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10화 (10/217)

〈 10화 〉 2027년 7월 1일 (1)

* * *

­ 오전 2시, 경기도 우성시 덕진 선착장

“하하하, 이 봐 정수씨, 계속 그렇게 입고 다니다가 진짜 빨치산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니까?”

예비군 학진은 선착장 진지 근무에 함께 투입된 상근예비역 출신 예비군 정수를 놀려대고 있었다. 정수의 전투복은 상의는 디지털 픽셀 무늬인데, 하의는 옛날 얼룩무늬였다. 학진은 위아래 다른 전투복을 입은 정수를 계속 놀려댔다.

“누가 보면 빨치산들이 한국군 흉내 내려고 어디서 급하게 훔쳐 입고 나온 것처럼 보이잖아. 이따가 근무 교대하고 들어갈 때 아군 총 맞지 않게 조심하라구.”

학진이 계속 놀리자, 정수는 억울하다는 듯 대꾸했다.

“전역 후에 살이 너무 쪄서 가지고 있던 전투복이 안 맞는데 어떡합니까? 지금 당장 전투복 피복 구매도 안 된다고 그러지, 그래서 주민 센터 예비군 동대에 남아 있는 옛날 전투복 빌려 입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구요. 며칠 이따부터 피복 구매 신청받는다고 하니까, 그때 신형 호랑이 무늬 전투복 위아래로 한 벌 싹 다시 살 거예요. 야상에 깔깔이도 하나씩 살 거구요.”

“정수씨한테 맞는 사이즈가 있으려나? 4XL 도 안 맞을 거 같은데? 이러다 미군 전투복 사 입어야 하는 거 아냐?”

학진은 계속 정수를 놀려대며 낄낄거렸다. 정수는 X반도 탄띠를 최대한으로 늘려도 벨트가 결합되지 않을 만큼 배가 나와 있었다. 정수는 삐진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양강도, 자강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이렇게 동북 4도에 고립된 북한군은 산악 지역을 요새화하며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군은 동북 4도를 완전히 포위하는 한편, 동해안의 원산 ­ 함흥 ­ 북청 등 그나마 남아 있는 평야 지대를 서서히 장악해 가며 북한군을 개마고원으로 내몰았다.

험준한 산악 지대에 고립된 북한군들은 식량과 물자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그들은 결국 친중파 세력들을 이용해 중국에 도움을 청하려 했다.

하지만 북한의 마지막 희망은 산산이 깨어졌다. 양강도 일대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려고 했던 북한 사절들은 압록강 국경지대를 지키고 있던 중국 인민해방군들에 의해 가로막혔다. 이미 한국 정부와 밀약을 맺고 있던 중국에게, 북한은 더이상 동맹국이 아니었다.

북한군을 포위한 한국군들은 ‘경제적 이유’를 들어 최신예 전력들을 안전한 후방으로 돌려 정비 및 휴식을 부여하고, 구형 무기와 전력들을 최전선으로 올려 배치했다. 구형 105mm 견인포, 155mm 견인포 등 이미 퇴역시켜도 될 만큼 오래된 무기들이 동북 4도 포위 라인에 배치되었다.

한국은 6.25 한국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70여 년간 단 한시도 쉬지 않고 전쟁에 대비해 왔다. 그중에서도 한반도의 지형적인 특성으로 인해 포병 화력 증강에 엄청나게 투자해 왔는데, 그 때문에 일부 사람들이 농담 삼아 한국 국방부를 ‘포방부’라 부를 만큼, 전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힐 만큼 강력한 포병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신형 포병 전력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견인포 등 구형 포병 전력은 계륵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걸 계속 쓰자니 성능 좋은 신형 장비들이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었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각 부대 창고에는 지금까지 쌓아온 장비들과 포탄들이 처리가 곤란할 정도로 많이 남아 있었다.

이제 그 70년 가까이 쌓여 있던 구형 포병 전력들이 동북4도의 북한군을 에워싸고 밤낮 가리지 않고 쉼 없이 불을 뿜었다. 이번 기회에 아예 남김없이 다 쓰고 버리자, 하는 심산인 듯 했다.

이를 본 어느 외신 기자는,

[한국군은 포탄으로 개마고원을 평탄화시키기로 작정한 것 같다. 매일 쉬지 않고 포격을 가하고 있다.]

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한국군의 ‘구형 포병 전력 무차별 소모 전략’은 기대 이상으로 북한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 북한군은 끊임없이 날아오는 한국군의 구형 포탄들 때문에 진지를 구축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결국 북한군들은 눈물을 머금고 개마고원 깊숙한 곳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북한군 내부에서도

“이러다 조선인민군 모두 백두산 천지에 입수해 자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고, 한탄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전세가 한국 측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가운데,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가 있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성운이 단 한 번도 공식 석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종적을 감추고 있다는 점이다.

김성운은 한국군이 북진을 시작했을 무렵, 평양의 호위사령부 병력들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전 세계 모든 정보기관 중 그 어느 곳도 김성운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각국 언론들은 2차 한국전쟁에서 한국이 북한을 손쉽게 장악하고 있는 동안,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성운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기에 이 전쟁에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가, 연일 숱한 가설들을 내놓고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개전 이후 북한에서도 김성운에 대한 언급은 단 한번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북한의 모든 공식적인 발표는 조선노동당, 또는 인민무력상 류광택 차수의 이름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경애하는 지도자, 김성운 동지’라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로인해 많은 전문가들은 이미 김성운이 전쟁 중 사망한 것이 아니냐고 관측하기도 했다.

김성운이 있고 없고와는 상관없이, 북한군 혹은, 북한군 잔존 세력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한반도 각지에서 끊임없이 한국군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들은 한국에 숨어 있던 고정간첩 및 북한 추종 세력들의 지원을 받으며 게릴라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언론에서는 이들을 일컬어 ‘빨치산(Partizan)’이라 부르고 있었다. 1950년대 1차 한국전쟁 이후, 빨치산이란 이름이 한국사에 다시 등장했다.

그런데 국군정보사에서는 빨치산을 지원하는 세력들이 단순히 국내 고정간첩이나 좌경 용공 세력만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현재 빨치산들의 활동 내용을 분석하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무기나 장비, 식량들을 체계적으로 보급받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보안 수준을 가진 나라였다. 그 어떤 나라보다도 밀반입/밀반출이 어려운 곳이다. 특히, 무기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빨치산들은 북한에서 가지고 온 듯한 AK 계열 개인화기 등은 물론이고, 도대체 어디서 난 건지 M­4 카빈이나 H&K HK416 등의 무기도 사용하고 있었다. 지난 울진 한울 원자력 본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북한에서 쓰이지 않는 5.56mm 탄들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듯 했다.

이 때문에 후방 여러 부대들에서는 혹시 누군가 5.56mm 탄 등 한국군의 무기를 몰래 반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전쟁 중에도 잦은 검열을 실시하고 있었다. 검열 결과, 우려와는 달리 한국군 내부에서 외부로 반출된 무기와 장비는 없었다.

빨치산들은 한국 내부가 아닌 외부의 어딘가로부터 물자를 공급받고 있다고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지난 한울 원자력 본부 전투에서 생포된 포로들의 증언에 따라, 빨치산들의 다음 목표가 다른 원자력 본부들이 될 것으로 판단한 한국군은 후방 병력들을 대거 전라도, 경상도 지역의 원자력 본부 쪽으로 이동시켰다. 그로 인해 많은 지역에 병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우성시도 많은 병력들이 차출되는 바람에 지금 우성시 전체에 남아 있는 인원은 현역과 예비군, 민방위를 포함해 총 150여 명 정도뿐이었다.

우성시는 동쪽으로 대도시인 상아시와 인접해 있었다. 여동 톨게이트 쪽 도로를 제외하고는 태화산 등 큰 산지와 경월천 등 하천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서쪽으로는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외부 침입을 막기엔 딱 좋은 천혜의 요새와도 같은 지형이었다.

우성시 방어를 담당하고 있는 향토사단에서는 육로를 통한 침투만을 염두에 두고 거의 모든 병력을 태화산과 여동 톨게이트 쪽 도로에 집중 배치시켜 놓고 있었다.

이로 인해 산업단지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서해안 방향에는 불과 예비군 1개 소대 병력만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학진과 정수가 바로 이곳을 지키는 예비군 소대 소속이었다.

“정수씨, 원래 산업단지 쪽에서 식당 한다고 했지? 식당 쉬고 나온 참에 운동 좀 하면서 살 좀 빼라고. 딱 좋은 기회잖아?”

학진의 계속된 놀림에 정수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살은 내가 알아서 뺄라니까 그만 좀 하세요! 지금 내가 여기 불려 나오는 바람에 어머니 혼자 힘들게 식당 일 하시게 되서 마음도 안 좋은데, 말을 뭐 그렇게 하세요?”

정수의 말에, 학진은 머쓱한 듯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문 안 닫고 식당 계속 하고 있던 거야? 손님들이 계속 있어?”

“네, 그래도 아직 산업단지 내에 돌아가는 공장들이 있어서, 손님들은 계속 와요. 근데 나 없이 어머니 혼자 주방 보랴 홀 보랴 정신없으실 텐데......”

“그랬구나...... 내가 모르고 그만...... 정수씨 미안해......”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가 학진이 건빵 바지에서 육포를 꺼내 정수에게 건넸다.

“정수씨, 이거 먹을래?”

정수는 마다않고 학진이 건넨 육포를 받아 맛있게 씹었다. 학진도 육포를 먹으며 말했다.

“전쟁 나서 거의 대부분 공장들이 문 닫았다고 들었는데, 아직 돌아가고 있는 공장들은 뭐야?”

“왜, 그 위장 방산 업체들 있잖아요? 평상시에는 그냥 일반 물품들 만들다가 전쟁나면 전쟁 물자 만드는 공장들이요. 전투복 만드는 공장도 있고, 군장, 반합, 야전삽 같은 장비 만드는 공장도 있고, 전투식량 만드는 공장도 있어요.”

“아, 그럼 우리가 받은 전투식량들이 여기서 만들어져 나오는 거야?”

“다는 아니지만, 여기서 만들어서 나오는 것들이 꽤 많을 거에요,”

학진은 수통에 든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육포를 하나 더 씹었다. 수통에서 묘하게 알코올 냄새가 났다.

“옛날 나 군대 있을 때에는 전투식량 진짜 싫어했는데, 먹으면 막 속도 더부룩하고 똥도 잘 안 나오고 그랬거든. 근데 지금 먹어보니 나쁘지 않더라구. 특히 즉석 취식형에 들어있는 소세지 볶음 있지? 그건 진짜 편의점에 파는 거랑 똑 같은 거 같아. 딱 술안주로 먹기도 괜찮고. 정수씨는 상근이라 그거 군대 있을 때 못 먹어봤지?”

“......상근도 유격 뛸 때 전투식량 다 먹어보거든요? 상근들도 훈련도 받고 행군도 다 해요. 너무 상근 출신들 무시하지 마세요.”

두 사람은 또 한동안 말없이 육포만 씹었다.

이번엔 정수가 방독면 휴대주머니 안에서 큼지막한 빅팜 소시지를 꺼내 반을 뚝 자른 다음 학진에게 건넸다. 학진은 고맙다며 소시지를 받았다.

정수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방산 업체들 빼고는 거의 모든 공장들이 휴업하고 있긴 해요. 뭐, 어차피 전쟁 중이니까 그러려니 해야겠지만, 식당에 오는 손님은 전보다 1/3 정도로 줄었다고 해요.”

“그렇지, 전쟁 때문에 거의 다 군으로 동원되는 판에 공장에서 일할 사람들도 부족하겠지.”

“그도 그런데, 일단 물건도 안 팔리고 유통도 안 되니까, 전쟁 중에 쓰이지 않는 물건들을 계속 찍어놓고 창고에 쟁여 놓을 수만은 없잖아요. 그러니까 공장을 안 돌리는거죠. 그래서 지금 우성시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주 난리에요. 공장에서 무급 휴직하고 있으라고 전달받은 사람들은 그나마 나은 거래요.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냥 전쟁 때문에 당분간 휴업한다고 정리 해고 당해버렸대요. 어머니 식당 찾아오는 사람들 말로는, 공장에서 짤린 외국인 노동자들이 갑자기 폭동이라도 일으키는 거 아닌가하고 걱정하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구요.”

“아, 그래서 낮에 돌아다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보였던 거구나......”

정수는 껍데기에 뭍은 빅팜 조각까지 긁어먹고는, 방독면 휴대주머니로 또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찾았다. 그는 콜라 캔 하나를 찾아 꺼내들고는 주욱 들이켰다. 학진은 ‘그 안에 도대체 음식이 얼마나 들어 있는 거야......?’ 하는 눈빛으로 정수를 바라보았다.

콜라를 원샷한 정수가 말을 이었다.

“근데 이 전쟁...... 금방 끝날 거 같지 않죠?”

학진은 소시지를 한입 베어 먹고는 수통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학진의 입에서 슬슬 소주 냄새가 올라왔다.

“일단 우리 군들이 북한군들을 싹 다 밀어버리고 있는 거 같긴 한데, 후방의 빨치산들이 문제가 되는 거 같아. 그 새끼들이 남쪽에서 무언가 꾸미고 있나 봐. 그러니까 우리 시에서도 민방위들까지 차출 되서 남쪽으로 내려갔잖아.”

“원래 게릴라들이 더 상대하기 힘들다고 하잖아요. 이라크 때에도 그렇고, 아프가니스탄 때에도 그렇고, 천조국 미군도 힘들어 했는데 우리도 뭐 어쩔 수 없겠죠.”

“근데 말야, 내가 태백산맥 같은 역사 소설 좀 읽어 봐서 아는데, 옛날 6.25 때 빨치산들은 제대로 보급을 못 받아서 게릴라 활동을 할 수 없게 되니까, 모두 지리산으로 숨어들어갔다가 얼마 못가서 모조리 전멸하거든? 근데 이번 빨치산들은 뭔가 달라. 우리 군들이 여기저기서 빨치산들 잡아내도 걔네들 머릿수가 더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드는 거 같지가 않아. 또, 지금이면 가지고 온 무기랑 장비들이 다 떨어지고도 남았을 텐데, 뭐 우리나라 어딘가에 몰래 공장 만들어서 무기 찍어내고 있는 건지, 매일 여기저기서 쉬지 않고 총 쏘고 폭탄 터뜨리고 아주 그냥 난리야, 난리. 어우~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

“일본에서 우리나라 전쟁 길어질 거 같다고, 자기네들이 우리나라 원조해주겠다고 그랬는데 국회에서 거절했다면서요?”

“당연하지! 우리가 왜 쪽바리들 도움을 받아야 하냐고? 대통령하고 자유공화당이 필요하다면서 일본 원조받는 쪽으로 추진하려다 민주시민당하고 다른 야당들이 모두 반대해서 원조 안 받기로 했는데, 그건 진짜 민주시민당이 잘한 거 같아. 원래 일본 애들이 이런 거 노리고 있었던 거 아니겠어? 한반도에 전쟁 나면 자기들은 전쟁 물자 팔아먹고 경제 회생 시키는 거. 그런데 우리나라가 니네 원조 안 받는다고 하니까, 쪽바리들의 오랜 계획들이 싹 다 틀어진 거지. 지금 일본 총리나 각료들 모두 좆나 빡쳐있을껄?”

학진은 잘 되었다는 듯 낄낄 웃었다. 정수가 말했다.

“......여기 우성시에는 빨치산들이 안 들어오겠죠?”

정수가 불안한 듯 물었다. 학진은 별 걱정 다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기 뭐가 있다고 걔네들이 들어와? 군에서도 빨치산들이 남쪽에서 무언가 벌일 거 같으니까 다들 데리고 내려간 거 아냐?”

“그래도 여기 방산 업체도 있고 하니까......”

학진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방산 업체 공격할 거면 탱크 만들고 무기 만드는 공장들 있는 곳부터 공격하지, 걔들이 쪼잔하게 전투복 만들고 야삽 만들고 전투식량 만드는 공장들 부수려고 여기까지 들어오겠어? 걔네들이 식량 때문에 어딜 털려고 하면, 여기 전투식량 공장 터는 거 보다 고속도로 휴게소 터는 게 더 쉽고 개이득이야. 맛있는 게 거기 더 많은데 뭐 하러 여기까지와? 걔들 여기 올 이유 없으니까 하나도 걱정하지 마. 정수씨는 현역 안 나와서 이런 군사 상식을 너무 모른다니까.”

“그렇겠죠? 특히 우리가 있는 여기 바다 쪽으로는 절대 안 오겠죠?”

“에혀, 안 와~ 절대로 안와. 이미 북한 해군 다 전멸되었는데 걔들이 뭐타고 여기까지 와? 응? 뭐, 북한에서부터 여기까지 헤엄쳐 오겠어, 아님, 거북이를 타고 오겠어? 또, 서해안은 황해남도에서 평안북도까지 싹 다 우리나라가 다 먹었고, 동해안 라인도 거의 다 점령해 가는데, 북한 애들이 100번 죽었다 깨어나도, 바다로 여기 우성시로는 절대 못 들어와.”

정수는 불안한 듯 구형 M­60 기관총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 여기 1개 중대밖에 안 남았다면서요? 무슨 일 있으면 100여 명으로 해결이 될까요?”

“육지 쪽에 우리 병력들이 쫙 깔려 있잖아. 총소리만 나면 주변 도시에 있는 부대들이 도와주러 올 거니까 괜찮을 거야. 아, 그리고 그거 들었어? 우성 제일 교회 유광수 목사가 나라와 우성시를 지키자고 어린 애들 모아서 무슨 단체 같은 거 만들었다는데?”

“애국 청년 십자군인가 그거요? 돌아다니다가 벽보 붙여져 있는 거 봤어요.”

학진은 침을 퉤, 하고 진지 밖으로 멀리 뱉어버리며 말했다.

“유광수, 그 새끼가 무슨 목사야? 정수씨도 그거 알지? 그 새끼, 목사 주제에 정치하겠다면서 여당 자유공화당에 붙어서 아주 그냥 지랄을 하고 다니고, 다른 당 사람들은 다 빨갱이라고 욕하고 손가락질하고, 집회 때 교인들 이용해서 경찰들하고 지나가는 시민들까지 폭행했던 거?”

“알죠. 그래서 다른 기독교인들은 그 사람보고 이단 사이비 정치 목사라면서 다 싫어하잖아요.”

“그 목사 같지도 않은 새끼가 이번엔 옛날 서북청년단 운운하면서 애들 긁어모아 무기까지 쥐여 주고 무슨 군대처럼 조직 하나 만들었더라구.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사병 집단이 말이나 돼? 그런데 지금 대통령하고 자유공화당은 유광수 그 새끼 보고 애국심 넘치는 사람이라고, 아주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있더만.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래도, 우리 시 지키는 인원이 늘어나면 좋은 거 아니에요?”

학진은 수통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정수의 말에 답했다.

“그 애국 청년 십자군인가 뭔가 하는 것들, 지들 말로는 서북청년단의 유지를 잇는다잖아? 정수씨 서북청년단이 뭔지 알아? 우리나라 독립한 후 부터 6.25때까지, 공산당 때려잡는다면서 죄없는 일반 국민들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그런 개새끼들이야. 근데, 지금 유광수 그 미친 새끼가 그런 서북청년단의 유지를 잇는다고 단체를 만든 건데, 그런 새끼들 모여 봤자 내 생각엔 민폐나 안 끼치면 다행이지, 단 1도 도움 될 만한 족속들은 아닐 거야.”

학진은 남아 있던 육포를 꺼내 잘근잘근 씹었다.

“그런데 정수씨, 거기 애국 청년 십자군에 자금 댄 새끼가 누군지 알아? 여기 우성시 출신 국회의원 마두원이야.”

“마두원이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되었다고 말 많았던 그 사람이오? 그 사람, 유광수가 하는 교회에 장로라잖아요?”

“마두원 그 새끼, 원래 서울에서 알아주는 조폭이었어. 지금 대통령하고 자유공화당 하수인 노릇하면서 이런저런 지저분한 일들 다 처리해주면서 컸다고 하더라고. 지금 마두원이 가지고 있는 사업체들이 모두 자유공화당 일 도와주면서 불려 나간 것들이라 하더만. 근데 그 새끼가 정치인들 똥꼬 닦아주고 다니다 보니까 지도 정치 욕심이 생겼던 거지. 그래서 그 새끼랑 마찬가지로 정치인들 빨고 다니던 유광수랑 둘이 같이 샤바샤바 열심히 한 덕에 비례대표로 국회까지 들어간 거구.”

정수가 진지 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이번에 마두원이 자기가 세운 학교에 전쟁고아 애들 데려다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후원해준다고 하더라구요. 다 국비가 아니라 자기 개인 돈으로 지원하는 거라던데요?”

“그게 다 마두원이 대통령한테 잘 보이고 자유공화당에 잘 보이고, 그래서 계속 자기 잘 봐달라고 알랑거리면서 수 쓰는 거라니까? 전쟁고아 관리같이 나라에서 알아서 해도 될 일을 왜 지가 나서서 하려고 하겠어? 걔가 인도주의자, 박애주의자라서? 막, 휴머니티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넘쳐나고 그래서? 그거 다 거짓말인 거 알지? 다 노리는 게 있으니까 그러는 거야. 다음 총선 때에도 비례대표 공천받는 거라던지, 아니면 다음 내각에 감투 하나 차지하려고 그러던지. 그런 목표가 없으면, 그 깡패 새끼가 절대 그런 짓 안 하지. 만약에 마두원이 다음 총선 때 공천 안 되거나 내각에도 못 들어가잖아? 그럼 그 시간부로 전쟁고아 애들 죄다 쫓아낼걸? 그건 내가 장담할 수 있어.”

“그러게요. 게다가 왜 전쟁고아 애들을 모아놓은 곳이 하필이면 성부 학교인지 모르겠어요.”

“진짜, 불쌍한 전쟁고아들을 왜 그런 꼴통 학교에 모아 놓는지...... 진짜 거기서 애들 인성 다 버려서 나오는 거 아닌가 몰라.”

그때, 선착장 반대쪽에서 사람들 발소리가 들려왔다. 학진은 슬슬 장비를 챙기며 말했다.

“벌써 교대 온 건 아니고...... 소대장이 순찰 온 거 같은데? 정수씨가 수하 해줘.”

두 사람은 진지에 대충 몸을 기대고 섰다. 상대가 순찰 나온 소대장이라 생각해서 다가오는 상대에게 지향 사격 자세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정수가 작은 목소리로 수하를 했다.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진주?”

“......”

어둠 속에서 다가오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정수는 순찰자가 암구어를 잊어버렸다고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수하를 했다.

“......진주?”

“......”

어둠 속의 사람들이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정수는 깜짝 놀라 진지 위에 올려놓았던 M­60 기관총의 총구를 급히 반대 방향으로 돌리며 소리쳤다.

“정지! 움직이면 쏜......”

정수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퍽, 하고 망치로 나무를 때리는 듯 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정수의 고개가 격하게 뒤로 젖혀지며 그 뚱뚱한 몸이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정수의 이마에서는 붉은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학진은 소스라치게 자신의 총을 집어 들려 했다.

퍽, 퍼버벅!

소음기가 달린 총기의 발사음이 들리고, 학진은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진지에 기대어 쓰러졌다. 아직 숨이 붙어 있던 학진은 움직이려고 바둥거리고 있었지만, 몸은 더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학진과 정수를 쓰러뜨린 무장 괴한 중 한 명이 진지 쪽으로 다가왔다. 학진은 그들을 보고 무어라 말하려는지 입술을 계속 움찔거리고 있었다.

무장 괴한이 학진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학진의 몸은 잠시 경련을 일으키다가 이내 차갑게 식어갔다.

무장 괴한들은 주변에 누가 더 있지 않은지 잠시 선착장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귀에 걸려 있는 인이어로 어디론가 무전을 했다.

“선착장 클리어, 상륙해도 좋다.”

그들은 일본어로 말하고 있었다.

잠시 후 선착장 멀리 바다 한가운데에서 잠수함 한 대가 해수면 위로 부상했다. 그리고 잠수함에서 십여 명의 인원들이 보트에 나눠 타고 선착장 쪽으로 접근해 오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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