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2027년 6월 25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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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학교
영록과 유민은 학교 건물 계단에 나란히 앉아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이서 하도 다정히 앉아 있다 보니 지나가던 아이들은 이들을 보고 ‘쟤네 사귀나 봐.’라며 수군거리기도 했다.
“......근데 유민이 너는 진짜 군대 체질이 맞는 거 같더라. 아까 우리 서울 톨게이트 지나갈 때, 그때 니가 하나도 겁 안 내고 있는 거 보고 진짜 대단하다고 느꼈어. 어떻게 진짜 그런 상황에서도 그렇게 침착할 수 있어?”
영록의 물음에 유민은 눈을 크게 뜨고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진짜? 그때 내가 침착해 보였어?”
유민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침착하기는, 실은 그때 나도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공포물이나 고어물 보던 거랑 실제로 사람 죽고 찢어지고 터지고 막 그러는 거 보는 거랑은 완전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나더라. 진짜는...... 내가 상상해 왔던 거 이상으로 소름 끼치게 무서웠어.”
부모 원수 갚으러 군에 들어가겠다고 당차게 말하던 유민도, 사실 마음 약한 소녀에 불과했다. 영록이 흘끔 쳐다보니 어느새 그녀의 눈가가 붉어지고 있었다.
“ ......아까 거기 있었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너도 봤는지 모르겠지만 첫 번째 폭발 일어났을 때 있잖아? 그때 군인들이 숨어 있는 기둥 쪽으로 미사일 같은 게 날아와 꽝, 하고 터지는 거야. 그랬더니 눈 깜짝하는 사이에 기둥 쪽에 있던 군인들 몸이 팍, 하고 터지면서 버스 창문까지 날아와 부딪히는데...... 나 그때 창문에 피가 쫘악, 뿌려지는 거 보고 진짜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어. 와, 나, 진짜...... 아...... 그 모습 꿈에 다시 볼까 무섭다. 오늘 밤에 잠자기는 다 틀린 거 같아......”
유민은 얼굴에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애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런데도...... 군대 들어가서 북한군이랑 싸우고 싶어? 군인 되서 싸우다 보면 그런 건 앞으로 숱하게 봐야 할지도 모르는데......?”
영록이 조심스레 물었다. 유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허리를 뒤로 젖혀 하늘을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응, 무서운데...... 나도 많이 무섭고 그런 거 또 볼 까봐 걱정되기는 하는데...... 이겨내야지, 응, 이겨 낼 거야. 그런 것 때문에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있으면, 하늘에 계신 엄마 아빠한테 미안해서 견딜 수 없을 거 같애. 그리고,”
그러면서 그녀는, 영록을 바라보고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도 이겨 낼 수 있을 거야. 아까 버스 안에서 다 울고 난리가 났는데, 너는 끝까지 안 울었잖아? 야, 지영록, 너 그거 알아? 너 작년까지 진짜 많이 울고 다녔잖아. 어려서는 길에서 넘어져서 무릎 까졌다고 울고 다니고, 애들한테 맞았다고 울고 다니고, 무서운 영화 보다가 놀라서 울고 다니고......”
“아, 하, 그치......”
유민의 말에 영록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멋쩍게 웃었다.
그녀가 영록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그렇게 많이 울던 너도 아까 그 상황에서 울지 않고 잘 버텼잖아? 야, 지영록, 너도 분명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아무리 무서운 걸 보고 겁나는 일을 당해도 피하거나 숨지 말고, 한번 당당히 싸워 보는 거야. 나중에 하늘나라 가서 엄마 아빠 다시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게. 내가 늘 같이해줄 거니까, 우리 같이 이겨내 보자고. 알았냐, 짜식아?”
유민은 영록의 팔을 가볍게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영록은 부끄러운 듯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밤이 드리우고, 그 어스름 속에 노을보다 붉게 물든 그의 얼굴이 간신히 가려져 있었다.
영록이 기숙사 방으로 들어갔을 때, 태하는 벌써 다 씻고 왔는지 머릿결이 젖어 있었다.
태하는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영록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까 걔 되게 이쁘던데, 누구야? 여친이야?”
영록은 머리를 긁적였다.
“음...... 여친은 아니고...... 그냥 여사친?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애야. 집도 같은 아파트 살았고.”
“아~ 역시, 그랬구나.”
태하는 무언가 안심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록은 뭔가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태하와 영록은 자신이 가지고 온 학습서를 서로 교환해 보여주며 각자의 학교 교과 내용이 어떠했는지,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록의 노트 필기를 훑어보던 태하가 말했다.
“여기 성부 학교, 우리가 원하면 여기서 고등학교 과정까지는 무상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잖아? 근데 우리가 이 학교에서 과연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까?”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태하는 영록의 노트를 돌려주며 답했다.
“이 학교가 그 유명한 성부 학교인데, 이런 학교에서 뭘 제대로 배우고 공부할 수 있을 거 같냐고.”
“이 학교가 그렇게 유명해? 난 잘 모르겠는데......? 근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태하는 답답하다는 듯이 영록을 쳐다보았다.
“여기, 전국 10대 일진 학교, 꼴통 학교 중에 원탑이라고 알려진 곳인데? 게다가 그냥 일반 학교도 아니고 학력 인정시설이야. 다른 학교 다니다가 문제 일으켜 퇴학당하거나, 학교에 적응 못 해서 자퇴한 애들만 모이는 곳이라고. 너 이거 정말 몰랐어? 인터넷에 성부 학교 치면 바로 다 나오는데? 한국의 스즈란, 이라고 검색해도 바로 여기 이름부터 떠. 그런데, 이런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겠냐고.”
태하는 핸드폰으로 '성부 학교'를 검색해 영록에게 보여주었다.
영록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인터넷에는 성부 학교에 대한 온갖 적나라한 사진들과 지금껏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너무나 상세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불량하게 옷을 입고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성부 학교 학생들의 사진부터,
몸 전체를 일본식 문신을 새까맣게 도배한 사진,
우성시 어디선가 단체로 패싸움을 벌인 이야기,
집단으로 다른 학교 학생을 1년간 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았다는 이야기,
교사들과 우성시에 사는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폭행당한 이야기,
성부 학교에 들어간 여학생은 졸업하기 전까지 모두 다 낙태 수술 1번씩은 하고 나온다는 이야기까지......
영록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갑자기 몇 년 전, 학원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양아치들에게 붙들렸을 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당시 영록은 양쪽 볼에 피멍이 들 정도로 뺨을 얻어맞고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며 용돈으로 가지고 다니던 3만을 양아치들에게 바쳐야만 했었다.
‘양아치 한 명만 만나도 무서워 죽을 거 같은데,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모두가 다 양아치들이라고?’
그 생각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태하는 몇 가지 사진을 더 보여주며 말했다.
“원래 이 학교를 세운 게 조폭 출신 정치인이래. 그 정치인이 이미지 세탁도 하고 자기 밑에 조폭들한테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장 만들어주려고 이 학교를 세웠다는 거지. 그래서 이 학교에는 지금도 스무 살 서른 살 넘은 조폭들이 졸업장 받으려고 나오고 있데. 물론, 아침에 출석 도장만 찍고 바로 나가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그, 그럼 우리가 이제 앞으로 그 일진들하고 조폭들하고 같이 공부하게 된단 말이야?”
영록의 어깨는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 들었다.
“지금은 전쟁 때문에 모든 학교가 일찍 여름 방학을 시작해서 원래 이 학교 다니던 학생들도 당분간은 학교에 안 나오겠지만, 다시 개학하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일진이나 조폭들하고 같이 학교생활 할 수밖에 없겠지. 원래 이 학교 있던 애들과 우리를 같은 반에 섞어 넣을지, 아니면 반이라도 다르게 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이 학교에서 나가기 전까지는 매일 매일 전설의 성부 학교에서 조폭, 건달, 일진, 양아치들과 함께 생활하는 수밖에 없을 거야.”
영록은 마른 침을 삼켰다.
“나 여기 잘 못 온 거 같은데......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
“서울로 돌아가면 전쟁 기간 학교 다니는 것도 그렇고, 밥 먹고 생활하는 것도 그렇고, 문제가 많을 텐데?”
“아, 그렇지....... 하아...... 이제 어떻게 하지?”
영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정부에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고아가 된 자신을 동정하고 위하는 척 하기에 믿고 감사한 마음으로 따라 왔더니 거기가 알고 보니 조폭, 건달, 일진, 양아치들의 소굴이었다고???
영록은 손바닥으로 책상을 쾅, 치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머리를 처박았다. 태하는 그런 영록을 안쓰럽게 내려다봤다.
오후 10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학교
두 사람은 10시 즈음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침대에 누웠지만 영록은 잠이 오지 않았다. 계속 속은 것 같은 기분에 그저 분하고 화가 나고 답답하기만 했다. 자다가도 몇 번이고 이불에 발길질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도망쳐 서울로 올라갈까? 서울로 가서 아는 사람들 찾아다니다 보면 누구 하나 날 도와주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내가 여기서 양아치들하고 같이 살아?’
영록은 저도 모르게 계속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러다 갑자기 유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까 유민과 했던 말들이 기억났다.
‘야, 지영록, 너도 분명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아무리 무서운 걸 보고 겁나는 일을 당해도 피하거나 숨지 말고, 한번 당당히 싸워 보는 거야. 나중에 하늘나라 가서 엄마 아빠 다시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게. 내가 늘 같이해줄 거니까, 우리 같이 이겨내 보자고. 알았냐, 짜식아?’
유민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물론 그 말이 지금 이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머릿속에서 유민의 목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영록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손가락으로 두 귀를 막은 채 온몸을 웅크리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오후 11시,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
합참의장 박현국 대장은 밤 늦은 시간까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집무실에 앉아 있었다.
청와대에서 직접 내려온 지시 사항 때문이었다.
북진을 계속한 한국군은 평양 일대를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한국군은 평양 공략에 앞서 여러 정보 자산들을 이용해 평양 내부를 정찰했다.
그 결과, 현재 교도대(북한의 예비군)와 로농적위대(중장년 여성들로 구성된 예비군)을 중심으로 한 10만에 가까운 준군사조직 병력이 평양 시내 건물들을 진지화 해서 방어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앞서, 국군정보사에서는 북한 최고 지도자 김성운의 최측근 부대라 할 수 있는 ‘호위사령부’ 내에 세 부대, 호위총국, 평양방위사령부, 평양경비사령부 병력들이 전쟁 발발 즈음해서 평양에서 모두 자취를 감춘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이에 대해 정보 수집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에 대해 오히려 평양 점령이 수월해진 것 뿐이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이 건의를 묵살했다.
거기에 이정만 대통령은 합참에 평양 공격 방법에 대해 합참에 이렇게 지시를 내렸다.
[지난 북한의 화학탄 공격으로 수많은 무고한 서울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우리는 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 평양 공격 때 백린탄을 사용을 허가한다. 이번 기회에 북한 공산당에게 지옥의 불바다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박현국 대장은 참담한 심정을 금치 못했다.
평양을 지키는 이들은 정규군도 아니고 준군사조직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붉은 청년 근위대’와 같이 아직 어린 청소년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박현국 대장도 상관의 명령에 충성해야 할 군인이기에 앞서, 엄연히 사람이었다.
아무리 북한이 적국이라지만, 민간인들이나 다름없는 이들을 상대로 백린탄을 쏘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한 사람의 사람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오랫동안 망설이던 그가 군 전화를 들었다.
“......합참의장이다. 평양 공격, 잠시 보류할 수 있도록.”
박현국 대장은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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