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6화 (6/217)

〈 6화 〉 2027년 6월 25일 (3)

* * *

※ 작품 속 배경 중 우성시, 상아시 등 일부 지역은 실존하는 곳이 아닌 가상의 지역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오후 4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학교

서울 등 주요 도시들이 북한군 특수부대와의 비정규전으로 전쟁의 불길에 휩싸여 있었지만, 다행히 경기도 남부에 있는 우성시는 아직 별다른 피해를 당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우성시도 안전한 곳이라 볼 수 없었다. 우성시에는 총면적 18㎢ 에 달하는 넓은 지역에 수백여 개의 공장들이 밀집해 있었다. 이곳은 ‘우성 서해안 산업단지’라고 불리는 곳으로, 자동차 부품, 전기, 섬유, 제지, 화학, 기계 산업 등 한국 중소 제조업체들의 중심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그만큼 북한군이 얼마든지 노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우성시에는 향토사단의 1개 대대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장교들과 소수의 기간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예비군으로 충원된 부대였다.

1개 대대 병력만으로는 우성시 전체를 방어하기에 부족했다. 경찰이 책임지고 있는 시청 등 관공서를 제외한 주요 시설들에는 어쩔 수 없이 민방위 병력들을 투입해야 했다.

후방 지역에서 북한군 특수부대로 인한 피해가 늘어나자 정부는 기어이 민방위까지 소집해 각 지역 방어에 투입하고 있었다. 우성시 등 지방 도시에서는 옛날 얼룩무늬 전투복에 색이 바랜 X­반도를 착용하고, 귀와 목덜미가 보호되지 않는 구형 방탄모를 위장포도 안 씌운 채 쓰고 돌아다니는 4, 50대 민방위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민방위들에게는 구형 M­16A1 소총이 지급되었다. 총기를 받아든 사람 중에서는,

“이 총을 아직도 써? 내가 군대 있을 때도 K­2 썼지, 이런 구닥다리는 안 썼다.”

하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재요, M­16 예비군 훈련 가서 안 쏴봤어요? 이게 그래도 K­2 보다 반동도 적고, 훨씬 잘 맞는다 아입니까?”

하고 그냥 받아드는 이들도 있었다.

한국의 동원 물자 관리 수준은 감탄할 만 했다. 민방위들이 받은 M­16A1들은 이게 진짜 수십 년간 창고에 박혀 있던 무기 맞나 싶을 정도로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총신에서 녹슨 부분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노리쇠를 젖혀보니 윤활유를 잔뜩 묻혀 놨는지 너무나 부드럽게 움직였다. 중년의 민방위들은 만족한 듯 무기를 받아 들고는 서로 군 시절 이야기를 자랑하며 삼삼오오 각자의 담당 구역으로 이동했다.

우성시의 관문인 여동 톨게이트에도 군인들이 차량들을 일일이 정차시키고 검문검색을 하고 있었다. 서울 톨게이트처럼 전차나 장갑차까지 배치하지는 못했지만, 차들이 지나다니는 옆에 기관총 진지를 만들어 놓고 K­3 기관총, M­60 기관총을 거치시켜 놓고 있었다.

여동 톨게이트 쪽으로 버스 한 대가 진입해 들어 왔다. 검문하던 군인들은 버스를 보고 질겁했다. 버스의 왼쪽 창가에는 엷게 번진 핏자국과 파편에 긁힌 자국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군인들은 버스를 세우고 검문을 시작했다.

긴장한 표정의 군인 한 명이 K­2C1 소총으로 지향 사격 자세를 취한 채 버스에 올랐다.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공무원 아주머니는

“......여성청소년부 버스에요”

라고 짧게 대답하며 군인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그녀는 아까 전 서울 톨게이트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지 백지장처럼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류를 읽고 버스 내부를 둘러본 군인이 공무원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오시면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버스 옆에 피가 묻어 있는데 말입니다.”

“서울 톨게이트에서 북한 놈들이....... 다행히 우리 버스는 별 피해 없이 도망쳐 나왔지만 거기 군인들하고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공무원 아주머니가 맥없이 대답했다. 검문하던 군인은 침을 꼴깍 삼키고는 거수경례를 하고 황급히 버스에서 내렸다.

그때까지 영록과 유민은 서로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영록은 아직도 몸이 떨리는 게 멈추지 않았다. 길바닥에 나뒹굴던 사람들의 팔다리와 입과 코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군인들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유민의 눈가에도 눈물이 글썽였다.

차 안에는 아직도 훌쩍이며 흐느끼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 모두 좀 전의 충격으로부터 진정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버스는 여동 톨게이트를 지나 시내로 들어섰다.

확실히 우성시의 풍경은 서울과 사뭇 달랐다. 서울에서 보던 고층 빌딩 같은 건 아예 없었고, 도로 주변에는 고작 2, 3층 정도 되는 고만고만한 상가들만 눈에 띄었다. 대형마트 같은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가장 큰 건물은 시외버스 터미널이었는데, 영록이 다니던 학교보다도 작아 보였다.

시내에는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이곳저곳마다 진지를 쌓아 놓고 들어가 있는 예비군과 민방위들의 모습은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제 다 와 가니까, 모두들 놓고 내리는 물건 없도록 자기 짐 잘 챙기세요.”

버스 기사 아저씨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서야 영록과 유민은 잡았던 손을 놓았다. 영록의 손은 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유민은 땀에 젖은 손바닥을 자신의 옷에 슥슥 문지른 후 작은 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살폈다. 버스 안의 다른 아이들도 눈물을 훔치며 자기 짐들을 하나씩 챙기기 시작했다.

버스는 시내의 좁은 도로를 따라 어느 시설로 들어갔다. 입구 앞에 ‘우성 성부 학교’ 라고 쓰여 있었다.

간판 이름은 학교였지만 모양새는 전혀 학교 같아 보이지 않았다. 학교라기보다는 일반 사무실들이 모여 있는 상업 빌딩이 아닐까 싶은 외형이었다.

학교는 크고 넓은 5층 규모의 전면 통유리로 된 건물이었다. 주변에 운동장 같은 건 보이지 않았고, 콘크리트로 포장된 지면 위에 설치된 두 개의 농구대와 족구장이 유일한 운동 시설이었다.

그리고 농구대 옆으로, 청회색의 컨테이너가 이층집처럼 두 개씩 붙어 있는 가건물들이 모여 있었다. 가건물의 왼쪽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붉은 색 철제 계단이 붙어 있었다.

컨테이너 이층집 가건물은 총 5개씩 4열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버스가 들어오자 컨테이너 안에서 남자 세 명이 문을 열고 나왔다. 공무원 아주머니가 먼저 내려 그들에게 무어라 이야기를 나눈 후 몇 가지 서류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버스로 올라와 아이들에게 모두 짐을 챙겨서 내리라고 말했다.

영록은 유민과 함께 버스에서 내려 버스 화물칸에서 캐리어를 꺼내 들었다. 아이들이 자기 짐을 챙겨 내리자 컨테이너 안에서 나온 사람들이 다가와 말했다.

“성부 학교에 온 걸 환영한다. 나는 교무처장 박세훈 선생님이야.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어. 자, 그럼 이제 각자 기숙사로 안내해줄 테니까, 자기 이름 부르는 대로 앞으로 나와서 이 앞에 선생님들을 따라가면 돼. 저녁 식사 전까지 짐 풀고 숙소에서 푹 쉬어. 식사 시간 하고 장소는 이따가 방송으로 안내해줄게.”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이 호명되었다. 영록의 이름도 호명되었다. 영록은 유민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유민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오후 5시, 경기도 우성시 성부 학교

컨테이너 각 층은 긴 복도, 방 2개, 화장실 1개, 샤워실 1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방에는 얇은 철제 빔으로 만들어진 2층 침대 하나와 갈색 나무 책상 2개,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 무늬 옷장 2개가 있었다. 방의 창문은 닫혀 있었는데, 커튼은 따로 없었다. 컨테이너로 된 방이라 그런지 들어오자마자 덥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영록은 김태하 라는 아이와 함께 203호를 배정받았다. 태하는 영록과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아이였다.

먼저 말을 건넨 이는 태하였다.

“난 김태하 라고 해. 올해 00이야.”

“난 지영록...... 나도 00이야.”

태하가 웃으며 말했다.

“나랑 동갑이네? 같은 또래랑 방 쓰게 돼서 다행이다. 아까 우리 같은 버스 타고 왔지? 난 000 다녔는데, 너는 어디 다녔어?”

“어? 난 000......”

“그렇구나, 버스 타고 올 때 많이 놀랐지? 난 총 쏘고 사람 죽는 거 오늘 처음 봤어.”

“응, 나도 그래.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소름 끼쳐.”

이렇게 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짐을 풀기 시작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까 두렵고 무서운 감정들은 점점 잊혀 가는 듯 했다.

침대는 태하가 2층, 영록이 1층을 사용하기로 했다. 영록이 자신은 단 한 번도 2층 침대를 써 본 적이 없어서 자다가 밑으로 떨어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하자 태하가 그럼 자신이 2층 쓰겠다며 쿨하게 자신의 짐들을 2층 침대 위로 던져 올렸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 가지고 온 옷들을 옷장에 걸고 책과 여러 잡다한 물건들을 책상에 정리했다.

영록은 짐 정리를 얼추 다 끝내고 옆에 태하의 물건들을 구경했다.

태하는 책들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 왔다. 대부분 학습서들이었고, 자기계발 도서들도 몇 권 있었다. 책꽂이에 다 꽂을 수 없어서 몇 권은 책상 아래 놓아야 할 정도였다.

태하의 책꽂이에 꽂힌 책들 표지를 주욱 훑어보던 중, 특이한 책 하나가 영록의 눈에 들어왔다.

“......모두를 위한 격투 무예......?”

영록의 말에 태하가 짐들을 정리하며 대답했다.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운동 배우시던 체육관의 관장님이 쓰신 책이야.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그 체육관 보내려고 하셨는데, 내가 6살쯤 되었을 때 갑자기 그 체육관 관장님이 사라지셨대.”

“사라져? 갑자기 실종된 거야?”

“정확한 건 나도 들은 게 없어 잘 모르겠어. 다만 아버지는 관장님이 사라지신 이후로도 체육관에 같이 다니던 분들하고 계속 모여서 이 책을 가지고 운동을 하셨대. 나도 이 책대로 아버지한테서 운동을 배웠었고.”

“그때에도 유튜브나 동영상 같은 거 있었지 않아? 어떻게 책으로 운동을 배워?”

“아버지는 어른이니까, 동영상보다 책이 더 배우기 편하셨을지도 모르지.”

태하는 책꽂이에서 ‘모두를 위한 격투 무예’ 책을 꺼내 펼쳐 보았다. 컬러로 된 책에는 여러 가지 동작에 대한 사진들과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로 가득했다.

“아버지는 회사 일 때문에 매일 바쁘셨지만, 운동하러 가는 날은 거의 빼먹지 않고 체육관에 열심히 나가셨다고 해. 이 책을 쓴 관장님이 사라진 이후에도 주말마다 나를 데리고 체육관 사람들하고 같이 모여서 운동을 계속하셨어. 내가 아버지하고 같이 있었던 시간들의 대부분은 이 책과 함께 한 거나 마찬가지지.”

태하는 책을 소중히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원래는 집에 그냥 놓고 오려고 했는데, 도저히 두고 갈 수가 없더라구. 가끔 심심할 때 책 보면서 따라 해도 재미있을 거 같고...... 또...... 음......”

태하는 무슨 말을 하려다말고 책을 영록에게 건냈다.

“너도 심심하면 한번 봐봐. 따라 하다 보면 재미있을 거야.”

영록은 책을 받아 들며 책장을 넘겨보았다. 페이지가 총 300쪽이 넘는 책이라 두께가 제법 두툼했다.

“근데, 이거 보면 싸움 잘 할 수 있어?”

영록의 물음에 태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얼마나 운동을 열심히 하냐에 따라 다르지. 책을 보는 것만으로 싸움을 잘하게 되면 이 세상 격투기 선수들은 다 운동 안 하고 책만 보고 앉아 있게?”

“왜, 그래도 운동 따로 안 배워도 싸움 잘하는 애들도 있잖아?”

“그건 싸움을 잘하는 게 아니라 그냥 힘만 세고 거칠기만 한 거지. 아, 여기 이 책에 주먹 피하는 거랑 막는 거, 그리고 그런 것들을 훈련하는 방법들이 자세히 써있거든? 관심 있으면 책 보고 한번 연습해봐. 나도 아버지한테 이 책에 나온 데로 배웠는데, 학교에서 애들 하고 싸움 붙었을 때, 한 대도 안 맞고 다 피하고 막을 수 있었어.”

“저, 정말? 그럼 너도 싸움 잘 해?”

태하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난 싸울 때 피하는 거랑 막는 거만 잘해. 물론 때릴 줄은 아는데, 아버지가 학교에서 애들이랑 싸우는 거 진짜 싫어하셨거든. 그래서 싸움 나면 나는 그냥 막고 피하다가 밀어서 넘어뜨리는 거 정도만 했어.”

영록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잠시 옛날 생각이 났다. 못된 아이들이 손바닥으로 머리를 때리거나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대도 아무것도 못 하고 바보같이 당하고만 있었던 때의 기억들...... 영록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보면 나도 정말 싸움을 잘 할 수 있을까?’

이때 방송을 스피커를 통해 방송이 나왔다.

[6시부터 저녁 배식 시작합니다. 식사 순서는 기숙사 1동 학생들부터......]

태하는 책을 책꽂이에 꽂으며 말했다.

“우리 먼저 밥 먹는대, 저녁 먹으러 갈 준비하자.”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