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7화 (7/217)

〈 7화 〉 2027년 6월 25일 (4)

* * *

­ 오후 6시, 경기도 안양시 국군정보사령부

원래였다면 퇴근시간이었겠지만, 2차 한국 전쟁이 개전한 이후 군대에서 퇴근이란 단어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특히 ‘정보사’로 불리는 국군정보사령부는 더더욱 그러했다.

국군정보사령관 변성일 중장은 전쟁 발발하기 2주 전부터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중이었다. 항상 옆머리, 뒷머리를 바싹 올려친 단정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던 그였지만, 한 달 넘게 이발소에 못 간 탓에 그의 머리는 상고머리처럼 덥수룩하게 자라나 있었다.

국군 인트라넷 결제망에는 그가 확인해야 할 정보 분석 보고 메일들이 수십 개나 쌓여 있었다. 그는 두꺼운 뿔테 안경을 코에 걸고 보고서 하나하나를 면밀히 검토했다.

‘해병대 1사단 수색대 정찰 보고, 중국 단동시 압록강 일대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국 인민해방군 북부전구 78집단군, 79집단군 병력들이 일제히 단동시 북쪽으로 이동 중...... 북한군 수중에 있는 만포, 강계 등의 지역을 통해 북한으로의 진입 가능성이 우려됨...... 계속 추적 관찰 요망......’

변성일 중장을 이 보고서를 반려시켰다.

이미 이에 대한 또 다른 보고서를 확인한 후였기 때문이었다.

그 보고서는 외교부에 파견된 블랙 요원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는 중국이 암호화된 외교 핫라인을 통해 청와대로 보낸 밀서 내용을 중간에 확인하고 바로 이를 정보사로 알려 온 것이다.

그가 확인한 밀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발신 : 중국 공산당 총서기

수신 : 대한민국 대통령

내용

아국은 귀국이 압록강 이남 모든 조선 지역에 대한 종주권을 획득했음을 인정한다. 더불어, 양국은 압록강을 경계로 서로의 군을 이동시키지 말고, 동북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관계로 나아가길 희망한다.

이제 중국은 북한을 버리고 한국과 손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전쟁 초기, 중국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고려해서라도 2차 한국 전쟁에 참전하려는 의사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한국 해병대가 신의주로 들어와 압록강을 일대 중국과의 국경을 봉쇄해 버리고 한국 제7기동군단이 북한 기갑전력들을 너무나 손쉽게 전멸시키고 평안북도 방향으로 진군해오자, 중국은 급격히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수백만 대군을 보유한 중국 인민해방군이라도, 유라시아 대륙 최강의 화력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군 제7기동군단을 상대할만한 전력은 없었다.

중국 인민해방군들 모두 지난 황주 전투의 결과를 잘 알고 있었다. 단 한 대의 전차 손실도 없이 북한의 모든 기갑전력들을 분쇄해버린 제7기동군단의 전과를 전해 들은 인민해방군 수뇌부들은,

‘중국은 한국의 전차들을 상대할 만한 3.5세대 이상의 전차가 없다. 인민해방군이 한국 제7기동군단을 상대하려면, 최소 4개 집단군(중국에서의 집단군은 군단급 규모임) 이상 희생시킬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라며, 확전에 희의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한국은 전쟁 초기 특수부대들을 이용해 북한이 비밀리에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들을 모두 탈취했는데, 중국 역시 이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다.

중국이 만일 핵무장까지 하게 된 한국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면 어렵고 지리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현재 홍콩, 대만, 베트남 등을 놓고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중국을 공격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현시점에서 중국이 전쟁을 벌여 이득 될 건 하나도 없다. 중국 공산당들은 똑똑한 자들이다. 지금 자신들이 한발 물러서는 게 훗날 더 큰 일보를 내딛기 위한 발판이 되리란 걸 잘 알고 있는 거야.’

변성일 중장은 피곤했던지,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게 군 장성들의 집무실이 그러하듯, 국군정보사령관 집무실에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중국 공산당의 판단에 대해 생각하던 변성일 중장은 대통령의 얼굴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은 지금...... 그가 정말 이 나라, 이 전쟁 시국을 바르게 이끌 수 있는 똑똑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현 대한민국 대통령, 이정만의 행보는 이번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너무나 수상했다.

전쟁 몇 달 전부터 대통령이 속한 여당 ‘자유공화당’의 국회의원들이 일본, 중국에서 북한의 군 관계자로 보이는 인물과 수차례 접촉했다는 사실이 정보사 요원들에 의해 확인되었다.

그러고 있어 얼마 후, 북한에서 큰 소요 사태가 있었다. 북한군의 대규모 병력 이동이 확인된 것이다. 다행히 북한군이 이동한 곳은 남쪽이 아니라 평양이었다.

변성일 중장은 위성, 항공촬영 및 특수정보 부대까지 투입 시켜 북한 내부 사정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에서 이 건의를 무시했다.

[우리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없으니, 소중한 정보 자산 등을 불필요하게 움직일 필요 없다.]

라는 것이 그들의 답변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북한은 갑자기 백령도에 포격 도발을 감행했고, 일본 본토를 향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백령도 포격 도발의 피해는 미미했고, 국민들의 충격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3기가 일본 본토 북부로 날아들었다. 이 중 2기는 일본의 방공망에 의해 격추되었지만, 1기가 인구 밀집 지역에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미사일에는 탄두가 장착되어 있지 않았지만 수십 명의 사람이 죽고 다치는 피해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일본 전역에서 평화 헌법에 대한 개헌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 오르게 되었다.

한국, 북한, 일본 세 나라의 정국이 한창 혼란스럽던 사이, 북한이 또다시 백령도를 공격해왔다.

그리고 이정만 대통령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군에 북한에 대한 침공을 명령했다.

‘그런데 하필 전쟁을 일으킨 시점이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몇 달 남지 않은 상황이었지.’

한국은 개헌을 통해 대통령 4년 중임제 국가가 되어 있었다. 이제 미국처럼 대통령직을 두 번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정만 역시 재선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론조사 기구 등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정만 대통령의 지지율은 재선은 고사하고 자유공화당 경선도 통과하기 힘들어 보였다.

변성일 중장은, 혹시 이정만 대통령이 자신의 재선을 위해 이번 전쟁을 일으킨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아마 국민 중에서도 이런 의문을 품는 사람은 한 두 사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 정도로 미친 놈일까?’

그건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전쟁 중에도 이정만 대통령은 간혹 알 수 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합참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국방부를 통해 특전사 707 특수임무단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해서 북한에 침투시켜 정확한 목적을 알 수 없는 작전을 벌여온 것이 정보사 요원들에 의해 확인된 것이다.

현재 707 특수임무단이 청와대와 국방부 직속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 대통령이 지시한 작전을 수행하던 도중 수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특전사 각 여단에는 707 특수임무단 충원을 위한 전배 희망자 확인 요청 공문이 수시로 하달되는 중이었다.

결국, 군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합참의장 박현국 대장은 변성일 중장에게 대통령이 무엇 때문에 707 특수임무단을 사적으로 운용하고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비밀리에 지시를 내렸다.

이에 변성일 중장은 즉시 정보사 요원들을 파견해 내막을 캐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만일 내가 생각하던 게 맞다면, 그런 형편없는 쓰레기를 대통령으로 뽑아주고 4년 가까이 통치받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고개 들고 다니지 못할 거 같으니까.’

그는 집무실에 걸린 대통령의 사진을 쏘아 보았다.

­ 오후 7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학교

성부 학교의 학생 식당은 본 건물 지하 1층에 있었다. 식당은 제법 크고 깨끗했다. 식탁은 모두 알록달록한 색의 테이블이었는데,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이었다. 배식대 너머 주방에는 5명의 조리사가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 배식대로 나르고 있었다.

성부 학교에서의 첫 식사는 웬만한 학교 급식보다 훨씬 잘 나왔다. 메뉴로는 새우튀김이 들어있는 일본식 우동과 큼지막한 돈까스, 김과 참기름, 깨소금으로 양념이 된 한입 크기의 주먹밥, 김치와 단무지, 마카로니가 들어간 야채샐러드가 나왔고, 후식으로 오렌지 쥬스와 빵도 나왔다. 게다가 자유롭게 양껏 떠먹을 수 있는 자율배식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집 냉장고에 남은 음식들로만 허기를 때워온 영록은 오랜만에 받아보는 제대로 된 식사에 저도 모르게 얼굴 가득 미소가 피어올랐다. 영록은 우동 국수를 가득 담은 그릇에 새우튀김을 3개나 올리고, 돈까스도 2개나 가져갔다. 다른 아이들도 대부분 이곳에 오기 전까지 영록과 비슷한 처지를 겪었는지, 다들 식판 한가득 음식을 담아갔다. 어떤 아이는 돈까스를 5개나 집어가기도 했다.

아이들이 식사를 마치자 교무처장이 식당으로 내려와 아이들에게 몇 가지 안내 사항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전쟁 때문에 전국이 전시 계엄 상황인거 다들 알고 있지? 여기 우성시도 마찬가지인데, 오후 10시 이후에는 통행금지를 실시하고 있어서 절대로 밤늦은 시간에 학교 밖으로 나가면 안 돼. 오후 10시 이후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군인들이 수상한 사람으로 여기고 총으로 쏴버리거나 잡아가 버릴 수도 있으니까 다들 조심해야 해. 주변에 편의점이나 가게들도 밤 9시가 되면 모두 문을 닫고 있으니까 괜히 몰래 나갈 생각하지 말고. 혹시 급한 용무로 학교 밖에 나갈 일 있으면 꼭 선생님들한테 먼저 이야기하고 10시 전까지 기숙사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해. 알았지?”

아이들은 설명을 듣고 각자 기숙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영록도 태하와 함께 기숙사로 향했다. 그때 누군가 영록의 어깨를 톡톡 쳤다.

“야, 지영록.”

유민이었다. 유민이는 벌써 짧은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로 갈아입고 있었다.

“니네 방은 어때? 거기는 좀 깨끗해?”

“응? 그냥 그저 그래.”

“우리 방은 쫌 지저분해. 딱 바퀴벌레 나올 것 같이 생겼어.”

“컨테이너로 된 집이니까 뭐......”

영록은 태하를 먼저 보내고 유민과 같이 식당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와 보니 이제 막 조금씩 노을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지금 서울에 있었으면 학원에 가 있었겠지?”

“그치, 학원 갔다가 독서실 갈 시간이지.”

“잠깐이겠지만, 학원 안 가고 쉴 수 있어서 잘 되었네.”

유민은 계단을 내려오며 기지개를 쭈욱 폈다. 유민의 몸에 티셔츠가 달라붙으며 바디라인이 그대로 드러났다. 유난히 날씬하고 매끈한 유민의 허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볼록 튀어나온 그녀의 가슴까지......

갑자기 영록의 볼이 불그스름해졌다.

“나 아까 저 교무처장 찾아 갔었어.”

“응? 왜? 방이 지저분해서 바꿔 달라고?”

영록의 말에 유민이 깔깔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우리가 여기 얼마나 있어야 하냐고 물어보니까, 일단 정부에서 모두 지원되니까 우리가 원하면 이곳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유민의 표정이 굳게 변했다.

“나는 여기서 편하게 앉아 공부만 하고 싶지 않다고, 지금 당장 군에 들어가서 엄마 아빠 죽인 북한군이랑 싸우고 싶다고, 내가 군인이 될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어. 그랬더니 역시 내가 너무 어려서 군에 못 들어간다는 거야. 그래서 ‘옛날 6.25 한국 전쟁 때에는 학생들이 학도병 되서 북한군이랑 싸우러 나갔잖아요?’ 하고 물으니까 뭐라고 하는지 알아? ‘그때는 우리나라의 국력이 너무 약했고 군인들도 부족해서 학생들까지 나서서 싸워야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 지금 우리나라는 너같이 어린 학생들까지 싸워야 할 만큼 약한 나라가 아니야. 우리나라가 너희 학생들에게 바라는 건 전쟁에서 흘릴 피가 아니라, 열심히 공부하면서 이 나라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마음이야.’ 라는 거야, 씨발, 꼰대새끼가!”

유민은 다소 격앙되어 있었다. 영록도 유민이 욕하는 건 처음 보았다.

“그걸 누가 모르냐고? 그래도, 내 부모, 내 가족이 죽었는데 계속 참고 가만히 있어야 해?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엄마 아빠가 독가스 마시고 괴로워하면서 돌아가셨는데, 나더러 그냥 공부나 하고 있으라고? 그럼 뭐가 해결돼? 그리고 그런다고 공부하고 있으면, 그게 머리에 들어오기나 하겠어? 그런데 뭘 자꾸 공부나 하고 앉아 있으라는 거야!”

유민은 씩씩거리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발로 빵, 찼다. 날아간 돌은 컨테이너 벽에 맞았고, 땅! 하고 큰 소리가 났다. 식사 후에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던 아이들은 이 소리에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계속 군에 들어갈 방법을 찾아볼 거야. 찾다 보면 방법이 나오겠지.”

유민은 그렇게 말하며 영록을 쳐다봤다.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할래?”

영록은 유민과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영록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사실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이곳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보자, 이게 영록이 갖고 있던 계획의 전부였다.

유민이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만약 그냥 여기서 전쟁 끝날 때까지 계속 있겠다, 고 말한다면 유민이 자신을 싫어하고 경멸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랑 같은 생각이야. 나도 될 수 있으면 군에 들어가서 부모님 원수를 갚을 거야.”

결국 이렇게 대답해 버렸다. 그제야 유민은 환하게 웃으며 영록의 손을 잡았다.

“그래, 우리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 그리고 군에 들어가더라도 꼭 같이 들어가고, 싸워도 같이 싸우는 거야. 죽어도 같이...... 아니, 죽으면 안 되고, 전쟁 끝나고 같이 서울로 돌아가는 거야, 알았지?”

밝게 웃는 유민을 보니 영록도 기뻤다.

하지만 가슴 속 가득히 두려움과 부담감이 쌓이는 게 느껴졌다.

만약, 실제로 자신이 군대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싸울 수나 있을까,

맞는 것도 무서워 죽겠는데,

총에 맞아 피 토하고 팔다리 잘려나가는 것만 봐도 몸이 떨려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실제 전쟁터에 나가면 그 공포를 이길 수 있을까,

유민이 앞에서 겁쟁이처럼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게 되지나 않을까.......

영록은 아까 먹은 음식들이 콱 얹힌 채로 소화가 안 되는 기분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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