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12화 (12/217)

〈 12화 〉 2027년 7월 1일 (3)

* * *

­ 오전 7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역

외국인 노동자들의 폭동은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평상시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모이는 우성역 앞 광장에는 이날 따라 천여 명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새벽 일찍부터 모여 있었다. 대부분 파키스탄, 스리랑카, 몽골, 구소련계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광장의 사람들은 계속 늘어났다.

새벽 6시 즈음 되었을 때, 광장 앞에 1t 트럭 3대가 들어왔다. 그리고 트럭에서 내린 동양인들이 유창한 우르두어(파키스탄 언어 중 하나), 싱할라어(스리랑카의 공용어 중 하나), 몽골어, 러시아어, 영어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외쳤다.

“형제들이여, 오래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 일터의 진정한 주인은 바로 우리, 여기 계신 여러분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형제들에게 정당한 대우도 해주지 않은 채 핍박과 착취만 일삼고, 단 한마디의 말로 우리를 길거리를 떠도는 개처럼 내쫓은 저 간악한 한국의 부르주아 지주들, 공장주들에게 복수해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당하고만 살아야 합니까? 한국에서는, 한국인이 아닌 우리 형제들 모두를 개, 소, 말, 돼지처럼 취급해 오지 않았습니까? 공장주도, 한국 정부도, 한국인들 모두 우리를 노예처럼 부리려고만 하는 악덕 분자들입니다! 우리 외국 노동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한국과 한국인들! 이제 그들을 향해 분연히 들고 일어납시다! 형제들이여! 싸우러 나갑시다!”

광장에 모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웃옷을 벗어 던지고 벌써부터 흥분해 날뛰는 자들도 있었다.

트럭을 타고 와 사람들은 선동한 이들은 북한 정찰총국 45호실 소속 공작원들이었다. 이미 몇 주 전부터 우성시에 잠입해 있던 공작원들은 그동안 외국인 노동자들을 포섭하는 한편, 폭동에 쓰일 무기들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공작원들은 트럭에 싣고 온 쇠파이프와 각목들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앞다투어 트럭으로 다가와 무기들을 받아갔다. 그들 중에는 미리 차이다오(중국 식칼)나 벌목도 같은 흉기를 스스로 챙겨온 자들도 있었다.

광장 앞으로 나와 이 광경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던 우성역 파출소 경찰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손에 무기들을 들기 시작하자 놀라 파출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날 파출소에 있던 야간 당직 인원들은 남경 3명에 여경 1명, 이렇게 4명뿐이었다.

“황 순경! 문 잠가, 어서!”

파출소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경찰들이 문을 잠그는 사이, 파출소장이 전화기를 들었다. 하지만 전화는 아무런 신호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당황한 그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그의 핸드폰은 발신 제한표시가 걸려 있었다.

“누구 전화 되는 사람 없어?”

다른 경찰들도 모두 제 핸드폰을 들어보았다. 모두의 핸드폰은 먹통이 되어 있었다.

그때, 경찰서 유리문이 산산이 깨지며 폭도로 변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파출소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폭도들은 경찰들이 경찰봉이나 권총을 빼어 들기도 전에 그들을 둘러싸고 마구 폭행하기 시작했다.

파출소장은 복부 서너 곳을 칼에 찔린 채 책상 아래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다른 경찰들도 둔기에 맞거나 칼에 찔려 모두 빈사 상태였다.

“야, 잠깐! 여기 봐봐! 여자가 있다!”

폭도들은 경출 중 여경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20대 중반 즈음 된 여경은 폭도들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얻어맞아 팔을 심하게 다친 채 쓰러져 있었다.

“#@$%&*@#!”

폭도들은 자기네 나라말로 무어라 지껄였다. 그러더니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여경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놔! 놔, 이 새끼들아!”

여경이 발버둥 치며 저항하자 폭도들은 그녀의 뺨을 때리고 가슴을 발로 짓밟았다. 여경의 입술이 터지고 피가 흘렀다.

폭도 십여 명이 낄낄거리며 그녀를 파출소 유치장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폭도 두 명이 양쪽에서 그녀의 팔을 붙자았다. 그러자 앞에 있던 녀석이 음탕하게 웃으며 다가와 거칠게 팬티를 벗기려 했다.

“이 개새끼야! 미친새끼들아!”

여경이 폭도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또다시 그녀에게 폭도들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폭도 중 한 명이 경찰 서랍에서 수갑을 찾아 가지고 왔다. 폭도들은 그녀의 손에 수갑을 채워 유치장 창살에 매달아 버렸다.

폭도들은 사악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우성역 안으로도 폭도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다행히 우성역 안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폭도들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면 쫓아가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무자비하게 구타해댔다. 역 안의 매장으로 들어가 음식과 물건들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다.

폭도들과 함께 우성역으로 들어온 공작원들은 권총을 빼 들고 통제실로 들어갔다. 통제실에 있던 역무원은 모두 당황해 그 자리에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여기 역장 동무가 누구요?”

공작원이 평안도 말씨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물었다. 역무원들 모두 ‘이들이 빨치산이구나!’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역장님은 아직 출근 안 하셨습니다.”

“그럼, 지금 책임자는 누구요?”

“......전데요?”

공작원은 역무원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말했다.

“동무, 살고 싶으면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말대로 하라. 만에 하나 허튼 수작 부리면 동무하고 여기 있는 다른 동무들 모두 까마귀밥으로 만들어 버릴끼니, 알아서 조신하게 따라오라.”

­ 오전 8시, 경기도 우성시 덕진 선착장

“......공화국을 대표해서, 귀국이 베풀어준 호의에 감사하는 바이오. 살펴 가시오.”

북한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리부일 중장의 말은 통역병을 통해 일본 해상자위대 지휘관에게 일본어로 전달되었다. 잠수복을 입고 있는 일본 해상자위대 지휘관 역시 짧게 화답했고, 통역병이 이 말을 리부일에게 전달했다.

“양국 모두의 행운을 빌겠다고 합네다.”

리부일은 해상자위대 지휘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잠수복을 입은 해상자위대원들은 보트에 나눠 타고 다시 서해 먼바다 쪽으로 나갔다. 리부일은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지포 라이터 불을 댕겼다.

보트가 다가오자 잠수함 한 척이 해수면 위로 떠올랐다. 해상자위대원들은 재빨리 보트를 잠수함 선체에 결합하고 모두 해치 안으로 들어갔다. 잠수함은 다시 조용히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리부일의 뒤로 여덟 명의 북한 빨치산들이 수십 개의 나무 상자들을 선착장 창고 안으로 나르고 있었다. 창고의 문은 자물쇠가 뜯긴 채로 열려 있었고, 창고 옆에는 총에 맞은 한국 예비군 시신 두 구가 나뒹굴고 있었다.

빨치산들은 창고 안에서 신속히 나무 상자들을 해체했다. 그 안에는 각종 개인화기와 탄약, 폭약, 수류탄들이 있었다.

일본 해상자위대가 잠수함으로 이곳 우성시에 대량의 무기와 탄약들은 물론, 북한 빨치산들까지 수송해 준 것이었다.

“야, 일없이 잘 돌아가고 있네?”

리부일의 물음에, 그의 뒤에 서 있던 참모가 대답했다.

“남조선 군경들은 해외 프롤레타리아(외국인 노동자)들을 막느라 소수 인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내 쪽으로 이동 중이라 합니다. 45호실 공작원들이 해외 프롤레타리아들을 이끌고 있으니 거긴 일 없을 겁니다. 나머지 공화국 전사들은 모두 집결 지점에 도착 완료했습니다.”

“다른 지역에 있는 남조선 간나들이 아직 눈치 챈 건 아니 갔지?”

“공작원들이 이미 새벽부터 민간 통신이고 군 통신이고 모두 차단해 놓았습니다. 아직 우리에게 시간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리부일은 담배를 입에 문 채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의 왼쪽 손목의 은빛 롤렉스 서브마리너가 8시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외곽에 대기 중인 공화국 전사들에게, 09시 30분부로 작전 시작하라 전달하라우.”

리부일은 담배를 입에 문 채 천천히 선착장 밖으로 걸어갔다. 빨치산들은 선착장 앞에 주차한 검정색 승합차 트렁크에 무기들과 탄약들은 옮겨 싣기 시작했다.

­ 오전 8시, 경기도 우성시 우성역 인근 거리

거리로 나선 폭도들은 거리의 상점들을 무차별적으로 부수고 약탈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상점에 불을 지르는 자도 있었다.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하늘 위로 피어올랐다. 폭도들의 함성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우성역 근처 도로에 배치된 예비군들이 폭도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폭동에 놀라 진지 위에 놓인 TA 312 전화기를 들고 신호를 돌렸다. 하지만 지휘통제실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뭐야, 안 받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쏠까?”

“아, 아니, 아직.”

예비군 한 명이 다가오는 폭도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소리 질렀다.

“스탑! 스탑! 돈 무브! 유 윌 비 슛! 돈 무브!”

하지만 총을 든 군인을 본 폭도들은 더 흥분하기 시작했다. 폭도들은 군인들을 향해 보도블록을 깨서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보도블록 조각들이 진지 안에 까지 날아 들어왔다.

“에이, 씨발! 쏘자!”

방탄모에 보도블록 조각을 얻어맞은 예비군들이 폭도들을 향해 발포했다. 순식간에 서너 명의 폭도들이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총소리가 나고 폭도들이 흩어지는가 싶더니, 곧장 다른 무리의 폭도들이 예비군이 있는 방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림잡아도 2백여 명이 넘어 보였다. 예비군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탄환이 날아와 진지에 박혔다. 폭도들이 파출소에서 경찰 권총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겁에 질린 예비군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폭도들이 사방으로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런, 씨발......”

예비군 중 한 명이 갑자기 세열 수류탄을 꺼내 들었다.

“내가 오늘 죽더라도, 저 새끼들 100명은 죽이고 간다!”

예비군이 던진 수류탄이 떵! 하고 지축을 울리며 폭발했다. 잠시 연기가 자욱하더니 이내 걷히고, 길바닥 위에 나뒹굴고 있는 십 수 명의 조각난 몸뚱이들이 드러났다.

예비군들은 사방으로 폭도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수류탄들이 연달아 폭발하고, 피와 살점들이 도로 위에 흩뿌려졌다. 폭도들도 겁을 먹었는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퍽!

그때 예비군 중 한 명이 가슴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또 한 번의 총성이 울리고, 나머지 예비군도 목덜미를 부여잡고 진지 위에 널브러졌다.

어느 틈엔가 상가 건물 위로 올라간 공작원 한 명이 SVK­12 저격소총으로 예비군들을 처리해 버린 것이다.

예비군들이 쓰러지자 분노한 폭도들이 그들의 시신에 달려들었다. 그들은 중국 식칼과 손도끼로 시신의 머리를 자르고 팔다리를 자르고, 내장을 꺼내어 길바닥에 집어 던졌다. 손과 얼굴에 온통 시뻘건 피를 뒤집어쓰고 시신을 훼손하는 모습은, 마치 악귀와도 같았다.

수백여명의 폭도들은 자신들이 일하던 공장을 점거하겠다며 산업단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중 누군가가 이렇게 외쳤다.

“사장 죽이러 가자!”

“더러운 사장 죽이러 가자! 그놈 집으로 가자!”

자기가 일하던 공장의 사장이 집 주소를 알고 있던 폭도들이 일부 무리에서 나와 거주지 방향으로 향했다. 그들도 가는 곳 마다 상가를 부수고 물건들을 훔치며 이동하고 있었다.

우성역을 장악한 공작원들은 다시 광장을 나왔다.

광장 앞 파출소에 폭도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공작원들은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쪽으로 이동했다.

파출소 안에 들어가자 폭도들이 파출소 의자와 책상에 걸터앉아 각자 제 나라 말로 뭐라 뭐라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책상 아래에는 죽은 경찰들의 시신이 누워 있었다.

폭도들 십여 명이 파출소 안쪽 유치장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들 대부분 모두 홀딱 옷을 벗은 채 낄낄거리고 있었다.

파키스탄 남자 한 명이 유치장 입구에 서서 온몸에 땀을 흘린 채 바지를 주섬주섬 주워 입고 있었다. 공작원들은 그들에게서 나는 땀 냄새가 역겹다고 느꼈다. 파키스탄 남자는 옷을 추스르고 유치장 밖으로 나왔다. 그는 공작원들을 보고 실실 웃어댔다.

유치장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제야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유치장 창살에 양손에 수갑을 찬 여자가 발가벗겨진 채 매달려 있었다. 그녀의 등 뒤로, 덩치 큰 몽골인 남자가 자국 말로 무어라 소리 지르고 손바닥으로 여자의 엉덩이를 계속 때리면서 앞뒤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다 공작원들이 들어온 것을 보고는 여자의 머리채를 거칠게 뒤로 잡아 당겼다. 여자의 머리는 흉하게 뒤엉켜 있었고, 얼굴과 몸 여기저기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다리 사이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여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이를 악물고 있었다. 몽골 남자는 여자의 젖가슴을 두 손으로 꽉 움켜잡으며 공작원들을 향해 이거 보라는 듯 혀를 날름 거렸다. 여자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세어 나왔다.

“남조선 괴뢰 보안원(경찰)입네다.”

공작원 한명이 말했다.

공작원 조장은 잠시 이들을 바라보다가 뒤돌아서며 말했다.

“그냥 다들 하게 두라. 우린 다음 일을 하러 간다.”

공작원들이 파출소를 나간 이후에도, 폭도들의 윤간은 계속 되었다. 파출소 너머로, 남자들의 웃음소리와 여자의 울부짖는 비명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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