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일본여행. (E)
* * *
‘어떡하지…?’
이대로 계속 붙어 있을수도 없는 노릇이고, 유희가 직원들에게 물어 봤지만 없다고 말했었다. 뭔가 좋은 방법이….
“유희야 잠깐만 기다려봐.”
한쪽에 보이는 기념품 가게. 흰 복고양이가 팔을 흔들고 있는 마네키네코부터 시작해서, 부채나 장식품 등등 각종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그중에는 긴 수건 역시 있었다. 유희가 옷을 가리고 있는 동안, 서둘러 뛰어가서 수건을 사 왔다.
“이걸로 가려.”
“응….”
분홍색과 보라색, 흰색의 사각형이 이어 붙여진 유카타에 핫핑크색 배경에 구름 문양이 새겨진 수건을 두르니 가릴곳이 가려지면서도 고풍스러운 느낌이 들어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유희가 어지간히 마음에 든 건지 수건을 애지중지 하는 것 같아 기뻤다.
“어때?”
“잘 어울려.”
드디어 제대로 된 온천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가장 먼저 궁금했던 것은 야외에 있는 족욕탕. 평범한 공원처럼 꾸며져 있고, 꽃이나 나무도 심어져 있어서 자연과 함께하는 느낌이 든다.
족욕은 길을 따라 온천수가 흐르고, 그 길목에 앉아서 발을 담근다. 유희 말로는 저 온천에 혈액순환이 잘되는 효과가 있다나 뭐라나.
약간 저녁 시간대라 그런지 이미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었다. 맨발로 나와야 돼서 그런지 약간 시려웠다.
“아빠.”
“응?”
“진사람 저기 지나가기 할래?”
“저길…?”
유희가 가리킨 곳은 지압판.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로 된 지압판이었다. 딱 봐도 아플 것같이 솟아오른 길을 밟아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어렸을 때 뭣도 모르고 밟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플 텐데….”
“난 괜찮아. 안 할 거야?”
“……할게.”
“가위 바위~”
결과는 나의 패배였다. 아들딸 이기는 아빠는 없다지만, 이번엔 그냥 내가 못해서 진 거다.
……솔직히 진짜로 안 봐주려고 했는데.
“밟아라! 밟아라!”
유희가 신난듯이 작은 소리로 외친다. 무섭긴 하지만 진 건 진 거니 어쩔 수 없다.
“아파파파파파파…!”
“아빠 완전 웃겨~”
발 뒤꿈치부터 시작해서 가운데의 혈을 찌르는 감각. 뒤꿈치는 굳은살이 배겨 있어서 참을만 했지만 나머지는 예외 없이 엄청 아팠다.
조금 더 있어볼까라는 생각도 들지도 않고 바로 나와 버렸다.
“그렇게 아파?”
“유희 니가 밟아봐.”
“나는 아무렇지도 않── 햑!?”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매.”
“……취소.”
다리가 얼얼한 느낌을 안고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서 앉았다. 약간 미지근하면서도 찬 온천이 이미 돌고 있는 혈액들의 순환을 더 촉진시키는 느낌이 든다.
‘여기도 지압….’
물 바닥에도 두꺼운 돌로 이루어진 지압지대가 있었지만, 다행히 다 뭉툭해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유희가 살짝씩 물장구를 치며 카메라로 내 다리랑 같이 찍었다.
“후우….”
좀 있으니 여름이라 그런지 저녁 바람이 약간 더워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유희도 더웠는지 옷깃을 펄럭 거리며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부채도 사 올걸. 살짝살짝 보이는 브라가 왠지 모르게 주변에 혹시 보는 사람이 있나 경계하게 만들었다.
“이제 저녁 먹을까?”
“응.”
내부가 각종 편의 시설과 놀이들이 가득해서 그런지 막상 배를 채울 만한 것은 라멘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른 날에 밖에서 먹을 때와는 다르게, 점원에게 번호를 말해주면 그 번호를 해다주는 식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좀 빨리 먹은 건지, 우리가 앉아서 젓가락을 들자 비어 있던 테이블들이 하나둘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좀 빨리 타이밍을 잡아서 먹길 잘한 것 같다.
“저건 뭐지…?”
라멘을 먹으면서 보이는 탈의실쪽 공간. 그 옆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사람들을 보며 유희에게 물었다.
“유희야 저기엔 뭐 있어?”
“저기? 찜질방.”
“아~”
“가 볼까?”
“그래.”
그릇을 반납하고 후식으로 구석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았다. 예전에 명동에서 본 적있던 기다랗게 뽑는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녹차 아이스크림 한 번 먹어볼까?”
“나는 초코로….”
오락실에서도 봤었지만, 아이스크림 종류가 참 다양하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녹차맛을 느끼고 싶진 않았다. 애초에 녹차도 별로 좋아하지를 않으니….
유희가 맛있었는지 나에게 아이스크림 끝자락을 내민다. 뭔가 간접키스 같아서 괜히 부끄러워졌다. 이미 할 거 다 한 사이이긴 하다만….
“어때?”
“음….”
역시 녹차맛은 별로였다.
~~~
“조금 이따 봐.”
“응.”
찜질방에 들어가기 앞서 목욕을 하러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산중에 바깥 경치를 보며 운치를 즐기는 온천을 생각을 했었지만, 야외가 있다는 것 빼고는 일반 대중목욕탕과 같아서 약간 실망했다. 그래도 온천물이 온천물인지라 뭔가 느껴지는 게 있긴 있었다.
“후우….”
뜨뜻한 물이 온몸에 스며들며 피로가 풀린다. 수건을 양머리로 싸는 것을 보고 따라 하긴 했지만, 역시 실패해서 결국에는 어깨에 걸쳤다. 진짜로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아….”
얕은 신음이 절로 나온다. 목욕탕에 들어온 것도 실로 오랜만인 것 같다. 유희와 같이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혼탕이 아니니 어쩔 수 없다.
‘슬슬 나갈까….’
10분 정도밖에 있지 않았지만 젤리가 녹아버리듯이 녹을 것 같다. 같이 들어온 사람이 있었으면 모를까, 혼자서 이렇게 있으니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고, 왠지 적적한 느낌만 들어 빨리 나와서 유희와 함께 있고 싶었다.
샤워를 하고 탕을 나오니 유희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좋았어?”
“응. 싹 풀렸어.”
“저기 들어가면 자겠네?”
“그럴 수도….”
돈을 내고 체험할 수 있는 암반욕이라고 불리우는 찜질방 비슷한 공간. 각각 계절을 상징하는 공간에서 쉴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오….”
나츠노 아이다라고 하는 공간. 약한 한증막 비슷한 기온이 느껴진다. 따뜻한 바닥에 누우니 잠이 솔솔 오는 기분이었다.
“아빠 진짜로 잠들면 어떡해!”
“아, 아니. 안 자….”
사실 껌뻑 졸았지만 유희덕분에 정신이 들었다. 밤하늘 같은 짙은 남색의 천장에 작은 별들이 그려져 있어 은하가 흐르는 거 같아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아빠.”
“…안 가려도 되는 거야?”
“우리 둘 밖에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유희 쪽을 보자, 수건을 걷은 유희의 가슴이 눌린 것이 보인다. 우리만 있어서 다행이지, 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큰일 날 뻔할지도 모른다.
“츄읍….”
눈을 마주친 유희가 꼬물 꼬물 올라오며 서로 눈이 맞았고, 누운 자세 그대로 키스를 했다. 가볍게 하려 했지만 생각보다 깊게 들어오는 바람에 좀 당황했다.
“하아….”
입을 떼자 진한 은색실이 베개에 늘어진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 역시 좀 무서웠다.
“헤헤….”
“유희 너….”
“읏!?”
유희가 벗은 수건을 가지고 우리의 어깨를 감쌌다. 덕분에 뭔짓을 하든 수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가린 수건 밑으로 내가 할 짓은 하나.
“아빠 어딜 만지는 거야…!”
“우리 둘 밖에 없잖아.”
유카타 밑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어루만진다. 브라가 방해되긴 했지만 그래도 유희를 당황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유희가 엄청 얼굴을 붉히면서 뒤로 돌았다. 그런 유희의 뒤에 바싹 붙어서 안아줬다.
“흐윽!?”
유희는 너무 대담하다. 아무리 둘만 있어도 그렇지, 아빠로서 교육을 좀 해 줘야 된다.
게다가 그런 키스를 해버리면 나도 흥분할 수밖에 없잖아….
“아빠 잠깐마안…!”
라벤더향 샴푸냄새가 내 코를 간질인다. 분명 가슴을 만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도 유희가 엄청 부끄러워했다. 나한테 그런 짓을 했으면서 막상 부끄러워하니까 귀엽다.
“우우….”
“하하하. 미안해.”
“흥.”
화가나 보이는 유희가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 뒤를 따라붙었지만 이쪽을 아는 채도 하지 않았다.
‘너무 심했나….’
설마 진짜로 화난 건 아니겠지?
~~~
유희가 향한 곳은 후유노 아이다. 나츠노 아이다에서 흘린 땀을 식히기에는 재격인 공간이었다. 우리나라 찜질방의 얼음방 같은 구조였다. 얼음이 쌓이지 않은게 차이점이긴 하지만.
“…….”
여전히 꽁해져 있는 유희에게 뭔가 기쁘게 해 줄 만한 게 없을까 찾아봤지만 딱히 생각나진 않는다. 싸운적이 없어서 그런가 꼭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전부 유희가 일방적으로 용서해주는 게 대부분이었으니까.
찬 곳에 있으니 마음이 진정되면서 내 잘못이 뭔지 깨닫게 된다. 귀여운 장난으로 치부하면 될 걸, 굳이 되돌려 줬기 때문이다. 분명 사람들이 들어올 수도 있었던 건데, 내가 너무 경솔했다.
“미안해 유희야.”
“뭐가…?”
“아빠가 너무 들뜬 거 같아.”
“……바보.”
“아하하….”
기분이 풀어진 유희가 내게 안긴다. 유희의 체온 때문에 차가운 방도 금방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제 가자 아빠.”
“응.”
탕에 한 번 더 들어갔다 나오니 이미 유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늦은 시간이라 막차시간이 빠듯했다.
겨우 도착한 숙소. 서로 뭐라 할 것 없이 축 늘어지며 침대에 누웠다.
“내일이면 돌아가네….”
“응….”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다만 길든 짧든 유희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내가 몇백년을 살 수 있다고 해도, 유희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이 소중한 관계를 부술 수는 없다. 어떤 형태로든 이어 붙일 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지탄할지라도 나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