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2027년 7월 1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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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경기도 우성시 예비군 부대
한국군은 빨치산들이 원자력 본부를 타격할 것이라 예상하고 후방의 병력 대부분을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그들의 진짜 목표는 원자력 본부가 아니라, 우성시였다.
빨치산들의 양동 작전에 보기 좋게 걸려들고 만 것이다.
우성시는 서쪽은 바다, 동쪽은 태화산과 경월천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다른 도시들과 연결된 도로와 철로도 몇 개 없었다. 그야말로 들어오기는 힘들고 지키기는 쉬운 천혜의 요새였다.
게다가 우성시는 빨치산들에 호응해 함께 싸워줄 이들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수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빨치산들의 부족한 인력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공장에서 정리해고 당하고 한국인들과 한국 사회에 깊은 불만을 품고 있던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성시에 침투해 있던 정찰총국 45호실 공작원들에 의해 손쉽게 포섭되었다. 그들은 언제든지 한국을 상대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정찰총국 리부일 중장은 우성시를 점령하고 시민들을 인질로 삼은 후, 이곳을 빨치산들의 혁명 거점으로 삼아 한국군과의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갈 계획이었다.
아무리 압도적으로 강한 전력을 가진 한국군일지라도, 미국 등 주변국의 원조도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전쟁을 장기간 지속하기는 힘들었다.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타격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인질로 잡혀있는 이상, 한국군도 우성시를 섣불리 공격하기보다 협상으로 나올 가능성이 컸다.
우성시 점령은 북한군의 마지막 승부수였다.
정찰총국 45호실 공작원들은 도로 곳곳을 지키던 예비군들을 모조리 사살한 후, 백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 폭도들을 트럭 뒤에 태우고 예비군 본부가 있는 우성시 예비군 부대로 향했다.
그들이 위병소 근무자 두 명을 가볍게 사살하고 예비군 본부를 접수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5분이 채 되지 않았다. 총소리에 놀라 생활관 밖으로 뛰쳐나온 예비군 중대장은 총조차 들고 있지 않았다. 공작원들은 예비군 중대장과 부대 안의 모든 병력들을 사살하고, 탄약고를 부수고 폭도들에게 무기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미 예비군과 민방위들에게 수많은 무기가 보급되었음에도, 탄약고 안에는 아직 M16A1 소총 100여 자루와 수만 발 이상의 5.56mm 탄들이 남아 있었다. 구형 M1 카빈 소총도 수백정이나 되었다. 공작원들은 폭도들에게 무기를 나눠주는 중에도
‘남조선의 무기 보급 역량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하고, 놀라워하고 있었다.
오전 9시, 경기도 우성시 진입로
폭도들을 무장시킨 공작원들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폭도들을 시켜 각 예비군 진지에 있던 바리케이드들을 들고 와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을 막아 버렸다. 그리고 무기를 든 폭도들을 길가 상점 위에 매복시켰다.
잠시 후 군용 트럭 4대가 시내로 들어왔다. 태화산 등 육상 진입로를 지키던 병력들이 예비군 본부와 연락이 끊어진 상태에서 시내에 폭동이 일어난 것을 보고, 일부 병력들을 이끌고 시내로 내려온 것이다.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가득 쌓인 바리케이드로 인해 군용 트럭들이 멈춰 섰다.
그 순간, 상가 위에 매복해 있던 공작원들과 폭도들이 트럭 위의 예비군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폭도들 중 군 경험을 갖춘 자들은 많지 않아 보였다. 제대로 총을 견착하고 조준 사격을 하는 자는 드물었다. 개머리판을 겨드랑이에 끼고 30발들이 탄창이 다 비워질 때까지 무작정 방아쇠를 당기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호로도 씌우지 않은 군용트럭 뒷자리에 앉아 있던 예비군들은 폭도들의 쉬운 표적이 되었다. 좌우에서 포위당한 채 고지에서 총격을 받은 40여 명의 예비군들은 삽시간에 온몸이 벌집처럼 되어 몰살당했다.
예비군들이 전멸하자 공작원들은 죽은 자들의 무기와 탄을 회수해 폭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총을 든 폭도들의 수는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공작원들이 폭도들들 데리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려고 할 때, 태화산 방향에서 총성과 폭음이 들렸다. 그들이 시계를 확인하니 09시 30분이었다. 우성시 외곽에서 대기 중이던 빨치산들이 침투를 시작한 것이다.
오전 10시, 경기도 우성시 주거지 일대
유민은 여전히 길을 헤매고 있었다. 그녀가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학교로 돌아가는 길이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옆에는 영록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헉헉거리며 숨 넘어 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 내가 너무 무작정 달렸나......? 큰 일 났네......?”
유민은 도무지 길을 못 찾겠다는 듯, 영록의 옆에 앉아 머리를 다시 묶기 시작했다. 그녀의 티셔츠도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아까, 지나가던 아저씨가 외국인 노동자들이 폭동 일으켰다고 그랬잖아? 근데 총소리도 나고 막 그러는 거 보면, 이건 그냥 단순한 폭동은 아닌 거 같아. 혹시, 빨치산들이 들어온 거 아닐까? 그치?”
유민은 머리를 고쳐 묶으며 영록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달리느라 입안이 바싹 마른 영록은 쉰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그치......? 외국인 노동자들이 총을 어디서 구하겠어......?”
“응, 그래 맞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폭동 일으킨 건 일으킨 거구, 저 총소리하구 폭탄 터지는 소리는 분명 빨치산들일거야. 아침에 핸드폰 안 터질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는데...... 아, 진짜, 이게 뭐냐구~! 이럴 거면 차라리 내가 군대 보내 달라고 할 때 그냥 군대로 보내주지! 안전한 데에서 공부하라고 보내준 데가 여긴데, 이제 여기가 더 위험하게 생겼잖아~!”
유민은 발을 동동 구르며 짜증을 부렸다.
“내가 진짜, 이제 앞으로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하나 봐라. 절대로......”
유민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그러다가 유민이 영록의 팔을 붙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지영록, 다 쉬었지?”
“아, 아니, 아직...... 좀 만 더...... 좀 만 더 쉬다 가자......”
그런데도 유민은 영록의 팔을 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야, 우리 앞에 외국인 노동자들 걸어오고 있어. 내가 뛰라고 하면 뒤로 돌아서 뛰는 거야, 알았지?”
영록이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50m 앞에서 시커먼 얼굴에 작은 체구의 외국인 노동자 둘이 야구 방망이와 각목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도 영록과 유민을 보았는지, 자기 나라 말로 무어라 무어라 말하며 손가락으로 두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들이 점점 다가올수록, 그들 얼굴에 음탕한 웃음이 가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들 모두 유민을 보고 웃고 있었다.
“야, 뛰어!”
유민은 영록의 팔을 잡고 쏜살같이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영록은 거의 유민에게 끌려가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폭도들도 두 사람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폭도들이 무어라 소리를 질렀지만, 그 말이 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왜 쫓아오는 거야, 씨발~!”
유민도 흥분했는지, 입에서 욕까지 튀어나왔다.
유민은 영록을 잡고 뛰느라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폭도들은 두 사람의 바로 뒤까지 쫓아와 있었다.
“악!”
폭도가 뒤에서 영록의 어깨를 야구 방망이로 내리쳤다. 스치듯 맞았지만 영록은 고통에 소리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유민도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영록은 어깨를 부여잡고 길 위에 누워 바둥거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폭도는 멈춰 선 유민을 보고 천천히 다가왔다. 한 놈은 혀로 입술 축이며 유민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
각목을 든 폭도가 어느 나라 말인지 통 알 수 없는 말로 유민에게 소리쳤다. 유민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들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뭐라는 거야, 씨발.”
폭도들은 유민의 말을 알아듣고는 잠시 흠칫하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각목을 휘휘 돌리며 유민의 주변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서툰 한국말로 유민에게 말했다.
“살고 싶어? 그럼 나랑 해.”
“......뭐, 너랑 하긴 뭘 해?”
그러자 폭도는 유민의 허리를 팔로 감고는 엉큼하게 그녀의 몸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나랑 그거 해, 좋은 거 해. 그럼 살아. 나 따라와.”
유민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분노로 완전히 일그러졌다. 그녀의 눈썹 끝이 부르르 떨렸다.
“씨발,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이 변태 새끼야!!!”
유민은 눈 깜짝하는 사이 몸을 홱, 돌리며 왼손가락으로 폭도의 두 눈을 찔렀다.
폭도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두 눈을 감싸자, 유민은 양손으로 그의 어깨를 잡고는, 무릎으로 낭심을 올려쳐 버렸다.
“끄아아아아악~! 꾸어어아아악~!”
폭도는 한 손으로는 눈을, 다른 한 손으로는 가랑이 사이를 부여잡고 돼지처럼 꽥꽥 소리를 지르며 길 위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유민은 분이 안 풀렸는지, 폭도가 들고 있던 각목을 주워 다섯 대를 더 내리쳤다.
뒤에 있던 폭도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야구 방망이를 두 손으로 고쳐 들고 유민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유민을 향해 야구 방망이를 힘껏 휘둘렀다. 유민이 각목을 들어 막아 보려 했지만, 역시 가느다란 각목으로 성인이 휘두르는 야구 방망이를 막기는 힘들었다.
유민은 저릿한 통증을 느끼며 손에 쥐고 있던 각목을 놓쳐 버렸다. 폭도는 야구 방망이를 있는 힘껏 좌우로 휘두르며 유민에게 덤벼들었다.
야구 방망이를 피하던 유민이 집 담벼락 옆에 떨어져 있던 벽돌 조각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녀는 오른손에 벽돌을 쥐고 폭도가 휘두르는 야구 방망이를 계속 노려보았다.
폭도가 자신의 왼쪽으로 야구 방망이를 크게 휘둘렀다.
순간, 유민이 폭도 앞으로 뛰어들었다.
유민은 왼손으로 폭도의 오른쪽 팔꿈치를 밀어 누르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벽돌로 폭도의 얼굴을 내리쳤다.
한 대, 두 대, 세 대...... 폭도의 코와 입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그래도 폭도는 정신을 잃지 않고 유민을 붙들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상태에서도 유민의 두 팔을 잡고 제압하려 했다. 폭도가 유민을 위에서 몸으로 누르고 있는 바람에, 유민은 발로 상대를 때릴 수도 없었다.
“야, 지영록! 지영록! 나 좀 도와줘! 야, 지영록! 지영록!”
유민은 폭도의 밑에 깔린 채로 영록을 불렀다.
사실 영록은 어깨를 심하게 다치지 않았다. 지금 유민이 싸우고 있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지만, 영록은 길바닥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두려움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유민이 부르는 소리에도, 영록은 일부러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유민은 폭도의 힘에 밀리기 시작했다. 여린 여학생이 성인 남자의 힘을 이기기는 힘들었다.
폭도는 벽돌을 쥐고 있는 유민의 오른손을 땅바닥에 내리치기를 반복했다. 결국 유민은 벽돌을 놓쳐 버렸다. 유민의 손등 여기저기가 까지고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폭도는 씩씩거리며 유민을 노려보았다. 이걸 어떻게 죽여 버릴까, 고민하는 것 같았다. 유민은 여전히 밑에 깔려 있었지만, 그녀 역시 폭도를 계속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탕!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폭도가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검정색 사제 테러복을 입고 있는 한국인 청년 세 명이 M16A1 소총을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폭도는 유민을 노려보고는 다른 폭도를 부축해 도망가기 시작했다.
유민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영록에게 달려갔다.
“야, 지영록, 괜찮아? 많이 다쳤어?”
유민의 물음에 영록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응, 아니, 그냥...... 많이 좀 아파...... 괜찮아.”
“야, 근데 너, 내가 그놈들 때려잡는 거 봤어? 내가 1:1도 아니고, 남자랑 1:2로 싸워도 이겼잖아? 나 잘했지? 이 정도면 진짜 지금 당장 군대 들어가도 될 거 같지? 그지?”
“어, 응...... 그래......”
유민은 영록을 잡아 일으켰다. 영록은 괜히 어깨가 아픈 척, 얼굴을 찡그리고 한 손으로 어깨를 만지작거렸다.
검은색 테러복을 입은 청년들이 그들에게 달려왔다. 청년들은 주변에 다른 폭도들이 없는지 살폈다. 그 들 중, 키가 크고 잘생긴 청년이 유민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니? 다친 데는 없고?”
“네, 덕분에요.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민은 영록을 부축한 채로 넙죽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덕분에 영록도 덩달아 허리 숙여 그에게 인사를 하게 되었다.
“지금 도시 전체가 다 위험하니까 어서 집으로 돌아가. 또 위험한 꼴 당하지 말고.”
“네, 근데 저희 오늘 애국 청년 십자군 가입하려고 우성 제일 교회 찾으러 나왔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건데요, 혹시 우성 제일 교회 가려면 여기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유민의 물음에, 잘생긴 청년은 의외라는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잘 만난 거네. 우리가 애국 청년 십자군이야. 지금 이 사태 때문에 다들 교회로 모이고 있으니까, 그럼 너희도 같이 가자.”
“정말요? 와, 대박! 저희도 따라갈게요!”
유민은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이 와중에도 영록은 여전히 유민의 어깨에 기대어 계속 아픈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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