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일본여행. (11)
* * *
“아빠?”
갑작스러운 유희의 태도에, 순간 뇌가 정지해서 사고가 멈췄다.
“아… 응.”
“어디 아파?”
“유희야 일본 와서 무슨 일 있었는지 기억 안 나?”
분명 우리는 밤새도록 섹스를 하고, 심지어 야외 섹스까지 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기억 상실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절도 가고… 스카이트리도 가고… 어제는 불꽃놀이 봤잖아?”
“……그리고 러브호텔에….”
“그런 델 왜 가?”
“……!”
연기인지 진짜인지 모르겠다. 일본에 와서 있었던 일을 기억을 하고는 있지만, 섹스에 관련해서 기억은 잊었다. 연기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연기라고 믿고 싶다.
“그럼 이건….”
유희가 뽑아온 쇼핑백에 있는 메이드복을 보여줬다. 언제 빨았는지, 땀범벅이라 생각했던 메이드 복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아 그거 나중에 보여 줄려 했는데 왜 열어버린거야!”
“…….”
“진짜. 몰라. 씻을래.”
뾰로통한 표정이 평소에는 귀엽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부정당하고 있다.
어제 입었던 유카타도, 단순히 불꽃놀이 때 입었다고만 기억하고 있다.
“…….”
마지막으로 유희에게 상기시켜 줄만한 무언가. 어제 챙기고, 아침에 비닐봉지에 싸서 버린 쓰레기통에 있는 그것.
‘없어…?’
쓰레기통이 말끔하게 비워져 있다. 분명 어젯밤 내가 버려놨는데, 아무 흔적도 없다.
“아빠 쓰레기통은 왜 뒤져?”
간단히 세안을 하고 나온 유희가 나를 발견했다.
“아니 그게….”
“오늘 아빠 이상해. 이러다가 기차 늦는다구.”
“…….”
유희가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챙겨 입는다. 검정 탱크탑 위에 속이 다 비치고 위를 다 덮지 않는 흰색 루즈 반팔티를 입고, 바지는 꽉 조이는 칠부 레깅스를 입었다.
“그럼….”
그게 내 눈에는 일부러 부정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꺄아아!!!”
“이래도… 기억 안 나?”
옷을 갈아입은 유희를 밀쳐서 넘어뜨렸다. 티셔츠를 걷어 올리자, 유희의 큰 가슴이 본격적으로 부각된다. 아마 이대로 선을 넘어버리면, 유희의 기억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아, 아빠아… 왜 그러는 거야….”
“…!”
하지만 유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벌벌 떨고 있었다. 강간범한테 강간당하기 직전의 얼굴이었다.
“허, 허억….”
이성이 돌아오고, 몸을 뒤로 물린다. 유희의 몸이 굳은 것처럼 아직도 벌벌 떨리고 있었다.
“미안해 유희야….”
아마 기억이 왜곡되어 있던 건 나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유희와 몸을 겹친 건 전부 상상이었고, 사귄다는 행위 조차 그때 내가 알몸으로 유희를 안았다 는 충격에 그냥 내가 멋대로 상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
혹시나해서 핸드폰을 열어 보자, 나와 유희가 옷을 입고 찍은 평범한 사진 외에 섹스하면서 찍은 사진은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유희에게 하려고 한 행위는 강간하려고 했던 것밖에 안 된다.
“아빠….”
머리를 쥐어싸매고 있는 나를 유희가 다가와 안아줬다. 분명 난 유희를 범하려고 했는데, 심성착한 유희는 이것마저 감싸려고한다.
“미안해….”
“아니야 아빠! 내가 아빠 신경 못 써서 미안해….”
“아니야… 나는….”
“맞아. 아빠는 가족이야. 내가 태어난 게 의도치 않았다고 해도, 고아원에 맡겨졌어도. 아빠는 내 아빠고, 나는 아빠의 딸이야.”
“……용서해 주는 거야…?”
“응.”
유희를 낳고 20년간 계속 후벼파던 상처가 있었다. 유희에게 용서 받지 못한 일. 유희를 계획하지 않고 낳아 버린 일. 가장 중요한 어린 시절을 부모없이 보내게 한 일.
그리고, 유희의 고백을 받아줘서 지금에 이른 일.
기쁘다고 해야할까, 뭐라고 해야할까, 감격스러운 마음에 눈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어!? 아빠!? 울어!?”
“아니…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뭐야 그게… 후훗.”
유희에게 기댄 나를 한참을 안아주던 유희가 내 몸에서 떨어졌다.
“뒤로 돌아줄래?”
뒤로 돌자 부스럭거리며 유희가 옷을 벗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나에게 덜 자극적인 옷을 보여주려고 하는 거겠지. 우린 가족이니까.
“이제 됐어.”
하늘하늘한 흰색 원피스에, 허리에는 분홍색 리본 벨트를 둘렀다. 밀짚모자를 써서 그런지 더 산뜻하게 보인다. 청순한 유희 그 자체였다.
“어때…?”
“응… 예뻐.”
“다행이다.”
유희가 한 바퀴 돌면서 치마를 휘날린다. 그 안에 살짝 보이는 흰 속바지를 보니 정말로 나를 유혹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였다.
“…멍때리지 말고 빨리 씻어.”
“아, 응….”
일본여행 3일째, 우리는 가족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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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다 역에서 츄오쾌속선을 타고 오츠키역, 오츠키역에서 후지급행열차를 타면 후지산을 볼 수 있는 카와구치코역에 도착할 수 있다.
“사람 엄청 많다.”
“그러게….”
아침 일찍 움직여서 그런지 출근시간이 겹쳤다. 알고만 있던 한국보다 심한 도쿄의 지옥철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8시 반이라 괜찮다고 생각 했는데, 방심했다.
“中に?ってください!!!(안쪽으로 들어가 주세요!!)”
지옥철인 것과는 별개로, 여러 명의 역무원들이 줄을 통솔했다. 탑승하는 플랫폼마다 서서 놀이공원의 줄을 끊는 것처럼 일정 사람이 타면 밧줄로 줄을 끊어 기다리게 한다.
그마저도 기존 허용량 초과라, 진짜로 빵빵해진 지하철을 역무원이 밖에서 억지로 밀어 넣어 결국 지하철 문이 닫혔다. 문이 휜 것이 딱 봐도 보일 정도로 안은 지옥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납작쿵되지 않으려나….’
열차를 두어 번을 더 보내고서야 우리가 탑승할 수 있었다.
“유희야 괜찮아?”
“응.”
다행히 가장 안쪽으로 가서 유희를 벽에 기대게 하고 벽을 짚어 버텼다. 생각보다 더 사람이 밀려와서 버티기 힘들었다.
일단 사람들이 많이 내릴 것 같은 역까지 버텨야 한다. 유희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더니 신주쿠역이 환승선이 많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도 신주쿠는 강남 같은 곳이니, 아마 사람들이 많이 내리긴 할 것이다. 빨리 좀 도착했으면 좋겠구만.
「まもなく……。(이번 역은…)」
조금 버티자 드디어 신주쿠역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후지급행을 타야 하는 오츠키역에 가려면 앞으로 한 시간 반은 더 타야 되는데, 이번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리지 않는다면 낭패를 본다.
“オオ!(어어!)”
“윽!”
뭔가 미스가 난 건지, 갑자기 열차가 급정차하면서 승객들이 우리가 있는 앞쪽에 쏠렸다. 필사적으로 버텨보려했지만 이 많은 무게를 혼자 지탱하는 건 무리였다.
“끅!”
“유희야 괜찮아!?”
“아… 으응. 괜찮아.”
자세를 잘 잡아 다행히 유희의 얼굴을 쳐서 뒤통수를 벽에 박는 일은 없었다.
‘잠깐만 이건….’
대신 유희와 밀착하면서, 유희의 가슴이 내 아랫쪽에 닿았다. 유희는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무슨 표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お客にお?します。??、人が?すぎるので……。(승객 여러분들께 알립니다, 현재, 탑승인원이 너무 많아….」
안내 방송이 나온 후, 열차가 또 급출발하다가 다시 또 멈추는 바람에, 두 번이나 유희의 가슴과 닿았다 말았다를 했다. 부드러운 촉감 덕분에 조금씩 혈액이 쏠리기 시작했다.
‘위험해…!’
「おり?えは、??です。(출입문은 왼쪽입니다)」
겨우 조금만 더 있으면 유희에게도 느껴질 무렵, 겨우 정차에 성공한 열차의 문이 열렸다. 예상대로 사람들이 많이 내리고, 공간이 조금 널널해졌다. 자리도 하나 나서 유희를 앉혔다. 오츠키역에 가려면 한참 멀었으니까.
‘안 들킨 건가….’
다행히 유희는 눈치채지 못한 듯, 오늘 갈 곳을 검색하며 신나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이 쓸쓸했다.
네 정거장을 더 가자, 유희의 옆에 앉아 있던 사람도 내렸다.
“휴우….”
“덥지 아빠?”
“응… 고마워.”
챙겨 온 핸드백에서 휴대용 선풍기를 꺼내 내게 쐬 주었다. 밖에서 쐬면 효과가 미미하지만, 에어컨 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한 지금 쐬니 찬 바람이 확 느껴졌다.
‘벌써부터 졸면 안 되는데….’
찬 바람에 바깥 태양볕이 느껴져서 졸음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일찍 일어났는데, 아까 사람들과 씨름하느라고 체력을 다 쓴 것 같다.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것을 유희도 알아챘는지, 내 머리를 잡아 자기 어깨에 기댔다.
“자도 돼.”
“아냐 괜찮은데….”
“그럼 내가 기댈래.”
“……그래.”
유희가 내 어깨에 기대자 좋은 샴푸향이 난다. 두근거리기 보단 편안 하면서도 나른한 체온이 내 졸음을 가속시킨다.
“아빠도 기대.”
“아….”
이대로 꾸벅꾸벅 졸다가 옆사람을 쳐도 민폐라 차라리 유희에게 기대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섰다. 무겁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유희는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성욕보다는 사랑이 느껴지는 옳게 된 관계. 우리의 관계는 애초부터 잘못됐다. 아니, 증거가 없는 이상,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나의 망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영원히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오늘 용서 받았다. 그것만으로 나는 만족한다. 앞으로 어엿한 우리딸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는 것이 내 과제다.
뭔가 유희 덕분에 한 층 더 성장한 기분이다. 역시 내 딸 답다. 자랑스럽다. 최고다.
‘그래. 이걸로 된 거야.’
나는 눈을 감았다. 유희도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제발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감춘 채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