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5화 (5/217)

〈 5화 〉 2027년 6월 25일 (2)

* * *

­ 오후 3시, 서울 톨게이트

“미사일이 떨어진 그 날, 인터넷으로 엄마 아빠 직장 가까운 곳에 있는 CCTV를 찾아봤어. 미사일이 떨어졌는데 폭발 같은 것도 없고, 사람들도 별로 놀라지도 않더라.”

유민은 영록의 옆에 앉아 이야기를 계속했다.

“불발탄 같은 건지 알았나 봐. CCTV 속의 사람들 모두 안심하는 모습이었고,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어. 근데 1시간 정도 지났나? 갑자기 미사일이 떨어진 곳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눈물 콧물을 흘리거나 길에서 막 토하기도 하는 거야. 숨쉬기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이고, 그러다가, 그러다가....... 마치 피곤해서 잠드는 것처럼 길 위에 눕기 시작했어.”

유민의 눈에 물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CCTV에는 엄마 아빠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우리 엄마 아빠도 그 사람들하고 비슷하게 돌아가셨을 거 같아.”

유민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일부러 눈을 비볐다.

“우성시로 가라는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지금 당장 군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어. 나도 북한이랑 싸우고 싶다고. 근데 난 아직 어려서 입대가 안 된다고 하더라. 너 내가 합기도 오래 한 거 알고 있지? 지금 군대 들어가도 다른 군인들만큼 체력도 좋고 잘 할 자신 있는데.”

“응...... 유민이 너라면 여군도 잘 할 거 같아.”

“난 그냥 여군이 아니라 직접 총 들고 싸울 수 전투병과 여군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꼭 우리 엄마 아빠 죽인 북한 놈들한테 복수하고 싶어.”

유민이 짐짓 결연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영록과 유민을 태운 버스가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창밖으로 톨게이트 주변에 배치된 군인들과 전차, 장갑차들이 보였다. 구형 M48 전차와 K200 장갑차들이었다. 아마 향토사단 병력들인 것 같았다.

군인들은 상/하행 양방향에서 서울을 드나드는 모든 차량들을 검문검색하고 있었다. 차량이 검문검색을 받는 동안 전차와 장갑차 위의 기관총 사수들이 차량을 정면으로 조준하고 있었다.

군인들은 모두 오른쪽 어깨에 하얀색 피아식별띠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왜 군인들이 어깨에 띠를 두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K­2C 소총을 든 군인이 버스에 올라왔다.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모두 신분증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버스 조수석에 타고 있던 공무원 아주머니가 종이 서류를 군인에게 내밀었다.

“여성 청소년부에서 왔어요. 전쟁 피해 아이들을 우성시의 보호시설로 옮기는 중이에요.”

군인은 공무원 아주머니가 건넨 서류를 읽어본 후 버스 내부를 스윽 훑어보았다. 버스 안에 어린 청소년들만 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군인은

“실례했습니다.”

공무원 아주머니에게 거수경례를 한 후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 문이 닫히자 공무원 아주머니가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나직이 말했다.

“이제는 서울 나가는 사람들도 모두 붙잡고 검문하네요.”

“간첩, 무장공비들이 여기저기서 그 난리를 치고 있는데, 뭐 어쩔 수 있나요? 정말이지, 그때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주한미군이 계속 우리나라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이 난리도 안 났을 텐데.”

“뭐, 주한미군 문제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방위분담금 문제도 그렇고, 미국도 당장 러시아, 중국, 이란 이 세 나라하고의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 같았을 테니, 주한 미군하고 주일미군까지 다 빼서 그쪽 전선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거죠.”

버스 기사 아저씨가 천천히 버스를 출발시키며 말했다.

“그런데 미국이 우리더러 전쟁하지 마라, 전쟁 중단해라 한 마디 말을 안 하는 거 보면 걔네 입장에서도 이 전쟁이 지들한테 이득이 된다는 거겠죠? 우리가 북한을 싹 밀어버리면 언제든지 중국 뒤통수를 칠 수 있게 되니까 미국도 가만히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야 모르죠. 맨날 한미동맹은 영원하다고 말은 그렇게 해왔어도 전쟁 시작하고 지금까지 별다른 지원이나 원조 하나 없는 걸 보면...... 결국 미국도 이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는데 자기들에게 어떻게 유리한지 계산기 두들기며 지켜보고 있는 거겠죠. 이래서 국제 정치는 야생이라고 하나 봐요.”

버스가 서서히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려고 할 때, 갑자기 반대편 서울로 진입하는 상행선 도로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탕, 탕, 따다다다다!

영록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총소리를 들었다. 생각보다 큰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화들짝 놀랐다.

버스 기사 아저씨도 갑작스러운 총격에 놀라 머리를 부여잡고 운전석 아래로 몸을 숙였다. 버스는 그대로 톨게이트에 멈춰 섰다.

톨게이트 주변에 있던 군인들은 모두 바닥에 엎드리거나 엄폐물에 몸을 가리고 상행선 방향에서 검문을 받던 하얀색 승용차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하얀색 승용차 옆에는 두 명의 군인이 총에 맞아 쓰러져 있었고, 상행선 도로 쪽에 있던 M48 전차 위에 군인 한 명도 기관총을 두 손으로 잡은 채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서너 명의 군인들이 중앙분리대 바리케이트를 뛰어 넘어가 하얀색 승용차의 뒤편에서 총격을 가했다. 하얀색 승용차는 군인들의 집중 사격에 순식간에 총알구멍으로 벌집이 되었다. 도로 위는 산산이 깨진 차량 유리들과 사방으로 튄 시뻘건 피로 가득했다.

쾅!

그때 어디선가 엄청나게 큰 폭음 소리가 들렸다. 영록은 자기도 모르게 귀를 막고 몸을 웅크렸다. 귀속에서 삐, 하고 고막이 찢어질 듯한 소리가 계속 들렸다.

이명이 사라질 때쯤, 반대쪽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영록이 힐끔 고개를 돌려 보니 반대쪽 창문은 새빨간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버스 밖 도로에는 군인들의 조각난 팔, 다리 몸뚱이들이 널려 있었다.

“영록아, 귀 막아! 또 온다!”

유민이 영록의 어깨를 붙잡아 눌렀다. 영록은 유민이 누르는 데로 그대로 몸을 웅크렸다.

어디선가 쌔액, 하는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리고, 한국군 M48 전차 쪽에서 폭발하며 홍염이 일었다. RPG­7V2 로켓이었다.

대여섯 명의 군인들이 로켓이 날아온 쪽을 향해 몸을 돌려 응사했다.

군인 한 명이 목에 총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군인은 입과 코에서 피를 뿜으며 고통스러움에 발버둥쳤고, 그가 흘린 피가 도로를 붉게 적시고 있었다. 영록은 그 모습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아저씨, 빨리요!”

공무원 아주머니가 외친 소리에 버스기사가 급히 액셀을 밟았다. 버스는 총격전이 계속되는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버스 창문에는 아까 묻은 핏물들이 긴 꼬리를 그리며 번져 흐르고 있었고, 버스 안의 아이들은 눈과 귀를 막고 엉엉 울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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