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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내게 집착한다-79화 (79/96)

〈 79화 〉 시연 & 수현. (14)

* * *

“……고마워요.”

“저 상무님이랑 일해서 너무 좋아요!”

“잘됐네요….”

“상무님이 말씀하신 포인트가 윗선에 더 어필 됐나 봐요!”

“아… 그렇군요.”

“아마 상무님이 기획하신대로 프로모션 진행 될 거예요!”

“네… 그러겠죠….”

“상무님?”

“대리님….”

“이름으로 불러 주세요. 반말하셔도 돼요.”

“그럼 시연씨.”

“…네.”

“일단은… 떨어져줄래?”

“앗…. 죄송합니다….”

“…….”

휴… 곤란해질 뻔했네.

~~~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내 자리를 살펴봤다. 기다란 책상이 전부 내 영역에, ㄱ자로 시현씨의 자리가 배치되어 있다.

‘오….’

이전에 사람이 있었다는 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다. 모니터도 일반적인 4대3 모니터가아닌 27인치 정도 되는 고해상도 모니터였다.

이 신세계를 만끽하는 것도 잠시, 나는 일을 해야한다. 여기에 놀러온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시연씨. 오늘 스케쥴이 뭐지?’

시연씨 같은 비서는, 아니 비서 자체를 처음 얻어본 터라 대충 TV에서 보던 것을 따라 했다. 비서가 할 일 중에 가장 기본적인 일이니까.

“아 오늘은… 일단 상무님께서 따내신 기획안의 점검이랑 보완할 부분 체크하시면 되고… 또 오후에는 잠깐 이사회에 얼굴을 비추셔야 해요.”

“이사회에?”

“네. 원칙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지만 뭐… 얼굴도장이라고 생각해 두세요.”

“아하….”

안 그래도 거북한 곳에 직접 얼굴을 비춰야 한다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거북했다.

컴퓨터 전원을 키고 앉으니, 시연씨가 옆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아까 억지로 안겼을 때 났던 좋은 향수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시연씨, 왜 내 옆자리에….”

“오늘 처음이시니까 제가 옆에 앉아서 보조하려구요.”

“괜찮아. 시연씨 할 일──”

어라, 처음 보는 사이트다. 임원들 전용 사이트인지, 회원가이버튼이 없고 로그인 버튼만 있다. 여기 다닌 지 10년이 넘지만, 본 적이 없다.

“이거 어떻게 하시는지 모르시죠?”

“…….”

“알려드릴게요~”

“그래요….”

임원의 아이디는 인사부중에서도 따로 임원들을 관리하는 팀에서 만들고, 비밀번호만 로그인 후에 자기만의 비밀번호로 바꾸게 된다.

로그인을 하게 되면, 자기 스케줄들을 업로드 하거나 확인할 수 있고, 회사의 기밀 사항이나 기타 소식들을 메일로 주고받을 수 있다. 한 마마디로 임원 전용 메신저였다.

라는 것을 시연씨가 설명해 줬다.

“그럼 기존 메신저는 못 쓰는 건가?”

“아뇨! 기존 메신저도 쓸 수 있어요. 여기에….”

“아, 여기 있네.”

메신저도 두 개 이용해야 하는 건가. 귀찮구만. 뭐… 이제 거의 기존 메신저는 쓰지 않겠지만 말이지.

요즘은 톡방으로 처리하는 기업들도 많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메신저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톡을 볼 때마다 직장인들이 보이는 톡방이 보이면, 기분이 좋았다가도 확 나빠진다. 그래서 우리 부서는 단톡방이 없어 메신저로만 거의 대화를 한다.

기존 메신저에도 로그인을 하니, 수현씨에게서 개인 메신저가 와 있었다.

「상무님, 승진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기분은 어떠신가요? :)」

「고마워. 덕분에 됐어 강 대리도 축하해.」

「ㅎㅎ」

그 메시지를 보자, 시연씨의 그 높았던 톤이 약간 가라앉았다.

“수현씨… 아니, 이제 강 대리님인가요?”

“응.”

“잡담하시느라 업무를 못 하시면 안 돼요?”

“안 해. 그리고 시연씨.”

시연씨가 밀어붙이느라 까먹었었지만, 시연씨에게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다. 이상한 오해를 해버렸으니까.

“할 말이 있는데.”

“네? 네… 아, 걱정 마세요. 비밀로 해드릴 테니까. 흥.”

“아니… 비밀로 해 달랄게 아니라….”

어딘가 삐져 있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나랑 수현씨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

“네네 그럴 줄 알았어요…네?”

“아니라고.”

“정말요…?”

“수현씨 말고 다른 사람이 있어.”

“다른… 사람이요?”

아직 유희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지만, 수현씨와의 관계에 대한 오해도 풀겸, 혹시라도 시연씨에게 이상한 짓을 하지 않겠다는 내 나름대로의 약속이었다.

“그럼… 여자친구….”

“그래.”

“식은요?”

“식?”

“결혼하실 거 아니에요?”

“….”

유희와의 결혼식, 아니 혼인신고 조차 전 세계에서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그런 근친혼이 합법이 되는 부족을 찾아야 한다. 물론 그런 곳에서 살기도 싫고, 찾기도 힘들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도망치는 것뿐이었고.

시연씨의 날카로운 질문에, 순식간에 생각이 아찔해졌다.

“하실 생각은 없으신 거죠…?”

“아니 그게… 언젠가는.”

“그럼 아직 확정난 거는 없으신 거죠!”

“……..”

곤란해하는 내 침묵을 봤는지, 시연씨가 사과를 했다.

“아, 죄송해요 상무님… 자꾸 캐물어서.”

“아냐 됐어. 다음부터 안 하면 되지.”

“네….”

“자. 이제 일하자 일.”

“넵.”

아무래도 유희와 좀 더 얘기할 필요가 있을 거 같다.

‘젠장….’

가능한 한 최악의 결말은 되지 않도록, 아니, 유희가 행복한 결말을 맞아야 하니까.

~~~

‘예산 부분은 된 거 같고….’

겨우 광고하나라고 내가 오해를 했다. 자잘한 프로젝트의 PM은 많이 해봤지만, 교육부라 대부분 회사 내부 프로젝트였고, 이런 식으로 거대한 프로젝트의 PM을 맡는 것은 처음이다. 들어가는 자금부터가 다른 것이다.

광고사 선정부터 시작해서, 모델, 그리고 내부에 있는 다른 부서들과 조율해서 홈페이지에 업로드 확인까지 전부 내가 해야 되고, 거기서 끝이 아니라 사후 판매량이나 공급, 수요를 보고 문제점과 해결 방안도 내 놓아야 한다.

“으음….”

시연씨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아서 잡무를 보고 있다. 일이 얼마나 많으면 클릭하는 소리와 타자 치는 소리가 쉬지 않고 계속 들린다. 저게 거짓이 아닌 것은 소리만 듣고도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시연씨. 우리 내부 미팅은 언제지?”

“내일모레 수요일 오전 10시요.”

“알았어.”

각 부서에 지시사항도 내가 정해서 뿌려야 한다. 속옷 광고인 만큼 앞으로 미팅은 별로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오랜만에 선다고 생각하니 조금 떨린다.

“모델도 우리가 정해야 하나?”

“네. 제가 작년에 쓴 모델들이랑, 괜찮은 분들 리스트 보내드릴게요.”

“응. 고마워.”

남성 모델과 여성 모델 둘 다 써야 하고, C컵 이상부터는 조금 째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슬렌더 느낌의 여성분을 모셔야 한다. 물론 위 사항을 표기하지 않으면 과대 광고가 되기 때문에, 주의사항에 대한 표기도 해야 했다.

한참을 진행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 됐다.

“시연씨는 점심 뭐 먹을래?”

“아, 제가 예약해 놨어요.”

“예약…?”

예약이라면 설마 저번에 그…. 거긴 아무래도 너무 비싼데….

걱정스러운 마음에 물어보았다. 시연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번에 그쪽이라면 바꿀 생각이었으니까.

“어디?”

“아, 역근처 국밥집이요. 여기 근방은 사람이 금방차니까, 예약해야 안 기다리거든요.”

“그렇군.”

사람들이 붐비는 국밥집. 예약을 미리 해놔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었다. 덕분에 시간이 조금 생겼다.

“시간이 남는데 카페라도….”

“안 돼요.”

“응? 왜?”

“오후에 이사회 있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얼굴 비추셔야죠.”

“아… 그렇지.”

“그리고… 그분께서 슬퍼하신다구요?”

“그렇…지.”

아마 시연씨는 아까 이야기를 계속 마음에 두고 있는 거 같다….

~~~

우리 회사가 대기업은 아니지만 중견급은 되다 보니 나름 임원회의실이 있다. 어디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기다란 테이블에 빙 둘러 앉는 공간이 아니라, 저번에 발표한 곳이었다.

눈에 띄지 않게 뒤쪽에 섞여서 앉았다.

“그럼 제 47회….”

나에게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사회. 나는 비등기 임원이라 참가할 자격은 없지만, 책임은 져야 하기에 다른 임원들의 얼굴을 봐 놓는 것도 중요하다. 시연씨의 말에 의하면 이사회는 1년에 2번 정도 있다고 한다.

옆자리에 앉은 수현씨가 귓속말로 말했다.

“아마 상무님 PR시간이 잠깐 있을 거예요.”

“내 PR?”

“네. 그냥 간단하게 포부만 말씀해주시면 돼요.”

“아하.”

맨 뒤에 착석했지만 어차피 나가야 한다는 말에 조금 실망했다.

“그럼 전 분기 보고를….”

엄숙하고 정중한 분위기 속에 전무이사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진행했다.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신속하게 진행됐다. 그건 그렇고, 우리 회사 꽤 잘나가는구나. 작년대비 수익이 30퍼센트나 늘다니….

계속 뇌를 간질이는 좋은 목소리에 어느새 내가 나갈 차례가 되었다.

“다음. 이번에 새로 부임된 김찬희 상무이사를 소개하겠습니다.”

“상무님 화이팅!”

시연씨의 응원아래, 최대한 침착하게 무대로 올라왔다.

“이번에 새로 상무이사직을 맡게 된 김찬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중요직을 맡은 만큼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잘했나? 하고 시연씨쪽을 보자 최고라는 싸인을 날린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도 박수를 쳐주며 무사히 마무리 됐다.

뭔가 이것저것 의견이 왔다 갔다 할 줄 알았는데, 이 양반들도 귀찮은지 나오는 안건들을 대부분 가결했다. 그렇다고 대충 넘기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회사의 운명이 걸려 있으니까. 아마 비상사태가 아닌 이상 이렇게 넘기나보다.

오래 걸릴 줄 알았던 회의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고, 재빨리 현장을 빠져나가 사무실로 복귀했다.

“죽는 줄 알았네….”

“고생하셨어요!”

“고마워.”

시연씨가 찬물을 갖다주며 말했다. 아깐 보지 못했는데 미니 냉장고가 있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시자 말랐던 목이 다시 축여졌다.

“아, 상무님, 휴게실 보실래요?”

“휴게실도 있어?”

“네!”

시연씨를 따라 가니 다른 곳과는 다르게 투명한 유리창이 아닌 벽이 있는 공간. 문패에는 휴게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

바깥에서 햇빛이 들지 않지만, 환풍기가 있어 그렇게 답답하진 않았고, 다과나 소파가 있어서 5~10분 정도 쉬기엔 충분했다. 실질적으로 쉬는 시간이 어디 있겠냐마는….

“잠시 쉬다 가요.”

“응.”

시연씨가 문을 닫고, 은은한 주황색의 조명이 탁, 켜졌다. 덕분에 어둑어둑한 방에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상무님….”

“응?”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리고 왠지 모르게, 시연씨의 표정은 씨익 웃고 있는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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