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2027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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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3시, 경상북도 울진군 한울 원자력 본부
50보병사단 121연대 1대대는 한울 원자력 본부 주변에 총 3선으로 방어 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외곽 1선과 2선은 예비군들이 주축이 된 중대가, 최후방 3선에는 기간병들이 주축이 된 중대와 81mm 박격포를 갖춘 화기 중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국가 주요시설을 방어하는 부대임에도 불구하고, 군 기강은 다소 해이한 편이었다. 다수의 예비군 때문이었다. 그들 대부분 진지에서 개인화기를 내려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북한군 특수부대는 서울이나 대도시 위주로 공격하고 있는데, 설마 여기는 안 오겠지?’
하고 방심한 채, 제대로 경계도 서지 않고 잠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이를 알았던 것일까, 새벽어둠 속에서 한울 원자력 본부를 향해 70여 명의 무장 괴한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 모두 한국군 구형 디지털 픽셀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무기도 한국군이 사용하고 있는 K2 소총은 물론, M4 카빈, H&K HK416 등을 들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북한 특수부대원들처럼 보이지 않았다.
꽝~!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침투하던 무장 괴한 중 한 명이 인계철선을 건드리면서 대인지뢰가 폭발했다. 한국군이 원자력 본부 접근로 상에 지뢰지대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기도가 노출된 무장 괴한들은 한국군이 지키는 방어선을 강습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지뢰지대에서 몇 발의 지뢰가 더 폭발했다. 대여섯 명의 무장 괴한들이 지뢰에 폭사하거나 다리 한쪽이 날아갔지만, 모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뭐, 뭐냐? 무슨 소리야?”
연이어 지뢰들이 터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장병들은 부랴부랴 곁에 둔 개인화기를 집어 들고 대응하려 했다. 하지만 짙은 어둠 속에 적들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애꿎은 탄만 허공을 향해 난사하기 일쑤였다.
야간 전투의 필수품인 야간투시경은 소대마다 2대씩 보급되어 있었다. 야간투시경을 가진 기간병들이 적을 확인하고 1선 방어선의 병력들에게 무전으로 적의 위치를 전파했다.
그 순간, 선두로 철조망 등 장애물 지대까지 통과한 무장 괴한들이 한국군 1선 방어선으로 돌입했다.
한국군들과는 달리, 무장 괴한들은 모두 야간투시경은 물론 개인화기에 야간 표적지시기까지 장착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군을 손쉽게 제압하기 시작했다.
탕, 타당, 타다당!
“으아아악~!”
어둠 속에서 총소리와 비명이 난무했다.
1선에서 사상자가 속출하자 예비군들이 먼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2선을 지키던 예비군들도 덩달아 진지를 버리고 도망쳤다. 그중에는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오발 사고를 내고 어이없이 자기 총에 맞아 죽은 이도 있었다.
1, 2선 방어선을 순식간에 제압한 무장 괴한들은 일제히 흩어져서 한국군 최후 방어선으로 달려갔다. 6월의 여름밤 더위에 이미 그들의 전투복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숨소리는 거칠어져 있었다.
최후의 보루인 3선에 배치된 121연대 1대대 기간병들은 1, 2선과는 달리 장교들의 지휘에 따라 견고한 화망을 구성하고 대응을 준비하고 있었다.
무장 괴한들은 예비군들이 우르르 도망가는 것을 보고는 엄폐물 하나 없는 원자력 본부 주변 개활지를 전력으로 달려 전진해왔다.
“적이 2선 방어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거리 120m!”
야간투시경으로 전방을 관측하던 기간병이 소리를 질렀다.
대대지휘소에 있던 대대장은 즉시 조명탄 사격을 지시했다.
그 즉시 화기 중대 포반이 하늘 위로 조명탄을 쏘아 올렸다.
조명탄이 하늘 위에서 사방을 황금빛으로 밝히며 내려오자 개활지 위 무장 괴한들의 형상들이 환하게 드러났다.
곧바로 어둠 속에 예광탄의 붉은 빛들이 무수히 쏟아져 날아갔다. 평상시 해안 경계에 투입되면서 한 주에도 몇 번씩 사격 훈련을 해온 121연대 1대대원들은 정확하고 침착하게 무장 괴한들을 잡아냈다.
십 수 명의 무장 괴한들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사방으로 뛰어다니다가 온몸에 총구멍이 난 채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한국군의 사격에 피해가 계속 늘어나자 그들은 결국 전진을 포기하고 숨을 곳을 찾아 엎드려 대응 사격을 펼쳤다.
3선 방어선 일대에서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무장 괴한들이 한국군 진지로 수류탄을 던지며 공격하자, 한국군들은 K201로 유탄을 있는 대로 쏟아부으며 방어선을 고수했다.
교전 중 갑자기 원자로가 있는 건물에 불길이 치솟았다. 어떻게 불이 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장병들은 화재로 인해 원자로가 잘못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오전 4시, 경상북도 울진군 한울 원자력 본부
한울 원자력 본부가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은 곧장 50사단 본부까지 전해졌다. 사단장은 곧바로 사간 기동대대에 출동 명령을 하달했다.
비상 출동 명령을 접수받은 기동대대장 권민택 중령은 단독 군장을 한 채 생활관에서 취침 중이 전 기동대대원들을 기상시켰다.
에에에에에에엥~!
[비상 상황 발생! 비상 상황 발생! 전 대대원 기상! 전 대대원 기상!]
영내에 사이렌 소리와 방송이 쉼 없이 반복되었다. 이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기동대대원들은 옆에 놓은 자신의 총과 방탄모를 집어 들고 차량이 대기 중인 연병장으로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병력들이 차량에 탑승하자 장교들이 인원 점검을 실시했다. 권민택 중령은 먼저 출동 준비가 완료된 제대의 차량부터 한울 원자력 본부로 출발시켰다.
기동대대원들을 태운 군용 트럭들이 목표지점에 다가가자, 어둠 속 저 멀리 원자로 건물에 시뻘건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는 것이 보였다. 요란한 총소리와 폭발음도 쉬지 않고 들려왔다.
군용트럭 위에서 실탄이 든 탄창과 수류탄을 지급 받던 기동대대원들은 그 광경을 보고는 받아든 탄창을 총에 결합하고 장전까지 한 채, 조종간을 ‘안전’에 두고 불안한 눈빛으로 불타오르는 원자력 본부 건물을 주시했다.
“2중대가 원자력 본부 북쪽에 병력 매복시켜서 퇴로 차단하고, 1중대와 서쪽, 2중대가 남쪽에서 병력 횡대로 넓게 펼치고 포위하면서 들어가!”
권민택 중령은 무전으로 각 중대장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원자력 본부에 도착한 기동대대원들은 장교들의 지시에 따라 각 중대별로 흩어져 무장 괴한들의 후방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타다다당! 타다다다당!
권민택 중령은 121연대 1대대와 기동대대가 무장 괴한들을 가운데에 두고 교차 사격을 벌일 수 있도록 연계 작전을 펼쳤다.
이제 무장 괴한들은 청면과 측면은 물론 뒤에서도 공격을 받게 되었다.
한국군에 의해 둘러싸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은 이제 자력으로 원자력 본부를 점령할 수 있는 가망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이제 사력을 다해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려 하고 있었다.
오전 5시, 경상북도 울진군 한울 원자력 본부
새벽 여명이 떠오를 무렵에야 전투가 끝났다. 예닐곱 명 정도의 무장 괴한들만이 한국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나머지는 모두 사살당했다. 침투 도중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고 부상 당한 두 명은 한국군에 의해 생포되었다.
한울 원자력 본부 주변은 온통 아비규환이었다.
원자력 본부 건물 이곳저곳이 아직도 불타고 있었고, 수십 명의 소방관이 사력을 다해 불길과 싸우고 있었다. 소방차들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발전소 내부의 원자로까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권민택 중령은 무전병과 작전장교를 대동하고 전투가 끝난 원자력 본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한울 원자력 본부의 회색 콘크리트 벽면들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총탄 자국, 폭발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그 주위로 한국군 시신 수십 구가 아직 수습되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우리 측 피해는 전사 19명, 부상 48명입니다. 121연대 피해까지 모두 합치면 전사 67명, 부상 106명, 실종 54명입니다.”
작전장교의 보고에, 권민택 중령은 원자력 본부 방어 임무에 성공했다는 안도감보다는 좌절감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병력 피해가 극심했다.
“부상병들은 어디로 보내고 있지?”
“원자력 본부 옆에 있는 북면 보건소와 근처 병원들로 옮겨 먼저 응급 처치를 진행하고 있고, 중상자 7명은 차량에 태워 울진군 의료원으로 후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전장교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1중대장이 전사했고, 소대장들도 2명이 전사, 2명이 부상으로 후송되었습니다.”
권민택 중령은 긴 탄식을 내뱉었다.
전장 정리가 실시되던 현장을 둘러보던 권민택 중령은 길을 걷다 말고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무장 괴한 시신들을 유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장 괴한들은 한국군에게 보급된 호랑이 무늬 전투복이 아닌, 과거에 사용되던 디지털 픽셀 무늬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당연히 한국군이 착용하고 있는 피아식별띠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는 한국군이 사용하는 K 계열 개인화기와 M4 카빈, H&K HK416 이었다. 기동대대장은 북한군 특수부대로 추정되는 이들이 북한군이 주로 사용하는 AK 계열 개인화기가 아니라 한국군의 무기나 우방국들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는 사실이 영 미심쩍었다.
한국군의 무기는 국내로 침투한 후 노획한 거라 치더라도, 한국군도 많이 쓰지 않은 M4 카빈이나 H&K HK416 등의 무기를 어디서 구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보급과 관리의 문제 때문에 평소 북한 특수부대들이 한국군 또는 한국의 우방국 무기들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었을 거 같지도 않았다.
기동대대장이 무장 괴한들의 시신을 보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2중대장이 다가와 보고했다.
“대대장님, 포로들 몸수색 후 모든 장비를 압수하고 일단 응급 처치를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들이 일본말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말?”
기동대대장은 양미간을 찌푸렸다.
“네, 그래서 일본어가 가능한 병사를 데려와 통역해보니, 자기들은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일본에 사는 북한 교포)이고 북한을 위해 싸우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은 조선말을 하나도 할 줄 모른다고 합니다.”
“...... 전문 군사 훈련을 받은 조총련들이 우리나라 땅에 들어와 북한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그런데 조총련이 조선말을 하나도 할 줄 몰라?”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기동대대장은 불현듯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K151 지휘차량으로 가 군 보안 전화를 들었다.
“나 기동대대장이다. 빨리 사단 정보참모님 바꿔. 급한 일이다.”
한울 원자력 본부 방어 전투에서 생포된 무장 괴한들은 한국 정보기관의 심문 과정에서 자신들을 ‘총련 출신 북한 11군단 소속 전사’라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들의 임무는,
‘한국 원자력 본부들을 장악하고 언제든지 원자로를 폭파시킬 수 있도록 통제하는 것. 이렇게 원자로를 인질 삼아 한국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무기로 삼는 것’
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들을 심문한 정부 측 정보기관 담당자들은 이들의 진술을 근거로 각 지역 원자력 본부에 대한 북한 특수부대의 테러 행위가 예상되므로, 즉시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이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50사단으로부터 보고서가 올라왔다. 기동대대장 권민택 중령의 보고서였다.
[포로들이 실제 조총련계 인물이 맞는지 우선적으로 확인해 줄 것. 포로들의 언어 구사 능력이나 사용 장비들로 미루어 볼 때, 이들은 조총련계가 아닌 순수 일본인일 가능성이 매우 큼. 일본이 이번 전쟁에 개입한 것으로 판단됨.]
국방부는 권민택 중령의 주장을 뜬금없는 소리로 치부했다. 일본이 2차 한국 전쟁에 개입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래도 국방부는 외교부를 통해 일본에 포로들의 신원이 조총련계가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은 ‘확인해주기 어렵다.’라며 외교부의 요청을 거절했다.
한국군은 후방의 가용 병력을 최대한 끌어모아 국내 모든 원자력 본부에 대한 방어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혹시 원자력 본부 이외의 시설들도 노릴지 모른다는 판단하고 제철 공장, 조선소 및 주요 방위 산업 시설들도 방어 병력을 증원하기로 했다.
후방 지역의 향토사단, 예비군, 민방위까지 총동원한 대규모 병력들이 주요 시설 방어를 위해 경상도, 전라도의 해안지대로 이동했다.
한국군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동안, 남쪽 바다로부터 소류급 잠수함 한 대가 서해안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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