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딸이 내게 집착한다-85화 (85/96)

〈 85화 〉 나영. (6)

* * *

“……미안해.”

“그, 그래….”

나영이가 나를 보며 사과한다. 유희가 시켜서 하긴 했다곤 하지만, 떨리는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유희야… 응?”

나영이의 사과를 본 유희는 계속 나영이를 향해 멍을 때리고 있었다. 눈빛은 나영이를 향해 겨누고 있지만, 정작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희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다가, 나한테 기대며 말했다.

“아빠… 나 어지러워….”

“…….”

취한 유희는 비틀비틀거릴 정도로 제몸을 가누지 못했고, 결국 음식에는 손에 대지 못한 채로 레스토랑을 나왔다. 나에게 축 처져 기댄 유희가 계속 아빠라며 중얼거린다.

한숨을 쉬고, 내가 말했다.

“미안해. 유희가 취해버려서… 이렇게 약할 줄은 몰랐어.”

“아니야. 반성하는 게 많아. 유희 말대로 내 잘못이야. 너를 그렇게 고생시켜 놓고, 뻔뻔하지?”

“…….”

“조금 쉬었다 갈까.”

“그래.”

나영이가 사는 동네라, 근처 공원에 가서 벤치에 앉았다. 유희는 몽롱한 상태로 내 어깨에 기댔고, 내 옆에는 나영이가 앉았다.

조금 기다리자, 유희가 내 어깨에서 몸을 뗐다.

“아빠 나 어지러워….”

“그만 갈까.”

“응.”

“자, 잠깐만. 유희야!”

“왜….”

“그… 다음에 만날 수 있을까?”

“…….”

나영이는 유희가 판단력이 흐려진 틈을 이용해서 약속을 잡으려는 거 같았다. 이 정도는 괜찮으려나, 어차피 내 쪽에서 만나자고 하려 했는데 말이지.

하지만 유희의 생각은 달랐는지, 허락해 주지 않았다.

“안 돼.”

“유희야….”

간절한 나영이의 목소리가 이쪽으로 퍼진다. 그때 왜 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현장을 나왔는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신은 내가 아니라 아빠가 목적인 거잖아?”

“……그게 아니야….”

“거짓말하지마. 계속 아빠만 보고 있었던 주제에.”

“유희야 그게 무슨──”

“……!”

예의 없는 유희에게 주의를 주려 멈춰세우자, 순간 유희와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일반적인 유희의 혀 놀림에, 나도 당황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영이가 우릴 보고 당황해하며 손을 입으로 가렸다.

“지금 둘이 무슨…!”

“당신 같은 사람한테 줄 수 없어.”

당황한 나영이에게, 유희는 확실하게, 아니, 처음부터 이게 목적인 것처럼, 나영이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아빤 내꺼니까.”

~~~

“찬희야…. 어떻게 된 거야?”

“…….”

유희의 눈치를 보니 다리에 힘이 없다. 나를 잡고 서 있는 것만 겨우 가능한 상태였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꼭 끌어안은 상태였다.

나영이는 여전히 곤혹스러운 눈빛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 밖에 나와 다시 쓴 썬글라스 뒤로 보이지는 않지만, 입 모양으로 대충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설마 용서받았다는 게….”

“…….”

눈치가 좋은 건지 나영이가 제대로 파고들었다. 어떤 변명을 할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유희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당장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의 충돌이 일어나며, 숨을 천천히 고르며 내쉬었다.

그리고 내가 대답한 답은, 유희가 들으면 화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최악의 답이었다.

“……유희가 많이 취한 거 같아.”

“그런 거지…?”

“아마 나영이 너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마음이 욱해서 그랬을 거야.”

“…….”

힘이 빠져 축쳐진 유희를 부축해서, 갈 준비를 마쳤다. 나영이도 진정이 됐는지 벤치에 놔뒀던 자기 핸드백을 멨다.

“가 볼게.”

“유희 그 상태로 잘 데려갈 수 있어?”

“전철로 10분이면 되는데 뭐. 뭣하면 택시라도 타야지.”

“하긴… 그러네….”

“유희야 걸을 수 있어?”

“…….”

유희의 상태를 보니 얼굴도 엄청 빨개졌고, 움직이질 않았다. 아무래도 택시를 타야 할 것 같다.

나영이에게 가도 된다고 말했지만, 나영이는 끝까지 나를 기다려주었다.

기다리면서 나영이가 입을 열었다.

“찬희 너도 같아…?”

“뭐가?”

“유희의 마음이랑 같냐고.”

“응. 난 유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해. 그리고 너는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잖아?”

“……헤어졌어.”

“뭐?”

“니 말대로 추궁하니까 깔끔하게 인정하고 헤어졌어. 역시 나 같이 나이 든 사람은 글렀나 봐.”

“…….”

“뭔 그런 쓰레기가 다 있어?”라고 한마디라도 해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자기가 다시 가능성이 생겼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았으니까.

나영이가 다시 한번 물어 봤다.

“그럼 다시 물어볼게. 유희가 허락하면, 너도 허락할 거야?”

“…….”

그 질문이 나에겐 자신은 유희를 설득시키기 위해 뭐든지 할 것이다라고 들렸다.

만약 나영이 말대로, 유희의 설득의 성공하고 같이 사는 관계가 된다면, 나와 유희의 관계는, 지금까지 쌓아 올린 관계는 모두 어디로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내심 무서웠다.

─유희가 널 받아줘도, 난 널 못 받아들일 거 같아.

분명 예전에 그런 말을 했었다. 그때 나도 욱한 마음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으로 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욱하는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상태다. 그래서 더 망설여진다. 유희가 적극추진한다면 모를까, 그럴 일도 없고 말이다.

“나는──”

“어, 택시다.”

망설이던 때에, 택시가 와서 손을 뻗어 멈췄다. 행운이라 해야하나 뭐라 해야하나, 말하기 참 곤란하다.

“……가 볼게.”

“응. 잘 가.”

택시를 타고 출발하자, 나영이가 뒤로 돌아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은 어딘가 쓸쓸해 보이면서도 각오를 다진 것처럼 보였다.

“신림역이요.”

“예~ 아내 분이랑 낮주하셨나 봐요?”

“…….”

친절한 기사님의 말씀에, 순간 몸이 움찔거렸다.

“네… 그렇죠 뭐.”

이 말을 하며, 나는 유희의 손을 꽉 잡았다.

~~~

정신 못차리는 유희를 가디건을 벗기고, 비교적 자유로운 공간인 내 침대에 눕혔다. 와인 한 잔으로 이렇게 취할 줄이야. 유희도 일어나면 아마 놀랄 것 같다.

나도 옷을 갈아입고 거실에 나와 누웠다.

‘으, 추워.’

막상 누우니 가을의 추운 바람이 불며 내 몸을 구석구석 훑어 오슬오슬 떨린다. 이불이라도 가져올까 싶지만 유희가 덮고 있으니 가져올 수도 없다.

“…….”

하는 수 없이 다시 내 방으로 와 유희의 옆에 누웠다. 잠든 유희의 귀여운 얼굴이 보인다. 편하게 누워서 그런지 빨개진 홍조가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아빤 내꺼니까.

나영이의 앞에서 키스했다.

분명 유희도 사람들 앞에서의 우리의 관계가 떳떳하지 않다는 사실은 알 것이다. 그래서 서로 소개할 때 나이를 높이고 낮추거나, 애매하게만 설명했다.

하지만 유희는 우리의 사정──즉, 우리가 아빠와 딸이라는 관계를 아는 사람의 앞에서 키스를 한다는 행위는 조금, 아니 엄청 위험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유희가 계획적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아니면 취해서 무심코 버릇이 나와버렸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 표정….’

나영이가 우리를 쳐다본 표정에는 당황스러움도 있었지만, 그 속에는 ‘혐오’라는 감정이 내비춰졌다.

딸 뻘되는 여자애도 아니고, 피가 이어진 딸과 그런 행위를 했는데 그런 감정이 들지 않을 리가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 본인 앞에서 그랬는데 말 다 했다.

‘역시 말하면 안 되겠지….’

얼버무렷다곤 하지만 가슴이 찔리면서도 한 편으로는 의심할까 두렵다. 저번에 지희씨가 의심했을 때는 진짜 심장마비가 오는 줄 알았으니까.

이대로 의심 없이 넘어가면 좋겠지만, 만약 유희와의 이 관계가 들킨다면… 뭐라 말해야 할지 변명이 1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빠 손….”

“응?”

유희가 나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는 것을 보아 아마 잠꼬대인 것 같다. 내가 손을 내밀자, 아기처럼 손가락을 손으로 잡으며, 그대로 다시 새근새근 코를 골았다.

“쿠울….”

귀여운 유희의 모습을 보니 흐뭇한 미소가 절로 번진다. 유희를 안아주듯 어깨를 감자, 숨어들듯이 내 품속으로 들어오며,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아빠는 유희를 선택할 거니까.

앞으로 나영이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선택하는 것은 유희다.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설령 그 결심이 모두를 상처 입힌다해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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