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2027년 7월 1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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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 제일교회
우성 제일교회는 영록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교회였다.
영록이 살던 서울 강서구에도 대형 교회들이 몇 개 있었지만, 우성 제일교회는 웬만한 강서구의 대형 교회 두 개 정도를 합쳐 놓은 규모였다. 수천 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예배당 옆에는 15층 규모의 교육관 빌딩이 세워져 있었고, 그 옆으로 여러 교회 사무용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교회 주보에는 이 교회 성도들의 수가 무려 3만 명이나 된다고 적혀 있었다. 3만 명이면 대략 우성시 인구의 1/15 정도 되는 수였다.
지금 이 우성 제일교회에서는 성도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검은색 사제 테러복을 입은 청년들과 옛날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은 어른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몇몇은 교회 진입로에 흙을 잔뜩 담은 쌀부대를 쌓아 진지를 만들고 있었고, 또 몇몇은 건물 입구 앞에도 이와 같은 진지들을 만들고 있었다.
영록과 유민은 예배당 안에 덩그러니 앉아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여기도 전쟁터가 되었나보다.”
유민의 말에 영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영록과 유민을 교회로 안내한 잘생긴 청년이 예배당으로 들어왔다. 청년은 싱긋 웃으며 이들에게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구급함이 들려 있었다.
“유민이라고 했지? 아까 보니 손 다쳤던데, 이리 줘봐.”
청년은 유민의 옆자리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 괜찮은데......”
유민은 부끄러운 듯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청년은 그녀의 손등에 소독약을 바르고 거즈를 붙여주었다.
“너 아까 멀리서 보니까 진짜 용감하더라?”
“네?, 아, 아니에요......”
“운동 배웠어? 무술이나 뭐 그런 거?”
“네, 초등학교 때부터 합기도 해왔어요......”
“아, 그랬구나. 나는 주짓수 했는데...... 자, 다 됐다. 이거 때지 말고 한동안 붙이고 있어. 물하고 공기하고 닿으면 흉터 생길 수 있으니까.”
“네......”
유민은 부끄러운 듯 손으로 옆머리를 살짝 넘기고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
“아, 너도 아까 어깨 다쳤다고 했지? 어디를 어떻게 다쳤니?”
청년은 영록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물음에 영록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니, 그냥 방망이에 살짝 맞은 거뿐이에요. 지금은 괜찮아요.”
“그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거 붙이고 있어.”
청년은 영록에게 붙이는 파스 하나를 꺼내 주었다. 영록은 파스를 받았지만 당장 붙이지는 않았다.
“아까 내 소개를 안 했지? 나는 우성 제일교회 중고등부 회장 유성모야. 지금은 애국 청년 십자군 1 지대장이기도 하구. 너희들은 어디 학교 애들이니?”
유민과 영록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유민이 말했다.
“저희는 원래 서울에서 학교 다니고 있었는데요, 이번 전쟁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여기 우성시에 성부 학교로 보내지게 되었어요. 여기 온 지는 얼마 안 되었고요.”
유민의 말에 성모는 반갑다는 듯, 상기된 말투로 말했다.
“야~! 그럼 너희도 내 후배들이구나? 나도 지금 성부 학교 다니고 있어.”
“네?”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한동안 말없이 성모를 쳐다보았다. 성모는 왜 그런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이어서 말했다.
“너희들, 성부 학교에 대한 소문 듣고 그러는 거지? 뭐 대체로 질 안 좋은 아이들이 오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성부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모두 다 양아치에 문제아들인 건 아니야. 사실, 문제아들은 다른 일반 학교에도 얼마든지 있잖아? 성부 학교는 일반 학교와는 달리 좀 더 통제를 덜 받고 자유로운 학교생활을 하고 싶은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보는 게 맞는 거 같아. 실제로 이 학교는 출석이나 수업 참가 여부를 별로 안 따지거든. 졸업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고.”
유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오빠도 그런 점 때문에 성부 학교 다니시는 거예요?”
성모는 유민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점도 있고, 우리 아버지가 그 학교 공동 이사장이셔서 편하게 학교생활 할 수 있어서 간 것도 있고...... 참, 우리 아버지가 여기 이 교회 담임 목사님이기도 해. 유광수 목사님.”
두 사람은 놀란 듯이 성모를 바라보았다. 성모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계속 이야기했다.
“그리고, 성부 학교 다니는 애들이 모두 부적응자에 꼴통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점, 확실히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지금 우리 애국 청년 십자군에 모인 아이들 대부분이 성부 학교 아이들이거든. 이 나라가 전쟁 때문에 위기에 빠졌는데, 모범생이라 불리던 녀석들은 모두 다 어디론가 숨어버렸지만 정작 문제아라고 손가락질받던 우리들은 조국을 위해 희생하겠다고 무기 들고 나서고 있잖아? 그럼 과연 누가 옳은 것이고 누가 틀린 것일까? 안 그래?”
성모의 말에, 유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후 2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 제일교회
몇 시간 만에 우성 제일교회는 마치 중세 성처럼 요새화되었다. 교회 주변은 쌀부대로 쌓아 올린 진지들로 둘러쌓고, 교회 높은 층마다 구형 M60 기관총들도 배치했다. 교회 이곳저곳에는 검은색 사제 테러복을 입은 애국 청년 십자군 청년들과 옛날 전투복을 입은 교회 집사, 장로들이 M16A1 소총을 들고 물샐 틈 없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들의 수는 어림잡아 500여 명 정도는 되어 보였다.
이제 예배당 안에는 폭동을 피해 도망 온 성도들과 교회 인근 주민들로 가득했다. 아직도 핸드폰이며 전화며 인터넷이며 가릴 것 없이 모든 통신이 끊어진 상태였다.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밖에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걱정하고 있었다.
영록과 유민은 이제 성모에게 받은 검은색 사제 테러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두 사람은 교회 장로와 함께 예배당 안에 피신한 사람들에게 교회 주방에서 만든 주먹밥을 나눠주는 일을 도와주었다. 주먹밥은 밥에 스팸과 단무지를 잘게 썰어 참기름과 함께 둥글게 뭉친 것이었다. 예배당 안의 사람들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아이들이 건네는 주먹밥을 받았다.
그때 누군가가 예배당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무척 겁에 질려 있었다.
“놈들이...... 놈들이 교회로 오고 있어요! 외국인 놈들이 지금 교회 앞으로 모여 들고 있어요! 다 총을 가지고 있어요!”
일순간에 예배당 안의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조용히 하세요! 교회는 우리가 지킬 거니까 그놈들은 이리로 못 들어와요! 다른 사람들 걱정하지 않게 큰 소리 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걱정할 기운 있으면 그 시간에 기도나 해요!”
아이들과 함께 주먹밥을 돌리던 장로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장로는 이내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가까이 앉아 있던 어느 여성 권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사람들이 진정할 수 있게, 찬송가 좀 쳐 주세요.”
권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단 위로 올라가 피아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조용히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자, 혼란스럽던 장내가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곡을 아는 이들이 함께 찬송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되시고
환란 중에 우리의 힘과 도움이시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환란 중에 우리의 힘과 도움이시라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됨 알 지어다
열방과 세계 가운데 주가 높임을 받으리라
사랑합니다 내 아버지
사랑합니다 내 온 맘 다하여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주님 오심을 기다리며......
영록과 유민은 주먹밥을 내려놓고 예배당 밖을 나갔다.
“얘들아! 위험하니까 나오지 말고 예배당 안에 들어가 있어!”
예배당 앞을 지키고 있던 교회 집사가 소리쳐 불렀지만 두 사람은 예배당 계단 아래로 내려가 거리를 바라보았다.
300m 정도 앞에서, 거리를 가득 메운 폭도들의 행렬이 교회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 시꺼멓게 몰려와서 대체 몇 명이나 되는지 셀 수조차 없었다. 영록은 이 광경을 보고 갑자기 공포 영화 속 좀비 떼들이 몰려오는 장면이 떠올랐다.
벌써 간간이 총소리도 들려오고, 성난 함성 소리도 점차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유민아,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는데?”
폭도들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하자, 영록은 불안한 눈으로 유민을 재촉했다.
“잠깐만 있어봐. 저것들이 어떻게 하나 좀 지켜보게.”
그녀는 호기심 때문인지, 계속 거리 상황을 지켜보려 했다.
“니들 거기서 뭐해?”
그들 뒤에서 성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민은 성모를 향해 뒤돌아 뭐라 말하려다 말고 웃어보였다.
“여기 있으면 위험해. 안으로 들어가자.”
성모는 유민의 손을 끌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유민은 아무 말 없이 수줍게 웃으며 성모를 따라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영록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교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웬지 모르게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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