.”

리부일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교회? 얼마나 큰 교회이길래 무장한 병력들이 진을 치고 있고 인민들까지 숨으려고 모여 들어?”

“우성 제일교회라는 곳이고, 이 주변에서 가장 큰 교회라고 합네다.”

우성 제일교회라는 말에, 리부일은 한참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거기가 거이 아이야? 우리 공화국 비방에 열 올리던, 그 미친 목사 인가 머인가가 한다는 그 교회라는 곳이?”

“네, 유광수 목사 있는 우성 제일교회 맞습네다.”

리부일은 피식, 입술을 씰룩거리며 웃었다.

“목사면 목사답게 조용히 예수나 찾고 있을 거이디, 정치판에 끼어 단물 빠느라 우리 공화국을 건들고 지랄하다가 이제는 총 들고 한번 제대로 붙어 보자고 아새끼가 객기부리고 있구만기래. 미친개가 죽고 싶어 발광하는 꼴이지, 안기래? 미친개는 먹을 수도 없고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어, 그냥 죽여야디. 오늘, 다른 놈은 몰라도 그 미친 목사 아새끼는 반드시 모가지 따가지고 내 앞에 가져 오라우.”

시장 집무실에 동행했던 빨치산이 리부일을 만류하며 말했다.

“시장과의 약속이 있는데, 일 없겠습네까?”

리부일은 빨치산을 쏘아보며 차갑게 대꾸했다.

“내가 언제 우리 공화국에 적대하는 아새끼들까지 살려 준다 약속한 적 있나? 날래 그 아새끼 모가지나 따서 가져오라우!”

리부일은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며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다시 걸음을 멈추고 공작원 조장을 바라보았다.

“......내 다시 생각해 보이, 시장이 약속을 이행하기도 전에 그 교회를 치고 인민들 피를 보는 건 역시 아이지...... 일단 교회를 포위하고 밖으로 나오는 놈들만 쏴 죽이라. 많은 인민들이 그리로 숨어 들었으면, 금방 쌀 떨어지고 먹을 거 떨어져서 다들 배고파 기어나오지 않갔어? 그러니끼니, 무리하게 공격하지 말고 포위하고 잘 지켜보고 있으라우.”

빨치산과 공작원 조장은 리부일에게 다시 가수 경례를 올렸다.

­ 오후 4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 제일교회

폭도들은 교회 주변을 둘러싼 채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교회 안의 집사들과 애국 청년 십자군들은 총을 들고 계속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성모에게 이끌려 교회 안으로 들어간 유민은 여지껏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영록은 점점 불안해져 갔다.

‘유민이가 어디 간 거지? 화장실이라도 간 건가?’

갑자기 아까 성모가 유민의 손을 붙잡고 교회 안으로 데리고 가던 일이 생각났다. 처음 교회에 왔을 때도 유민의 옆에 찰싹 붙어 앉자 그녀의 손에 다정스럽게 약을 발라주는 일도 떠올랐다. 영록은 그 모습에 불쾌함과 질투심을 느꼈다.

‘그 형은 왜 유민이 손을 그렇게 막 잡는 거야? 나도 유민이 손 제대로 잡아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씨~’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교회 안을 서성거렸다.

이때 그의 앞으로 작고 조그마한 키의 남자아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아이는 갑자기 영록을 보자 새파랗게 겁에 질린 얼굴로 뒤돌아 도망가기 시작했다.

‘쟤는 또 뭐야? 왜 날 보고 도망가는 거지?’

영록도 당황한 표정으로 그 아이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복도 끝까지 달려 도망가던 아이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영록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아닌가. 영록은 가던 길을 따라 그 아이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왜 날 보고 도망가? 너 나 아니?”

영록이 남자아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이는 한참을 우물쭈물거리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니, 형도 이 옷 입고 있길레, 무서운 형들인 줄 알고 그만......”

“이 옷? 이 테러복?”

검은색 사제 테러복을 입고 있는 걸 보고 놀랐다니, 그리고 무서운 형들은 또 무슨 말인지......

영록은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아이에게 말을 걸려고 할 때, 갑자기 복도 뒤 편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용아, 거기서 뭐 하니?”

“아, 엄마~!”

아이는 자신을 부르는 엄마에게로 파다닥, 뛰어갔다.

영록이 돌아보니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아이를 부르고 있었다. 아주 미인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고운 얼굴의 여성이었다. 민트색 반팔 블라우스에 길지만 얇은 하얀색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딱히 야한 옷은 아니었는데도 그녀의 몸매가 얼마나 육감적인지 고스란히 알 수 있었다. 뚱뚱하거나 살이 찐 체형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터질 듯 커다란 그녀의 가슴은 블라우스로 모두 가려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이가 엄마의 치맛품으로 달려가 안겼다.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걸어갔다.

‘저 애는 좋겠다. 이런 전쟁 중에도 엄마가 곁에 있어서. 그런데 난......’

갑자기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지난번 대학 병원 영안실에 본 두 분의 마지막 모습까지 눈 앞에 아른거렸다.

갑자기 가슴이 울컥거렸다.

영록은 일부러 숨을 크게 들이쉬어 마음을 달래 보았다.

‘여기서 울면 안 돼. 주변에 사람들도 많잖아.’

영록은 고개를 숙이고 반대편 계단을 향해 종종 걸음으로 걸어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