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일본여행. (15)
* * *
‘역시 일본 물가는 너무 비싸다니까.’
러브호텔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모텔보다 비싼 건 확실하다. 그런 곳을 두번씩이나 가버렸으니, 생각보다 남은 돈이 빠듯했다.
“아빠 나는 준비 다 됐어.”
“응.”
유희와 러브호텔을 나와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솔직히 조금 허리가 삐걱 거려서 침대에 누웠다.
“자는 거야?”
“아니… 허리가 좀 아파서….”
“나도 허리 아픈데….”
“…….”
하긴, 어제 그런 이색적이랄까, 생전 처음해보는 섹스를 해봤으니, 유희가 아픈 건 당연하다. 역시 무리했구나….
내가 팔을 뻗자, 유희가 가방을 벗고 내 품으로 들어와 팔을 베었다. 웅크려서 안기는 게 꼭 아기 같았다.
“아빠 냄새….”
“아마 유희 냄새일걸…?”
“아니거든.”
“하하하.”
서로 장난도 치며 온기가 점점 따뜻해진다. 에어컨을 틀었지만 전혀 춥지 않았다. 아침이라 그런지 밖에서 자동차 시동 걸리는 소리,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가 났지만, 그것도 곧 잠잠해졌다.
“평생 이러고 싶다.”
“일은 해야지.”
“……그건 그래.”
순간 누워서도 돈이 들어오고 있는 위대한 사람들을 상상했다. 어렸을 때 코인좀 사둘걸. 지금이야 거의 하락세긴 하지만.
“오늘은 뭐할 거야?”
“음… 아빠가 하고 싶은 거.”
“내가?”
“응. 지금까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했으니까.”
“음….”
일본와서 유희가 짜준대로 여행하고, 또 만족했다. 그러니 막상 내가 뭘 하고싶다고 해도 아는 것도 없고, 관광도 다 했는데, 딱히 뭔가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음… 일본하면 생각나는 거….
“아.”
“하고 싶은 거 생겼어?”
“온천을 안 가봤네.”
“그러네?”
유희가 내 품에서 빠져나오더니, 핸드폰을 꺼내 검색하기 시작했다. 오다이바라는 곳에 유명한 온천이 있다고 한다.
“좋네.”
“여기로 갈까?”
“응.”
“그럼 바로──꺅!”
일어서려는 유희의 손을 잡아 옆으로 눕혔다. 유희가 심술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아빠 너무 게으른 거 아니야?”
“그치만 유희랑 좀 더 이러고 싶은 걸….”
“으으… 말만.”
“그럴리가 없잖아.”
“응….”
그리고 그 상태로 15분 정도 더 있은 후, 잠드려는 나를 유희가 강제로 깨워서 혼났다.
처음으로 혼나는 순간이었다.
~~~
온천에 가기전에, 신주쿠에 다시 한번 들렀다. 유희가 살 게 있는 듯 했다.
“나, 나는 6층에 있을 테니까. 아빠는 주변 좀 돌고 있어봐.”
“응.”
뭔가 그 때처럼 나를 깜짝 놀래키려고 코스프레 의상 같은 것을 살 거 같아서 기대 됐다.
계단 형으로 되어있는 광장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ㄷ자형 건물. A동 B동으로 나뉘어서 운영하는 듯하다.
안쪽에는 에스컬레이터를 중심으로 길게 펼쳐져 있고, 지그재그 형태가 아니라 1층부터 7층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을 보니 흔히들 천국으로 가는 계단 같았다.
“명품도 파네.”
X넬, X이비똥은 기본이고, 여러 일본의 유명 브랜드도 같이 팔고 있었다. 그 중에 내 눈길이 가는 건 만년필이었다.
“오….”
그중에는 최 과장이 쓰고 있던 만년필 브랜드도 있었다. 최 과장 말로는 일본 3대 만년필 기업이라나 뭐라나. 그래도 디자인이나 직원들을 보니 최 과장이 괜히 허풍으로 말하는 것 같진 않았다.
“いらっしゃいませ。(어서오세요)”
“아…. 하이.”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직원이 인사 하자 뇌가 새하얘졌다. 역시 외국어로 소통하는 건 어렵다.
“메이 아이 헬프 유?”
“아, 노 땡스.”
다행히 점원이 내가 곤란해 하는 것을 알아챈 듯, 영어로 말해서 안심하고 구경할 수 있었다.
갈색의 둥글고 금으로 장식 되어 있는 만년필 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특이하게 생긴 만년 필이 많았다. 이참에 하나 장만할까 싶었지만, 기본 1만엔이 넘는 것을 보고 일찌감치 포기했다.
일반 볼펜도 세련되고 샤프한 스타일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검정색 무광으로 된 볼펜이 제일 맘에 들었다. 물론 가격이 만년필보다 싸긴 했지만 일반 볼펜과는 비교해서 엄청 비쌌다.
“역시 명품은 명품이구만.”
간만의 명품 눈호강을 끝내고 유희가 있는 6층으로 올라갔다. 둘러보니 전부 지갑 브랜드다. 아마 일본에서 유명한 브랜드 같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니 유희가 점원과 대화하고 있었다.
“유희야.”
“아, 아빠. 구경 벌써 끝난 거야?”
“응. 브랜드 다른 거 말고는 별거 없던데?”
“아, 알았으니까 밖에서 기다려 줘….”
“알았어.”
유희가 놀랐는지 엉거주춤 하는 자세를 잡는다. 이럴줄 알았으면 좀 더 늦게 올라올 걸 그랬나….
바깥에서 몸을 풀고 있자, 유희가 뭔가를 들고 나왔다.
“뭐 샀어?”
“이거….”
유희가 검정색 무광에 흰 리본으로 묶인 상자를 내게 건내줬다. 조금 긴 직사각형의 상자. 유희의 시선이 슬쩍 나를 피하고 있고, 나는 리본을 풀어 상자를 열었다.
“이건….”
“어때…?”
검정색의 가죽으로 된 긴 장지갑. 가죽도 좋은 가죽을 썼는지 부들부들하고 잘 닫히는게 좋아보였다. 게다가 겉에는 영어로 K.C.H라고 내 이니셜까지 써 져 있었다.
“이걸 왜….”
“아, 알바한 돈으로 모아서 샀어. 지금까지 선물해준 적 없으니까.”
“…….”
이미 이 여행 자체가 선물이 되었는데, 유희에게 직접 선물을 받으니 뭔가 가슴이 감개무량했다. 평생 받은 적 없는 선물을 받다니….
“고마워.”
“괜찮아…?”
“응. 엄청.”
바로 지갑을 꺼내서 거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새 지갑 속에 넣었다. 넣을 공간도 많아서 다 넣고도 오히려 남았다.
“아빠!?”
유희를 있는 힘껏 안아줬다. 뭔가 주변에 염장질처럼 보일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 표현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처음으로 딸에게 받은 선물은 죽어서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마워 유희야.”
“오, 온천이나 가자!”
“그래.”
그 말을 하는 유희의 얼굴은, 역대급으로 빨갰다.
~~~
야마노테선을 타고 신바시역에 와서, 유리카모메라는 열차를 타면 오다이바로 올 수 있다.
“오…!”
SF영화나 놀이공원 메트로에서나 보던 도시 위에서 달리는 열차는 처음 타본다. 우리 동네에도 경전철이 나오면 이런느낌이려나.
열차는 두 칸으로 되어있고, 우리나라 신분당선처럼 완전 무인 운행인지 운전하는 사람이 없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도시 위 레일에서 열차가 달린다. 고층 빌딩 사이를 지나가며, 우리가 타고 있는 열차가 건물 유리에 비췄다.
“그렇게 신기해?”
“남자는 원래 이런 거 못참거든.”
대부분 남자들은 로봇, 기계를 보면 일단은 신기해할 것이다. 뭔가 맞물리며 돌아가는 느낌을 보면 꼭 내가 만든 것처럼 괜히 몰입하게 된다니까.
한참을 신기해 하며 감탄하자니, 벌써 오다이바에 도착했다.
“저기야?”
“응.”
아마 작정하고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에서 나오자 바로 온천 같은 곳이 보였다. 지붕이 있어 뭔가 전통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옷갈아 입고 봐.”
“응.”
내부가 우리나라 찜질방과 비슷했지만, 옷은 달랐다. 여행용 유카타. 잘못하면 벗겨질 것 같아서 일단 속옷은 챙겨 입었다.
다른 사람이 옷을 입는 것을 보고 대충 눈치보며 입었다만, 이렇게 입는 게 맞는 건가…?
“와….”
탈의실을 나오자, 안쪽에는 또 하나의 도시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천장에는 전등이 메달려 있고, 각종 음식점들이 즐비했으며, 앉을 수 있는 테이블도 있었다. 실내이면서도 이정도 공간감을 재현했다니 놀랐다.
“아빠.”
“어. 왔어?”
유희도 탈의실에서 나왔다. 부끄러운 듯 가슴팍을 가리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유희야?”
“…없었어.”
“뭐가──...!”
유희가 나한테 꼬옥 안겼다. 나를 치켜 올려 보자, 옷이 가릴 수 없어 브라를 착용한 가슴골이 파인게 굉장히 눈에 띄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보면 치녀라고 오해할수도 있다.
“유희야 옷이….”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
……이걸 어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