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2027년 7월 1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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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학교
역시 여름이라 그런지 밤낮으로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컨테이너로 된 기숙사는 한낮이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웠고, 밤에는 모기들로 극성이었다.
아이들은 낮이면 더위를 피해 학교 안에 교실로 도망갔다. 다행히 교실마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거나 개인 공부를 했다.
아직 교육부에서 학사 일정이 정해지지 않아, 언제 개학하고 다시 수업이 시작되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다만, 전쟁 때문에 일찍 방학을 시작했으니 8월 초 즈음에 일찍 개학하지 않을까, 다들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다.
이제 이곳에 모인 전쟁고아 아이들 모두 성부 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다. 학교 측에서는 기존의 학생들과는 분리해서 반을 따로 편성하겠다고 아이들을 안심시켰지만, 모두들 혹시라도 자신이 학교 폭력에 휘말리지 않을까, 성부고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몇몇 아이들은 개학 전에 전쟁이 끝난다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록도 사실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다만, 유민의 존재가 계속 결심을 망설이게 했다.
이날 아침, 영록은 배식 순서에 따라 태하와 함께 식당으로 내려갔다. 영록은 아침에 일어나 아직 머리를 감지 않고 나온 탓에 부스스하고 여기저기 뻗친 상태 그대로였다.
배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동안, 몇몇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너 핸드폰 돼? 오늘 아침부터 내 핸드폰이 안 터지고 있어.”
“응, 나도 발신 제한이라고 뜨더라고. 왜, 전에도 잠깐 이런 적 있었잖아? 전쟁 중이라 어디 기지국에 이상이라도 생겼나 보지.”
그러고보니 영록의 핸드폰도 오늘 아침부터 먹통이었다. 그래서 기숙사 방에 핸드폰을 두고 나왔다. 조금 있으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아침 메뉴는 흰 쌀밥과 된장국, 돈육 조림과 배추김치, 견과류 볶음과 나물 무침이었다. 후식으로 요구르트도 나왔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영록이 선호하는 메뉴들도 아니었다.
국을 한 숟갈 떠 입으로 가져가려 할 때, 누군가 자신의 등을 찰싹 때리며 이름을 불렀다.
“야, 지영록!”
역시 유민이었다. 덕분에 숟가락으로 뜬 국물이 얼굴에 튀었다. 태하가 키득거리며 테이블 위에 티슈 상자에서 티슈를 뽑아 영록에게 건네주었다.
“어, 잘 잤어?”
영록은 태하가 건네준 티슈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유민은 파란색 돌핀 팬츠에 흰색 반팔티를 입고 있었다. 급히 나왔는지, 평소처럼 머리도 묶지 않고 긴 머리를 그냥 풀고 있었다. 얼굴도 세수만 한 채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것 같은데도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는 밝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태하도 유민의 모습에 반했는지 잠시 넋을 놓고 쳐다보는 중이었다.
무슨 일인지, 유민은 무척 상기되어 있었다. 그녀는 영록의 옆자리에 앉아 테이블 위에 광고지 한 장을 올려놓았다.
“이거 봐! 내가 계속 방법을 찾다 보면 결국 찾을 수 있다고 그랬지? 내 말이 맞지?”
유민은 테이블을 탁, 치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영록은 유민이 가지고 온 광고지에 쓰인 글들을 읽어 보았다.
“......애국 청년 십자군 모집......?”
“그래! 전국에서 빨치산 하고 싸우느라 우성시를 지킬 사람 수가 너무 부족해져서, 우리 같은 학생들도 군인으로 받아준대! 또, 여기 본부가 이 학교 가까이 있는 교회래! 이따 밥 다 먹으면 바로 나랑 같이 가보자! 알았지?”
유민은 무척 들떠 있었다. 영록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유민은 영록의 어깨를 툭툭치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그럼 기숙사 가서 씻고 옷 갈아입고 농구장 앞에서 기다릴 테니까, 너도 밥 먹으면 바로 나갈 준비하고 농구장으로 와. 그럼 나 먼저 간다~”
영록은 유민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유민아, 밥은? 너 아침 안 먹어?”
“응~ 안 먹어도 돼~!”
유민은 폴짝폴짝 뛰며 식당 밖으로 나갔다. 영록은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쟤 따라갈 거야?”
태하가 걱정스레 물었다.
“응...... 가야지...... 일단 기숙사 가기 전에 교무실 들려서 당직 쌤한테 먼저 말하고 가야겠다.”
“애국 청년 십자군......? 이게 대체 뭐라고 여기를 가겠다는 거야?”
“유민이는 부모님 원수 갚으려고 지금 당장 군대에 들어가겠다는 애야. 근데 아직 어려서 당연히 군대에 못 들어가니까, 이런 곳에라도 들어가고 싶어 하는 거지.”
태하는 유민이 가지고 온 광고지를 집어 들고 유심히 읽어 보았다.
“...... 무슨, 교회에서 옛날 학도병처럼 학생들 모아서 공산당이랑 싸우러 나가자는 얘기네. 근데, 이거 영 느낌이 안 좋은데?
“응? 뭐가 느낌이 안 좋아?”
태하는 광고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무 비정상적이잖아. 무슨 교회가 학생들한테 무기를 주고 싸우러 나가래?”
“왜? 옛날에 1차 한국전쟁 때에도 학도병 같은 것도 있었고, 임진왜란 때에는 스님들도 나가서 싸웠다는데, 뭐 교회라고 하지 말라는 법 있겠어?”
“야, 지금이 조선시대냐, 구한말이냐? 지금 같은 시기에 무슨 중세 십자군 전쟁도 아니고 교회가 사람들을 모아 무기 나눠주고 군대를 만들어? 그것도 어린 학생들 데리고?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리고 여기 우성 제일 교회 유광수 목사라는 사람, TV에서도 많이 나오는 문제 많다는 그 사람이잖아. 나도 교회 다녀서 아는데, 여기 사이비 이단에 정치판에 막 끼어드는 이상한 교회래. 그러니까 너도 유민이 쟤 따라 무작정 거기 들어가지 말고, 먼저 잘 알아보고 생각해 봐.”
태하의 말에 영록은 테이블 위의 광고지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사실, 영록은 시사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유광수 목사가 뭐 하는 사람인지, 우성 제일 교회가 어떤 곳인지 들어본 게 없었다. 그래도 태하가 이렇게 말하니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영록은 밥숟갈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지만 아무리 씹어도 영 먹는 게 먹는 거 같지 않았다.
영록은 교무실에 들려 외출 허락은 받은 후 기숙사로 돌아와 나갈 준비를 했다.
역시, 태하가 뭐라고 그래도 유민과 같이 나가야만 할 거 같았다.
옷을 갈아입는 영록을 보며, 태하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거기 가서 아무 데나 도장 찍거나 사인하지 마. 꼭 그 전에 잘 알아보고 잘 생각해서 결정해.”
이 말은 엄마가 입버릇처럼 자주 하던 말과 비슷한 말이었다. 영록은 놀라 잠깐 태하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농구장 앞에는 유민이 벌써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유민은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이제 평소처럼 포니테일로 머리를 위로 올려 묶은 상태였다. 청바지를 입어서 그런지 유민의 길고 날씬한 다리가 더욱 돋보였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그녀의 얼굴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워 보였다.
“왜 이렇게 늦었어? 빨리 가자!”
유민은 영록의 손을 붙잡고 교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오전 8시, 경기도 우성시 시내 인근
유민과 영록은 광고지에 적혀 있는 ‘우성 제일 교회’를 찾아 걷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현지인이 아니고서야, 광고지에 그려진 약도만 보고는 찾아가기 힘들었다. 게다가 핸드폰도 먹통이라 인터넷 지도로 길 찾기 서비스를 볼 수도 없었다.
유민의 얼굴은 짜증으로 가득 차 보였다.
“아~ 이거 교회 찾아가기 너무 힘드네. 이거 어떡하지?”
“교회면 십자가가 높이 솟아 있지 않을까? 그거 찾아 걸어 볼까?”
“음...... 우리 앞에 보이는 십자가만 다섯 개는 되어 보이는데......? 서울도 그렇고 여기 우성시도 그렇고, 어디 가나 교회는 엄청 많이 보이네?”
두 사람은 일단 큰 도로 쪽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큰 도로 주변에는 자주 볼 수 있었던 군인들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영록은 불안한 듯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군인들 다 어디로 간 거지?”
“뭐, 아침 먹을 시간이니까, 밥 먹으러 들어간 모양이지.”
유민은 대수롭지 않은 듯,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5분쯤 걸었을 때, 저 멀리 시내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씩 웅성거리는 듯한 사람들의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우리 말 같지가 않았다.
두 사람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유민아, 이 소리 들려?”
유민도 약간 긴장한 듯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응, 들려, 무슨 시위하는 소리 같지 않아? 오늘 뭐 시내에서 시위 같은 거 하나?”
“시위? 전쟁 중에?”
두 사람은 다시 조심스레 교회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어느 정도 걸어갔을 때쯤, 중년의 남자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뛰어오고 있었다. 그는 아이들을 보고는 손을 휘휘 저으며 다급히 소리 질렀다.
“집으로 도망가! 얼른! 폭동이야! 시내에 폭동이 일어났어!”
유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남자에게 다급히 물었다.
“폭동이요? 아저씨, 무슨 폭동이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켰어! 그놈들이 어디서 구했는지 총이랑 칼이랑 무기를 들고 시청하고 관공서도 쳐들어가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막 공격하고 있어! 너희들도 빨리 집으로 도망가!”
남자는 이렇게 소리치고는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그때 저 멀리 수십 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멀리서 봐도 그들이 동남아인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들 손에 쇠파이프와 각목 같은 것들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제 나라말로 무어라 떠들고는, 길가에 있는 어느 상점의 유리창을 마구 깨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길가에 주차된 차량의 유리를 깨고 차 안의 물건을 훔쳐가기도 했다.
상가 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찢어지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꺄아악! 이러지 마세요!”
상가 입구 밖으로 여자 한 명이 다급히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옷은 갈가리 찢겨 있었다. 찢어진 옷 사이로 하얀색 팬티와 브레지어가 고스란히 드라났다.
서너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녀를 쫓아와 붙들었다. 그들은 도망치려는 여자를 양쪽에서 붙잡고 건물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들은 킬킬거리고 웃고 있었다.
여자는 울부짖으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영록은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유민이 영록의 손을 꽉 붙들었다.
“야, 지영록, 일단 뛰어!”
유민은 영록의 손을 붙들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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