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2화 (2/217)

〈 2화 〉 2027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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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9시, 북한 강원도 안변군 안변읍

원산을 점령하기 위해 진군하고 있는 27사단 78연대 2대대 1중대 병력들은 안변읍 문내리 일대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 중이었다. 그들은 각자 주변 빈 건물들에 소산 해 행정보급관이 대대 본부에서 아침 식사를 추진해오기만을 목이 빠지라 기다리는 중이었다.

동부전선에서 최초로 휴전선을 돌파해 북진하고 있는 27사단은 생각보다 손쉽게 북한군을 밀어내고 있었다. 강원도 지역을 방어하고 있는 북한 전연 군단인 제1군단은 한국군의 공격이 시작되자 후퇴하기 급급했다. 전쟁 전 첩보 사항으로는 북한 제1군단 예하에 모두 8개의 보병 사단이 있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 병력들 모두 어디로 간 건지 1개 군단이 고작 한국군 27사단 1개 사단의 화력을 견디지 못하고 북으로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1중대원들이 점령한 안변읍 문내리 광장에 설치된 영생탑은 한국군 K­9 자주포 포격에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라는 원래 문구는 더는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아침밥을 기다리던 서병장은 하품하며 영생탑의 잔해 쪽으로 걸어가 시원하게 소변으로 보고 돌아왔다. 건물 입구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태우던 박상병이 그의 K­16(DSAR­15PC 군보급형) 소총과 탄창이 가득 든 방탄조끼를 건네주었다. 서병장은 주섬주섬 바지춤을 올리고 호랑이 무늬 컴뱃 셔츠 위에 방탄조끼를 입으며 중얼거렸다.

“히밤, 오늘도 전투식량 1형 나오면, 난 조식 패스할 거임.”

“옛날 전투식량 1형이나 즉각취식형 3형이나 맛은 똑같지 않습니까?”

“같은 데에서 만들어서 똑같긴 한데, 난 1형 1식단에 양념 꽁치 든 그거 나오면 난 걍 버릴 거야. 그거 비린내 너무 나서 먹고 나면 막 속이 울렁거려. 전쟁 났으면 병사들 생각 좀 해서 맛있는 거 하나라도 더 챙겨 줄 생각을 해야지, 창고에 쌓아놓은 옛날 전투식량부터 소모시키게나 하고 말이야. 이래서 책상머리 앞에서 서류나 보고 펜대나 굴리는 국방부 그 개쉐리들부터 먼저 조져야 한다니까?”

서병장은 방탄조끼 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박상병에게 라이터를 빌려 불을 붙였다.

“그나저나, 이제 우리 사단도 이 정도면 반백년의 한을 푼 거 아닙니까?”

“응? 그건 또 뭔 소리래?”

“우리 사단이 드디어 1차 한국 전쟁 이후로 북한군을 상대로 막 이기면서 북으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사단 이름이 이기자 부대가 된 게, 1차 한국 전쟁 때 북한군 상대로 한 번도 못 이기고 부대기까지 빼앗겨서, 그래서 부대 이름을 이기자로 붙인 거 아닙니까?”

박상병의 말에, 서병장은 어이없다는 듯 깔깔거리며 웃었다.

“아이고~ 논산 훈련소 조교들이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직도 믿고 있었냐? 그게 다 거짓말이라고 밝혀진 게 언젠데, 아직까지 그런 소리를 믿고 있냐, 병신아.”

“엥? 그게 다 거짓말이라고 말입니까? 그럼 다른 부대들처럼 백골, 맹호, 을지, 칠성, 이런 이름 다 놔두고 이기자로 지었답니까?”

“아, 진짜 그것도 모르고 있었냐? 우리 사단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사단장 와이프 이름이 이기자였데잖아. 그래서 사단장이 자기 와이프 이름 따서 이기자로 지은 거고.”

“에이~ 그게 더 거짓말 같은데 말입니다?”

“아~ 새끼, 사람 말 못 믿네. 그때는 해방되고 얼마 안 되고 1차 한국 전쟁도 한창일 때라 사단장 말이 법이었어. 사단장이 자기 와이프 이름으로 부대 이름 짓겠다는데, 누가 뭐래?”

“그럼, 첫 번째 사단장 와이프 이름이 김말숙이었으면, 우리 사단 이름은 김말숙 부대가 되었던 겁니까? 크크큭.”

“최향숙 부대가 될 수도 있었고, 박꽃잎 부대가 될 수도 있었지 크크큭. 그런데 이름 이게 진짜 중요한 게, 진짜 이름 짓는 대로 역사가 흘러간다니까? 봐, 이기자 부대니까 전투마다 매번 이기잖아? 그리고 우리 2대대 이름이 뭐야? 통일선봉 부대잖아? 그러니까 진짜 이번 통일전쟁 선봉에 서서 이렇게 좆뺑이 치고 있는 거 아니냐?”

“근데 진짜 신기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물론 훈련도 많이 하긴 했지만, 군 생활 동안 행보관한테 불려가서 작업한 시간이 더 많았던 거 같은데, 막상 전쟁 터지니 우리 너무 잘 싸우는 거 같지 말입니다?”

“진짜 그러게. 나도 총 들고 사격한 시간보다 예초기 들고 풀 깎은 시간이 더 많은 거 같거든? 이래도 우리가 북한 애들 바르는 거 보면 참 신기하단 말이야.”

“만약 우리가 작업에 동원될 시간에 빡시게 훈련 더 받았으면, 벌써 북한 애들 개마고원까지 밀어붙였을 거 같지 않습니까?”

“마, 내가 행보관한테 붙들려가서 예초기 돌릴 시간에 사격 훈련을 했었어봐! 지금쯤 평양을 잠입해서 김성운 대가리에 헤드샷 맞추고 이 전쟁 시마이 시켰어~!”

둘이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문내리 도로 방향으로 K­351 카고트럭 1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밥 왔다!”

건물에 흩어져 있던 중대원들이 하나 둘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소대별로 와서 전투식량 받아가! 1인당 3개씩 지급될 거니까 판초 우의에 한꺼번에 담아가!”

행정보급관이 중대 행정병들과 함께 차량에서 전투식량 박스를 내리며 소리를 질렀다. 전투식량은 즉각취식형 3형이었다. 각 소대 일병급들이 판초 우의를 들고 트럭으로 다가와 소대 전원의 전투식량을 보급받았다.

중대장도 중대무전병과 함께 트럭으로 다가왔다.

“식사 추진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대대 본부에서는 뭐 특별한 소식이라도 없었습니까?”

중대장의 말에, 행정보급관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어제, 서울 한복판에 북한 미사일이 떨어졌답니다. 그런데, 그 안에 VX 신경작용제가 들어있었다고 하더라구요.”

“VX요? 피해 규모도 아십니까?”

“아까 대대 본부에 전파된 거로는 이미 서울 시민 수천 명이 죽었다고 하더군요. 후방에 있는 애들이 열심히 제독 하고 있는 모양이긴 한데, 그게 지금도 바람에 퍼져나가는 중이어서 피해자가 계속 늘어나는 모양입니다.”

중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VX가 떨어진 곳이 서울 어디라고 합니까?”

“중구하고 영등포구라고 했던 거 같아요.”

“북한 미사일이라 이게 노리고 쏜 건지, 아니면 빗나가서 떨어진 건지는 잘 몰라도, 어쨌든 서울의 중심에 떨어졌으니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겠군요......”

중대장은 전투식량을 받아가 제대별로 식사를 하기 시작한 중대원들을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중대원 중에서도 서울 살던 애들이 몇 명 있지요?”

“저기, 2소대 서병장하고 또...... 한 4명은 될 것 같습니다.”

“이 얘기를, 중대원들에게 해 주는게 좋을까요?”

“어차피 조금만 지나면 모두가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중대원들 식사 다 하고 출발하기 전에 말씀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서병장은 소대원 후임들이 가지고 온 전투식량의 발열팩을 당기고는 모락모락 피어나는 수증기를 바라보며,

“오늘 아침 양념 꽁치 나왔으면 버리는건데, 햄볶음밥이랑 쇠고기 콩가미 든 거 나와서 먹어준다~”

라며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중대장은 그를 보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모두 식사를 마치자, 중대장은 중대 전원에게 완전군장 상태로 이동 준비를 지시했다.

중대원들이 모두 군장을 짊어지고 출발할 준비를 마치자, 소대장들은 인원 이상 유무를 중대장에게 보고했다.

이동에 앞서 중대장이 중대원 전원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는 해천리 일대까지 행군으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사단 전차 중대와 합류해 원산으로 향할 것이다. 이동 간 사주경계 철저히 할 수 있도록 하고, 각 소대장은 특이 사항이 있을 시 즉시 보고할 수 있도록. 그리고......”

중대장은 잠시 머뭇거렸다.

“너희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이야기하는 건데, 어제 북한군의 미사일이 서울 한복판에 떨어졌다. 미사일이 떨어진 곳은 서울 중구하고 영등포구. 미사일에는 폭발물이 실려 있지는 않았고 대신...... VX 신경작용제가 다량으로 들어있었다고 한다.”

이 말에, 박상병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옆에 서병장에게 말했다.

“서병장님 집이 용산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서병장의 얼굴은 이미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중대장이 말을 이었다.

“현재 후방 부대 화학대가 제독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아직 들어온 게 없다. 서울에 가족이나 지인이 있는 사람들이 지금 어떤 심정인지 이해가 간다. 단, 우리 중대의 목표가 원산 점령이니만큼 그 목표에 먼저 집중할 수 있도록. 원산 점령 후 대대에 건의해서 원하는 사람들은 집이나 가족과 연락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겠다. 그러니 모두 평정심 잃지 말고 다음 전투에 대비하도록 하자. 그럼 1소대 선두부터 출발!”

중대는 원산이 있는 북쪽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공황에 빠진 듯 표정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던 서병장은 차츰 얼굴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혼잣말을 중얼 거리고 있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조금이라도 다쳤으면...... 북한 새끼들 단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여버리겠어.”

곁에 있던 박상병은 그런 서병장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함께 길을 걸었다.

­ 오전 11시, 서울 강서구 ES 아파트

영록은 밥도 먹지 않은 채, 거실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부모님을 기다렸다.

하지만 주말이 지나도 영록이의 부모님은 집에 돌아오지 않으셨다.

언론에서는 북한군 VX 화학 가스 공격으로 서울 시민 5,000여 명이 사망하고 12,000여 명이 화학 가스 중독으로 위중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사망자와 화학 가스 중독 환자들은 시시각각 늘어나고 있었다.

이어서 한국 공군이 화학 가스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군 미사일 기지와 화학무기 저장 시설에 대해 네이팜탄 공격을 가했다고 보도가 나왔다. TV에서는 한국의 KF­21 (KF­X의 양산형 전투기)이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장면과 한국 공군의 공격에 검게 재가 되어 타버린 북한군 시설들의 항공 사진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었다.

영록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들어 TV를 보다가를 반복할 뿐이었다.

학교에서 아직 화학 가스가 바람에 실려 퍼져나가는 중인 데다가 북한군의 추가 공격이 언제 또 있을지 모른다며 수요일까지 임시 휴교한다고 문자를 보내 왔다.

영록은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휴교하지 않았더라도, 도저히 학교에 갈 마음이 나지 않던 중이었다.

주말 동안 잠을 잤는지 말았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월요일이 되었다.

점심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영록은 부모님의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핸드폰을 들어 보았다.

하지만 전화는 서울 지역 번호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였다.

영록은 잠시 받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통화 슬라이드를 옆으로 밀었다.

[지영록 군 전화가 맞나요?]

“네, 맞는데, 누구세요?”

[여기는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요. 유감스럽지만, 지영록 군의 양친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어요.]

어쩌면 영록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공무원의 말을 듣자마자 저도 모르게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지금 군에서 두 분의 신원을 확인했어요. 아직 화학 가스 제독이 다 끝나지 않아서 부모님을 모실 곳이 정해지지 않았어요. 제독이 끝나고 일이 모두 수습되는 데로 다시 서울시에서 전화가 갈 거예요. 혹시 주변에 영록군을 도와줄 만한 친척이나 어른들이 있나요?]

영록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느라 그 질문에 답변하지 못했다.

[......영록군? ......지영록군?]

영록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네...... 아뇨, 친척분들은 없어요.”

[그렇군요...... 너무 급작스럽게 슬픈 소식을 전하게 돼서 유감이에요. 마음 아프지만 저......]

영록이 다급히 말을 끊으며 외쳤다.

“지금 확인할 수 없을까요? 우리 부모님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제가 직접 가서 보고 확인할 수 없나요?”

전화 너머로 공무원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록군의 심정은 이해해요. 하지만 화학 가스 제독 작업이 모두 마무리되지 않아서 지금 거리로 나오는 건 위험해요. 서울시에서 곧 연락을 줄 거니까, 그때까지 마음 추스르면서 안전한 집에 머물러 있어요.]

이 말과 함께 통화가 끊어졌다.

영록은 그 자리에 서서 하염없이 울었다.

혼잣말처럼 엄마, 아빠만을 계속 되풀이하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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