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4화 (4/217)

〈 4화 〉 2027년 6월 25일 (1)

* * *

­ 오전 3시, 북한 황해북도 황주군 평양­개성 고속도로 일대

한국군은 서쪽으로 사리원부터 동쪽으로 원산에 이르는 지역 남쪽을 모두 점령하며 북한군을 북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이제 한국군의 주력 제7기동군단은 평양 남쪽 송림시 인근까지 전진하며 북한군을 더욱 압박했다.

제7기동군단 예하 수기사(수도기계화보병사단) 16기계화보병여단 81전차대대의 K­2 흑표 전차병들은 야간 동안 무기 보급을 완료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전장 상황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라 그들 모두 전차 안에 쭈그리고 앉아 쪽잠을 자던 중이었다.

오늘 밤은 아침나절까지 좀 편히 잠들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들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새벽녘, 81전차대대장 송호원 중령은 여단장으로부터 급한 유선 연락을 받았다.

평양 인근에서 대기 중이던 북한의 대규모 기갑전력들이 일제히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합참에서 내려온 정보네. 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 땅크사단을 비롯, 815 기계화군단, 820 전차군단 등 북한이 가진 거의 모든 기갑전력이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이동 중이라는군. 아마 우리 군이 재령강을 넘지 못하게 막으려는 속셈이겠지. 자네 대대가 먼저 북쪽으로 이동해 북한군 기갑전력들이 재령강 일대를 봉쇄하거나 고속도로 다리를 끊지 못하도록 견제해주게.]

송호원 중령은 즉시 전 대대원을 기상시켰다.

비상 무전에 잠에서 깨어난 전차병들은 전차 안에 짱박아 둔 사단에서 보급 나온 에너지 드링크와 캔커피를 꺼내 마시며 잠을 쫓았다.

“이번엔 또 뭔 일이랍니까?”

“뭔 일이긴, 북조선 고철 덩어리들이 몰려오고 있나 보지.”

81전차대대 전차들이 일제히 시동을 걸었다. 55톤의 검은 표범(K­2 흑표 전차)들이 뿜어내는 육중한 굉음이 어두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대대장 지휘 전차를 선두로, 81전차대대 모든 전차와 장갑차들이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기동하기 시작했다.

송호원 중령을 전차 위로 몸을 내밀고 야간 투시경으로 사방을 관측하고 있었다.

81전차대대가 재령대교 다리를 진입했을 때, 후방에서 요란한 포격 소리가 들렸다. 분명 K­9 자주포의 포격 소리였다. 한두 방 간간이 쏘는 것이 아니라 마치 TOT(Time on target, 동시 탄착 사격)이라도 하듯, 전방을 향해 막대한 화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포성이 이어지던 중, 여단 본부로부터 무전이 들어왔다.

[독수리 알파(사단 기갑수색대대)로부터 전방 4km 지점에서 대규모 적 전차 부대 발견 보고 접수. 현재 사단 포병여단에서 사격 중 이상.]

“전승장 확인.”

[당소 번개 알파(여단 본부) 통사라고 알리고, 현 마이크 부로 인디언 잠자리 셋이 공중 엄호 위해 귀소측으로 이동 중이니 피아식별에 유의하라고 알림 이상.]

인디언 잠자리는 7군단 배속 17항공단의 AH­64 아파치 헬기를 일컫는 말이었다. 무전이 끝나기 무섭게 81전차대대 머리 위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세 대의 아파치 헬기가 북쪽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송호원 중령은 야간투시경으로 아군 아파치 헬기가 기동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파치 헬기들은 재령강을 건너자마자 공중에서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하고 회피 기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먼저 북한군 전차들을 발견하고 공격을 시작했던 것이다.

송호원 중령이 내선 무전기로 포수에게 말했다.

“시야에 적전차가 들어왔나?”

포수 이태근 하사가 조준경을 들여다 보며 말했다.

“이제 막 야간 열영상 장비에 희미하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거리 3,600! 피아식별 신호에 응답 없습니다!”

거리가 멀어 야간 투시경으로는 적 전차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송호원 중령은 대대 무선으로 각 전차에 지시를 내렸다.

“대대 본부와 1중대 중앙, 2중대 좌측, 3중대 우측으로 기동! 각 제대장 선두로 아머드 스피어헤드! 아머드 스피어헤드! 지금 즉시 포메이션 갖추고 적 전차들을 돌파한다!”

재령 대교를 건넌 81대대 모든 전차들이 중대별로 삼각형 화살표 모양으로 쐐기진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K­2 전차들의 민첩한 기동성 덕분에 진을 이루는 데에는 불과 2, 3분이 채 걸리지도 않았다.

[적 전차들이 거리 3,000 이내로 들어왔습니다! 명령을 기다립니다!]

2중대장으로부터 무전이 들어왔다. 송호원 중령은 망설임 없이 외쳤다.

“자유 교전! 자유 교전! 시야에 들어오는 적에 대해 자유롭게 발사!”

[확인했습니다! 교전 시작합니다!]

좌측에 있던 2중대 전차들의 주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야간 투시경을 통해, 그의 10시 방향 전방 일대가 빛으로 환하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송호원 중령은 야간 투시경을 벗고 상황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다섯 대의 북한군 전차들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우측의 3중대 전차들도 일제히 주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적 전차와의 거리는 3km 가량이나 떨어져 있었지만, K­2 흑표 전차들은 시속 45km 속도로 기동하면서도 먼 거리에 있는 적 전차들을 아주 정확하게 명중시키고 있었다. 어둠 속 저 멀리에서 폭발의 괴성과 함께 여러 개의 불꽃이 하늘 위로 치솟는 것이 보였다.

[당소 번개 알파 통사라고 알리고, 군단 인디언 잠자리 첩보로는 적 전차 T­62 계열에 전차 상부에 대전차미사일, 대공미사일 탑재한 모델이라고 전함 이상.]

여단으로부터의 무전을 들은 송호원 중령이 상기된 목소리로 되물었다.

“선군호? 폭풍호? 그럼 적 부대가 류경수 사단인가? 확인바람 이상.”

[류경수, 류경수 꼭 맞다고 알림 이상.]

송호원 중령은 묘한 흥분감에 온 몸이 전율했다.

근위 서울 류경수 제 105 땅크사단이라면 북한 전차부대의 창시자이자 1차 한국 전쟁 당시 탱크를 몰고 가장 먼저 서울을 점령한 북한의 명장 류경수의 이름을 딴 최정예 기갑부대였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최신의 기갑장비들을 가장 먼저 보급받는 부대이자, 최고의 화력을 지닌 부대이기도 했다.

북한 최고 전력을 가진 사단이 근위 서울 류경수 제 105 땅크사단이라면, 한국 최고의 화력을 가진 사단은 단연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맹호부대였다.

황주군 평양­개성 고속도로 일대에서, 남, 북한 최고의 화력을 가진 두 기계화 사단들이 정면으로 부딪친 것이다.

송호원 중령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대대 무선을 통해 각 전차에 무전을 보냈다.

“제군들, 앞에 있는 적 전차부대는 북한군 근위 서울 류경수 제 105 땅크사단이다. 1차 한국 전쟁 때 가장 먼저 서울을 점령한 부대이자, 현재 북한에 남은 최고의 전력이다. 그리고 우리가 상대하는 전차들은 북한이 자랑하는 선군호 전차다.”

그는 벅차오르는 감정으로 잠시 말을 멈추었다.

“오늘 이 시간부로, 적 105 사단의 오랜 명성은 우리 수기사가 불타는 철의 관 속에 화장시켜 버린다! 북한군 고철 탱크들은 감히 우리 흑표 전차에 상대가 될 수 없다! 각 중대, 지금 이곳 황주 벌판에 있는 모든 적 전차들을 섬멸해 버려라! 그리고 이 기세를 몰아 우리가 가장 먼저 평양까지 점령하는 거다!”

[1중대 확인!]

[2중대, 모두 부숴버리겠습니다!]

[3중대, 명령 받들겠습니다!]

81전차대대 모든 K­2 흑표 전차들이 속도를 올려 돌격하기 시작했다.

펑! 펑! 펑!

각 전차의 포수들은 자동 목표 추적 장치가 식별한 적 전차를 향해 쉬지 않고 주포를 쏘아댔다. K­2 전차는 K­1 시리즈 전차들과는 달리 전차 승무원이 전차장, 조종수, 포수 단 3명뿐이었다. 완벽한 자동 장전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탄약수가 따로 필요 없었다. 포수는 주포를 발사한 직후 버튼만 누르면 원하는 종류의 포탄을 장전시켜 몇 초 만에 다시 사격할 수 있었다.

단 5분여의 전투로 벌써 십수 대의 북한군 전차가 파괴되었다.

쌔액!

기분 나쁜 날카로운 소리가 송호원 중령의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적 전차탄이 자신의 전차 옆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적 전차와의 거리는 1km 가지 가까워져 있었다.

북한군 전차도 아군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있었다. 깡, 하는 쇳덩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왼쪽 20m 지점에서 따라오던 K­2 전차의 차제에 북한군 전차가 쏜 날탄이 날아와 맞았다. 하지만 적탄은 K­2 전차에 피해를 주기는커녕, 그대로 튕겨 나가버렸다. K­2의 전면 반응 장갑은 아예 터지지도 않았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이다.

첩보에 따르면 북한군 선군호 전차의 주포는 125mm 활강포라고 했다. K­2 흑표 전차의 120mm 주포보다 구경도 크고 주포경장도 길었다. 하지만 기술력의 한계인지, 크고 긴 포구를 갖추었음에도 그 화력과 사거리, 관통력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의 전차인 K­2 흑표를 따라오기는 무리였다.

그들도 애초부터 자신의 전차 주포로 한국의 MBT(Main Battle Tank, 주력 전차)를 상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전차 상부에 마치 잡화점이라도 차린 것 마냥 불새 대전차 미사일에 대공 미사일까지 별의별 잡다한 것을 다 붙여 놓았던 것이다.

우측의 3중대 전차들의 정면에서 폭발음과 함께 불꽃이 터졌다. 어디선가 날아온 북한군 대전차 미사일에, K­2 흑표 전차에 있는 KAPS 능동파괴체계(능동 방어 시스템)가 날아오는 미사일을 감지하고 스스로 작동한 것이다. K­2 상부에서 발사된 대응탄이 전차 정면으로 날아가 폭발하며 적 대전차 미사일을 무력화시켰다.

어둠 속에서 사방으로 불꽃과 파편이 튀는 곳이 보였다. 이제 송호원 중령은 해치를 닫고 전차 내부로 들어갔다.

“적 전차가 몇 대나 보이나?”

대대장의 물음에 포수 이태근 하가가 조준경을 눈에 댄 채 내선으로 소리를 질렀다.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몇 대 잡았지?”

“1대 잡았습니다!”

“오늘 딱 10대만 잡아. 그러면 내가 책임지고 바로 중사로 진급시켜줄게!”

“네, 알겠습니다! 오늘 10대 잡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이태근 하사가 주포를 발사했다. 전차장 조준경을 통해 1시 방향에 있던 선군호 전차의 포탑이 날아가면서 폭발하는 장면이 보였다.

이제 수기사 81전차대대 K­2 흑표 전차들은 북한군 전차들의 진형을 부수고 들어가고 있었다.

K­2 전차들은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도 포탑을 좌우로 자유롭게 돌려 옆에 있는 선군호 전차들을 박살 내며 지나갔다. 세계적 수준의 자동 사격 통제 장치에 의해 제어되는 K­2 흑표 전차들의 포격은 단 한 대의 적 전차도 놓치지 않았다.

반면 선군호 전차들은 시속 5, 60km로 질주하는 K­2 전차들을 전혀 따라잡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의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K­2 전차들을 향해 포탑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단 한 방의 포격에 파괴되어 갔다.

선군호 전차들은 K­2 흑표 전차의 측면 장갑을 노리고 있었다. 그들도 K­2 전차가 기동성 문제로 중량을 덜어내는 과정에서 측면 장갑을 많이 깎아냈다는 것 쯤은 알고 있는 듯 했다.

북한군 전차 부대는 3대씩 조를 이루어 움직이고 있었다. 두 대의 전차들이 K­2 전차와 교전하며 시야를 끄는 사이, 나머지 한 대의 차량이 신속하게 측면이나 후면으로 기동해 대전차 미사일로 공격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선군호 전차들은 K­2 전차들의 측면이 보이는 즉시 전차 상부에 붙어 있는 불새­3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했다.

하지만 K­2 흑표 전차의 측면 방호력은 생각보다 약하지 않았다. 그들의 구형 대전차 미사일로는 K­2 흑표 전차의 반응 장갑을 뚫어낼 수 없었다.

대전차 미사일이 날아오자, K­2 흑표 전차 측면에 붙어 있던 반응 장갑들이 스스로 폭발하며 적 미사일을 파괴해 버렸다. 내부에 있던 전차 승무원들은 폭발의 충격 때문에 화들짝 놀랐다가 이내 측면에서 누군가 자신들의 전차를 공격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즉시 그 방향으로 K­2 전차의 포탑이 회전했다. 그리고 단 몇 초 만에 자신들을 공격한 적 전차를 찾아내 불타는 깡통으로 만들어 버렸다.

송호원 중령은 아군 전차들이 북한군 전차들과 뒤섞이게 되자, 북한군 전차에 피격되는 게 아니라 아군 오발이 생길까 그게 더 걱정되었다.

“모든 전차, 피아식별에 각별히 유의하면서 교전! 열영상 장치로 봤을 때 전차 위에 뭔가 지저분하게 많이 달려 있으면 적 전차라고 판단해도 좋다!”

그때, 조준경에 3중대가 있는 우측에 두 개의 언덕 사이 소로길이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 생각이 떠올랐다.

“3중대장! 현망에 대기 중인 3중대장 등장 바람!”

[3중대장 송신!]

“지금 즉시 우측의 언덕으로 올라가서 고지 점령하고, 위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확인! 확인! 3중대장 명령 받들겠습니다!]

3중대 전차들이 급히 전장을 이탈해 언덕이 있는 소로길을 향해 달려갔다.

북한군들은 그들이 언덕 사이 소로길로 빠져나와 자신들의 후미로 돌아가 포위하려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3중대 전차들이 언덕 사이 소로길로 사라지자 십여 대의 북한군 전차들이 다급히 고속도로를 통해 북쪽으로 달려갔다.

3중대가 향하는 언덕은 제법 경사가 가파른 곳이었다. 북한군들은 설마 한국군 전차들이 그 언덕 위로 올라오겠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3중대 K­2 흑표 전차들이 언덕 위에 나타났다. 북한군 전차는 불가능했겠지만, K­2 흑표 전차에게 그 정도 경사는 그저 동네 뒷산 오르듯 가볍게 오를 수 있었다.

전차들은 유기압 현수장치를 이용해 전면부 궤도를 최대한 낮추고 후면부 궤도를 들어 올려 주포 포구로 언덕 아래를 겨냥하기 좋게 자세를 취했다. 이제 K­2 흑표 전차들은 마치 고정 포대처럼 좋은 자리에서 북한군 전차들의 상부를 조준할 수 있었다.

펑! 펑! 펑!

언덕 위에서 발사한 포격에, 북한 류경수 105 사단 후미의 전차들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언덕 위에서 나타난 한국군 전차들의 공격으로 북한군은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선군호 전차들은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들 스스로도 한국군 전차들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철수하기 위해 전차 머리를 돌렸다가는 장갑이 약한 후미를 내어주어 더 쉽게 도륙 날 판이었다.

북한군 전차들은 후진으로 뒷걸음질 쳤다. 다가오는 한국군 전차들을 향해 주포를 쏘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마치 다가오지 말라고 몸부림치는 것 같은 위협용 포격일 뿐이었다.

그때, 다시 한번 머리 위에 17항공단의 AH­64 아파치 헬기들이 나타나 뒤로 물러서는 북한군 전차들을 향해 헬파이어 미사일들을 날렸다.

이것으로 북한군의 전의는 완전히 꺽여 버렸다.

­ 오전 5시, 북한 황해북도 황주군 평양­개성 고속도로 일대

북한의 최강 전력이라던 근위 서울 류경수 제 105 땅크사단은 수기사 예하 K­2 흑표 전차 1개 대대에 완전히 분멸 되었다. 재령강 북쪽 평야 지대에는 100여대가 넘는 전차, 장갑차 잔해들이 아직도 불길에 타들어가는 중이었다.

송호원 중령은 전차 상부에 걸터앉아 프로틴바와 캔커피를 먹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의 대대원들이 박살 낸 적 전차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대대장님, 여단 본부로부터 무전입니다.”

전차 안에 있던 이태근 하사가 그에게 헤드셋을 건넸다. 송호원 중령은 헤드셋을 받아 머리에 얹었다. 여단장이 직접 보내는 무전이었다.

[견제하라고 보냈더니, 1개 사단을 완전히 전멸시켜 놓았더구만. 그것도 북한 최고 전력이라는 류경수 105 사단을 말이야.]

“생각보다 별거 없었습니다.”

[평양까지 점령하면 무공훈장은 떼놓은 당상이겠어. 그래, 아군 피해는 어떠한가?]

“전차 1대가 궤도가 파손되어 자체 수리 중이고, 1대는 유기압 현수장치 고장이지만 기동은 가능한 상태입니다. 또 1대는 포탑 상부 K­6 기관총이 날아갔습니다. 탄약과 반응 장갑, KAPS가 소모된 전차들은 대대 자체 보유분으로 모두 재장착 가능합니다. 인명 손실은 전사자 0명에 적탄 피격에 가벼운 타박상 환자 3명 발생했습니다. 피해 상황 보고 이상입니다.”

적 1개 사단을 전멸시키는 동안 K­2 흑표 전차들은 단 1대도 파괴되지 않았고 인명피해 조차 없었다. 여단장의 목소리에도 놀라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K­2가 실전에서 이 정도 능력을 보여줄 줄은...... 아무튼, 고생 많았네.]

“감사합니다. 전쟁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현재 북한군 815, 820 두 개 기계화군단이 평양에서 남하하다가 간동역 방향으로 우회하는 게 우리 군 정보망에 포착되었네. 아마 류경수 105사단이 재령강에서 우리를 고착시켰으면 그들이 우리 7군단 전체의 측면으로 돌아 기습하려고 했던 것 같아. 우리 사단 우측에 있는 8사단하고 11사단이 그들을 향해 이동하고 있네. 우리 사단은 1여단, 26여단이 평양­개성 고속도로 일대에 남아 방어를 하지만, 우리 여단만은 군단 예비대로 8사단 후방에서 대기할 거네.]

여단장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난 18대대에게 선두를 맡길 생각이네. 자네 81대대는 현 위치에서 좀 더 정비를 마치고 합류하는 게 좋을 거 같네만.]

“정비 후 전투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여단 본진에 합류하겠습니다. 늦지 않게 달려가겠습니다.”

송호원 중령은 결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2027년 6월 25일 오전 9시, 황해북도 금송리 일대 드넓은 평야에서 한국군 제7기동군단과 북한군 815 기계화군단, 820 전차군단이 맞붙은 2차 한국 전쟁 최대의 전차전이 시작되었다.

한국군은 공중 조기경보 통제기, 무인정찰기 및 여러 정보 자산들을 통해 이미 북한군의 모든 움직임을 제 손바닥 보듯 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폭풍호, 천마호 등 북한군 기갑부대의 대이동을 감지하고 있던 한국군은 공군의 F­15K 2개 편대와 FA­50 4개 편대로 먼저 이들을 기습했다.

북한군 전차들은 갑자기 공중에서 나타난 한국 공군기들을 피해 뿔뿔이 분산되어 버렸다. 몇몇 전차와 장갑차들이 지대공 미사일로 어떻게든 한국 공군기들을 상대해 보려 했지만, 미사일을 발사하기도 전에 한국 공군기들에게 요격되어 고철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한국 공군의 1 소티(sortie, 출격 횟수) 마다 북한군은 2개 전차대대 단위로 사라졌다. 이날 한국 공군은 7 소티의 출격 명령을 내렸다.

한국 공군의 지상 폭격이 끝나자마자 어디선가 날아온 무수한 포탄의 비가 북한군 전차들 위로 떨어졌다. 한국군 제7기동군단의 MLRS, K­9 자주포들이 금송리 일대를 완전히 초토화하려는 듯 엄청난 양의 화력을 쏟아부은 것이다.

폭격의 시커먼 포연 사이로, 한국군의 K­2 흑표 전차와 K­1A2 전차들이 북한군 전차들을 향해 물밀 들이 돌격해왔다. 그들 중에는 새벽녘 북한 류경수 105 땅크사단을 전멸시킨 송호원 중령의 81전차대대 K­2 흑표 전차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한국군 전차들은 북한군 전차들을 깡통 따듯 모조리 부숴버렸다. 이미 두 차례 대규모 폭격으로 상당수 전력을 잃고 허둥대고 있던 북한군 전차들은 한국군 전차들에 의해 선두의 전차들이 손도 못 써보고 궤멸당하자 북쪽을 향해 도주해 버렸다.

AH­64 아파치 헬기 8대가 아직 살아남은 북한군 전차들을 추격하며 사냥하기 시작했다. 한국군 전차들을 피해 달아나다 지쳐버린 북한군 전차들은 아파치 헬기의 헬파이어 미사일에 하나씩 하나씩 불타는 철의 관으로 변해 갔다. 일부 북한군 전차병들은 아예 전차를 버리고 도망치기도 했다.

아파치 헬기의 잔적 소탕을 피해 간신히 달아난 북한군 전차들과 장갑차들의 수는 815 군단, 820 군단 모두 합쳐 20여 대가 조금 넘었다. 2개 군단의 기계화 전력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결국, 살아남은 북한군은 모두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제7기동군단장은 북한군의 최고 전력이라는 815, 820 2개 군단의 부대기를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이 전투로 인해 북한군의 주력은 완전히 궤멸 되었다. 사실상 2차 한국 전쟁의 승패가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북한군의 발악은 계속 이어졌다.

북한은 11군단 소속 특수부대원들을 대거 남으로 내려보냈다. 육상 침투는 물론 AN­2기에서부터 반잠수정까지, 가용한 침투 수단들이 모두 동원되었다. 육해공 모든 방면을 통해 북한 특수부대의 대규모 침투가 시작되었다.

후방에 있던 한국군 향토사단 병력들과 동원 예비군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침투하던 북한 특수부대 병력의 2/3는 목표에 도달하기도 전에 한국군의 후방 병력들에 막혀 녹아 없어졌다.

지상을 통해 침투해오던 저격여단 등의 북한 특수부대들은 주요 이동로 곳곳에서 한국군의 저지에 가로막히며 침투가 와해되어 버렸다. 저공비행으로 침투해오던 AN­2기들은 한국군의 벌컨포대와 천마 장갑차에 의해 단 한 대도 지상에 착륙하지 못하고 하늘에서 불꽃이 되어 사라졌다.

다만, 반잠수정으로 통해 침투한 병력들의 대다수가 한국 땅에 상륙했다. 그 수로만 보면 1개 대대 병력도 안 되는 정도였지만, 그들만으로도 한국의 후방은 엄청난 혼란을 맞이하게 되었다.

­ 오후 1시, 서울 강서구 ES 아파트

[속보입니다. 북한군 특수부대로 보이는 무장 괴한들이 서울외곽순환도로를 따라 서울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우리 군의 검문에 발각되어 교전을 벌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5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있던 괴한들은 대부분 현장에서 우리 군에 의해 사살되거나 생포되었지만, 약 4, 5명의 괴한들은 도로를 벗어나 인근 산속으로 도주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군은 4명이 전사하고 7명이 부상을 당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영록은 TV 뉴스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주섬주섬 캐리어에 짐을 싸고 있었다.

북한군은 서울에 미사일로 화학 가스 공격을 한 이후 특수부대들을 투입시켜 이곳저곳에서 테러를 일으키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서울시청 등 여러 관공서와 대형 호텔 등에 폭발이 일어나기도 했고, 길거리에서의 총격전으로 한국군과 민간인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서울 시내 학교들은 모조리 휴교할 수밖에 없었고, 백화점과 상점들도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불과 몇 주 만에, 서울은 온통 전쟁에 휩싸여 있었다.

이 와중 영록은 다시 공무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영록 학생, 지금 같은 전쟁 중에 학생같이 어린 친구들이 어른들의 보호도 없이 혼자 지내는 건 위험해. 게다가 매일 같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테러까지 일어나는 판인데...... 지금 국가에서 전쟁 중에 부모님을 여읜 학생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서 학교 공부도 계속하고 생활도 할 수 있게끔 하는 시설을 준비했어. 일단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거기 있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오도록 하는 게 어때?]

영록은 이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마땅히 의지할 친척도 한 명 없었고, 이제는 전쟁뿐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까지 걱정해야 하는 판이었다.

영록은 공무원들이 가르쳐 준 대로 서울을 떠나 경기도 남부 우성시에 마련된 전쟁고아들을 위한 임시 학교로 떠날 준비를 했다.

캐리어에 옷이며 세면도구며 한동안 쓸 물건들을 가득 챙겨 넣고 집을 나서려 할 때, 영록은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거실 TV 위에 가족사진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 엄마 아빠는 여전히 밝게 웃고 계셨다.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 오후 2시, 서울 강서구 발산역

정부에서 보낸 문자에 안내된 데로 발산역 근처 정류장에 가서 조금 기다리니 관광버스 하나가 도착했다. 관광버스에서 공무원 아주머니 한 분이 내려 영록에게 물었다.

“이름이랑 생일이 어떻게 되니?”

“지영록이고, 20XX년 4월 11일이요.”

“응, 그래. 짐은 화물칸에 넣고 차에 타렴.”

영록은 공무원 아주머니가 시키는 대로 캐리어를 화물칸에 넣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는 어린아이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스무 명 정도 타 있었다. 영록은 조금 전까지 울어서 아직 눈이 시뻘건 상태였다.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울었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고개를 푹 숙이고 버스 안의 빈자리를 찾았다.

버스는 잠시 정차해 있었다. 아마 더 탈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3분 후쯤, 누군가에게 이름과 생일을 묻는 공무원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 사람이 차에 올랐다. 그러자 공무원 아주머니는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모두 탔으니 출발이요.”

하고 이야기했다. 버스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렸다.

영록은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였다. 그 때, 마지막에 버스에 오른 아이가 영록의 자리 옆에서 멈춰 섰다.

“야, 지영록.”

웬 여학생이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영록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그의 옆에 유민이 씁쓸하게 웃으며 영록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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