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일본여행. (9)
* * *
저녁에 있을 여름축제를 위해, 우에노역 근처에 있는 백화점에 들렀다. 여느 백화점이 그렇듯이 딱히 차이가 없다. 굳이 말하자면 규모의 차이 정도. 아마 이쪽 노선이 한국인이 많이 다니는지, 안내 표지판마다 한글이 보였다.
“…어때?”
그리고 유카타를 판매하는 곳. 여러 디자인들의 유카타가 있어 입지는 않지만 보는 재미도 솔솔했다.
유희가 입고나온 유카타엔 짙은 남색 베이스에 얇은 흰색선 세 가닥이 왼쪽에 그여져 있고, 작은 앵두 문양이 그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배에 두르는 보라색 오비에도 심플하게 앵두와 그 줄기가 무늬를 형성해서, 깔끔한 게 유희의 쿨한 모습과 어울려서 전체적으로 시크한 인상을 주었다.
“잘 어울……려.”
유희가 예뻐서 뭘 입어도 잘 어울리는 기분이 든다. 옆에서 점원들도 유희를 향해 뭔가 말하고 있었다. 아마 칭찬이겠지?
“다른 것도 입어볼래.”
유희가 다시 탈의실에 들어갔다. 기다리는 동안 구경하고 있자, 갑자기 직원들이 말을 걸었다.
“보이 프렌드?”
“아… 예스….”
“유 아 소 핸서므!”
“땡큐….”
일본식 발음이긴 했지만,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아 들었다. 외국 고객에게 립서비스라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자기야 뭐 해?”
“아… 갑자기 말을 걸어서….”
“어때.”
“…….”
검은색 배경에 화려한 벚꽃 장식들이 지금 유희의 화난 얼굴을 대변하고 있고, 종아리 중간쯤까지 내려오는 기장 덕분에 검은색인데도 갑갑해보이지 않고 시원해보인다. 오비의 색깔도 검정이라 아까보다 전체적으로 더 잘 어울렸다.
“아까보다 좋아. 예뻐.”
“…그래?”
다행히 화를 누그러뜨렸는지 검은색 배경보다 분홍색 벚꽃이 더 돋보이기 시작했다. 유희 가슴이 커서 그런가 오비위로 살짝 올라와 있어 또 묘하게 흥분됐다.
“고레데.(이걸로요)”
“はい。?かりました。(네 알겠습니다)”
“입고 가는 거야?”
“응. 곧 시작하니까.”
결제가 끝나고 역으로 나오니 벌써 축제 현장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몰려 혼잡했다. 혹여나 유희를 놓칠까 내 앞에 세우면서 어깨에 손을 얹었다.
“기차놀이야?”
“아니 그… 놓칠까봐.”
“귀여워.”
“…그런가?”
조금 더 들어가니 시노바즈 연못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한구석에서 단체로 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부랴부랴 준비하고 있었다.
“와….”
길을 계속 따라가니 야끼소바 같은 각종 맛집과 여러 놀이를 할 수 있는 노점상들이 쭉 늘어져 있고,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거리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저거 하자.”
“사격?”
군대에서 만발을 쐈을 정도로 사격하나엔 자신 있다. 놀이동산에서 하는 공기 총 비슷하게 이쪽도 코르크를 총구에 넣고 쏘는 방식이었다.
천엔에 7발. 맞춘 점수에 따라 경품을 주는 방식이었다.
뻥. 탁.
“오!!!”
7발 전부 가운데를 맞춰서 그런지 주변에서 박수를 쳐줬다. 주인한테 유희 몸집만한 인형을 받고 기념촬영까지 했다.
“어때?”
“별로야.”
“……별로였어?”
“자기 보는 여자들이 너무 많아.”
“…….”
뭔가 유희가 엄청나게 질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유희의 희망에 따라 인적이 드문 곳에 오니 야키소바의 맛있는 짭짤한 냄새가 났다. 우리나라에서도 하는 집은 많으니 음식점에서 먹어보긴 했지만, 그래도 본토의 만두처럼 스티로폼 박스에 나오는 것을 한 번 먹어보고 싶었다.
“저거 먹을래?”
“응.”
철판위에서 소스와 함께 구워지는 당면과, 소스위로 올라오는 거품이 구미를 당기게 한다. 저기에 계란을 터트려 먹으면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
“유희야…?”
늘 유창한 일본어로 주문하고 결제까지 했던 유희가 웬일인지 아무 말도 없다. 내가 뭔가 말해 보라는 눈치를 줘도 일부러 그런듯 입을 열지 않았다.
설마 내가 주문 해야 하는 거야…?
‘유희도 참….’
일단 멍때리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혼자서 편의점에 간 때를 생각하며 점원에게 말을 걸었다.
“아노….”
“はい。お二人さん?(2명이요?)”
“에….”
하이 뒤에 오는 말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애절한 표정으로 유희를 보니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투… 플리즈.”
“아, 오께. 웨이트.”
뭔가 의외로 잘 알아들어서 유희가 조금 놀라거나, 나를 다시 봤으면 했는데 그런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멋있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쪽팔린다.
다행히 만국 공통어 바디랭귀지 덕에 시킬 수 있었다.
“오~”
유희를 찌릿하고 쳐다보자, 참 잘했다는 듯 팔을 뻗어 나를 쓰다듬어줬다. 팔 부분 사이로 약간 겨드랑이가 보여 절로 시선을 돌렸다.
“왜 그런 거야….”
“아까의 복수야.”
“…….”
“はい。お?ち。(여기 대령이요!)”
복수치곤 너무 귀여워서 안아주고 싶었다....
~~~
「まもなく、花火が?まります。(곧 불꽃 놀이가 시작됩니다)」
“곧 시작된대.”
“유희는 불꽃 놀이 본적 있어?”
“응. 친구들이랑 가끔.”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유희의 친구들이라던가,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들은 적 없다. 내 쪽에서 물어보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때의 우리 사이는 가족이라고는 할 수 없는 관계였으니까.
나는 아직 유희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자기야?”
“아… 유희 친구들은 어떤 사람인가 해서.”
“……그냥 좋은 애들이야.”
“그래?”
“관심 있어?”
유희가 또 질투하는 유희로 변했다. 굳이 질투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음… 정확히는 유희 학창 시절이 궁금하달까…. 공개수업도 간 적 없으니까.”
“……미안해.”
“아니야! 사과할 필욘 없어. 잘못한 건 나니까….”
괜한 질문을 한 것 같다. 유희도 본인 나름의 가질 필요 없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 텐데, 구태여 건들이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내가 건드려버렸으니까.
“미안해.”
“뭐가…? 자기는 잘못한 거 없는데.”
“아니 그냥… 분위기가 어색해져서….”
마음속으로 깊이 사죄하고 있다. 유희를 태어나고 보육원에 버린 일을, 한부모 가정에서 살게 한 일을, 학창 시절때 그렇게 신경 써주지 못한 일을, 그리고──
슈우우우 펑──!
“와아….”
내 잡념이라도 날려 버리듯, 강변에서 불꽃이 올라와 여러갈래로 퍼져나간다. 이어서 양옆으로 각각 두 개의 붉은색불꽃이 솟아올라 사라지고, 타이밍이라도 맞춘 것처럼 4개의 불꽃이 한번에 터졌다.
마을사람들도 하던 장사를 내비두고 불꽃을 쳐다본다.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찍거나, 하지만 나와 유희는 아무말도 없이 불꽃이 터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
손을 잡고 강변으로 걸어간다. 입이 아니라 손으로 대화를 했다. 부드러운 유희의 손이 약간 떨리고, 내 손이 그 떨림을 잡아준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나는 네 편이 되어 줄 거라고. 어떤 상황이와도 다시는 널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을 다시 상기 시켰다.
퍼버버벙─!
걷다 보니 사람들이 강가 주변에 몰리기 시작했다. 나와 유희도 그 대열을 따라 사람들이 오지 않는 강가 뒤쪽으로 빙 돌아서 어느새 단둘이 되었다.
불꽃이 터진 이후의 정적이 분위기를 더 무르익게 만든다. 유희를 쳐다보자 유희도 나와 생각이 같았는지 눈이 맞았다.
“츄읍….”
그리고 그대로 말없이 내 얼굴을 잡아 입을 맞췄다. 키스를 통해 서로의 고민이나 잡념을 잊는다. 어찌보면 술보다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응웁…!”
자연스럽게 유희의 가슴에 손을 얹어 살짝 쥐었다. 옷 위로 느껴지는 부드러움이 점점 내 머릿속의 잡념도 없애버린다.
‘이 감촉… 설마….’
옷이 얇아서 그런지 옷 안쪽 가슴이 잘 느껴진다. 그리고 가슴 가운데 봉긋하게 솟아 있는 무언가가 유희의 옷결에 스쳐 지며 유희가 신음을 낸다.
‘노브라인 건가…?’
그렇다는 건, 유희는 아까부터 계속 노브라였다는 상태가 된다.
“후으… 자기야…. 후웁!?”
실타래가 늘어질 틈도 없이 다시 한번 입을 맞췄다. 이번에는 옷 사이로 손을 넣어 가슴을 직접 만진다. 유희가 당황해서 떼낼려고 했지만, 놓기 싫었다.
“누가 보면 어떠케에….”
“그럼 나머지는….”
“호텔 비쌌잖아….”
“하지만….”
“사람들 올 때까지만….”
“…….”
벚꽃나무가 무성한 곳에 몸을 숨겼다. 외국와서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지만, 인간의 성욕은 끝이없다. 유희도 내심 해 보고 싶었던듯, 나무에 손을 집고 몸을 돌렸다.
“유희야 이건...!”
“시, 신경쓰지마아....”
그리고 걷어올린 유희의 유카타 속에는, 생전 실착용 모습을 처음 보는 검은색 T팬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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